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전개
결과
의의
| 엘리자베스 1세는 결혼을 하지 않음, 자식이 없어서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1세가 왕이 됨 → 영국은 당시에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일랜드로 나누어져 있었음 → 스튜어트 왕조의 ‘제임스 1세’는 왕권신수설(왕의 권리는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왕은 법 위에 있다)의 신봉자로서, 절대왕권을 강화함(의회 무시). 영국적 가톨릭인, 영국 국교회도 강화함(구교인 가톨릭과 신교인 청교도 탄압). → 제임스 1세의 절대왕권 강화는 의회와 맞서는 것이고, 국교회의 강화(신교 박해)는 청교도와 맞서는 일이었다.→ 왕권 : 의회(젠트리 중심), 국교회 : 청교도 (국왕의 전제 정치와 청교도 탄압) → 의회와 청교도가 한 편이 됨 → 찰스 1세(제임스 1세의 아들)의 즉위(전제정치를 실시함) → 당시 영국은 프랑스 및 에스파냐와 잦은 전쟁 중, 전쟁 수행에 필요한 많은 재정(財政. 돈)이 필요하였다. →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재정 문제의 해결을 위해, 찰스 1세는 의회를 소집함(1628) 의회 소집권은 왕에게 있었다. → 의회는 ‘권리청원(權利請願)’을 안건으로 올림(상정함. 제출) →의회는 젠트리(귀족과 자영농민 사이의 부유한 지주층)와 자영농민, 상공 시민층을 중심으로 구성 → 권리청원의 핵심내용은 ‘국왕이 의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세금을 징수할 수 없도록 한다.’였다. = 의회의 승인(인정. 동의) 없는 과세(課稅. 세금 매김)는 금지한다. → 찰스 1세의 승인(1628) → 그 후 제임스 1세는 의회를 해산함(1629) → 다시 전쟁 비용이 필요해진 찰스 1세는 의회를 소집함(1640), 의회의 소집 거부 → 새로이 소집된 의회에서는 ‘부당한 과세 폐지, 강압적 국교회 정책 철회, 3년에 한 번씩 의회 소집 결의’ → 왕은 무력으로 의회를 탄압함 → 이 과정에서 국왕 지지 사람(왕당파)과 의회 지지 사람(의회파)으로 나뉘어 싸움 → 왕당파(봉건 귀족, 고위 성직자, 대상인, 보수적 농민) : 의회파(진보적 귀족, 중소 상공업자, 자영 농민, 소공업자 주축) → 이 싸움에서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 지지 사람들이 이김(청교도들을 중심으로 조직한, 철기군의 활약) → 이 싸움 승리의 중심에 젠트리가 있었고, 젠트리의 대부분이 청교도들이었기 때문에, 청교도 혁명(1649)이라고 한다. → 크롬웰은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의회 중심의 공화정’을 선포함 → 이로써 영국은 공화국이 됨(공화국 수립) → 왕정(전제정치)에서 공화정(의회정치)이 실시됨 * 영국 국교회에서는 국왕이 곧 ‘교황’에 해당함으로, 왕권의 약화 또는 공화정의 실시는 영국 국교회의 세력 약화를 의미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