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음) 장부에 허위로 남아있던 적폐(積幣)를 마음 쏟아 깨끗이 정리하셨다 문무와 농업을 장려하셨고 또한 창고를 풀어 구휼해주셨다.
유학 김민협 별감 유학 문익상 좌수 유학 문병헌 도감 유학 정존일 감관 가선 문진열 색이호장 윤석노
숭정 기원 후 네 번째 병진년(1856) 6월 일 각 면에서 세움. 광무 6년 임인년(1902) 2월 일 외손 부윤 조종서 비각을 세움.
240) 이휘령 : 1851년(철종2) 5월에 부임하여 1852년 7월에 이임됨.
낙민 첨록
이휘령(李彙寧)1788(정조 12)∼1861(철종 12).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군목(君睦), 호는 고계(古溪). 아버지는 이승순(李承淳)이며, 어머니는 경주최씨(慶州崔氏)이다. 종가의 이지순(李志淳)에게 입양하여 이황(李滉)의 10세 종손이 되었다. 1816년(순조 16) 진사시에 합격, 1821년 동몽교관에 임명되었고,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의금부도사·탁지랑(度支郎)·동복현감·서산군수·영천군수·밀양부사·청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851년(철종 2) 동래부사를 거쳐 1853년 동부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으며, 1855년 돈녕부도정을 거쳐 오위도총부 부총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사직상소를 올리고 역시 부임하지 않았다. 벼슬살이를 하면서 여가에 학문에도 주력하여 이황의 성리학에 전심, 가학(家學)을 이었다. 또한, 「십도집설(十圖集說)」과 「방경무도사(邦慶舞蹈辭)」도 지었다. 저서로는 『고계집(古溪集)』 8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