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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의 천지, 승리섬③
아, 사랑하는 쇼도섬
마음에 스승이 있는 사람은 강하다.
마음에 스승을 품은 사람은 지지 않는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사제(師弟)는 거리가 아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사람이 진실한 제자다."
어떤 장소든 '사제불이(師弟不二)'의 혼을 불태우며 분투를 거듭한다.
이것이 창가의 정신이고, 승리섬부(部) 동지의 모습이다.
아침 해도, 석양도 그림 같다
사랑하는 섬을 위해
세토우치의 잔잔한 바다에 둘러싸인 쇼도섬. 인구는 3만명이 채 안 되지만,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 섬을 찾는다.
쇼도섬 출신의 작가 쓰보이 사카에의 소설《스물네 개의 눈동자》가 영화로 만들어진 무대로 알려져 있고, 촬영지로 사용된 미사키 분교는 '교육자의 성지(聖地)'로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세토우치국제예술제' 개최지이기도 하며, 예술제 시즌이 되면 아름다운 경관을 살린 예술작품이 섬 곳곳에 전시된다.
'일본 3대 아름다운 계곡'의 하나로 간카계곡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농산어촌(農山漁村)의 명칭에 딱 어울리는 세토우치해 연안의 한촌(寒村)' (《스물네 개의 눈동자》)이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혜택 받은 기후 덕분에 농작물이 풍요롭게 열매 맺는다.
특히 올리브는 국내재배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또 소면(素麪), 간장, 쓰쿠
다니(일본식 조림음식), 참기름 등도 활발하게 생산한다. 또 양질의 화강암이 풍부한 채석장도 있으며, 에도 시대에는 오사카성의 성벽으로 사용할 돌을 이곳에서 뱃길로 운반했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이 가사를 써서 동지에게 선사한 '쇼도섬의 노래'에는 '아침 해도, 석양도 그림 같다'고 있다. 희망의 하루를 알리는 아침 해와 밝은 내일을 약속하듯 바다로 녹아 들어가는 석양은 한폭의 명화처럼 아름답다.
한편, '광선유포의 여명'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쇼도섬 88개소의 영지(領地)'가 있는, 구습이 깊은 땅으로 '학회에 대한 몰이해'로 중상할 때도 있었다.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때도 있었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노고 속에, 동지는 이를 악물고 착실하게 지역에 공헌하며 실증을 보였다. 여기에는 '광포의 스승과 함께!'라는 맹세가 있었다. '사랑하는 쇼도섬을 위해!'라는 기개가 있었다.
이번 호에서는 쇼도섬에 빛나는 ‘황금의 광포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쇼도섬의 한줌 씨앗
쇼도섬의 벗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두루마리가 있다. 통 안에 들어있는 두루마리를 꺼내 펼치면 6미터가 넘는다. 오른쪽 끝에는 '쇼도섬 창가학회의 발자취 연표'라고 씌어 있다. 학회 전체에서 일어난 일과 시코쿠창가학회의 발자취, 사회 동향과 더불어 '쇼도섬 창가학회' 칸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는 섬에서 처음 신심을 시작한 미치시타 하나 씨가 1953년 8월에 입회한 내용이 제일 먼저 적혀 있다.
미치시타 씨는 도쿄에 갔을 때 좌담회 참석을 권유 받고 좌담회에 참석한다. 당시 둘째딸이 병을 앓고 있었다. "반드시 건강해집니다.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는 신심을 하고 있으니까요."라는 격려를 받고 입회하기로 결심한 뒤 쇼도섬으로 돌아와 신앙에 힘썼다.
그러나 주위에 학회원은 없었다. 소개한 사람이 보내준 세이쿄신문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고 창제를 거듭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자신이 소속된 스기나미지부의 선배에게 질문을 적은 편지와 엽서를 보냈다. 그 수는 한달에 네통이나 되었다.
미치시타 씨는 기원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연스럽게 절복(折伏)을 하러 한집 한집 대화하며 돌았다. 선배가 보내준 편지에 씌어 있던 '숙명전환(宿命轉換)'과 '변독위약(變毒爲藥)' 등 신앙의 기본을 읽고 배우고 나서, 그대로 성실하게 끝까지 대화했다.
그러나 주위의 반발은 컸다. 물과 소금세례를 받기도 하고 욕을 먹기도 했다. 친척들이 세 차례나 모여 회의를 열고 신심을 반대했다. 그래도 미치시타 씨는 지지 않았다.
신앙에 힘쓰는 사이에 둘째딸이 점점 건강을 되찾았다. 신심을 깊이 확신한 미치시타 씨는 더욱더 대화를 위해 걸었다. 길에서 누군가를 만나면 인사하고 바로 신심 이야기를 했다. '불법(佛法)의 위대함을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는 것이 미치시타 씨의 진심이었다.
착실하게 뿌린 묘법(妙法)의 씨앗은 점점 꽃이 되고 열매를 맺었다. 1년 뒤에는 도쿄에서 선배간부가 쇼도섬을 방문해 좌담회를 개최했다. 지난 1년 동안 하종(下種)한 벗 100여명이 잇따라 미치시타 씨 자택을 찾아오고, 그중 10명이 입회했다. 입회한 지 3년이 되는 1955년에는 50세대를 돌파, 미치시타 씨는 초대 반장이 되었다.
힘든 곳에서 분투하는 것을
전부 알고 있어요
쇼도섬을 첫 방문
'한 사람'에서 시작된 쇼도섬의 광포는 조금씩, 그러나 착실하게 진전되었다.
1961년에는 지구가 생기고, 1965년에는 지부를 결성하고, 2년 뒤에는 2개 지부로 확대했다.
이러한 상승세 속에 쇼도섬 동지의 염원인 이케다 선생님의 첫 방문이 실현되었다. 1967년 9월 11일, 가가와현 다카마쓰에서 개최한 '시코쿠본부간부대회'에 참석한 선생님은, 그 후 쇼도섬을 방문해 섬을 둘러보고 회관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또 숙박한 곳에서도 멤버를 격려하고, 항구에서도 모인 동지와 악수를 나누고 말을 건네며 격려를 보냈다.
당시 이야기 곤다 미사오 씨
저는 당시 여자부 부대장이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섬에서 돌아가실 때 배웅해 드리려고, 많은 멤버가 도노쇼항에 모였습니다. 그곳에 차가 도착하고 선생님이 나타나자 모두 선생님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섬에서는 보기 드물게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선생님은 한사람 한사람 다정하게 감싸 안 듯이 격려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이 내민 손을 엉겁결에 잡았더니 "전부 알고 있어요"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제게는 큰 원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이야기 도이 구니오 씨
이케다 선생님을 배웅하러 항구에 갔더니, 많은 동지가 와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힘든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여러분에게 회관을 지어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의 일입니다. 선생님이 타고 가신 쾌속선을 다시 타고 온 간부가, 염주를 전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이 보내주신 격려의 선물이었습니다.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때까지 섬 광포를 위해 꿋꿋이 달리며 험한 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회사의 노동조합총회에서 저 혼자 여러 사람 앞에서 '인민재판' 같은 일을 당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성실하게 말하며 이겨냈습니다.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스승의 '혼신을 다한 격려'에 괴로움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잇따른 재해
이케다 선생님이 첫 방문하신 환희는, 섬 안의 동지에게 퍼져나갔다.
이듬해인 1968년 6월, 쇼도섬회관이 개관했다. 광포의 성(城)을 중심으로 벗은 더한층 대화에, 지역공헌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쇼도섬에 비극이 닥쳐왔다. 잇따라 재해가 일어났다. 1974년 7월, 태풍 8호로 인한 집중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해 사망자가 29명이나 나왔다.
학회도 쇼도섬회관에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하여 주먹밥을 제공하고, 각 지역에서 모인 남녀 청년부 650명이 구호활동에 동분서주하며 '있는 힘껏' 도왔다.
그 결과 조금씩 복구되었다.
2년 뒤인 1976년 9월, 이번에는 태풍 17호가 쇼도섬을 강타했다. 지난번에
내린 폭우를 훨씬 웃도는, 실로 미증유의 대재난이었다. 쇼도섬은 비가 적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태풍이 머무르며 닷새 동안 1년치 강수량을 기록했다.
5000가구가 넘게 침수되고 산사태가 일어나 39명의 희생자를 냈다.
올리브 나무를 비롯해 나무들도 무참히 꺾이고 쓰러졌다. 좀처럼 비바람이
수그러들지 않아, 구호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도로가 무너지고 통신이 두절되고, 전기, 수도 등이 끊기며 괴멸상태에 빠졌다.
온통 허무와 상실감으로 뒤덮인 작은 섬에서 학회원은 지역주민과 힘을 합쳐 희망의 빛이 되었다.
먼저 전국의 동지가 보내온 구호물자를, 배와 트럭을 이용해 회관으로 옮겼다. 그것을 분류해 신속하게 현지로 배달했다. 간부가 솔선해 흙투성이가 되고 흠뻑 젖으면서 위문품을 배달했다.
건물 잔해가 흩어져 있는 진흙 더미에서 꼼짝 못하는 이재민을 발견하면 음료수와 식량, 분유, 의료품 등 물품을 건네고 격려했다. 또 육로가 끊긴 지역에는 20리터 물통에 식수를 담아, 간신히 운항을 시작한 쾌속선을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비가 그치고 나서도 남자부 멤버 수백명이 자원봉사를 하러 섬으로 건너갔다. 막 개통된 도로를 지나 한팀 또 한팀 구호대가 각 피해지역으로 들어갔다. 무너진 가옥을 정리하기 위해 집주인을 격려하면서 진흙 속에서 커다란 대들보를 꺼내고, 흙더미를 퍼내고 집을 덮친 나무를 치웠다. 삽과 곡괭이를 든 멤버가 달려오면, 이재민들은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피해를 입었으면서, 지역을 위해 열심히 구호활동에 힘쓰는 동지의 모습도 있었다.
지금까지 이어온 '재해 없는 살기 좋은 쇼도섬'이라는 이미지는, 태풍으로 인한 막대한 피해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모든 산업이 큰 손해를 입었다. 그러나 지역민들과 더한층 스크럼을 강하게 짜고 분투했다. 이를 악물고 분발했다. 절대 지지 않았다. 승리의 실증을 섬 안에 넓히기 위해, 지역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오로지 사랑하는 쇼도섬을 위해.
[질문회에서]
아침 근행으로 하루가 결정된다
어느 날, 이케다 선생님은 기원의 자세를 지도했다.
"아침 근행으로 하루가 전부 결정됩니다. 인과구시(因果俱時)이므로 아침
근행을 착실히 했을 때는 본말구경(本末究竟)하여 하루의 승리가 확립됩니다. 다시 말해 저녁 근행으로 '내일도 원기왕성하게 투쟁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원하면, 다음날이 정해집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심즉생활'입니다.
그래도 실패하면 또다시 변독위약하여 완성을 향해 투쟁하는 것이 가치창조입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면 좋은지' 또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그러려면 리듬 바른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원하고 또 기원하노라
봄과 같은 웃는 얼굴을
제목에 이끌려
이케다 선생님은 쇼도섬 동지에게 격려의 빛을 계속 보냈다.
1978년 3월에는 '잊지 않으리/ 쇼도섬의 벗들을/ 기원하고 또 기원하노라/ 봄과 같은 웃는 얼굴을'이라는 시를 보내며 쇼도섬이 번영하기를 염원했다.
그리고 이해 7월, 간사이와 주고쿠, 시코쿠로 지도를 떠난 선생님은 26일, 시코쿠연수원에서 쇼도섬으로 갔다. 쇼도섬회관 개관 10주년의 가절이기도 했다. 갑자기 기념근행회를 열기로 결정해, 섬 동지에게 이 희소식을 전했다.
소설《신·인간혁명》에는 이때 선생님의 진심이 쓰여 있다.
"고생하고 어려움을 겪은 분들을 나는 힘껏 격려하고 싶습니다. 최대로 칭찬하고 싶습니다. 존귀한 불자(佛子)인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겠습니다."(제28권 '대도')
26일 오후, 선생님을 태운 쾌속선 '킹로망'호는 세토우치해를 건너 쇼도섬에 도착했다. 도노쇼항에는 간부대표가 마중 나와 있었다. 선생님의 두번째 방문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오후 2시가 지나 회관에 도착한 선생님은, 멤버에게 말을 건넸다. "여러분의 제목에 이끌려 왔습니다." "제가 왔으니 이제 안심하세요."
당시 이야기 마에다 마스미 씨
이케다 선생님이 쇼도섬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설레며 모두에게
전하러 갔습니다. 그때 미치시타 하나 씨와, 초창기 부인부 멤버 셋을 모시고 차를 타고 함께 회관에 갔습니다. 회관에 도착하니 선생님은 벌써 와 계셨습니다.
그리고 미치시타 씨 일행을 보자마자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제가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세 사람은 마치 아이처럼 선생님 품속으로 달려갔습니다. 선생님은 다정하게 "어머니들을 위해 회관을 지어 드리고 싶었습니다."고 하셨습니다. 그 감동스러운 광경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행복의 길을 가라 명랑하게
선생님은 회관에 들어간 뒤 쉴 틈도 없이 중심자들이 보고하는 쇼도섬의 현황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 이야기 오노 마유미 씨
당시 지역여자부장이었던 저는, 재해로 부모를 잃은 여자부 멤버에 관해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바로 만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멤버를 불러 선생님 곁으로 갔더니, 선생님은 온 힘을 다해 격려해주셨습니다.
"저를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세요. 결혼해서 예쁜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뒤 그 멤버는 결혼해 두 아이를 두었습니다.
또 저에 관한 이야기도 여러가지로 들어주셨습니다. "쇼도섬에서 배를 타고 다카마쓰에 있는 시코쿠문화회관에 통근하고 있습니다." 하고 보고했더니, 선생님은 "날마다 배로 통근하다니 훌륭하군요, 우아합니다."
그때까지는 배가 흔들리거나 비가 내릴 때마다 무섭기도 하고 짜증도 났는데, 선생님의 '우아하다'는 말씀에 마음이 상쾌했습니다. 배로 통근하는 일이 힘들게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저에게 '모녀 함께/ 행복의 길을 걸어라/ 명랑하게'라는 시를 주시고 휘호해 주셨습니다. 사모님과 함께 어머니에게 말도 건네주셔서, 우리 집의 큰 원점이 되었습니다.
천하의 복운(福運) 오늘보다
웃는 얼굴로 개최한 근행회
근행회 장소인 대강당에는 많은 참석자가 모였다. 미입회 가족과 우인의 모습도 있었다. 장내에는 4개월 전에 선생님이 읊은 '잊지 않으리/ 쇼도섬의 벗들을/ 기원하고 또 기원하노라/ 봄과 같은 웃는 얼굴을'이라는 시를 크게 써서 장식했다. 이 시처럼 웃음꽃이 방안 가득 퍼졌다.
이날은 날씨도 덥고, 참석자들의 열기도 넘쳐흘렀다. 장내에는 얼음기둥이 세워지고 유리문이 열려있었다. 회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밝은 빛과 바람이 대강당으로 들어왔다.
오후 3시, 선생님이 모습을 나타내자 커다란 환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선생님은,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미치시타 씨를 발견하고는 말을 건넸다.
"섬 신심 1호 할머니! 건강해서 기쁩니다."
그리고 카네이션 꽃목걸이를 미치시타 씨 목에 걸어주었다. 미치시타 씨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목 메인 소리로 "선생님 반갑습니다." 하고 말했다.
"저도 반갑습니다. 할머니보다 열배나 기쁩니다." 하고 말했다. 그 광경을 보고 참석자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근행회가 시작되자 먼저 간부가 차례로 인사했다. 그리고 부인부, 남자부, 여자부 합창단 총 43명이 무대에 등장했다.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도록
합창에 이어 선생님의 제안으로 만세삼창을 했다. 그러고 나서 함께 근행하고 선생님의 목소리에 맞춘 엄숙한 창제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근행이 끝나고 선생님이 배 안에서 지은 '쇼도섬, 천하의 복운 오늘보다' 등의 시를 대표에게 선사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지도가 이어졌다.
선생님은 큰 재해를 당한 쇼도섬의 변독위약을 기원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쇼도섬 동지 여러분과 가족에게 더욱더 큰 공덕이 열릴 수 있도록, 쇼도섬에 복운이 쌓이도록, 쇼도섬에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도록 지금 어본존(御本尊)께 기념했습니다."
그 말에 멤버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당시 이야기 야마구치 구니코 씨
저는 1976년에 발생한 재해로 스물네명이 사망한 지역에 살았습니다. 우리 집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슬픔 속에서 진지하게 제목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도록' 기원해주셨다는 말씀에 눈물이 나올 만큼 기뻤습니다. 동지는 사랑하는 쇼도섬을 위해 열심히 공헌했습니다. 선생님의 진심을 잊지 않고 지역민들과 성실하게 대화하고 협력하며, 새로운 쇼도섬 건설을 위해 달렸습니다.
지금은 모두 변독위약하여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강성하게 기원하면
그만큼 복운이 늘어납니다.
제목의 공덕
선생님은 불법의 심원(深遠)한 법리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석존은 여러 수행을 쌓아 부처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인행과덕(人行果德)이라고 하는데, 그 공덕과 복운은 무량무변(無量無邊)합니다. 그 공덕은 어본존에게 제목을 올리는 속에 전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어본존과 제목의 공덕은 위대합니다.
따라서 어본존을 향해 강성하게 기원하고 제목을 올려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제목을 부르면 이론을 알든 모르든, 교학이 있든 없든, 공덕은 똑같습니다. 어떤 위치의 사람이든 제목에 차이는 없습니다. 공덕에 차이는 없습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지갑에 돈이 들어있다고 합시다. 지갑은 각기 다르지만, 안에 들어있는 돈의 가치는 똑같습니다. 또 촛불을 예로 들면, 누가 초에 불을 붙이든 불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제목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누가 부르든 동등하게 모든 사람이 공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행학(信行學)의 기본
선생님은 한사람 한사람에게 강하게 말했다.
"여러분은 순수하게 신앙을 실천하고 있으므로, 성불(成佛)은 틀림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원이 강한가, 강하지 않은가. 신심이 강성한가, 강성하지 않은가입니다.
종(鐘)을 살짝 치면 소리가 작습니다. 크게 치면 크게 울립니다. 그것이 도리입니다.
첫째, 무슨 일이 있어도 어본존을 향해 제목을 올려야 합니다. 그것도 강성한 기원이면 그만큼 감응이 있고, 그만큼 복운이 늘어납니다.
또 이렇게 더운 날씨에도 여러분은 이 자리에 모이셨습니다. 어본존을 위해 모였습니다. 광선유포를 위해 모였습니다. 불도수행을 위해 모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行)'입니다. 이 자리에 온 그 행동에 공덕이 있습니다. 아무리 관념적으로 생각해도 공덕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학입니다. '신행학'의 기본이 중요합니다."
선생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아무튼 열심히 어본존을 수지하고 따라간 사람은, 20년이 지나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20년, 30년이 지나면 그 차이는 역력합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힘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일본 전체가 불경기니까요. 그러나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가 쌓은 공덕은 자녀와 손주에게 이어집니다. 이 점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목을 부르며 앞으로 나아갑시다. 뒤돌아보면 소원만족한 인생이 될 테니까요."
[질문회에서]
모두 사명이 있는 인재
"인재는 발견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선천적으로 정해지는 것인가요?" 하고 질문한 청년부 멤버에게 이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지도했다.
"모두 인재입니다. 다만 적재적소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도자입니다.
잡초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칫 방해가 될 수도 있지만, 작은 돌멩이도 경우에 따라서는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비정(非情)의 세계에서도 그것이 도리입니다. 하물며 어본존을 수지한 사람이 인재가 아닐 리 없습니다. 사명이 없이 태어났을 리 없습니다.“
당시 이야기 다니가미 마사히루 씨
'종을 크게 치면 크게 울린다'는 지도가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지도를 들었을 때는 말만 알아들었는데, 진정한 의미를 안 것은 절복 투쟁 속에서였습니다. 남을 위해 필사적으로 제목을 부르고 행동한다. 그렇게 하면 결과가 나온다. 종을 크게 친다는 것은 광선유포를 위한 기원을 거듭하는 것이라고, 지금도 명심하고 있습니다.
제목을 부르는 사람은
모든 것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
복운 가득한, 단결의 쇼도섬
선생님은 염원하듯이 말했다.
"앞으로도 저는 쇼도섬 여러분에게 제목을 보내겠습니다. 다 함께 힘을 모아 '쇼도섬 여기 있노라'라는 '단결하는 쇼도섬' '복운 가득한 쇼도섬'을 건설하십시오.
어떻게 살아도 한평생입니다. 고민하며 일생을 보내도, 괴로워하며 일생을 보내도, 건설을 위해, 복운을 위해, 남을 위해, 법을 위해, 일가일문을 위해 전진해도 한평생입니다. 일생은 눈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학회 안에서 신심을, 광선유포라는 성불의 길을 '나와 함께' 걸어갑시다. 부탁합니다. 제목을 보내겠습니다."
활기찬 대답이 울려 퍼졌다.
"슬플 때도, 괴로울 때도 제목입니다. 인생은, 괴롭고 힘든 일이 많습니다.
이것은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심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입니다. 괴롭다는 것은 번뇌입니다. 그러나 어본존에게 제목을 올리는 사람은 묘법의 힘을 끄집어내 전부 보리로, 행복으로, 복운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굉장한 보석을 지닌 것입니다.
사바세계에서, 감인(堪忍)의 세계에서 제목을 부른다. 또 이렇게 모여서 '절복합시다' '광선유포를 위해 분발합시다' '저 사람을 격려합시다' 하고 서로 격려한다. 이것이 부처의 심부름입니다. 모두 환희 찬 생명으로 바뀝니다.
똑같은 고민이라도 부처의 고민이고, 부처의 괴로움입니다. 이것은 전부 복운으로 바뀝니다. 성불의 리듬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소원만족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벗의 눈동자가 희망으로 빛났다. 선생님은 모두를 고무시키듯이 말씀하셨다.
"퇴전(退轉)하여 남을 비판하고 중상하고 괴로워해도 한평생. 어본존과 함께 꿋꿋이 살아도 한평생입니다. 그렇다면 용기를 갖고 서로 격려하면서, 좋은 쪽의 인생으로 나아갑시다!
자, 안심하고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여러분, 장수하십시오. 오래 오래 살아서 제목을 많이 부르고 복운을 많이 쌓으십시오."
"예!" 하는 결의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의 표정은 환희에 넘쳤다.
끝으로 선생님은 지역 페스티벌 개최를 제안하고, 모두 찬동의 박수를 보냈다. 근행회가 끝난 뒤에도 선생님은 지역간부와 간담하고 '쇼도섬의 노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해 가을, 선생님이 손수 가사를 지어 섬 동지에게 보냈다.
미래의 보배를 격려
회관을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선생님의 격려는 계속되었다. 회관 뜰에서 활기차게 동지에게 말을 건네고 악수를 나눴다. 그때 미래부 멤버 몇명을 발견한 선생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힘차게 말했다.
"쇼도섬의 미래를 부탁합니다."
또 이날 참석자 중에는 임산부도 있었고, 어린 아이를 데려온 부인부 멤버도 있었다. 선생님은 "나중에 커서 소카대학교에 오세요." 하고 배 속의 아이에게 말을 걸듯 속삭였다.
선생님의 격려를 받은 미래의 보배 중에, 소카대학교에 입학한 벗도 나왔다. 그날, 사제의 연을 맺은 벗은 지금 광포의 제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당시 이야기 시오미 다다요시 씨
근행회 당일, 회관 주변에서 행사요원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케다 선생님이 많은 동지를 격려해주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도 말을 건네주셨습니다.
"쇼도섬의 특산물은 무엇인가요?" "수박은 맛있었나요?"
그날은 날이 더워서 동지에게 수박과 아이스크림을 나눠주었습니다.
출발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격려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우리에게는 큰 원점이 되었습니다.
광선유포의 본보기로
오후 4시 50분, 선생님은 많은 동지의 배웅을 받으며 도노쇼항을 출발했다. 머문 시간은 3시간이 채 안 됐지만, 쇼도섬 멤버에게는 스승과 영원한 원점을 새긴 황금 같은 시간이었다.
"섬 하나가 얼마나 번영하고,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해지느냐가 광선유포의 축도이고 실상이다. 그리고 그 본보기가 만들어지면, 전 세계로 넓혀진다. 그러므로 신이치는, 이 쇼도섬을 반석같이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신·인간혁명》제28권 '대도')
당시 이야기 오카가미 마사하루 씨
저는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근행회가 끝나고 어머니와 형과 함께 항구로 갔습니다. 배에 타서도 계속 손을 흔들어주시는 이케다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후계의 길을 걷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후에도 하계연수 등 여러 장소에서 훈도를 받으며 학회의 뜰에서 클 수 있었습니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역광포를 위해 끝까지 달리겠습니다.
삼세의 역사에 빛나라
이상(理想)을 품은 섬
쇼도섬의 벗은 스승과 새긴 원점을 가슴에 품고 더욱 지역광포에 힘썼다.
이케다 선생님의 제안을 바탕으로 가족 페스티벌과 지역우호 모임을 계속 개최해, 지역에서 감사장을 보내오기도 했다.
또 사진전과 전시, 세미나, 청년포럼 등을 통해 학회가 내건 평화, 문화, 교육의 철학을 발신하고, 학회 이해의 유대를 크게 넓혔다.
지역과 사회에서 실증을 나타내는 동지도 많고, 지역의 명물인 올리브 재배로 국제품평회에서 금상을 받은 동지도 있었다.
이케다 선생님은 다기진 쇼도섬 동지에게 희망의 빛을 계속 보냈다.
1994년에는 '쇼도섬/ 그때 그날을/ 잊지 않으리/ 존귀한 벗들의/ 다복을 기원하며'라는 시를 선사했다.
그리고 쇼도섬회관 방문 30주년이 되는 2008년 7월에는 시 두 수(首)를 지어 보냈다.
"위대한/ 광선유포의/ 쇼도섬/ 삼세의 역사에/ 빛나라"
"쇼도섬/ 이곳에도 천하의/ 창가 있노라/ 광선유포의/ 이상의 섬 있노라"
스승은 쇼도섬에 큰 기대를 걸었다.
동지는 오늘도 스승의 마음이 담긴 '쇼도섬의 노래'를 부르며, 광포의 이상향을 구축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1. 올리브 향기 그윽한 쇼도섬 / 지용(地涌)의 벗의 낙원
빛나는 눈동자에 모이도다 / 아, 사랑하는 우리 섬
2. 신록 움트는 행복의 섬 / 기원하는 우리의 맑은 목소리
보라 활짝 핀 이 섬에 / 공덕의 보수(寶樹) 열리도다
3. 내 고향은 이 섬이라고 / 희망찬 가슴은 상쾌하게
함께 넓히자 정법(正法)을 / 아, 사랑하는 쇼도섬
4. 아침 해도 석양도 그림 같다. / 이 바다는 세계까지
기원의 울림은 통하도다. / 아, 사랑하는 쇼도섬
법련 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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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부분은 양이 너무 많아서 타자치기가 매우 힘들텐데 항상 자료를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깊은 감사 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