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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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산 자만이 드릴 수 있는 감사 사 38:16-20 사 38:16 주님, 주님을 섬기고 살겠습니다. 주님만 섬기겠습니다. 저를 낫게 하여 주셔서, 다시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아픔이 평안으로 바뀔 것입니다. 17 주님께서 이 몸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고, 주님께서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18 스올에서는 아무도 주님께 감사드릴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주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19 제가 오늘 주님을 찬양하듯,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주님의 신실하심을 일러줍니다. 20 주님, 주님께서 저를 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사는 날 동안, 우리가 주님의 성전에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우리는 매년 두 번의 주일을 정하여 감사주일로 지킵니다. 이러한 감사 신앙은 정말 놀라운 은혜로 성도들이 세상을 이기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감사 신앙을 심각하게 왜곡시켜 버리고 있습니다. 감사주일을 부담스럽게 여기게 만든 것입니다. 어느 해인가 추수감사절에 어느 집사 부부가 싸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유는 헌금 때문이었다고 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살아있는 자만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히스기야 왕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의 일부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다의 역대 왕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왕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을 일으켜 우상을 무너뜨리고 성전 제사를 회복하였습니다. 한번은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대를 쳐들어 왔을 때,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강대국 앗수르를 당할 수가 없었던 히스기야가 이사야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을 죽여 이기게 하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히스기야가 하나님으로부터 죽을 것이라는 선고를 받은 것입니다. 그 때 히스기야는 벽을 향해 얼굴을 마주대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간절한 기도를 합니다. 사 38:3 ..."주님, 주님께 빕니다. 제가 주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온 것과, 온전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과, 주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 한 것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고 나서, 히스기야는 한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오늘 본문에도 그 기도가 이어집니다. 사 38:16 주님, 주님을 섬기고 살겠습니다. 주님만 섬기겠습니다. 저를 낫게 하여 주셔서, 다시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아픔이 평안으로 바뀔 것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히스기야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였겠습니까? 그 눈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사 38:4 그 때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5 "너는 되돌아가서, 히스기야에게 일러라. '너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기도하는 소리를 내가 들었고, 네가 흘리는 눈물도 내가 보았다. 내가 너의 목숨을 열다섯 해 더 연장시키고, 6 너와 이 도성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구하고, 이 도성을 보호하겠다 제가 추수감사주일 설교 본문으로 히스기야의 기도를 택한 까닭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한번만 더 살려달라고 기도한 이유 중 하나가 감사였다는 사실입니다. :18 스올에서는 아무도 주님께 감사드릴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주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19 제가 오늘 주님을 찬양하듯,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 이 기도가 제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살아 있는 자만 감사할 수 있다!” 죽음이 왜 두렵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 왜 슬픕니까?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심정이 되어야 진정한 감사 신앙입니다. 그러나 육신만 살아있다고 진정한 감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이 살아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깨달아져야 감사하는 것입니다.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좋은 일이 생겨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아 영이 살았기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제 생애에 처음 마음을 다하여 감사헌금을 드렸던 때가 신학교 1학년, 군목 후보생으로 합격하였을 때였습니다. 웬일인지 너무나 감사하여 감사헌금을 하고 싶은데, 가난한 신학생이라 부모님께 받아야 했습니다. 부모님이 주신 돈이 제 마음에 차지 않아 얼마 안 되지만 제가 가진 돈을 다 더하여 헌금하였습니다. 그렇게 감사하였던 군목 시절에 제 생애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될 위기에 처하였고, 임관하지 못하고 3년 동안 계속 훈련에 소집되어 저도 제 가족도 고생이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목 재임기간 중 3번이나 군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렇게 감사하였는데, 가장 고통스런 일이 되었다니 말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농촌에서 목회하는 후배 목사가 첫 부흥회를 인도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부흥회를 인도해야 하기에‘제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의 대부분이 군목 훈련을 받을 때부터 군목 제대할 때까지 부어졌음이 깨달아졌습니다. 제가 거듭났고 기도의 문이 열렸고 소망의 눈이 뜨였고 무엇보다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제게 그동안의 제 삶에서 가장 감사한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군목 시절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 생애에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웠던 그 때, 저는 가장 큰 은혜를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모님께 감사하실 것입니다. 형편이 좋아서 감사하는 것입니까? 무언가 많이 받아서 감사합니까? 받을 것 없고 오히려 섬겨드려야 할 때, 더욱 감사하게 됩니다. 더 이상 줄 것이 없어 부담스러워 하는 부모님께 “하나님께 복 받을 기회를 빼앗지 말아 주세요.” 말씀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이라고 해서 풍성한 결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감사 안 해도 되는 해가 더 많을 것입니다. 절기를 정하자니 추수 후가 좋다고 정한 것뿐입니다.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형편과 처지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계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며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음이 믿어지는 사람만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는 한동안 교인들에게 감사헌금을 힘을 다하여 드리자는 강조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부담스럽게 여기는 교인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그동안 율법적이고 기복적으로 감사헌금을 강요하다시피 했던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면서 주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힘을 다하여 감사하자’는 말하기를 왜 주저하느냐? 하는 책망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믿음인가?’ 생각하니 하나님께 너무 죄송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제 말을 따르고 안 따르고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저는 여호수아처럼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수 24:15 ...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러분, 옛날보다 감사의 마음이 식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되면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마귀가 우리 마음에서 감사를 빼앗아가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욥은 사탄으로부터 심각한 참소를 받았습니다. 사탄의 참소는 한가지입니다. ‘형편이 좋으니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지 어렵고 고통스러우면 반드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의 모든 재산을 다 빼앗고 10남매 모든 자녀를 다 죽였습니다. 그 때 욥은 말했습니다. 욥 1:21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의 영혼이 살아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상황이 더 악화되어 욥의 온 몸에 악창이 나서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할 때, 아내마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였습니다. 이때 욥은 욥 2:10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했습니다. 역시 욥의 영혼이 살아있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도전합니다. ‘잘 되니 감사하는 것이지 어려우면 탄식하고 원망할 것이다.’ 우리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마귀는 징글징글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입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심하는 말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마귀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대답을 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이제도 감사합니다!” 예배 때마다 성경을 봉독하였던 김선경 집사 (요셉 2교구)의 간증이 있겠습니다. “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날 사랑하시며, 날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고백하며, 작년 7월 주님께서 믿음의 가정을 세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기다리던 첫 아이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아이의 첫 심장 소리를 들었을 때, 생명의 신비함을 느끼고 나도 곧 엄마가 되는구나 행복한 생각을 하며, 태명도 짓고, 매일 밤 태중의 아이를 위해 축복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임신 중반쯤, 정밀 초음파 검사를 하고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이가 많이 아픈 것 같다는 선생님의 말씀 ... 이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큰 대학병원으로 옮기라는 말씀 ... 아이의 안 좋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기에 듣는 내내 ‘울지 말자’ 스스로를 다독이며 겨우 정신을 붙들고 집으로 왔습니다. 친정엄마에게 먼저 이 소식을 전하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우리 아기 많이 아프대 ... 어떻게 ... 이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병원을 옮기고 다시 검사를 한 결과, 18번 염색체에 이상이 있는 애드워드증후군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뱃속에서 사산될 확률 50%, 혹시 태어나도 하루를 살지, 한 달을 살지 알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가 나이가 많아서 아이가 이렇게 된 건가 ... 수많은 생각을 하며 그냥 울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던 이날, 퇴근해서 집에 온 신랑에게 한 첫 말은 “우리 예배드리자.”였습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상황에서 생각나는 게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눈물로 우리 가정에 닥친 상황을 올려드리며 주님을 붙들게 하심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이와 헤어질 생각을 하며, 그동안 일한다고 정신없이 나를 위해 살았지 태중에 있는 아이에게 해준 게 너무 없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말씀 한 구절, 찬양 한번 제대로 들려준 적이 없다는 게 가장 가슴이 아파,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찬송가를 소리 내어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한 달 후, 복음학교 섬김이로 일주일간 말씀 앞에 서게 하신 시간이 있었습니다. 전화면접 당시, 아이의 상황을 알리며 아직 뱃속에 있지만 이 아이에게 복음을 들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허락되어진 일주일의 시간 동안 매순간 말씀을 듣는데, 아이가 반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잘 느끼지 못했던 아이의 움직임이 확실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무엇보다 나에게 분명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예랑이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고 ... 저는 그 깨달음에 엎드려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편에서 우리 아이는 온전치 못한 모습, 장애가 많은 아이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태초부터 주님이 디자인하셨고, 우리 가정에 주시기로 계획하셨던 아이라는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아이는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 이 감사함을 눈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중보기도 덕분에 10월 7일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태어났을 때, 숨을 쉬지 않고, 심장도 멈춰 있어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의료진들이 다급하게 움직였습니다. 17시간의 진통으로 정신이 없는 중에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 걱정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잠깐이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아이를 낳고 3시간 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아이를 처음 마주한 순간, 아이가 많이 고통스러워 보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와 분리된 이 아이는 이제 혼자 모든 고통을 감당해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찢어질듯 아프고, 아이에게 미안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아이가 살 수 있는 시간을 조심스럽게 한 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지 이제 한 달하고 열흘이 넘었습니다. 비록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지만, 많은 분들의 기도로 아이가 하루하루 잘 버텨주고 있습니다. 처음 아이의 상황을 듣고, 아이를 낳고, 지금 아이를 마주하고 있는 모든 시간들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을 느끼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들이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켜라’ ... 내게 주어진 상황만보면 감사할 것이 기뻐할 것이 하나도 없고, 끝도 없이 무너지는 마음만 보입니다. ‘하나님, 능히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신다고 하셨는데 주님이 보시기에 제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셔서 이 일을 저에게 허락하신 건가요?’라고 묻고 또 물으며 하염없이 울기만 할 때에도 주님은 내게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길 원하심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묵상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사실 살 수 없는 아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아이를 지울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너무나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때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깊이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예수님은 당신이 가셔야 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아시면서도 상황을 피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셨음을 계속 묵상케 하셨습니다. 초보이지만 부모가 되어보니 날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그리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내 영혼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새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이 실제로 내 안으로 들어오고 뿌리를 내린 듯했습니다. 우리 가정의 상황은 변한 것도 없고, 기적도 없습니다. 아직 모든 상황이 진행 중이고, 날마다 허락하신 하루를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리며 지내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놀라고 감동받을 뭔가 대단한 일이 있어야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는 매일 매일 아이의 얼굴을 보고 엄마아빠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언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나의 하늘 아버지는 선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오면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나의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고 실수가 없으신 선하신 주님이라는 신뢰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매일 매일 보여주시는 것만큼만 주님을 신뢰함으로, 세상은 이해하지 못하는 천국소망을 품고 나아갑니다. 모든 일들이 주님의 뜻대로 온전히 이루어지길, 우리 예랑이가 비록 작고 연약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통로로 쓰임받길 기도합니다.“ 집사님의 간증 중에 아이를 낙태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엄마의 사랑을 믿고 있을 아이를 배반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도 말할 수 없이 죄인인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깨닫고 출산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마음을 울립니다. 여러분, 감사절은 좋은 형편과 풍성한 수확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영혼이 살아서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 일기인 [영성일기]를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심폐소생술입니다. 감사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살려냅니다. 그래서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감사주일에 :20 말씀이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기도합시다. :20 주님, 주님께서 저를 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사는 날 동안, 우리가 주님의 성전에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죽음 앞에서 “살아야 감사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였던 히스기야처럼 우리의 영혼이 소생하게 하셔서 감사가 회복되게 하소서, 기도하겠습니다. 찬양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