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리자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나 역시 촛불 하나를 사들고 그 대열에 자연스레 합류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함성을 지르기도 하고 촛불을 치켜들었다 내리며 파도를 일으키기도 했다. 먼발치로 경찰이 광화문 담을 경계로 버스를 일렬로 세워 만든 바리케이트가 보였다. 그 너머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중앙에 설치된 무대 위에서 강한 서치 불빛과 함께 한 여자의 새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하여 터져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유명한 락가수가 나와 내지르는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가 애국가를 부르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뭔가 좀 심드렁한 느낌이었다. 노래 부르는 그가 심드렁한 건지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심드렁해진 건지 애국가 자체가 심드렁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애국한다는 개념 자체가 심드렁해진 걸까. 내가 서있는 곳에선 실제 가수의 모습은 볼 수 없었고 대형 화면으로 확대된 영상만 볼 수 있었다. 어쩌면 확대된 영상과 앰프의 확성음에 기계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심드렁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나의 내면 깊숙히 숨어있는 모종의 부끄러움이 그 모든 것을 심드렁하게 들리게 한다는 사실을. 그 가수의 공연이 피크였는지 사람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물결에 휩쓸려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인파는 세종로 쪽으로 효자동 쪽으로 독립문 쪽으로 끊임없이 이동하였다. 곳곳에 각 단체들이 세운 듯한 소형 무대 위에서 시민들의 자유 발언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그리고 스피커를 장착한 차량들이 천천히 이동하면서 시민들의 행진과 연호를 유도하고 있었다. 그들은 줄기차게 부패하고 무능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하야를 외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분노한 혁명 대오처럼 보였고 어떻게 보면 할로윈 축제를 즐기는 젊은이들처럼 보였고 또 어떻게 보면 더 큰 신념을 찾아 떠도는 순례자 집단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내 일행을 종각 근처에서 놓치고 끊임없이 전화와 문자로 서로를 찾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일행을 찾아 나는 때로는 인파를 거스르기도 했고 때로는 인파를 타고 걷기도 했다. 이곳저곳 한 눈을 팔다 찾아가 보면 일행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 있었고 또 찾아가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가 있었다. 결국 그들을 만난 곳은 바리케이트 뒤 서촌 먹자골목이었다. 지역주민만 통행이 가능하여 한 사람이 일부러 사직공원 옆 통로까지 마중을 나와야만 했었다. 나는 그곳에서 일행의 한 사람으로부터 백두산 천지에서 소주로 병나발을 불었다는 서예가를 소개 받았다. 그는 흰머리를 바짝 깎은 둥그스름한 머리통을 갖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술실력을 자랑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집에 소주 빈 병을 쌓아놓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빈 병들이 박스 채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이 마트 수준을 뛰어넘어 공장 출하 직전 수준이었다. 그 외에도 몇 사람이 더 있었고 나는 왜 일행들이 이 사람들과 뒤섞여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막걸리 한 잔을 받아놓고 기가 죽은 채 조금씩 먹는 시늉만 내었다. 초면에 술을 거절하자면 말이 길어지고 분위기만 어색해지기 때문에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훨 나았다. 남자들이 다른 남자들을 기죽이는 방법은 참 여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국수 한 그릇을 먹었고 지하철이 끊어질까 봐 먼저 슬그머니 자리를 떠야만 했었다. 들어올 때는 어찌어찌 들어왔지만 다시 나갈 길을 찾지 못해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집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사방이 막혀서 나갈 수가 없었다. 버스들은 사람이 비집고 나갈 수 없게 거의 맞붙혀놓은 상태였다. 한참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경찰들의 출입로인 듯한 곳으로 용케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야외 전광판에 지하철은 삼십 분 연장된다는 자막이 떴다. 나는 경복궁역에서 공항가는 5호선을 기다렸다. 반대편 차선으로 열차가 세 번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안내방송으로 여의도행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나는 좀 미심쩍어 노선도를 확인하였다. 노선은 분명히 여의도를 지나 김포공항까지 연결돼 있었다.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나를 앞질러 열차에 탔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다시 한 번 노선도를 확인했다. 내일 아침 제주 가는 첫 비행기여서 반드시 공항 근처에서 자야 했다. 공항에서 십 분 정도 걸어가면 화물청사 맞은편에 내가 몇 차례 가본 적이 있는 찜질방이 있었다. 어떻게 알고 찾아오는지 중국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찜질복도 빌리지 않고 옷을 입은 채 아무 곳에서나 널부러져 잤다. 대략 계산해보니 한 시 넘어서 그곳에 도착할 것 같았다. 여의도역에서 열차가 멈추었다. 차칸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렸다. 나와 취객만 남아 있는데 승무원이 불쑥 들어왔고 방송으로 여기가 이 열차의 종착역이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나는 승무원에게 다음 열차는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것이 마지막 열차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막차는 여의도역이 종점이라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출구 쪽으로 황황히 빠져나갔다. 나는 갈 길을 몰라 멍청히 서있었고 취객은 벤치 위에 꼬꾸라지듯 주저앉았다. 역시 직원인 듯한 덩치 큰 젊은이가 나타나 나와 취객을 밖으로 몰아내듯 하였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데 우선 잠자리부터 걱정이 되어서 여의도를 한 번이라도 와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출구로 나오자 밤의 어둠 속에 솟아있는 거대 빌딩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고급스런 고층빌딩에 내가 하룻밤을 의탁할 찜질방 따위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빌딩들의 소유회사이거나 입주한 회사들의 이름을 눈여겨 보았지만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었다. 더우기 그런 이름을 달고 있는 회사나 기관들이 왜 꼭 저렇게 높은 빌딩을 짓고서 일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초겨울의 보도에는 낙엽이 떨어져 있었다. 황금빛 은행잎이 굴러다니는 가운데 뜬금없이 커다란 플라타너스 잎이 떨어져 있었다. 여의도 빌딩 숲 아래서 만난 그 낙엽과 나는 어쩐지 여기가 제 자리가 아니라는 듯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다 곧 비켜 지나갔다.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하면 날이 밝을 때까지 이 거리를 헤매이고 다녀야 할 것이다. 나는 찜질방을 찾아 점점 큰길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알 수 없는 건물들 뿐이었다. 저녁의 촛불 집회가 다시 문득 떠올랐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부터 숱한 집회에 참석했었고 한 때는 세상을 뒤집어엎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어두웠고 권력과 금력의 상징인 듯한 높은 건물들은 항상 굳건히 문을 닫은 위압적인 모습이었고 떨어져나온 낙엽과 나는 언제나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었다.
첫댓글 지금 대통령이 이상한 인간인 것과는 별개로..
분노와 열정이라는 것도 어떤 이벤트에 한정되어 표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끝나고 나면 숙소조차 잡기 힘든 차가운 현실에 부딪히고... 그 빌딩벽보다 더 견고한 어떤 자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