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철 화백
사례1 40대 초반 직장인 A씨는 매주 월요일이면 10분 일찍 출근길에 나선다. 회사 근처 ‘로또 명당’에 들리기 위해서다.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지켜온 소소하고 소중한 루틴이다. 좋은 꿈을 꾼 날은 수동, 그 외에는 늘 자동 5000원이다. 지금까지 최고 당첨금액은 5만원(4등). 1등에 당첨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낙첨돼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로또 1등만 되면 내일 당장…’이라는 생각 덕에 한 주를 버텼으니까.
사례2 30대 후반 자영업자 B씨는 항상 지갑이 두둑하다. 지갑을 가득 채운 것은 지폐도 카드도 아닌 로또다. 직업 특성상 외근이 잦은 그는 ‘로또 명당 지도’를 들고 다니며 보일 때마다 로또를 사들인다. 그렇게 매주 몇 만원씩을 로또 사는 데 쓰고 있다. 그 역시 지금까지 최고 당첨금액은 5만원. 낙첨 후 늘 실망감, 분노가 밀려오지만, 한 번은 될 거라고, 돼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시 명당을 찾는다. 그에게 로또는 빚더미에서 자신을 구해줄 유일한 구세주니까.
◇‘로또만 되면…’ 기대 심리 반영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로또를 산다. A씨처럼 재미삼아, 한 주를 버티는 즐거움을 위해 로또를 사는가 하면, B씨처럼 로또 당첨에 사활을 거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좋은 꿈을 꿔서, 혹자는 그냥 궁금해서 사보기도 한다.
사연이 어찌됐든 로또를 사는 마음은 비슷하다. 다양한 기대감이다. 노력하지 않고 손쉽게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 그렇게 부자가 돼서 사고 싶은 것을 사고(강남 지역 아파트는 사기 어렵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있다는 기대감 등이다. 특히 로또는 투자 시간·비용 대비 보상이 매우 크다는 점,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인 ‘일확천금’의 수단으로 다가온다.
로또에는 현실도피 심리 또한 담겨 있다. 이 역시 다른 의미에서는 기대감이다. 당첨 후 펼쳐질 현실과 정반대 삶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또 판매액이 나라 경기(景氣)를 반영한다는 말도 나온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현실이 나아지지 않다보면 사람들은 점점 더 운에 기댄다. 참고로 지난해 국내 로또 판매액은 전년 대비 3000억원가량 증가한 5조4468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기획재정부 ‘복권 인식도 조사’). 복권 전체로 범위를 넓혀보면 코로나19가 확산된 2020년에 처음 5조원을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6조4292억원에 달했다. 마찬가지로 역대 최고치다.
◇로또는 ‘운’… 지나친 기대, 의존·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어
로또 당첨을 기대하는 마음은 같지만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기대하는 정도가 심해지면 그 때부터 문제가 된다. 당첨 확률은 누구나 희박하지만 자신만은 꼭 당첨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로또에 근거 없는 규칙성을 부여해 과도하게 낙관하기도 한다. 10만원씩 100번을 샀으니 이번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거나, 같은 번호로 수백번을 사면 한 번은 당첨된다고 믿는 식이다. 그러나 로또는 운이다. 지나친 기대와 낙관은 로또에 지출되는 비용만 늘릴 뿐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너무 큰 기대를 갖다보면 긍정적으로만 생각이 매몰될 수 있다”며 “도박할 때 ‘한 번은 따겠지’ 생각하는 것처럼 실제로는 확률이 매우 낮은 일임에도 사다보면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착각한다”고 말했다.
당첨에 대한 기대는 의존도와도 비례한다. 기대할수록 의존하게 되고, 의존할수록 기대하게 된다. 지나치게 기대·의존하면 일확천금의 유혹에 빠져 노력하길 포기할 수도 있다. 낙첨됐을 때 느끼는 실망감, 분노, 좌절감 역시 클 수밖에 없다. 중독까진 아니어도, 심한 기대·의존에서 오는 일종의 부작용인 셈이다. 단국대 심리학과 임명호 교수는 “로또에 중독된다고 보긴 어렵지만, ‘내성’과 ‘금단’ 측면에서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며 “로또를 사지 못했을 때 불안하고 짜증난다면 금단 증상이 있는 것이고, 점점 구매 주기가 짧아지고 구매 금액이 늘어난다면 내성이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소소한 재미로 해야… ‘한탕주의’는 금물
로또를 매주 사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재미 삼아, 상상하는 즐거움을 위해 매주 구매하는 로또에는 오히려 긍정적인 면들이 더 많다. 5000원으로 일주일을 보내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로또 한 장은 꽤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 좋은 소비일 수도 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성준 교수는 “재미삼아 구매하는 로또에는 여러 순기능이 있다”며 “그동안 소비하지 못했던 것을 소비하는 등 때 행복한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잠시나마 재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과도한 기대나 의존은 경계해야 한다. 특히 ‘로또 한 방’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한탕주의는 위험하다. 매주 무리해서 로또를 많이 사거나 낙첨됐을 때 심한 좌절감, 분노를 느낀다면 지나치게 몰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노력 없이 운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성준 교수는 “여지저기 돌아다니며 로또를 산다거나 낙첨 후 짜증을 내는 등 집착하고 과몰입해선 안 된다”며 “소소한 재미로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종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