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소설 It's Your DaY! - 일곱번째 날

[SsuN]

It's Your DaY! - 일곱번째 날

               오늘은 당신 만을 위한 날입니다. It's Your Day.

삐비삐빅-

게타이 알람소리가 조용했던 방안을 가득 메운다.

부수수 일어나 게타이 알람을 끄고는 멍하니 천창을 바라보았다.

안녕. 잘 지내- 그 익숙하던 목소리가 내 머릿가에 울린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

잘 지내- 라는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꿈에서 웃으면서 인사 하는 너를 보았어.

반 농담 식으로

내가 늙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더라도 내 주름진 손잡고 그림 그리자는 너.

한밤중에 걸쭉하게 취해가지고는 그림 그리고 있는 내 앞에 나타나,

하얀 강냉이가 가득한 강냉이 꽃다발을 내밀었던 모습.

그림 그리는 여자가 손도 관리 제대로 못한다며 사계절 내내 핸드크림을 나에게 실어다 준 모습.

항상 과제 전 하는 거보면 내가 봐도 이건 나라는 걸 알아버리게끔 내 일부를 그렸던 너.

우리 결혼하면 만날 이럴 거야. 능청스럽게 먼 훗날을 얘기하던 모습.

너무나 나에게는 친근하게 다가왔던 너라서, 10년 내내 질긴 인연을 가지고 있는 우리

난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 너 옆에 내가 있는 풍경이 너무나 익숙했거든.

네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한국이 아닌 딴 곳으로 날아갔다는 걸 알고,

농담 투성이었던 너의 진심을 나는 늦게 깨달아버렸을까.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말한 그 말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 * *

심야 학교 촬영이후, 나츠쨩은 유명인 아라시와 같이 밥을 먹고 옆에서 봤었다며

동기들에게 아마 10번은 넘게 했던 얘기를 하고 또 했다. 내 옆에 와서도, 꿈 만 같아! 라며

그 말을 몇 번이나 하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 그 바람에 나츠쨩은 과제물 하는 속도가 느려졌다는 건 당연한 얘기.

 예전부터 아라시를 그냥 괜찮다고 느껴왔던 나츠쨩이 이제는 아라시 팬할거야! 라며 아라시 팬클럽에도 들었다며 나에게 어제 시부야 HMV에서 아라시 음반을 사왔다며 나에게 들려주겠다고 난리치는 것을 겨우 말렸다.

연구생 신세에 과제야 수업을 한번 듣고 나면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과제의 속에서,

갑자기 레포트를 제출하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허둥지둥 학교도서관에 뛰어들어가 책들과 자료들을 뽑아 들고 집에 가서 레포트를 쓸까 하다가 벽화를 그리던 카페가 24시간 카페라는 것이 생각나 학교에서 가깝기도 하니 그 쪽에서 쓰다가 바로 학교로 등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해가 얼굴을 숨기고 진 깜깜한 저녁.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책과 자료들을 한 무더기 올려놓고 바이토생에게 카라멜 마끼아또 한잔을 시키고는 창가가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코 밑까지 흘려온 뿔테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는 오늘 밤을 새서라도 끝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표정으로

 레포트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본원서를 읽다 한국어원서를 읽다가 영어원서를 읽다가 꼬부랑 언어가 내 머릿속에 떠다닌다.

스며드는 한기에 움츠렸던 목을 꼿꼿히 세우고는 다시 영어원서를 읽어 내려갔다.

- 손님.

바이토 생의 말이 들리자, 읽고 있던 영어 원서를 내려놓고는 안경이 큰 탓인지 코로 내려오는 안경을 다시 고쳐 쓰며 위로 시선을 올렸더니 내 눈 앞에서 싱긋 웃고 있는 오노 상. 인기척도 없이 나타난 오노상의 모습에 놀랠 틈도없이 오노 상은 내가 앉은 테이블 앞에 의자를 쭉 빼고 앉아서 테이블에 널린 프린트 물과 책을 펼친다.

- 이걸 보는 거야? 대단해. 센쨩. 난 공부같은 거 정말 오래 못하겠어. 그래서 성적이 안 좋았지만.

  그래도 미술은 5점 만점이었다구!

   .......그러고 보니, 센쨩. 왜 메일 안 해주는거야?

- 아.. 미안해요. 작업하고 그럴 때는 메일을 확인 못하거든요.

- 웅 후후.. 그런거였어? 센쨩이 나 싫어해서 메일에 답장 안 해주는 줄 알았어.

내가 오노 상을 싫어해서 답장을 안 해주는 줄 알았다는 말과 함께 다행이다라는 뜻이 포함된 웃음을 짓고 있는 오노 상.

내가 오노 상을 싫어하다니요. 그럴리가 없잖아요. 일본의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의 아라시 인데 어떻게 미워할 리가 있나요.

아라시를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데.

오노 상에게 대답한 말대로 나는 과제나 작업을 하고 있을때는 게타이를 진동으로 해두고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이 끝난 상태에서 확인을 한 다음에 중요한 메일은 답장을 해주고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메일들은 답장을 안 한다.

이러니, 오노 상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수밖에. 다음부터 오노상에게 메일이 오면 답장을 꼭 해줘야 겠다.

식어버린 캬라멜 마끼아또를 한 모금이 들이 마셨다.

식어버렸어도 여전히 달짝지근한 맛을 남기는 캬라멜 마끼아또.

나는 머리에 쥐가 내릴것 같은 영어원서를 테이블 위로 내려 놓았다.

- 센쨩. 나에 대해서 모르는구나. 모르는 건 뭐 알고 있었지만.....

뜬금없이 나에게 날 너무 모르는 구나 라는 오노상의 말에 순간 당황. 그가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몰라

 제 주인을 잃은 자료를 정리하는 손길을 멈추고는 오노 상을 쳐다보았다.

그는 무심한 듯 흘러가는 듯이 말하면서도 내 프린트물에 보면서 뽀료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은 댓발이나 나와서는.

- 내 생일날 센쨩의 축하메일이 없어서........ 조금은 섭섭했는지도?

그저 악센트 없이 조용히 읽어내려가듯이,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생일이 지났다고 말하는 오노 상.

잠깐, 오노 상 생일이었다니 순간 놀래 입을 크게 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눈앞의 프린트 물 너머의 오노 상의 표정은 섭섭함이 묻어나 있는 표정이 그려진다.

나와 오노상이 만난시간은 한 계절을 바꿀 만큼의 시간이 흘렀는데, 오노상의 말 처럼 난 오노 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오노상의 풀 네임, 그가 활동하고 있는 그룹 아라시. 이거 두 가지 밖에 아는 게 없다. 오노 상에 대해. 나보고 친구하자는 오노 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다니. 오노 상의 친구 될 자격없다.

- 미안해요. 오노상이 생일 몰랐어...요.

내 앞일에 신경 쓰다가 중요한 일이 아니면 나머지는 다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 다수.

그러니까, 오노 상 메일에 제대로 메일을 못 보냈던 거겠지.

이런 나의 무신경함 때문에 고개가 땅으로 떨꿔진다. 미안해서 얼굴을 못 들겠다.

너무 미안해서 자료를 정리하는 손길이 조금씩 조금씩 느려진다.

내 머리위로 떨어지는 오노상의 한 마디.

- 그럼. 내 생일 선물 대신 내가 해달라는 거 해줘.

정리하던 자료를 대충 테이블위로 올려두더니 나의 팔을 잡더니 오노상의 가는 쪽으로 끌려가는 나.

가게 뒤쪽에 딸린 넓은 공간의 문을 열고는 불을 켜니 어둠컴컴해진 공간이 환해진다. 그 공간 가운데에 나를 덜렁 세워두고는 허둥지둥 뭘 주섬주섬 찾으시는 오노 상. 그가 물건을 찾고 있을 동안에 나는 그 공간을 둘러보다 내 키보다 큰 캔버스가 세워져 있는 쪽으로 가서 그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고 있었다. 벽화를 같이 그린 그 남자의 동일한 터치인 느낌이 들지만, 살짝 미숙한 느낌이 든다.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인가. 오노상은 의자 2개와 대야 그리고 물이든 물통을 놓고는 나보고 이리 오라며 손짓을 한다.

- 이거 뭐예요?

- 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고 했지? 여기 앉아.

오노상의 말에 의자에 앉고는 내가 앉은 의자 옆에 대야가 있었고 대야 옆에 의자에는 벌써 오노상이 앉아 있었다.

 그는 큰 플라스틱 통에 흰 가루가 든 봉지를 뜯어내고는 흰 가루를 수북이 넣고, 물을 천천히 넣어가며 나무젓가락으로 젓고 있었다. 저 흰 가루. 내 생각이 틀리 않는 것이라면, 저거 분명히 석고 가루 일 것이다. 그는 석고 물을 다 풀어내더니 나와 그 사이에 있는 대야에 한 가득 부어버린다. 팔뚝을 걷으라는 오노상의 말에 팔뚝을 걷었다. 팔뚝을 걷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아 오는 오노 상.

- 지지..금 뭐해요! 손은 왜 잡아요!

- 내가 말하는 거 해준다고 했잖아? 자, 손잡아.

오노상의 길쭉한 손과 작은 내 손을 맞잡더니 이정도면 됐나? 하며 석고의 농도를 나무젓가락을 저어 확인하더니 나의 손과 오노상의 손을 잡은 모양을 살펴보더니 손가락 배치를 다시 잘 정리 해주고는 자 들어간다! 그 말을 끝으로 오노상의 손을 맞잡은 채로 의자 옆에 있는 대야에 담긴 석고 물로 손이 풍덩 담겼다. 석고 물에 담긴 손이 순간 차가웠지만, 오노 상의 손이 따뜻해서 차가운 기운조차 들지 않았다.

- 이게 하고 싶으셨어요? 오노 상.

- 응. 손을 맞잡고 있는 석고를 뜨고 싶었어. 센쨩이랑.

참 독특하다. 생일 선물로 해달라는 게 내 손을 잡고 석고모형을 뜨는 것이라니.

손을 맞잡고 석고 모형을 뜨고 싶어 하는 그의 이유를 모르겠지만,

자신의 생일 선물로 이런 걸 하자고 하는 것을 보면, 오노 상답다.

한 계절이 지날 만큼 오노 상을 옆에서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난 오노 상 생각을 도통 모르겠다. 그게 오노 상다운 거겠지만.

똑딱똑딱 초침이 돌아가는 시계소리와 함께 석고 안에 손을 맞잡고 있는 나와 오노 상만의 시간이 더디게 간다.

언제부터 오노 상이 엉뚱하게 나만의 시간에 들어 왔을까. 이 시간은 어디로 온 것이며 어디로 흘러 갈 것인지 그건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다. 낯선 일본이랑 땅에서 국적이 서로 다른 나와 오노 상을 만나게 하신 이유도.

- 오노 상.

나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나를 쳐다보는 오노 상. 나의 말에 이상한 기류를 눈치 챈 오노 상의 표정이 조금 안 좋아진다.

 한 손으로는 뒷머리를 긁고 있는 오노 상. 마음을 이미 먹었다. 그 동안 오노 상 생각조차 끼어들지 못하게 미친 듯이 죽어라 그림만 그렸던 나날 중에 그렇게 하기로. 사쿠라이 상말대로, 이 얘기를 매듭짓자고.

똑딱똑딱 이 소리가 더욱더 긴장감을 조성시킨다. 나와 오노상의 사이를.

- 오노 상. 그냥 제 얘기 들어주세요.

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오노 상은 내 말에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조금은 살짝 불안한 표정으로.

- 오노 상이 싫어서, 오노 상 고백 안 받은 거 아니에요. 변명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아직 사람 마음에 두는 거 잘 못해요.

  오노 상이....... 힘들어 하실까봐.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 그럼. 기다릴게. 그렇게 하게 해줘.

나의 말에 조금은 생각하고 말을 할 줄 알았던 오노 상은, 한 치에 망설임 없이 기다리겠다고 말한 오노 상.

그의 말에 나는 오노 상을 보았다. 한쪽이 기다리다가 지치는 것이 그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인지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것도 그 상대가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도 아니었고, 우리는 더구나 겨우 한 계절을 함께 지나온 사람에게 큰 짐을 지어주다니 난 너무 나쁜 사람이야.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오노 상을 쳐다보았다. 나의 눈빛의 의미를 읽었을까.

오노 상은 나 괜찮아. 걱정 마 라는 눈빛으로 씽긋 웃으며 더욱더 내 손에 힘을 줘온다.

따스하게 감싸오는 느낌에 나도 걱정스런 눈이 슬며시 풀리며 오노 상에게 웃어 보인다.

나는 성 꼭대기에 혼자살고 있는 라푼젤. 그는 나를 마녀의 성에서 구출하려는 용기 있는 왕자님.

아직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가시덤불 속에서 철갑옷을 입은 오노 상이 마녀의 성을 열수 있는 그 열쇠를 찾아내

나를 그 마녀의성에서 구출해줄 것이다. 용기가 많은 그 라면 가능할 거다.

똑딱똑딱 수많은 시간의 조각 속에 만난 나와 오노 상이 이렇게 손을 맞잡은 채로 웃을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랄뿐이다.

* * *

“한 학기 동안 열심히 따라와줘서 고맙다. 재충전해서 다음 학기에 더 좋은 작품으로. 알지? 기대할게. 방학들 잘 보렴. 이상.“

교수님의 단비 같은 말씀에, 프리스타일 일에, 미술학원 일에, 학부생 과전시회 일에, 오픈 캠퍼스 일에, 프로젝트에 정신없던 나날이 회상이 되고, 2학기가 드디어 끝났다! 나에게는 자유뿐!

일주일내리 꼬박 과제 마무리 때문에 날을 새었던 탓이라 그런지 눈이 뻑뻑해서 눈을 뜨는 자체가 힘들었다.

같이 수업 듣는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는 일단 잠부터 보충해야 되기 때문에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 침대위에 모자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다이빙. 잠이 들어버렸다.

♩~♪~♬♪

방안에 시끄러운 게타이 소리가 막 울린다. 잠이든지 얼마나 지나지 않았는데. 대체 누구야.

나 일주일동안 잠 못 자서 환장한 사람이라고.

눈을 감은채로 시끄러운 게타이를 찾아내 게타이 플립을 열고 게타이를 귓가에 댔다.

잠을 잔 탓인지 여보세요? 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는 완전 남자라고 해도 저리 갈 정도였다.

- .. 여보세요?

- 센쨩..? 나 미카쨩예요~ 센쨩 지금 바빠?

미카상이라는 말에 갑자기 눈에 번쩍 뜨인다.

침대에서 일어나 모자를 대충 벗겨내고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손으로 북북 긁어모아 가라앉혔다.

- 아니에요. 오늘 학기 끝났어요.

- 그래? 오늘프리스타일 스태프 회식 있거든.

  그러고 보니, 오늘 오노군도 온다고 했어. 센쨩. 오노 군으로부터의 전언이었습니다.

  센쨩. 메일 좀 하라는 전언이었습니다.

미카상으로부터 전해들은 오노상의 전언을 들으며, 뭔가 확 하고 스쳐 지나갔다.

하나를 알면 둘을 잊어먹는 내 머릿속을 콩콩 바보 같은 내 머리를 한손으로 콩콩 쥐어박았다.

- .. 센쨩? 듣고 있어? 오늘 일곱 시부터, 회식한대. 멀리는 못 나가고 우리 회사 근처에서 하게 될 것 같아.

    에 어디더라. 써놓았는데...... 센쨩. 그럼 내가 문자 줄 테니까. 오는거다? 알았지?

비몽사몽한 정신 상태로 와 있는곳은 시부야의 이자카야.

맨 정신도 아닌 이 흐리멍덩한 상태에 술 먹다 잘 못하면 무슨 일 일어나겠는데.

더욱더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자며 내 앞에 있는 술잔을 바라보았다.

저 앞에서 마나쨩과 전시기획 팀장님과 같이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는 오노 상.

프리스타일 작품집에 들어갈 사진촬영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 이때 더 스태프들이 단합 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며 모인 프리스타일 스태프들. 마침 오노상이 온다고 해서 평소에 보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 같다.

 정신줄 안 놓으려고 술을 마시지 않고 내 앞에 있는 안주만 죽어라 먹고 배를 채우고 있었다.

슬슬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앞, 옆에 있는 스태프들은 얼굴을 빨개졌다. 취기가 슬슬 올라오는가 보다.

앞 접시에 있는 꼬치안주를 나무젓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놀고 있었는데, 내 앞에 자리에 빈 곳에 누군가 털썩 앉고는 내 잔에 술을 채운다. 고개를 들어 보니 오노 상.

- 센쨩..이네..?

그의 말에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미 술을 좀 거하게 마셨는지 불그스름한 오노 상.

얼마나 많은 스케쥴이 있었는지, 피곤한 표정이 역력해 보인다. 얼굴 살도 빠진 것 같고. 얼굴이 반쪽이네.

그가 채워준 술잔을 보다가 들고는 한 번에 원샷을 했다. 캬~ 으... 써. 이런 걸 왜 마시는지 몰라.

 오노상은 나의 원샷하는 모습을 보고 웃더니만 또 원샷을 하면 어떻게 하며 물 잔을 나에게 내밀었다. 오노 상을 다음에 만나면 뭐라고 말 걸어야 겠다 하고 다 생각해뒀는데. 막상 오노 상 얼굴을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싹 사라져버렸다. 아니 기억이 안 난다.

- ... 잘 지냈어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나의 말에 술잔을 내려놓고는 지그시 나를 쳐다본다.

그의 시선이 너무나 따가워서 시선을 아래로 내려버렸다.

뭘 어떻게 해야 되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다가 내 머리 앞으로 오노상의 말이 떨어진다.

- 있잖아....센쨩 얼굴이 생각이 안나...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푸흐흐

그의 말에 다시 고개를 드는 나였다.

나를 뚫어지듯이 바라보는 오노 상의 그렁그렁 가득 찬 눈을 멍하니 보고 있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방을 나가버렸다.

오노상이 방을 나가버린 뒤, 나 역시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노라며 가방을 들고는 일어섰다. 이자카야 밖엘 나가보니 12월의 찬바람이 내 몸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그 바람 때문에 잔뜩 몸을 움츠린 나는 목도리를 목에 빙빙 휘감았다. 하얀 입김을 내며 이자카야 문 앞에 서서 까만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 별을 잡아보고 싶어서 손을 뻗었다. 잡아지지가 않는다. 괜스레 그냥 눈물이 나온다. 내가 원하는 건 잡을 수 없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깨달아온 탓이었을까.

내 자신이 노력을 해보고 잡을 수 있는 것이면, 안간힘을 써서라도 잡았고 처음부터 이건 정말 내 힘으로는 무리야 라고 생각하는 건 포기해버렸다. 정말 이건 신 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야 라고.

 한참 눈물이 흐르기만을 그대로 두었을까 옆에서 자박자박 발소리가 들려 점퍼 소매로 눈물을 꾹 닦아버렸다.

오랜만에 별을 보며 울다니..... 많이 내가 감성적이 되어버렸어. 별 따윈 원래 잡을 수 없는데 말이야. 뽀얀 입김을 자아내며 다가온 오노 상. 내 눈물자국에 놀랬나보다.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로 물어오는걸 보면.

- ... 왜 울어?

- 그냥. 집 생각이 나서요.

그렇게 나와 오노상은 아무 말없이 검은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바람을 쐬러 이자카야 밖엘 나왔을 때까지 만해도, 거리에 사람들을 가득 매우고 있었던 자리에 이제는 사람이 뜨뜸뜨뜸 보이고 사람이 없는 자리엔 자동차의 불빛과 네온사인과 가게의 화려한 불빛만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바람 쐬러 너무 오래 나왔구나.

주춤주춤 일어나 청바지의 먼지를 툭툭 털어버리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훅 하고 내 팔이 잡힌다.

그 바람에 나는 멈춰 서게 되었고 고개를 들어 뒤로 돌아보자 검은 모자를 깊게 눌러쓴 오노상은 가자. 라며 내 팔을 잡고는 끌고는 시부야의 화려한 불빛사이로 들어 가버렸다.

- 오노상? 오노상! 어디 가는 거예요!

나의 조금 커진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내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고 입을 앙 다문 채, 발걸음만 옮기고 있었다.

 이 한밤중에 어디를 가려는 걸까. 어디를 간다고 일단 행선지를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오노상 손에 이끌려 가니 점점 그냥 불안해진다. 오노상의 붙잡힌 팔이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감각이 없이 아파온다. 팔이 아프다고 말하자, 잠깐 느슬게 내 팔을 잡더니 어느새 날 끌고 온 곳은 택시정류장.

대기하고 있던 택시의 문이 열리자 그대로 날 차안에 종이 구기듯이 거칠게 구겨서 시트에 나를 앉혀버리는 오노상.

여전히 내 팔을 풀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손으로 잡고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만해도 스태프들이랑 웃으며 술을 즐겁게 마시고 있던 사람이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나에게 말도 안하고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냐고요. 평소에 웃던 사람이 갑자기 아무말도 안하고 표정을 굳고 왠지 조금은 무서워지려고 한다. 한참을 그렇게 팔은 붙잡힌 채로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낯 익은 풍경이 보인다.

 내 앞으로 보이는 건 드로잉 북을 찾으려고 온 가게. 오노상은 가게 옆으로 나있는 작은 길로 들어가더니 자신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뒷문을 열었다.

 그제 서야 내 팔을 놓아주고는 가게 안의 스위치를 찾아 달칵 하고 스위치를 누르니 어둡던 가게 안이 밝아진다.

 오노상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자, 그는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내손을 잡아끌어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한 뒤, 가게 뒷문을 닫았다. 어리둥절해서 뒷문 앞에 서서 가게 안을 둘러보고 있자 그는 말없이 내 팔을 잡더니 주방 옆으로 나있는 문을 열더니 가게 이층으로 향하는 나무계단으로 올라갔다.

삐끄덕 삐끄덕 나무가 우는소리를 내며. 이층 방에는 오노상의 작업실인 듯 했다.

 여기저기 캔버스와 나무틀이 널려 있었으며, 커다란 책상에는 막 피규어 작업을 하다 말았는지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과 피규어 기본 머리형이 여럿 올려 져 있었다. 아크릴 물감도 짜놓은 오래됐는지 그대로 굳어버렸고. 직접 만든 느낌이 나는 나무선반 에는 오노상이 만든 피규어들이 차례로 진열이 되어있었고. 고물들로 작품을 하려는 모양인지 방 한구석에는 이상한 고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어렸을 때, 소풍가면 늘 하는 보물찾기를 하고 있는 그 기분으로 오노상의 작업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멋진 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갑자기 작업실이 가지고 싶어졌다.

작업실이야 항상 가지고 싶었다.

대학교 다니는 시절부터 쭉. 작업실을 만들 돈이 없어서 미술학원알바로 한푼 두푼 모아 겨우 마련한 작업실이 학교에서 가까운 반 지하 단칸방. 우리는 비가와도 눅눅해서 난방을 해야 했고,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고 장마 때는 습기 차서 곰팡이 냄새가 날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공간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다.

 왜냐 처음으로 생긴 우리들만의 공간이었으니까. 좀 더 내 앞가림을 할 수 있으면 이층집을 사서 이층은 꼭 작업실로 써야지 하고 환상의 환상을 만들었는데, 아직도 내 앞가림 못하고 부모님 신세를 지고 있으니 난 아직 어린애 인거다. 내 앞가림 못하는 어른.

오노상이 그림을 구경하고 나서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소파에 앉아 있는 오노상. 스케치북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다.

오노상 옆으로 가서 앉으니 하얀 스케치북에 담겨 있는 건 아까 이자카야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나.

그는 왜 아까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내 모습을 그리고 있었을까? 궁금증이 생겼지만 그냥 잠자코 그가 스케치를 해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 그냥... 센쨩이 아이들을 향해서 웃고 있는 모습이 좋았어. 그냥 좋았어.

  바보같이... 센쨩 훔쳐보고 있고. 나 최악이지?

그는 눈물 흘리고 있는 나의 모습을 스케치를 다 끝냈는지 콧잔등을 찡그리며 아 안 닮았어~ 하며 나에게 스케치북을 내민다.

 그가 내민 스케치 북안에는 앞치마를 입고 아이들에게 잘 가 라고 인사를 하는 모습. 내가 웃을 때면 들어가는 보조개 웃음.

언제 내가 잠든 것을 보았는지 잠든 모습. 커피를 마시는 모습.

이노카시라 온시공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던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의 스케치 하나하나에 예전부터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설마 했던 그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느껴진다.

- 센쨩은 티비에서든, 잡지에서든 나를 볼 수 있겠지만, 난 센쨩을 볼 수없어서 힘들..었어.

  센쨩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조근조근하던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그는 푹신한 소파뒷부분에 몸을 완전히 기대고는 눈을 감는다.

-  웃긴 얘기지만. 센쨩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느 날 센쨩의 목소리가 생각이 안 나는거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각이 안나... 나 정말 바본가 봐 흐흐..

   센쨩의 목소리가 생각이 안나니까 포기해버리고.. 그러면 얼굴을 떠올리자 라고 생각했어.

   센쨩의 얼굴에 안개가 낀 것 처럼 흐릿해져버려서 센쨩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어.

   스케치북에 있는 센쨩 그림 말야... 솔직히, 센쨩 얼굴이 생각이 안 나서 생각나는 대로 그렸더니..

   다 그리고 나니까, 센쨩이 안 닮은 거 있지? 너무나 속상했어........

   3주라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는데........나는 너무 길어......

   ..... 센쨩이 너무나 보고 싶었어.

그 말을 마치고는 내 어깨로 떨어진 오노상의 얼굴.

그의 독백에 직접적으로 그에 마음에 대해 듣지는 못했지만, 그 마음이 이렇게 잘 전해지는 스케치북을 보곤 마음이 따뜻해 졌다. 처음 오노 상에게 커피향이 스민 노란색 쪽지를 받은 날에 느꼈던 그 마음처럼. 내 어깨에 떨어진 오노상의 얼굴을 편하게 어깨에 받쳐주고는 작은 숨을 몰아쉬며 잠이든 오노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따뜻한 그의 마음이 열쇠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가시덤불속을 헤치며.

어디 있을까 하고 살펴보는 오노 상의 날카로운 눈빛.

그 열쇠를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쪽지만으로 오노상의 따뜻한 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겉모습으로 난 당신의 모습을 저울질 했었을까. 오노 상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작은 그림이 눈에 보인다.

얼마나 소중한 그림인지 액자까지 고이 끼워져 있었다.

자세히 안경너머로 살펴보니 4월에 요요기 공원에서 내가 그려준 그림이었다.

이걸 왜 오노 상이 가지고 있었을까.

한참을 생각해보니 요요기 공원에서 웃었던 그 웃음이 오노 상의 웃음이었던걸 알아버렸다.

똑딱똑딱 뚝- 시간의 조각이 하나 맞추어졌다.

오노 상과 내가 그때부터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노랗게 노을 진 그 풍경에 서서 오노 상이 나에게 아직도 모르는 구나. 라고 물었던 그 말의 의미를.

한참 그렇게 잠든 오노 상 옆에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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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오랜만에 찾아뵙는 썬입니다 ㅠㅠ

학기중에 연재를 해보려고 시도를 해보았으나.......과제의 압박으로 연재를 잠시 쉬고_

방학을 맞이해서 다시 연재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오랜만에 이츠유얼데이 7화를 가지고 와서 여러분들이 줄거리를 잊으셨으면 이츠유얼씨리즈를 다시 봐주시는 쎈스!

작고 소소한 댓글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오늘도 이츠유얼데이 7화 잘 부탁드립니다!(__)꾸벅.

[ima_koukai]

1화부터 달려왔네요 ^^ 조금씩 시작될 선아씨와 오노상의 이야기.. 일까요? ^^ 다음편도 기다릴게요-

[MANMANSE]

재밌게 잘봤어요^^

[reina.A]

벌써 이년전에 쓰신글을 이제서야ㅜㅜ 재밌게 잘 봤어요 다음 내용도 궁금해요ㅎㅎㅜㅜ 저렇게 맹어택이라고 해야할까 사토시의 꾸밈없고 계산없는 고백이 너무 좋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