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트랑과 달랏 여행(1)
2023년 1월 31일(화)
- 프롤로그
이른 아침 카페 ‘시월(詩月)’ 문을 열자 향긋한 꽃 향이 진동한다. 세상에! 망울졌던 행운목이 꽃을 활짝 피웠다. 우리가 문 닫고 있는 사이, 여행 떠난 사이, 집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사이, 행운목은 커피 향 대신 꽃 향을 카페 내부 구석구석 퍼뜨린 것이다. 엿새간이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추억이 될, 즐거움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베트남 나트랑과 달랏 여행은 낯선 공간이 주는 행복이 이어진 시간이었다. 이국어를 들으며 보낸 4박 6일이라는 시간을 되새김질하는 며칠간은 행운목 꽃 향처럼, 여행 향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나를 취하게 할 것이다.
여행은 맘을 설레게 한다. 어린 시절에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가까운 곳을 찾든 먼 곳을 찾든 ‘여행’이란 글자가 들어가면 몇 시간 전이 아니라 며칠 전부터 맘이 들뜨고, 어떤 때는 몇 달 전부터 설랬다. 여행을 생각하면서 여는 하루는 산소가 가득한 맑은 공기를 마시는, 상쾌한 공간에 무임승차하는 날이다.
삼십 년은 안 되었을 것이다. 공직에 몸 담았던 아버지는 직장 은퇴와 함께 성지순례로 이스라엘을 가기로 했다. 당시 아버지는 당뇨가 심했다. 인슐린 주사를 아침저녁으로 맞아야만 했다. 그것으로 인해 이스라엘 여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미루고 미루었던 성지순례였는데 그렇게 된 것이다. 아마 그것은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이 들어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먼 곳을 갔다 와야 한다는 막연한 강박관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동료들보다 여러 번 해외를 다녀온 바탕에는 그런 과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최근 다녀온 곳은 2020년 1월 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 나미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이후 코로나란 팬데믹으로 세계로 열린 문은 닫혀 있었다. 20일간 아프리카 여행에서 되돌아오는 비행기에서였다.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미확인 바이러스로 사람이 죽어간다는 뉴스는 이쪽저쪽에서 들렸다. 케냐에서 인천공항으로 오는 비행기에는 중국인도 여러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은 기침을 계속 했다. 맘이 불안한 귀국이었다.
이후 직장 은퇴와 함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중미 여행을 접어야 했다. 2020년, 2021년, 2022년은 특별한 일이 있어도 사람들은 해외여행을 삼가는 경우가 많았다. 코르나 팬데믹이라는 막힌 창문 안에서 국내여행도 자유롭지 못한 생활이었다. 어둔 터널 안쪽으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란 말과 함께 밝은 빛이 머문 세상이 오길 기대했다. 2022년 여름부터 떠나기 시작한 해외여행은 카타르 월트컵을 정점으로 세계 곳곳의 풍경을 SNS로 럭비공 튀기듯 전송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 대열에 낀 것이다. 나와 아내와 딸은 오랜 전부터 매달 20만원씩 적금을 들었다. 해외여행을 위한 적금이었다. 그 덕에 세 명은 태국 방콕도, 중국 북경도 자유여행으로 다녀왔다. 오래 전 이미 찾았었던 도시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도시는 과거 풍경과는 많이 변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딸은 찾은 도시의 이름난 맛 집을 소개하며 나와 아내를 데리고 갔다. 으레 그런 곳은 한국의 맛집처럼 사람이 길게 줄 서 있었다. 방콕의 똠양꿍 맛집이라든지, 북경의 북경오리 원조집은 그 도시의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것이 2년 동안 발이 묶인 것이다. 이미 3개월 전 저가 항공으로 갈 수 있는 몇 군데를 딸이 검색하며 이야기할 때 나는 베트남 나트랑을 꼭 집어 이야기했다. 나트랑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면서 그곳에서 달랏을 당일치기로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추진하게 된 여행지가 베트남 나트랑이었다. 일정은 4박 6일이었다. 더욱이 며느리와 손주 둘이 함께 하는 여행이라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