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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을 찾으러왔다.
- 침묵속의淚多 -
[오늘 오후 2시경, 서울시 서초동 사거리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현장에서 검거된 피의자 이모군은 피해자 서모양을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사망에 이르게 했는데요. 시민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그 충격의 여파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습니다……]
“오빠!”
그녀가 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밝은 미소로 그에게 다가온다. 긴 생머리를 바람결에 찰랑이며 뛰어오는 모습이 마치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 그 곁에 있는 것 같다. 짧은 거리를 뛰었음에도 숨을 헐떡인다. 잠깐, 손바닥을 내밀어보이며 허리를 숙인 채 숨을 고르는 그 모습마저 사랑스럽다.
“많이 늦었지? 미안~”
사랑스런 콧소리. 헤헤거리며 웃는 그녀. 미쳐도 단단히 미치지 않았나. 그래도 좋다. 그럴만큼 사랑한다.
“괜찮아. 우리 이쁜이 기다리는 것 쯤. 백번이고 천번이고 할 수 있다!”
“헤헤. 역시 우리오빠는 짱이라니까!”
“하하. 밥 먹으러갈까? 나 점심을 시원찮게 먹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프네. 이쁜인 배 안고파?”
“아! 오빠! 그 전에 나, 꼭 사고 싶은 거 있는데….”
그녀가 민준의 팔짱을 끼고서 바삐 걸음을 제촉한다. 만난 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 대형 백화점이었다. 민준은 높다란 빌딩을 올려다본다. 한숨이 나온다. 그녀를 본다. 마냥 즐거워하는 그녀의 모습에 바보처럼 또 웃는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멈춘 곳은 명품 매장이다. 그녀는 폴짝폴짝 뛰며 신이난 듯 물건을 살피고 있다. 민준은 시계를 들여다본다. 배가 많이 고프다. 그래도 가방 하나를 집어들며 민준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를 보니 또 마냥 웃는다.
묵직해진 그녀의 쇼핑백을 들고 레스토랑에 왔다. 야경이 가장 잘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앉아 와인과 함께 식사를 즐긴다. 벌써 월급의 절반이 눈 깜짝할 새 빠져나갔다. 중독된 사랑의 치명적인 약점. 저 미소엔 마약 성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미소 한 번에 시름이 놓이고, 미소 한 번에 걱정이 놓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그 미소만이 반짝이고 있어, 오로지 그 미소만을 좇을 뿐이다. 그 미소가 벼랑 끝 낭떠러지에서 부르고 있어도 좇겠지. 좇아가겠지. 그것이 죽음을 향하고 있는것도 모르고 말이다.
민준의 생활을 날이 갈수록 황폐해졌다. 고급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던 민준은 월급만으로 그녀와의 만남을 이어가는게 힘겨워지자 아파트를 처분한다.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그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월셋방으로 이동했다. 돈이 없다. 그녀를 만나는 건, 한달에 두 세번이 전부일 뿐이다. 그리움은 민준을 괴롭혔다. 이성의 끈은 진작에 놓여졌다. 견딜 수 있는 인내력이 없었다. 대출을 했다. 그래도 모자랐다. 사채를 쓴다. 이미 그의 인생은 끝을 향해 있었다.
멀쩡한 사람이 망가지는데 얼마나 오랜시간이 걸릴까? 그녀와 만난지 고작 2년이었다. 2년이란 시간동안 민준에게 남아있는건 엄청난 빚더미. 그리고 빚독촉에 의해 잃어버린 직장. 햇살이 따스히 스며들던 아파트에서 빛 한점 들지않는 고시텔. 그래도 놓지못하는 그녀. 그래도 남아있는 건 그녀뿐이라는 강한 집착. 그녀를 찾았다.
“뭐야? 우리 사이에 아직도 볼 일이 남아있어?”
미소가… 없다. 왜, 날 향해 웃어주지 않니?
“사랑해.”
“난 오빠 사랑하지 않아.”
“사랑해.”
“하, 정말 말귀 더럽게 못알아먹네. 날 보고싶으면 돈을 가지고 와!”
쾅! 거세게 현관문이 닫힌다. 민준의 심장을 쇠망치로 내려치듯 강하게 닫힌 문. 현관문에 손을 얹어본다. 그녀의 온기가 남아있나? 하지만 이 철문은 따스함을 모른다. 차가운 촉감이 민준의 손에 닿는다. 지금의 그녀와 꼭 닮은 문이다. 그녀의 차가워진 마음만큼이나 차가운, 시린 문이다.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 까만 밤 하늘을 바라본다. 이 도심속에서 하늘에 반짝이는 불빛은 별이 아닌 위성뿐이다. 차가운 철제로 만들어진 위성. 하하. 내 별아, 어디갔니?
미친듯이 일을 했다. 빚쟁이들을 피해 막노동을 하러 다녔다. 그에게 쉴 곳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를 만날 때 입으려 유일하게 남겨둔 양복만이 그의 곁을 지켰다. 닥치는대로, 할 수 있는게 있으면 있는대로 조금씩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몇 달. 꼬깃꼬깃 모인 돈이 꽤 된다. 민준은 오랜만에 찜질방을 찾는다. 깨끗하게 묵은 때를 벗겨내고 편한 자리서 숙면을 취한다. 내일이면 그녀를 본다. 그녀를 볼 수 있다.
그녀를 보고픈 마음에 일찍 일어났다. 목욕탕에서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정돈한다. 오랜만에 양복을 꺼내입는다. 그녀의 차가운 얼굴을 마주한 그 날이 마지막으로 입은 날이었다. 그 사이 살이 많이 빠진 모양이다. 꼭 맞춰입었던 양복이 조금은 헐렁한 느낌이 든다. 아쉬운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래도 좋다. 그녀를 볼 수 있으니까.
- 딩동 -
초인종을 누른다. 이른 아침이라 자고있는건지 반응이 느리다. 다시 한 번 누른다.
“누구세요?”
막 잠에서 깬 듯한 목소리의 그녀. 민준은 절로 웃음이 난다. 함께했던 지난 날중 그녀가 가장 예뻐보였던 순간은 저렇게 깨어난지 얼마안되었을 때, 약간은 붓기가 남아있는 얼굴이었다. 얼마나 귀여운지 재웠다 깨우기를 반복하고 싶을 정도였다. 문이 열린다. 그녀가 보인다. 민준은 웃는다. 그녀의 반쯤 떠진 눈이 커진다.
“무슨일이야?”
“오빠가 열심히 일해서 돈 마련해왔어. 오늘 우리 데이트하자.”
그녀가 웃는다. 그런데 그 미소가 밝지 않다. 비웃음. 비웃는다.
“누구야?”
그녀의 뒤로 정체불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민준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다.
“신경쓰지마. 옛날에 좀 만나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자꾸 찾아오네.”
“너 뭐야. 뭔데 내 여자한테 찝적거려.”
“어, 어떻게. 내가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어떻게 됐는데 다른 남잘 만나!!”
“웃어준다고 정신 못차리고 덤벼든 건 네 잘못이지 않아? 웃기지도 않아. 꼴보기 싫으니까 다신 찾아오지마.”
쾅! 다시 한 번 문이 세차게 닫힌다. 분노가 오른다. 쥐어진 주먹이 부르르 떨린다. 하지만, 하, 그래. 모든게 내 탓이구나. 내 어리석음이 날 바닥으로 내몬거야. 그래. 네 탓이 아니야.
지난 날이 스친다. 그제서야 마약에서 풀려난 느낌이다. 그러나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온 걸음을, 이미 숲이 우거지고 가시 밭길이 되어 멀어진 옛 길을 다시 걸어갈 자신이 없다. 아득히도 먼 옛 기억의 자신을 돌아본다. 의지할 곳이 남아있지 않았던, 유일하게 상속되어진 집도 그녀를 위해. 그녀없이는 안되는 나를 위해 써버렸고 그를 붙잡아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죽음만이 그를 부른다.
“피해자 서지혜씨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십니까?”
“잘…. 알진 못합니다. 그 날 그저 감사하단 말을 전해드리고 싶어 찾아뵌건데.”
“단순히 만나러 갔다? 그런데 왜 칼을 소지하고 있었죠?”
“그, 그건! …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시켰습니다.”
“누가 시켰습니까?”
“……심장이요.”
경찰앞에 진술중인 남자. 사건의 피의자 이모씨.
“저는 몇 달전에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심장을 이식해주신 분이 서지혜씨의 애인이라고 하더군요. 일가친척이 없던 분이라 애인인 서지혜씨가 보호자로 있었는데…. 뇌사상태에 놓인 그 분이 평소에 죽으면 장기기증을 하고 싶단 말을 많이 하셨다고, 그래서 혈액검사가 저와 일치하자 저희 가족을 만나 심장이식을 권했다 하더군요. 저희 가족은 죽을 날만 기다리던 저에게 희망이 생겼다며 그녀에게 감사의 의미로 사례금을 전달했습니다. 수술을 받고 난 후 빠르게 회복된 저는 그녀가 무척 궁금해지더군요. 무슨 이유인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꼭 봐야겠단 생각이 들어 가족에게 그녀의 연락처를 받아 그녀와 만날 약속을 잡았습니다. 저에게 무슨일이 일어난 건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녀를 만나는 날 미칠듯이 화가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그 장소까지 간 건지. 무엇 때문에 칼을 챙겨들고 간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를 본 순간, 마음속에서 미친듯이 외쳤습니다. 그녀를 죽이라고. 죽여버리라고….”
이번 내용은 상당히 무겁지요.
끝맺음이 마음에 안드는데 도저히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답이 안내려집니다.
그렇다고 이거 끌어안고 있으면 저 답답해서 죽을 것 같고,
저는 나쁜남자한테 빠지는 여자도 이해안되고
된장녀한테 빠지는 남자도 이해안되는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야할까요?
암튼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쓰면서도 이번 남주를 욕하면서 썼네요. << 대체 뭐냐.
이건 일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걸 토대로 씁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라기보다, 그냥 심장이식수술에 대해서 쓴거예요.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남자가 심장이식을 해준 남자가 살아생전 사랑했던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요.
그냥. 그러니까.... 엠. 미친 망상이 밤새 머릿속을 떠다녀서 정리를 안하면 안되는지라.
요새 내 머릿속은 대체 왜 이럴까요.. 큰일이네요.. 말도 많아지고.. (쭈볏쭈볏) 숨자.
첫댓글 어 여주 너무나빠요 !!남자가 너무 불쌍하네요ㅠㅠ 와그래도 색다른 소설을봐서 재미있었어요!!
저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용하는 사람보다 이용 당하는 사람을 이해못하는 편이예요.
그래서 쓰는 내내 여자보다는 남자를 욕하면서 썼어요. ㅎㅎ
요전에 써왔던 소설이랑은 약간 다르지만 작년쯤에 썼던 소설들이 주로 이런류였던 것 같아요 '-'
제가 취향이 약간 어두운 면이라던가, 아니면 심각하게 진지한 걸 좋아해서.. ㅎㅎ
게다가 망상까지 심각한 수준이라 -_- 아무튼..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 ^
쩐다...ㅜㅜ 여주 진짜 패버리고 싶네요 ㅋㅋㅋ 마지막에 죽어서 좀 통쾌했어요ㅎㅎ
여자때문에 지 인생 망치는 남자들이 실제로 많다는걸 알기 때문에 더 슬픈 이야기네요 ㅜㅜ 잘봤습니다~
ㅎㅎ 저는 실제로 남자를 이용하는 여자보다는 여자를 이용하는 남자들을 많이 봤어요.
제 친구중에 정말 멍청한 애 하나 있거든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는 -_-
아무튼 살인이 들어간 스토리다 보니 여자보다는 남자가 낫겠다 싶어 남자로 썼는데
내용은 여자로 쓰는게 훨 많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본게 있다보니까 -_- (그 친구랑 같이 살았음)
흐흐. 아무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참 리플마저 말이 많아서 탈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