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8월 5일 동아일보
특산물(特産物) - 25
1. 염(鹽) = 소금
경기도의 서해안이란 굴곡이 빈다하여 인천항을 낳고도 남음이 있어 곳곳에 집단적 어촌과 광폭의 염전 등이 전개되었나니 소금의 생산고가 무려 50만원에 달한다는 관업(官業)으로의 전매국 주안출장소가 있어서 면적 63만 6천평에 부수 9기로 천일염과 전오염 기타 식탁염 외 수종을 제조하니 연산 36만 83백여원이며
민업(民業)으로 조선염업 주식회사가 소화2년에 창립되어 다주면 장의리(長意里)에 있으니 면적 16만 8,824평에 부수(釜數) ST식 7기로 염전에서 생산한 농후 염수를 전오 결정함이니 연산 478만 2800여근으로 가액(價額) 9만5600여원에 달한다.
하(鰕) *새우하 - 연산(年産) 50만원
인천 근해의 대소군도는 다 부천군에 속한 지역으로 어민이 4,683호에 7,677인이나 거주하여 사계를 쉬지않고 어획에 근로한다. 그래서 전 조선 각지에서 먹어지는 새우젓이나 멀리 중국 전반에 달하여 수출되는 건새우나 깨끗하고 맛좋은 유명한 동백하(冬白鰕) 나간다. 여기에서 생산되나니 실로 전 조선 유일의 새우 소산지이다.
유진학(兪鎭鶴)씨는 하계의 거성이다. 용유면 소무의도라는 작은 섬에서 생장하니 가세는 적빈이고 사린은 어민이라 소견소문이 오직 배타고 고기잡는 것뿐이었다. 빈한에 실달리는 청춘의 뛰는 가슴 금석(今昔)이 일여(一如)하리니 씨가 26세 일이였다한다. 토정모(土井某)라는 자있어 무지한 해당 섬 주민 중 6인(유력한자)를 설복하여 당 섬을 1시에 타연코자 계획이 반성되었을제 씨는 죽음으로 이에 항거한 결과로 겨우 이를 면하였다. 그 후세간에 뜻이 없어 유랑의 길을 떠나 중국 각지를 돌고 인간사회를 끝까지 음미할때 생에 각오한 바 있어 다시 고토로 찾아들어오니 자기도 살고 고토를 살리자는 굳은 의지가 날카로웠다. 하나의 섬을 망라하여 생산판매와 일상 생활을 전적으로 통제하여 내일의 활로를 암시할제 이해없는 상풍이 수월치 않았다한다. 고신과 원성 속에서 10여년을 지난 금일에야 암시는 표현되었으니 70호의 해당 섬에는 활기가 생생하여 배전근로하고 당국에서도 찬탄한 바 있어 2만원의 보조로 해당 섬 인구에 방파제를 쌓기로 하였다.
씨의 제조하는 적색염하(赤色染鰕)는 대판신호 등 외 대도시장에 진출되어 특등으로 공인하는 터이라한다. 본도 수입이 연 89만우에 달하여 무량흔열에 잠기었다. 씨는 현 용유어업조합장으로 진췌하며 그 타교육 방면에도 진력하는 터라 성망이 자못 높은 56의 장한 일군이다
수밀도(水蜜桃) 연산 10만원
경인선 소사의 수밀도란 명성이 높은지 이미 20여년이라 봄이면 꽃놀이 여름이면 먹는 소리(桃食), 원근 각지에서 오는 사람도 많거니와 경인 여객들의 차중에서 사는 것도 퍽 많다. 경인시장에는 물론 근년에는 만주방면으로 수출되는 것도 상당히 많아서 연산 30만관으로 약 10만원에 달한다.
이주용(李宙鎔)씨는 별항 수밀도의 생산자 대표격이다. 수원출생으로 10년전에 소사에 왔으니 과수 재배를 목적함이다. 약 4정의 황전을 매입하여 수만의 투자로 도리평과(복숭아, 배, 사과) 등을 재배 경영하였는데 본래 농업학교 출신으로 소양도 있거니와 진지한 역행가라 10년이나 후래자인 그의 실적은 각 선착수가를 능가할 지경이며, 이형제농원(李兄弟農園)이라는 마크가 이ㅏㅆ는 수밀도급 배는 경성, 인천을 비롯하여 멀리는 신경 봉천 등지까지 특상품으로 수출되어온지 벌써 3년으로 품질도 감미도 최우량하여 소사 수밀도의 총 대표격이다. 틈이 있는대로 동민을 횢비하여 야학을 개강하며, 신문을 설명하는 등 자력자립의 정신을 갖도록 불단의 역할을 하고 있는 실로 우리 농촌이 기대하는 시대적 청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