축구할 때는 박지성, 공부할 때는 안철수, 친구를 대할 때는 유재석 같은 아이가 있다면? 정지행 원장은 마흔 하나에 낳은 늦둥이 평화 군을 기르면서 아들의 ‘팬’이 되었다고 한다. 신문 읽기로 세상 보는 눈까지 키웠다는 평화교육법. 여유롭고 느긋한 늦둥이 양육기를 들어봤다.
한의사이자 방송인인 정지행 원장. 대한민국 1호 비만전문 한의사로 다양한 프로그램의 패널로 활약할 뿐 아니라,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나 <슈퍼맘 다이어리> 등에 출연해 예능감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마흔 하나에 늦둥이 아들을 출산해 화제가 됐다. 지난 2005년 출산장려에 대한 공로로 ‘국무총리상’까지 수상한 정지행 원장은 ‘한의계의 김지선’이라고 불릴 정도다. 정지행 원장은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에 각각 한 번씩 세 번의 출산을 했다. 40대의 출산은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의 마음을 돌린 건 남편 이태후 박사였다. ‘부부 한의사’, ‘탈모 클리닉 전문 한의사’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부부였는데, 남편의 이야기는 뜻밖이었다.“나이가 들면 남는 건 돈도 명예도 아니고 아이일 거라고 하더라고요. 자녀를 낳아 얻는 기쁨과 행복이 더 귀한 거라고요. 그때만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결정적으로 6개월 동안 남편이 담배를 끊는 걸 보고, 마음을 바꿨죠.”아이를 가져 금연한 게 아니었다. 아이에게 더 좋은 상태의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 담배를 끊었다. 남편의 정성이 아내의 마음을 움직였다. 남편이 금연을 시작한 지 정확히 6개월 후, 정지행 원장은 세 번째 아이를 잉태했다. 정지행 원장은 그날부터 하루에 6km를 걷고, 수영으로 1km의 물살을 갈랐다. 노산이었지만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해주고 싶었다.“아이를 가지면, 평소보다 더 나태해지기 쉬워요. 쉬어도 임산부라는 명분이 있거든요. 저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운동했어요. 때로는 정말 하루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날도 일어나서 운동화 끈을 묶고 나갔어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자’는 다짐에서였죠.”첫째 아들 자현을 가졌을 때는 박사과정 중이었다. 논문을 쓰고 자료를 읽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자현은 지금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아이가 됐다. 생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둘째 딸 문영을 가졌을 때는, 첫째 때보다 노하우가 생겨 좋아하던 운동을 조금씩 했다. 특히 수영을 꾸준히 했다. 딸은 지금도 물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셋째 평화를 가졌을 때는 둘 다였다. 출산 당일까지 병원 업무를 열심히 했고, 단 하루도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평화는 공부와 운동을 모두 좋아한다.“평화를 낳은 일은, 제 인생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됐어요. 아예 인생관이 바뀌었거든요. 아이들 교육관도 바뀌고요. 남편은 그래요. ‘아니, 당신한테 이런 면이 있었어?’ 첫째와 둘째 때랑은 완전히 다른 엄마가 된 거죠.”여유로운 리더로 키운다
수학이나 영어 선행학습을 시킨 적은 없다. 한글도 다 떼지 못하고 어린이집에 간 평화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할 때 해야, 정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정지행 원장의 교육관이다. 아이가 글을 읽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영어를 해야 할 필요를 느껴서 스스로 하고 싶어 할 때 교육을 시작한다. 그 대신 한 번 시작한 일은 제대로 한다. 스포츠를 통해 배운 평화의 승부욕은 공부에도 발휘된다. 정 원장이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건 신문활용교육(NIE)이다. 신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생길뿐더러, 부모와 유대도 깊어지기 때문이다.“저랑 평화가 같이하는 공부는 신문 읽기예요. 늦둥이를 키우면서 교육관이 달라졌는데, 신문 읽기도 그중 하나예요. 한의학에서 환자를 볼 때 그 사람의 아픈 부분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몸 전체를 보거든요. 신문을 보는 것도 비슷해요. 사회 전체를 바라보는 눈이 생겨요. 무엇보다 평화가 한자에 관심이 많은데, 신문을 보면 자연스럽게 한자공부를 하게 되죠. 아빠랑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남편도 아이 교육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요.”정지행 원장은 평화가 평소에 넘겨보는 한자카드를 들고 나왔다. 교육교재 부록으로 딸린 완성품이 아니라, 평화가 직접 손으로 만든 수제 카드였다. 카드를 보면서 획순, 뜻과 음을 배우고 신문을 통해 그 활용을 확인한다. 뭐든 제대로 하는 정 원장은 내친 김에 NIE(신문활용교육) 교육과정도 수료했다. 두 아이를 키울 때만 해도 신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평화가 신문을 읽으며 엄마, 아빠에게 질문을 하고 스스로 한자를 찾아보는 걸 보면서, 신문 교육이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교육법이란 생각이 들었다.“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해내는 건 자신 있어요. 저는 뭘 시작하면 그렇게 해요.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유학을 보내면서도 이렇게 바빴던 적이 없는데 평화가 초등학교 입학한 후로는 제가 엄청 바빠졌어요.(웃음) 학교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고요. 원래 제가 그런 모임에 나가는 성격이 아닌데, 엄마가 학교에 찾아가고 관심을 보이는 게 아이한테 영향을 주더라고요. 평화도 ‘엄마가 자주 학교에 왔으면 좋겠어’ 그러고요.”정지행 원장은 40대로 보이지 않는 외모다. 긴 웨이브 스타일의 머리부터 군살 없는 몸매, 무엇보다 활력 넘치는 태도가 그렇다. 정지행 원장은 주변에도 늦둥이 낳기를 권하는데, 실제로 늦둥이로 자란 아이들의 성품이 또래 아이들보다 탁월한 걸 지켜봤기 때문이다.“평화네 반에도 부모 나이가 저희 부부와 비슷한 아이들이 있거든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아이들이 좀 달라요. 좀 더 여유롭다고 할까요. 약한 아이를 보살필 줄 알고, 자기 걸 양보할 줄도 알고요. 아무래도 부모가 일희일비하지 않고 느긋하게 키워서 그런 것 같아요.”평화가 태어난 날, 엄마도 다시 태어났다
- 2005년 출산장려 부분의 공로로 국무총리상을 받은 정지행 원장(위). 평화가 직접 만든 한자 카드. 신문을 볼 때 유용하다(아래).
늦둥이를 낳아 좋은 점은 손에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전전긍긍하지 않게 됐다. 여유롭고 느긋하게,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내공이 생겼다. 그 내공이 없었을 때, 육아는 흡사 전쟁이었다.“제가 처음부터 그렇게 여유 있는 엄마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무심한 엄마였죠. 저는 일에도 욕심이 있기 때문에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제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첫째는 워낙 순하고 자기가 알아서 다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수월했죠. 둘째 키울 때가 힘들었어요. 아이가 예민해서 낮과 밤이 바뀌니까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돌봐주는 분의 도움을 구했어요.”그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평화를 키우면서 새삼 두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아, 이럴 때 이런 순간에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구나, 엄마의 손길 한 번에 아이가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싶어서.“제가 평화의 교육법을 이야기하는 건, 제가 원래부터 잘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다른 분들이 저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길 바라서예요. 둘째는 지금도 그래요. 평화한테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냐고요. 맞아요. 저도 인정해요. 하지만 그때는 저도 몰랐는걸요. 그 대신 ‘그때 엄마는 젊었잖아. 지금 평화네 반에 가면 엄마 나이가 제일 많아’라고 이야기해주죠.”모유 수유는 6개월, 이유식으로 만든 토종 입맛
세 아이 모두 모유 수유를 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면 끊었다. 6개월이 지나면 모유의 질이 떨어질뿐더러, 아이가 다른 영양소를 섭취할 기회를 잃기 때문이다. 평화 때 달라진 게 있다면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멸치와 다시마, 표고버섯 등이 들어간 영양식을 먹고 자란 평화는 지금도 김치, 나물, 브로콜리, 된장찌개 등을 즐겨먹는 토종 입맛이다. 한창 패스트푸드를 찾을 나이인데도,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홉 살 때까지 병원에 간 적도, 잔병치레를 한 적도 없다. 키도 또래들보다 한 뼘 정도 크다.“물론 좋은 보약도 많이 먹여요. 제가 평화를 가졌을 때도 직접 약을 처방해 먹었고요. 저는 임신하면 다이어트를 시작해요. 다이어트가 살을 뺀다는 게 아니라, 식습관 조절이거든요. 그런 습관이 평화한테 그대로 간 거 같아요. 실제로 평화를 본 주변 사람들이 아이를 데리고 한의원에 오시는 경우도 있어요. 아이가 발육이 좋으니까 ‘한의원집 아이라 그런가 보다’ 해서요.”거기다 평화는 만능 스포츠맨이다. 배 속에서부터 날마다 1km씩 헤엄을 친 터라, 수영은 물론이고 축구, 골프 등에 두루 두각을 나타낸다. 정지행 원장이 한의대 재학 6년 내내 학교 대표 달리기 선수였다더니, 평화가 그 재능을 빼닮았다.“학교 대항 축구대회가 있어서 보러간 적이 있어요. 평화가 공을 잡더니 운동장 끝에서 골대까지 혼자 골을 몰고 가더라고요. 그러더니 슛을 넣는 거예요. 경기 마치고 나오면서 제가 그랬어요. ‘평화야, 엄마는 평화 팬이야.’”평화롭고 느긋한 늦둥이 교육법
“아이 이름을 평화라고 지은 건 평화가 그런 리더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어요. 자기보다 더 약한 아이들을 돌봐주고, 경쟁하기보다는 나눠주고, 혼자서 달려가기보다는 주변 아이들과 함께 한걸음을 걷기 바라는 마음에서요.”평화는 이미 부모에게 많은 선물을 줬다. 태어나기 전부터 아빠에게는 평생 함께해온 담배를 끊는 ‘금연’이라는 선물을 줬고, 엄마에게는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정지행 원장은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 셋째 평화를 낳은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1호 비만전문 한의사로, 일반인뿐 아니라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주치의로, 남편 이태후 원장과 함께 부부 한의사로 이름을 날린 그인데, ‘평화 엄마’라는 이름이 그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이름이 됐다.“평화를 낳고 집을 병원 꼭대기로 옮겼어요. 엄마가 곁에 있는 게 아이한테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아침은 꼭 제가 챙겨먹이고, 평화가 어릴 때는 오전 진료만 보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를 돌보는 데 썼어요. 젊었을 때는 돈을 많이 벌고 명성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키울 때 놓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그때 얻는 기쁨과 보람이 그 어떤 것보다 크고요. 지금도 평화가 돌아오는 시간엔 엄마가 집이든 병원이든 평화가 찾을 수 있는 곳에 꼭 있으려고 해요.”서른만 넘어도 ‘노산’을 걱정하는 산모들에게, 마흔이 넘어 낳은 아이를 통해 비로소 출산의 기쁨을 알았다는 정지행 원장의 이야기는 반가운 소식이다. 무엇보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보다 바른 성품에, 좋은 발육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부모가 젊을 때보다 더욱 수고하고 정성 들여 임신과 출산, 육아를 준비한 덕분이다.“평화를 보면서, 폐경되기 전에 아이를 하나 더 가질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그런데 평화가 동생을 좋아할지 걱정이에요.” 정지행 원장이 말하는 평화로운 늦둥이 교육법
임신
●건강한 출산을 위해 준비된 임신을 하라.●고령 임신, 남편과 함께 준비하라.●결혼 전부터 서로의 건강진단서를 확인하라.●임신과 불임 정보에 귀 기울여라.●생리 주기와 배란일을 체크하라.●임신하기 좋은 유연한 골반을 위해 노력하라.●아기가 좋아하는 따뜻한 자궁을 만들어라.육아
●아이와의 약속은 철저히 지켜라.●약속을 어겼을 경우에는 반드시 용서를 구하고 이유를 설명하라.●아이에게도 확실한 원칙을 세워라. (정지행 원장 부부에게 제1원칙은 ‘거짓말하지 않기’였다.)●성취에 대해서는 보상을, 잘못에 대해서는 벌을 준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줘라.●교육은 ‘아이가 원할 때’ 시작하라.●엄마가 운동을 좋아하면 아이도 운동을 좋아한다.●학교 활동에 참여해 아이에게 관심을 보여라.●아이와 충분한 대화시간을 가져라.●아이가 밖에서 돌아왔을 때 따뜻하게 맞아줘라.●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가르쳐라.●엄마가 아이로 인해 얼마나 행복한지 자주 표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