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母山 昌原 聖住寺 柱聯 :
(불모산 창원 성주사 주련)
성주사聖住寺는 창원 공단의 끝자락인 불모산佛母山 기슭인
창원시 천선동 102에 소재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末寺이다.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아들 아홉 명을 낳았는데 장남인 거등居登은 왕통王統을 이었고
그 아래아들은 어머니의 성을 계승하였고 나머지 일곱 아들이 모두 산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는데 그 산이 바로 불모산佛母山이다.
해발 801,7m의 불모산은 세 계곡에서 흘러드는 많은 물과 산세의 수려함으로
역사 기록에 의하면 많은 선비들의 풍류가 깃들어진 명산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 계곡에서 내려온 물이 인접 시민들의 중요한 식수원이 되고 있다.
성주사 터는 풍수지리학적으로는 제비가 알을 품은 형상이며
건너 산은 제비집을 노리는 뱀의 산세山勢라고 한다.
그래서 음양오행 상 한 쌍의 돌돼지를 절 입구에 배치했다.
돼지상 (100년) 말고도 대웅전 좌우에 서 있는 해태 한 쌍과 입구에 조성된
연못 등을 볼 수 있다. 돼지, 해태, 연못이 3가지는 모두 물을 대표한다.
돼지는 음양오행 철학의 12지지이론에서 물을 상징하며,
해태 역시 바다에 사는 만큼 물을 의미 한다.
이런 조형물들이 배치하게 된 것은 이 절터가 화기火氣가 강하기 때문에
물로 불을 제압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화기 때문인지 실제로 1991년에는 큰 화재가 있었다.
따라서 이곳에 뱀이 많다거나 앞산이 뱀 머리라는 표현은 12지지이론에서
뱀은 화火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성주사의 창건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오고 있다.
그 하나는 가야시대 장유화상長有和尙 창건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신라 흥덕왕 때의 무염국사無染國師 창건설이다.
첫 번째 설은 가야불교의 인도 직수입설 (불교남방전래설)을 주장하는 것인데,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 아유타국에서 오면서
함께 온 사촌오빠 장유화상 (허보옥)이 머물도록 김수로왕이 창건한
가야시대의 고찰로서, 김수로왕과 왕비 허황옥 사이에 난 아들 중 일곱 명이
모두 불모산으로 들어가 스님이 되었는데 당시에 창건 되었으리라는 설이다.
두 번째 설은 827년 (신라 흥덕왕 2년)에 동쪽으로부터 왜구가
바다를 메우듯 병선을 이끌고 침범하자 왕이 왜적을 격퇴할 방안을
여러 신하들에게 묻자 서로 결론을 얻지 못하기를 연 5일이 되었다.
5일째 되는 날 밤에 어떤 신인이 왕께 현몽하여 말하기를
지리산중에 무염이란 화상이 있으니 화상을 불러 격퇴방안을 문의하면
왜적을 격퇴하기가 어렵지 아니하다 하거늘 왕이 곧 사자를 보내어
무염화상을 불모산에 주거하게 하고 격퇴 계책을 물었다.
이에 무염화상이 곧 석장을 산 위에 새우고 왼손으로 배를 치니
그 소리에 천지가 진동함과 동시에 철갑을 한 병사가 즉시 출현하여
산의 주위에 둘러쌌다. 왜적이 그것을 보고 크게 놀라 분산 도주 하였다.
왕께서 이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무염화상을 왕사로 모시고
사은을 갚는 뜻으로 밭 360결과 노비 100호를 내려서 불모산 아래에 절을
창건토록하고 성인聖人이 상주常住하는 절이라 해서 ‘성주사聖主寺’로 이름 했다.
그 후 1592년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는데,
1604년 (선조37년) 진경대사眞鏡大師가 산세와 절터를 보고
중창할 뜻을 품은 뒤 불당을 짓고 석탑과 석등을 찾아낸 뒤 사찰을 중건하고,
1682년 (숙종8년) 또 한 차례의 중수를 거친 뒤 1817년 (순조17년)
동래 범어사 梵魚寺에 있던 등암藤巖이 이 절로 옮겨와 주석하면서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다.
한편 성주사를 웅신사熊神寺, 속칭 ‘곰절’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진경대사가
원래의 성주사 터에 가람을 중건하였을 때 본래의 자리는
지금 위치에서 약 400m 북쪽에 있었으나 하룻밤 사이에
곰이 전 목재를 현재의 자리에 옮겨 놓아 부처님의 뜻으로 알고
그 곳에 절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는 옛날 어느 때 불모산에 살던 곰이 있어 배가 고파 내려왔으나
성주사의 스님들이 좌선삼매에 들어 수행에 열중하고 있어 배고픔을 잊고
스님들의 자세를 흉내 내곤 하다가 그것이 공덕이 되어 후생에
그 곰이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 사람이 자라면서 인연을 따라
성주사에서 부목(負木 : 절에서 땔 나무를 하는 사람)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전생이 곰이라 밥이 타는지도 모르고 삼매에 들어 불을 때다가
마침 공양간을 지나던 주지 스님이 그 광경을 보고는
지팡이로 머리를 치며 깨우는 순간 깨닫는 바가 있어
그의 전생인과가 곰이었는데 스님의 흉내를 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알고
더욱 정진하여 큰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성주사는 대웅전, 영산전, 삼신각, 설선당, 안심료 등의 당우와
삼층석탑, 관음보살상, 부도군의 문화재가 있는데
지방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전은
조선 숙종 7년 (1681년)에 중건한 것으로 추정되며,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는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전면 포작包作을 화려하게 조각하였으며, 대웅전 내부에는 화려하고
규모가 큰 닫집을 시설하여 법당 내부를 장엄하게 꾸민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성주사 내 지방유형문화재 제25호 삼층석탑, 제336호 감로왕탱,
제335호 관음보살입상, 문화재자료 제267호 동종이 있고
보타전寶陀殿, 명부전(冥府殿 (현재는 지장전을 신축),
설선당說禪堂, 염화실, 불모당佛母堂, 용화전, 요사채가 있다.
용화전에 있는 석조관세음보살입상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용화전을 세울 때 매몰되어 있던 것을 찾아낸 것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3층 석탑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 좌우에는 2기의 석등이 있고, 1773년(영조 49)에 세운 원혜園慧의
부도浮圖와 1781년 (정조 5)에 세운 경세慶世의 부도 등 부도 4기가 있다.
1. 聖住寺 大雄殿 柱聯 :
(성주사 대웅전 주련)
世尊坐道場 (세존좌도량)
세존께서 도량에 앉아 계시니
淸淨大光明 (청정대광명)
멀고 깨끗한 큰 광명이라
比如千日出 (비여천일출)
마치 천개의 해가 떠올라
照耀大千界 (조요대천계)
온 세상을 밝게 비추시네
2. 聖住寺 靈山殿 柱聯 :
(성주사 영산전 주련)
塵墨劫前早成佛 (진묵겁전조성불)
티끌이 쌓여 먹이 될 오랜 이전에 이미 성불하셨건만
爲度衆生現世間 (위도중생현세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친히 세간에 출현하셨나니
巍巍德相月輪滿 (외외덕상월륜만)
높고 높으신 둥근 달처럼 원만하시어서
於三界中作道師 (어삼계중작도사)
삼계三界의 모든 중생 바로 이끄는 스승이어라
3. 聖住寺 龍華殿 柱聯 :
(성주사 용화전 주련)
六時說法無休息 (육시설법무휴식)
6시간 설법하심에 휴식이 없으시며
遠嗣龍華遭遇難 (원사용화조우난)
영원히 이어나갈 용화삼회 만남은 어려워라
* “석문의범釋門儀範”에 있는 미륵청彌勒請의 가영歌詠 :
六時說法無休息 (육시설법무휴식)
하루에 여섯 번 법문을 하심에 쉬는 때가 없으시고
三會度人非等閑 (삼회도인비등한)
삼회三會 설법 사람을 제도하시되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며
切念勞生沈五濁 (절념로생침오탁)
오탁악세五濁惡世에 빠진 중생을 간절히 생각하시어
今宵略暫到人間 (금소약잠도인간)
오늘밤 잠시 인간세상 오셨네
4. 聖住寺 安心寮 柱聯 :
(성주사 안심료 주련)
圓覺山中生一樹 (원각산중생일수)
원각산에 한 그루 나무가 자라니
開花天地未分前 (개화천지미분전)
천지 나뉘기 이전에 꽃이 피었다네
非靑非백亦非黑 (비정비백역비흑)
푸르지도 희지도 또한 검지도 않아
不在春風不在天 (부재춘풍부재천)
봄바람도 하늘도 어찌할 수 없다네
山堂靜夜坐無言 (산당정야좌무언)
산당 고요한 밤에 말없이 앉았으니
寂寂寥寥本自然 (적적요요본자연)
적적하고 고요함이 본래 그대로다
何事西風動林野 (하사서풍동임야)
무슨 일로 서풍은 잠든 숲 깨우고
一聲寒雁唳長天 (일성한안려장천)
기러기는 소리 내 울며 추운 하늘로 날아 가는가
5. 聖住寺 佛母樓 柱聯 :
(성주사 불모루 주련)
被毛戴角入塵來 (피모대각입진래)
털옷 입고 뿔을 이고 사바세계 돌아오니
優鉢羅華火裏開 (우벌라화화리개돌)
우바라꽃이 불속에서 피는구나
煩惱海中爲雨露 (번뇌해중위우로)
번뇌의 바다 속에서는 비와 이슬이 되며
無明山上作雲雷 (무명산상작운뢰)
무명의 산상에는 구름과 우뢰가 되는데
鑊湯爐炭吹敎滅 (확탕로탄취교멸)
확탕 노탄 지옥의 불은 불어 없애버리네
6. 聖住寺 地藏殿 柱聯 :
(성주사 지장전 주련)
地藏菩薩誓願力 (지장보살서원력)
지장보살님의 크신 원력의 힘
恒沙衆生出苦海 (항사중생출고해)
간지스강 모래같이 많은 중생 고해에서 구제 하시네
十殿照律地獄空 (십전조율지옥공)
시왕전 조율하여 지옥을 비우시고
業盡衆生放人間 (업진중생방인간)
업業이 다한 중생들은 인간세상 보내시네
7. 聖住寺 觀音殿 柱聯 :
(성주사 관음전 주련)
觀音菩薩大醫王 (관음보살대의왕)
관음보살님은 중생의 병 고쳐 주는 대의왕大醫王이시니
甘露甁中法水香 (감로병중법수향)
감로수 병 속의 법수法水가 향기롭다
灑濯塵雲生瑞氣 (쇄탁진운생서기)
마魔의 구름 벗겨내시어 서기 일게 하시어
消除熱惱獲淸凉 (소제열뇌획청량)
극심한 괴로움을 깨끗이 하고 청량함을 얻게 하소서
8. 聖住寺 摩訶樓 柱聯 :
(성주사 마하루 주련)
劍樹刀山喝使嶊 (검수도산갈사최)
검수도산 모든 칼날 한 소리에 꺾어내네
金鎖玄關留不住 (금쇄현관유부주)
금덩이도 현묘함도 머무르지 아니하며
行於異類且輪廻 (행어이류차륜회)
중생세계 부처세계 바퀴같이 돌아보리
萬古擄漉始應知 (만고노록시응지)
만고로 거듭 건져봐야만 비로소 알리라
* 송대宋代 - “동안상찰선사同安常察禪師 십현담十玄談, 9.轉位전위” :
披毛戴角入廛來 (피모대각입전래) 가죽옷에 머리 묶고 본래 집에 돌아오니
優鉢羅華火裏開 (우발라화화리개) 우발라꽃 찬란하게 불타듯이 피었구나
煩惱海中爲雨露 (번뇌해중위우로) 바다 같은 번뇌 망상 비와 이슬 치부하고
無明山上作雲雷 (무명산상작운뢰) 무명산에 구름 위에 번개우뢰 일으키네
鑊湯爐炭吹敎滅 (확탕로탄취교멸) 끓는 물도 타는 불도 한 입김에 제거하고
劍樹刀山喝使摧 (검수도산갈사최) 검수도산 모든 칼날 한소리에 꺾어내네
金鎖玄關留不住 (김쇄현관류부주) 금덩이도 현묘함도 머무르지 아니하며
行於異類且輪廻 (행어이류차륜회) 중생세계 부처세계 바퀴같이 돌아보리
* 성주사 3층 석탑 :
경남 유형문화재 제26호이고 재질은 화강암이며 나말려초羅末麗初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원래 대웅전 앞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이 아니라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성주사에서 서북쪽으로 500m지점에 있는 절터에
석탑 받침만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폐사된 그곳에 있은 것으로 추정된다.
2중으로 구성된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과 중앙을 받쳐주는 받침기둥이 있고,
1층 몸돌에는 출입문과 자물쇠가 얕게 돋음 처리되어져 있다.
지붕돌받침은 4단으로 조각되었으며,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탑신 고임이 없고
제일 위 보주는 본래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탑으로 보인다.
탑塔이란 말은 인도의 옛말 스투파에서 유래되었는데,
그것을 졸도파炪堵波, 수두파藪斗波, 탑파塔波 등으로
번역하여 쓰다가 줄여서 탑이라고 하게 되었다.
탑은 본래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에서 비롯되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신 후 다비(화장)를 하였는데,
그때 나온 사리를 인도의 여덟 나라에서 나누어 가져다가 각기 탑을 세우고
생전의 부처님처럼 모셨다고 한다. 이것을 근본 8탑이라고 하는데,
말하자면 이때부터 사리신앙과 더불어 불탑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 약 100년이 지난 뒤 인도를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한 마우리야왕조의
아쇼카왕이 이전에 세운 8개의 탑을 해체한 뒤 사리를 다시 8만4천으로
나누어 전국에 8만4천개의 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와서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대신
불경이나 불상 등의 법신사리를 봉안한 탑도 건립하게 되었다.
불탑은 사용된 재료에 따라 목탑, 석탑, 전탑, 모전석탑,
금동·청동·철탑 등으로 구분된다.
* 성주사 부도浮屠 :
부도는 부두浮頭, 불도佛圖, 포도蒲圖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기도 한다.
어원적으로는 부처님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 붓다(Buddha)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탑을 뜻하는 스투파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도라고 하면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뒤부터는 주검을 화장하여 그 유골을 거두는
장골藏骨이라는 불교식 장제가 널리 유행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부도가 건립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선종이 크게 일어남에 따라 스님들의 지위가 높아져 불탑처럼
스님의 부도도 많이 건립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나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경과 불상 등
법신사리를 봉안한 불탑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곳에 건립하는 반면에
승탑인 부도는 사찰 주변의 호젓한 곳에 석비와 함께 조영되었다.
부도는 불탑과 구분하여 단층의 건물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고려시대부터는 석등이 함께 조성되기도 하였다.
부도는 기본적으로 팔각원당형과 종형 또는 복발형의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불탑과 마찬가지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륜부는 불탑보다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다.
* 성주사 범종梵鍾 :
성주사의 동종銅鐘은 성주사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은 비록 없지만 용화전을 지나 처음 만나게 되는 동종은
건룡 48년 (1783)에 제작되었다. 동종의 높이는 111cm, 직경 84cm,
무게 600근으로 조선시대 작품이다. 용뉴부에 음통은 없고 쌍룡으로
용뉴를 장식하고, 종신 가운데 4개의 유곽이 독립적으로 자리 잡고
그 사이에 보살상이 배치되어져 있다. 흔히 타종부분으로 새겨지는 당좌가
이 종에서는 없는 것이 특징으로 조선시대 동종연구에 자료가 되고 있다.
범종은 절에서 대중을 모으기 위해서나 때를 알리기 위해서 치는 큰 종으로,
흔히 종루를 짓고 달아두는데, 시대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즉 ‘범종’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사찰에서 쓰는 종이란 뜻으로,
청정한 불사에 사용하는 종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佛母山 昌原 聖住寺 柱聯 (불모산 창원 성주사 주련)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