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 . 달날 -해나고 한낮이 무척 더운 날
들깨밭 만들다가
칡!봤!다!
톱으로 잘라야 할 정도로 제법 두꺼운 뿌리...
덕분에 허리나갈 뻔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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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불날 - 흐리다 밤9시쯤부터 시원한 비
“고구마 언제 심나?”
다른 것도 그렇지만 고구마는 특히 날을 잘 잡아야한다.
일하는 양도 달라지고 고구마 생사도 달려있기 때문.
얼마 전부터 날씨 확인하고, 심는 이들 일정도 헤아리다 오늘로 결정했다.
그래도 아직 비 온 건 아니라 물은 주어야한다.
집 수도에서 물을 받아 써야하는데
언니들이 긴 수도를 빌려주어 일이 한결 편했다.
구덩이 파 물 흠뻑 주고 줄기를 옆으로 누인 뒤 흙으로 덮기를 반복.
순 빼려고 묻어놓은 씨 고구마가 침묵 중이어서 따로 네 단이나 구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랑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한 단은 구하자마자 땅에 닷새동안 임시로 묻어놨고
세 단은 하루 밖에 두었다가 사흘간 물에 담가두었다.
네 이랑 밖에 심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며칠 전부터 벼르던 큰 일을 끝내서 개운했다.
고구마 심고나서 들깨밭에 두 번째 들깨 심었다.
일 마치니 8시쯤 되었는데 밤부터 비가 세차게 내렸다.
고구마와 들깨가 잘 자랄 생각에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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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물날 - 비온 뒤 무척 맑은 날
오늘 아랫마을서 잔치가 있는 날이라 아침 나절 콩씨를 심었다.
두 해 만에 서리태도 심고, 그 옆에 벙어리참깨도 심었다.
지난 겨울에 홍천 여성 농민회 씨앗축제갔다 얻어온 홀아비밤콩과 오리알태도 심었다.
콩은 교잡율이 높은 편은 아니라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수수밭 사이에 심고, 키 큰 작물 이랑을 사이에 두고 심으면서
최대한 교잡을 막도록 잘 계산해야한다.
5월 15일에 좀 이르다 싶게 심었던 검은깨에 싹이 났다.
깨는 꼭 비오는 중이나 비온 뒤에 심어야 싹이 튼다고 한다.
그래서 좀 이르지만 비 온 다음에 심었는데,
그 뒤 한 번 더 비를 맞고 싹이 튼 것이다.
매번 참깨싹이 잘 올라오지 않아 여러 번 새로 뿌렸는데
이번에는 적지만 한 번에 나와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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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나무날 -해나고 바람 정말 세게 분날
(진주대평무에 진딧물이 끼고 노린재도 많아졌다.)
(청벌레는 어디에 숨었는가? 씨방과 모양이 비슷한 청벌레)
진주대평무에 진딧물 끼고 노린재와 청벌레가 몰려든다.
청벌레는 자칫 씨방처럼 보이기 때문에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기분이 든다.
진딧물에는 굴뚝물 섞어 뿌려주고 노린재는 부지런히 잡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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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쇠날 - 흐리고 구름 많고 좀 추웠던 날.
얼마 전, 머리를 미쳐 올리지 못한 강낭콩과 줄기끊겨 처절한 강낭콩 보며
땅이 얼마나 딱딱했으면 머리 올리다 줄기가 끊겼다고 썼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의 이 가정을 뒤집는 사건이 찾아왔다.
강낭콩 옆에서 잘 자라고 있던 감자 줄기가 싹뚝 끊어져 있던 것!
그리고 선명한 이빨 자국!
순간 잠시 화가 치밀어 올랐고
조사에 들어간 나는 덮어준 풀 밑에서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거세미나방애벌레와 작은 새끼 애벌레를 발견했다.
(강낭콩 줄기와 감자 줄기를 잘라먹은 혐의가 있는 거세미나방 애벌레... 사진은 당시 상황 재현)
'너 잘걸렸다' 싶어 잠시 심호흡하며 눈과 코에서 살기가 뿜어져나왔다.
그러다 곧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다.
주름을 잡았다 폈다 2분 정도 만지고 놀다가
주둥이에다 감자 줄기 대면서 '너가 이랬냐' 하면서 3분간 강한 잔소리를 해대고는 개울가로 던져뿌렀다.
덮어준 풀 밑으로 벌레들이 잘 숨어 있는데, 더 이상 참사는 없길 바란다.
어쨌거나 머리를 들어올리지 못한 강낭콩은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얘들은 장차 어떻게 될는지....
심어놓은 고구마 잎이 말라간다.
예전에는 이럴 때 또다시 물주고 또 물주고 그랬다.
그래서인지 그 해는 고구마 순이 다 말라죽었다.
몇 해 전, 선생님께서 고구마는 심을 때만 물을 흠뻑 주고, 그 뒤로는 물을 주는 게 아니라 하셨다.
그렇게하니 틀림없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날이 워낙 가물다.
바로 따왔다는 고구마순을 사서 닷새간 땅에 묻은 것은
잎도 작고 어린 것을 묻은 거라 그런지 잎이 하늘을 쳐들고 살아났는데
뿌리와 잎이 많이 나와있던 고구마순은 점점 잎과 줄기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그래도 낙담하지는 않는다.
겉으로는 죽은 듯 보여도 뿌리는 살아있을 수 있고,
잘 자라는 것 같아도 잎만 무성할 수 있으니
어찌 될런 지는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왼쪽 사진 윗줄은 좀 어린 고구마 줄기를 닷새동안 땅에 묻었다가 심은 것이고,
아래는 뿌리와 잎이 제법 나온 줄기를 하루는 밖에, 사흘은 물에 담갔다가 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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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해날 - 해나고 바람 많이 분날
기쁜 날이다.
5월 18일 처음으로 심은 들깨가 방실방실 귀여운 싹을 보여줬고
(5월 18일 먼저심은 들깨가 열흘만에 싹을 냈고,
그 옆 구덩이에는 누군가 사뿐히 즈려밟고 간 흔적이 있다. -2017.5.28 숲속밭)
5월 17일 다시 심은 산도밭벼도 싹을 낸 것이다.
(5월 17일. 씨라도 받겠다며 다시 심었던 산도벼가 곱게 싹을 냈다. 2017.5.28 마당밭)
( 4월17일 심은 원자벼는 한 두 알 나왔고, 조중생산두(밭찰벼)는 부지런히 싹을 올리는 중이다. 2017.5.28움터밭)
이런 가문 날씨에도 보란듯이 싹을 내다니!
농부는 땅 탓 하는 게 아니라더니, 하늘 탓도 하는 게 아닌가보다.
중간에 조바심이 나서, 물을 줄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지는 않기로 했는데
알아서 싹을 잘 내주니 고맙고 대견하다.
4월 17일에 심은 밭찰벼와 비교해볼 때 그리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아서
부지런히 크다보면 조금이나마 씨라도 받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데
좀 더 지켜봐야할 일이다.
처음 심은 산도벼 싹이 나지 않은 것은,
지난 겨울, 찬물에 담그고 말릴 때, 촉이 터서 살아난 것을 열소독해서 그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중생산두(밭찰벼)는 찬물에 담그지 않았고 염수선과 열소독만 한 것인데 싹이 났기 때문이다.
더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 남은 볍씨를 물에 담가보았더니 2주가 지나도록 30알 남짓에서 세 알 정도만 뿌리가 나왔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된다고 위로를 받았지만 사실은 철저하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반가운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순 내려고 심은 고구마 상자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살짝 파보니 거기에 고구마색 싹이 솟아나고 있었다.
고구마는 얼어죽었다고 생각했는데....
(3월 20일 심은 씨고구마가 두 달 넘는 침묵을 깨고 움 텄다.과연 순을 밭에 심을 수 있을까?-2017.5.28)
고구마도 그렇고 밭벼도 그렇고...
무엇하나 확실히 안다 싶은 게 없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나기도 하고,
첫 기세에 좋아라했더니 끝이 안좋은때도 있고
다 되었다 생각해도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게 하늘땅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래서 재미있는 거랬다.
석유와 기계문명에 기대어 심은 대로 거두는 '농사'와는 다르게
하늘, 땅, 사람이 탁! 맞아야 비로소 결실을 맺는 '하늘땅살이'의 맛을
좀 더 이해하며 살고 싶다.
(4년째 되도록 허둥대는 나와 달리, 여유있게 피어올라 온화하게 미소짓는 작약. 그 여유를 언제쯤 배우려나? )
첫댓글 반가운 소식 가득하네요. 그 사이 사람 마음만 이리저리 흔들리나봐요 ^_^
저도 3월 후반에 심은 씨고구마에서 이제야 순이 자랐어요. 그 자리에 단수수를 심었는데 혹시 몰라 남겨뒀었거든요. 어찌해야할지 고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