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크리스마스 이브 (6)
미정이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대한 놀라움은 아버지보다 엄마가 더 컷다. 아버지와의 말다툼을 들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광진이를 거지라고 한것이 더 걱정스러웠다.
그 생각은 옳았다. 미정이는 엄마를 향해 거침없이 공격했다.
"엄마, 광진이 선배가 거지라고요?--그래요 돈 한푼 없는 거지예요---그런데 난 그 거지 오빠 덕에 오늘의 탁구선수 송미정이 된거예요---생각해 보세요--잘 아시잖아요?--나같은 풋병아리가 지난 왕난과의 시합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었던 게 누구 덕이었는지--광진이 선배는 자신의 모든걸 걸고 절 지도해 주 었어요--그 시합 이후로 나는 스타가 되었구요--탁구장 가 보세요--유명한 탁구장엔 모두 제 사진이 걸려있어요---제가 매스컴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 바로 그 시합 때문이었어요----내가 혼자 잘나 미정이가 된줄 아세요?--그래요--그 거지 덕이었어요--그런데 아버지나 엄마는 그 선배한테 해준게 뭐 있었어요---아무 보답도 해주지 않았어요----광진이 오빠도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았고요---그런데 --은혜를 원수로 갚을 작정이세요?"
"예 미정아 흥분하지 말고~~"
엄마가 뭔가 변명 하려 했지만 미정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때다 싶어 슬그머니 빠져나와 서재로 도망쳐 버렸다. 이런 문제에서는 36계 줄행낭이 최고다.
"내가 지금 흥분하지 않게 되었어요?----아버지도 공부할 때 돈이 없어 신문배달에 가정교사 까지 해가며 공부했고---- 돈 있는 엄마와 결혼하여 그 밑천으로 오늘의 신화그룹을 이루셨잖아요?---아버지!"
이번에는 밖으로 도망친 아버지를 불러 들였다. 누구 명령이라고 버티랴---송회장이 어색한 얼굴로 다시 들어왔다.
"저 분명히 말하는데요 결혼을 하더라도 앞으로 6~7년은 걸려요----엄마나 아빠는 강신호씨를 생각하고계신 모양인데 전 제 인생이 있어요--그 험한 운동세계에 뛰어든 이상 최고의 자리까지는 올라가야겠어요-----광진이 선배는 제 탁구 파트너지 결혼상대로 생각한일은 없었어요--(속으로 약간 뜨끔--이건 조금은 거짓말이지만--) 앞으로 광진이 선배와 제 문제에는 더 이상 터치하지 마세요---전 결혼이 목표가 아니라--당장 내년 초에 열리는 세계 혼합복식이 있고--바로 왕난과의 리턴매치 성격의 시합이 있어요---두 시합 모두 광진이 선배가 필요해요-----그런데다 2008년에는 올림픽이있고요 ---제게 그 선배보다 더 호흡이 맞는 선수가 없고요---왕난에 대해서는 그 선배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어요--이건 단순히 저 개인의 시합이 아녜요--한국 여자 탁구의 사활이 걸린 시합이예요---절대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테니 절 믿고 제가 하는대로 따라 주세요. 강신호씨와 결혼을 하던 광진이 선배와 하던 그건 훗날 이야기예요 아셨죠?"
그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2층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렇다니까?'
송회장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미정이가 그대로 대변해 주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뭐가 좋아서 웃어요"
최영심 여사는 엉뚱하게 남편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첨부터 운동 시키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탁구선수가 어때서--난 자랑 스럽기만 하구먼---미쓰 코리아 보다 났잖아---,."
"거기 미쓰코리아는 왜 갖다 붙여요--."
말싸움이 다시 시작 되었다.
사실 송회장은 오늘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윤화중 감독으로부터 그가 구상하고 있는 팀의 주요 스카웃 대상 명단을 받았다.
송회장은 아주 꼼꼼한 성격의 경영인이다. 그가 신화그룹 탁구단을 구상할 때부터 여러 감독과 선수들을 주도 면밀히 검토 하고 있었다. 정현숙 감독이 윤화중 탁구인을 추천할 때도 이미 그의 메모에는 그가 포함되어 있었고 윤감독이 보낸 명단에도 그가 찍어 놓았던 선수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던 것이다.
<세계 대학선수권 대회>금메달리스트 <정연학>, 그리고 <세계 청소년 대회> 은메달리스트<금정완>
그리고 여탁의 <강은양><정승미>는 송회장이 일찍 눈여겨 본 유망주다. 이들을 최고의 대우로 스카웃하여 팀을 만들면 머지않아 국내의 각종대회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릴 것이다.
여기에 중국에서 한명만 스카웃 해 온다면 비록 후발이긴 하지만 어느팀도 겁낼 이유가 없다.
그 중심은 물론 딸 미정이와 최광진이다.
그런데--그가 양심에 걸리는 게 있다. 광진이에 대한 대접이 소홀했던 것이다. 그건 미정이 말이 옳다.
그 아이가 가난 하다는건 너무나 잘 아는 사실 아닌가?
'음--내가 미정이만도 못하구만---그래 이번에 그 답례까지 해야겠어---축구의 박주영 같은 대우로 스카웃하면 다들 놀라겟지만 그만한 대우는 해 줘야 이 신화그룹의 체면이 서겠지?'
아내의 악쓰는 소리에 대꾸도 하지 않고 나와 버렸다.
최영심 여사는 분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 거지새끼가 틀림없이 미정이를 꼬시고 있는게 분명 해--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어림없어!--내 사위감은 강서방 뿐이야'
씩씩대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최영심 여사다.
두 시간에 걸친 대청소가 끝이 났다.
이날 저녁은 사모님이 특별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인데다 광진이의 마지막 밤이다.
푸짐한 저녁상에 식구들이 둘러 앉았다. 몇몇 훈련생들은 특별 휴가로 집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조촐히 식구들만 남게 되었다.
밥상 앞에 앉아있던 광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동로 스승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아니 자네 왜 이러나--자 일어나게"
"스승님--부탁이 있어 큰 절을 올리는 겁니다--물론 당분간 헤어지는 인사도 되겠지만요--."
"부탁이라고?--그래 말해봐."
"제 아버님이 되어 주십시오--물론 지금까지 절 아들처럼 생각해 주셨지만--정식으로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제 일생에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른이십니다."
"~~~~~."
"간절한 소원입니다."
"음---그건 내가 하고싶은 말이었는데--청소하는걸 보며---정말 아들로 착각했으니까--좋아 이제부터 아버지라고 불러도 좋아."
따듯한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