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자인가 사육자인가
(홍성남 마태오 신부)
사회에서는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가정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공동체인 듯이 말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상담 사례를 보면 모든 문제의 근원이 가정임을 알게 됩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을 양육이라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자기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키울 때 이를 사육이라 하며
부모가 양육자가 아니고 사육자일 때 많은 문제와 문제아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가정만이 아니라 종교 안에서도 발생합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이끄는 일을 사목이라고 합니다.
목자가 양을 치듯이 돌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목을 하는 사람들을 양치기라는 의미의 사목자 혹은 목회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목자들 중 간혹 신자를 사목이 아닌 사육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킵니다.
사목자가 아닌 사육자들이 갖는 공통점 몇 가지를 열거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 특징은 공포 신앙입니다.
사목자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신으로부터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설교 내용들.
심약한 사람들은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사목자로부터 들은 말이
바로 신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여겨서
그때부터 공포심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사목자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 안에서 들리는 공포스러운 소리 때문입니다.
공포심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신의 삶을 광신도의 삶으로 변질시키는 아주 무서운 감정입니다.
이들은 신앙이나 교리에 대한 의문조차 갖지 않으며
신보다 사목자를 더 숭배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래서 간혹 교활한 종교인들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사적 이익을 취하려고 합니다.
공포 정치는 국민들로 하여금 반항심을 갖게 하거나 항거하게 하는데
종교가 만드는 공포 신앙은 그런 최소한의 저항 의지마저도 없애 버립니다.
종교가 사람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노예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들은 가정을 포기하고 자신이 몸담은 종교 집단에 모든 것을 다 갖다 바치기도 해서
가정 파탄을 불러오기도 하는데 그 원인자는 바로 사육자들인 것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애매모호한 종교적 언어의 남발입니다.
사육자들은 정확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늘 추상적이고 애매한 언어를 사용합니다.
하느님의 뜻. 굳센 믿음 등의 종교 언어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 상세한 설명 없이 던져지는
이런 말은 심약한 신자들 마음의 아킬레스건을 자극합니다.
이 아킬레스건을 종교적 내사라고 합니다.
내사란 외부에서 주입된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마음 안에서
사람을 조종하는 폭력적인 생각을 말합니다.
내 마음 안의 폭군이라고 불리는 내사는
심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원인인데 이것이 종교의 외피를 뒤집어쓰면 종교적 내사가 됩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잔인하고 영악하게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즉 신자가 사목자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왜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느냐고 비난하는데
이런 말을 듣는 신자들은 밑도 끝도 없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하는 삶을 삽니다.
소위 병적인 죄의식에 중독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종교적 신경증에 시달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천당에 가도 자기는 절대로 가지 못할 것이란 구원 불안증.
조금의 죄라도 지으면 안 된다는 완전 강박증 등
종교적 신경증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들은 신에게 가까이 가고 자유로이 대화하는 기도를 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뜻 운운하면서 하느님과 사목자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 보는 노예적 신앙인으로 전락합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보니
이들의 영성 생활은 소위 가짜 영성으로 변질됩니다.
진정한 겸손이 아닌 남의 눈치 보는 가짜 겸손.
진정한 가난이 아닌 심리적 궁핍에 찌든 가짜 가난 등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영적 연출을 하며 전전긍긍하는 비굴한 삶을 삽니다.
세 번째 특징은 돈과 신앙심을 연관시키는 것입니다.
헌금을 낸 액수가 믿음의 정도를 반영한다는 논리.
헌금이나 십일조를 제대로 내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폭언은
사목자의 핵심 욕구가 돈이란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집단 안에서 발생하고 많이 낸 사람들이 선민의식을 가지면
궁핍한 사람들은 이의제기는커녕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헌금을 만들려는 고단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집단 안의 병적인 정서가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케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본인에게 주는 돈의 액수에 따라서
효성의 정도를 가늠하겠다고 하면 그 부모는 양육자가 아니라 사육자가 되듯이.
종교인이 신앙을 돈으로 판단하겠다고 하면
그는 사목자가 아닌 사육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공산주의자들이 교회를 박해한 것에 깊은 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반공 콤플렉스를 가진 이유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교회가 공산주의자들에게 빌미를 주지는 않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진정한 사목자들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육자들이 판을 칠 때 공산주의자들에게 빌미를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