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 부르기 / 최미숙
화요일 저녁마다 줌에서 공부하는 ‘일상의 글쓰기’ 수업 시간에 회원이 쓴〈꽃밭에서〉라는 글을 읽고 설명하던 중 교수님이 “이 제목의 노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후배가 가수 정훈희 노래는 본인이 잘한다며 급기야 몇 소절을 불렀다. 딱딱할 것 같던 수업이 후배의 짧은 노래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됐다. 나는 동요도 있다며 어릴 때 불렀던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한 소절을 조그맣게 읊조렸다.
내가 동요를 들먹인 데는 이유가 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지 않는다.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 까마득하다. 이미 어른과 아이의 노래 구분이 사라진 지 오래다.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노랫말이나 외국 노래는 따라 부르면서 정작 자신들의 이야기와 정서를 담은 동요는 시시하다고 외면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이제는 초등학교 음악책에도 국악의 양이 많아져 수업 시간조차 듣기가 힘들다. 초등학생이면 당연히 배웠던〈어린이 날 노래〉, 〈어머님 은혜〉, 〈스승의 은혜〉, 〈졸업식 노래〉도 지금은 부르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이 일부러 가르치지 않는 한 모르는 아이가 많다.
동요란 어린아이들의 감정이나 생각을 담아서 표현한 문학 장르의 하나로 언제 누가 지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 전래 되어 온 전승 동요와 어른이 창작한 창작 동요로 나뉜다. 한동안 모 방송국에서 ‘어린이 창작동요제’를 개최해 28년 동안 아름다운 노랫말의 노래가 400여 곡이나 나오고 20여 곡은 교과서에 실리기도 해 따라 불렀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할수록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순수한 동심이 느껴지지 않고 정작 아이들이 따라부르기 어려운 곡이 많았다고 한다. 또 어린이의 방송계 진출 수단으로 변질되어, 2010년 제28회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사라졌다.
오래되기는 했지만 80년대 후반에는 해마다 각 시도 교육청에서 음악제를 많이 열었다. 독창, 중창, 합창대회가 있어 아이들을 지도해 데리고 나가기도 했다. 나는 네 명의 학생에게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의 ‘오빠 생각’에 화음을 넣어 2중창으로 연습을 시켰다. 대회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내가 더 즐겨 불렀다. 그때 나갔던 아이들도 그 노래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또 많은 학교에서 ‘이달의 노래’라고 매달 부를 노래를 정해 아침 방송 시간에 틀면 학급에서 학생들과 같이 부르기도 했다. 담당 선생님이 악보를 주면 나는 그것을 복사해 아이들에게 나눠 주고 따로 파일철에 모았다. 어른인 내가 들어도 좋은 노래가 많았다. 그중 ‘참 좋은 말’, ‘노을’, ‘새싹들이다’ 등은 창작동요제 입상 곡으로 아이들과 즐겨 불렀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그동안 모은 두꺼운 악보 철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녔다. 30년도 다 됐는데 지금도 교실 책꽂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가끔 누렇게 변한 악보를 꺼내 혼자 불러보곤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필요 없게 됐다. 언젠가는 아이들과 노랫말을 음미하며 다시 한번 부를 때가 있을 거라 여겼는데 그런 시간을 갖지 못하고 세월이 가 버렸다.
요즘은 트로트가 대세를 넘어 중독인 시대다. 그동안은 중년 이상의 어른이 즐기는 음악이라 여겼는데 이제는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가요’라 할 만큼 누구나 따라 부른다. 모 방송사에서 개최한 경연대회에 처음에는 한두 명의 아이가 출연하더니 이제는 10대의 도전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됐다. 스타로까지 성공한 아이를 본 부모들이 더 적극적이다. 시대가 변해 사람들의 눈높이가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사랑, 이별, 그리움 등의 노랫말로 기교를 부리며, 이상야릇한 춤으로 어른을 흉내 내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아직까지는 불편하다.
나는 트로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회에 나오는 아이들 노래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한다. 어른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긴장하는 무대에서 의연하게 노래하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인 프로그램에 어린이가 출연해도 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어린이다워야 한다’라는 말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진부한 표현이고 편견이라 해도 할 수 없다.
교육학에 ‘발달 과업’(Develop Task)이라는 용어가 있다. 개인이 생애 주기를 거치면서 각 단계마다 수행해야 할 역할이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업을 일컫는다. 이 과정을 원만하게 수행해야 개인과 가족이 모두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꾸려 나가기 때문에 중요하다. 아이는 제 나이에 맞게 놀고, 생각하고, 노래 불러야 하지 않을까?
첫댓글 맞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아이들은 제 나이에 맞게 놀고, 생각하고 노래 불러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초등학생들이 방송에 출연하여 부르는 노래가
대부분 트로트이고 아이돌 가수의 춤을 따라 추는 걸 보면 마음이 편치 않더라고요.
시청률만 추구하는 방송이 상업성을 띠고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이러한 유행을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선생님 '중독' 이란 글감으로 이렇게 멋진 글을 완성하셨네요. 최고세요.
그러게요. 동요 들어 본 지 오래 됐어요. 아이들이 학원과 공부에 빠져 살다 보니 노래 한 곡 부를 여유도 부족한 것 같아요.
파란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즐겨부르던 아기염소가 생각 납니다. 글 너무 좋으네요. 두꺼운 악보 철 잘 간직하세요. 고맙습니다.
어제 손녀가 와서 하모니카를 불어 달라 하기에 학교에서 매운 동요를 말하라 했더니
전혀 기억이 없다고 해서 섭섭했습니다. 그런데 가요는 잘 알드라고요.
요즘 아이들이 동요를 모른다니 안따갑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시절이 변하긴 했지만 어릴적 불렀던 노래는 잊히지 않는데요. 안타까워요.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아이들이 지은 시에 백창우가 곡을 부쳐 만든 노래집이예요. 아실지 모르지만 .
저는 이 노래들이 참 좋더라구요.
저도 좋아합니다.
그 노래.
저번 주 수업 끝 무렵에 컴퓨터가 꺼져 버렸는데, 그 사이에 노래도 부르셨군요. 그 후배님이 누구실까요? 양 선생님? 못 보고 못 들어서 아깝네요.
정답!
안 들으셔도 귀신인데요. 하하.
어린 시절 불렀던 동요는 평생 기억에 남아요. 어른 흉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과 걱정스러움이 교차했는데 좋은 글 고맙습니다.
동감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는 팝송만 주구장창 부르고, 제대로 된 음악인 줄 아는 게 좀 아쉬웠습니다.
'뽕기'가 있기는 하지만 트로트도 있고, 포크음악도 있는데 유독 심했지요.
그 모든 게 자존감 낮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트로트가 대세가 되어 채널만 돌리면 나오고, 아이들도 그 음악만 불러 대니 안타깝네요.
선배님 말씀처럼 사랑과 이별, 그리움이 주가 되는 노래니까요.
아이는 아이답게 크는 게 최고이고, 어릴 때 배웠던 동요는 어른이 되어서도 오래 기억되는데요.
글감이 생각 안 난다고 제게 여러 번 이야기하셨는데, 다 엄살이셨어요.
멋진 글입니다.
저도 가끔 어릴적 즐겨 불렀던 동요를 흥얼거립니다. 마음의 안정이 되었어요. 마찬가지로 티브이에 나와 어른들 노래를 간드리지게 부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답니다. 무슨 뜻을 알고 부르는지 의구심도 들고 목소리 하나에 노예가 되는 느낌이었거든요. 깊이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