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소설(輕小說) : '라이트노벨(Light Novel)'을 일컫는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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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을 뽑고,
이빨을 부러뜨리고,
목소리를 망가뜨려도.
승냥이는 양의 무리에 섞일 수 없는 것인가.
- 11쪽
약탈의 흔적은 곳곳에 있었다. ‘마왕’이 사는 성이니, 뭔가 대단한 게 있겠지 싶었을까. 마구(魔具. 마법을 부릴 수 있게 해 주는 도구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라든가, 전설의 검, 저주받은 술잔 같은 것? 그런 수상쩍은 것들을 집안(성 안 – 옮긴이)에 내버려 두고 살겠냐.
- 34쪽
명분. 그딴 거 없어도 사람은 죽고 폭력은 이루어지는데, 이상하게 인간들은 그 모든 일을 ‘저질러 놓고’ 뒤늦게 명분을 찾으려 애쓴다. (마치 – 옮긴이) 명분만 있으면 모든 잘못의 면죄부(다른 이름으로는 ‘벌을 면하게 해 주는 증서’라는 뜻인 ‘면벌부[免罰符]’. 여기서는 ‘책임이나 죄를 없애 주는 조치’를 빗댄 말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옮긴이)를 얻을 것처럼.
- 37쪽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미안하냐 물으면, 사실 잘 모르겠다. 그저 헤어지는 인간들은 누구라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게 아닐까 싶다.
- 49쪽
하여튼 귀족들의 감정싸움은 구질구질해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단 말이지.
- 53쪽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에 맡긴다면, 그냥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네요.”
- 56쪽
애초에 대부분의 인간은 망가뜨리고, 더럽히고, 실수하고, 울고, 싸우고, 상처 입고, 상처 입히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 69쪽
“나는 술친구라도 이 나라를 존속시키는 데 필요한 ‘아랫돌’로 쓸 수 있다면 얼마든 쓸 수 있습니다.”
“그렇게 죄다 아랫돌로 끌어 써서 번듯하게 성을 짓고 나면, 거기엔 누가 사는데? 왕족들? 귀족들?”
“백성들이 살겠죠. 국가를 지키는 것이 곧 백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저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성이 무너지면 백성도 없어요. 흩어지는 개인만 있을 뿐이지.”
- 70쪽
다들 조금씩 손해를 감수하면서 좀 더 나은 이야기의 결말을 추구한다. 안타깝게도 세계에는 완벽한 가해자도, 흠 없는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가해자는 누군가에겐 피해자이고, 나 역시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였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 71쪽
세상일이라는 게, 내가 좋은 것만 손에 넣으면서 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 71쪽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언제나 약자인걸.”
- 73쪽
“사람은 그렇게 쉽게 성장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달까.”
- 81쪽
“인간에게 마법이라는 힘이 꼭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지.”
“갑자기 마법은 왜?”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결국 무너진 걸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마법과는 일절(一切. 결코 – 옮긴이) 상관없는 평범한 인간들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 85쪽
그런 거겠지. 이 가게의 주인 같은. 돌 더미 위를 뛰어다니던 아이들 같은. 그 아이들을 내쫓던 노파 같은. 그런 힘이나 권력이나 전혀(조금도 – 옮긴이) 알지 못한 채 자신의 하루살이가 급하고, 눈앞의 타인을 배려하는 것으로 급급한 인간들이 망가진 세계를 다시 보듬어 끌고 가는 거겠지.
- 85쪽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그렇게 되었다.’ 싶을 만큼, 우리는 꽤 여러 날들을 지나왔다.
- 86쪽
헛소문이 부풀려지고 퍼져 나가는 것은 실로 간단한 일이다.
- 103쪽
머리 색이 달라서, 눈동자의 색이 달라서, 언어가 달라서, 생김이 달라서, 사는 곳이 달라서, 너무 멍청해서, 혹은 너무 똑똑해서, 남들보다 예뻐서, 남들보다 못생겨서. - 인간은 어떻게든 ‘표적’을 삼을 존재를 골라 광장 한가운데 세우기 좋아하는 종족들이니까.
- 103쪽
한쪽이 너무 압도적으로 강한 싸움은 관객들에게 큰 감동과 재미를 주지 못한다.
- 149쪽
“인간은 금방 변절해. 타락하는 건 순식간이야.”
- 154쪽
대부분의 귀족들은 그녀(소설 속의 악역인, ‘벨라루스 모르사바’ 공작 – 옮긴이)에게 호의적이었다. 아니, 호의적이라기보다, 누가 왕권을 쥐든 그다지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그들은 – 옮긴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면 지나가는 개를 (왕좌에 – 옮긴이) 앉혀도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그런 의미에서 공작은 눈치가 빨랐고, 그들이 원하는(바라는 – 옮긴이) 걸 손쉽게 손에 쥐어 주었으며, 그런고로 귀족들에게 공작의 행동은 제법 수지가 맞았다. 그 결과, 쥐어짜 내어지는 것이 백성들이라는 걸 모를 리가 없는데도.
- 165쪽
어쩌겠는가. 원래 이기적인 인간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 이치인 것을.
- 170쪽
“극(연극 – 옮긴이)은 인간이 만들어 낸 닫힌 세계랍니다. 버려지는 대사, 버려지는 행동, 버려지는 소품이 있어서는 안 되어요.”
- 188쪽
“인간의 어떤 사소한 행위도, 언젠가는 어떤 결과의 원인이 되어요.”
- 188쪽
“전쟁은 안 하는 게 제일 좋은 거지, 안 그래? 근데 이 전쟁이라는 게 말이야, 나쁜 줄 알면서도 희한하게 안 없어진단 말이지?”
- 197쪽
나(소설의 남주인공인 ‘마왕’ - 옮긴이)는 악마가 얼마나 유약하고 아름답고 멋진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어.
- 223쪽
진실의 상자를 비틀어 열었다. 상자를 품고 있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이 희망이 아닌 온갖 추악하고 비루한 감정의 썩은 찌꺼기뿐이라 해도.
- 225쪽
‘모두가 행복한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 건, 동화 속에도 없어.
백설 공주를 살려 주었던 사냥꾼이 어떤 벌을 받았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아. 신데렐라의 두 언니는 허영과 부도덕을 이유로 눈이 뽑히고 발뒤꿈치가 잘려 나가. 평화롭게 살고 있던 하늘 위의 거인은 잭이라는 불법 침입자에게 강도당한 데다 목숨까지 잃게 돼. 배가 고파서 할머니를 잡아먹은 늑대는 악하지만, 늑대의 배를 가르는 사냥꾼은 정의롭다고 말해. 웃지 않는 공주님을 웃게 해 주기 위해 도전했다가 목이 떨어진 수십의 인간들에 대한 애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지.
하지만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때문에 ‘모두 행복하게 살게 되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 247쪽
“하여간 이상한 공주님이야? 머리에 관이나 쓰고 높은 데 앉아 구경이나 하고 있을 것이지, 이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 왜 나와 사서 고생이지?”
“돈에 움직이는 당신이, 나라를 지키려는 사람의 간절함을 어떻게 알겠어!”
- 255쪽
인간은, 인간인지라, 약육강식의 논리만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 268쪽
삶이란 왜 이리도 버겁고 괴로운 일일까.
- 271쪽
― 이상 『 은둔마왕과 검(劍)의 공주 6 』 (‘비에이’ 지음, ‘Lpip’ 그림, ‘(주) 디앤씨미디어[시드노벨]’ 펴냄, 서기 2017년)에서 퍼옴
- 단기 4357년 음력 1월 23일에, 잉걸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