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성탄절
누가복음2:8-14
오래전에 미국 동부에 있는 어느 도시에서 성탄절을 앞두고 시청 앞 광장에 성탄절 장식을 하였습니다.
작고 초라한 마구간을 만들고 그 안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와 요셉,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 그리고 동방박사들을 그대로 재현해놓았습니다.
이 장식을 중심으로 성탄절 행사도 계획해 놓았는데 어느 날 아기 예수가 없어졌습니다.
장난삼아 한 사람이 갖고 간 것인데 당황한 것은 시 당국이었습니다.
아기 예수가 없어졌으니 성탄절 행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방송을 들은 사람이 아기 예수를 갖다 놓음으로서 무사히 성탄절 행사를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아무리 다채로운 행사가 준비되어 있더라고 성탄의 주인공인 예수님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성탄의 중심인 아기 예수가 있어야 성탄절을 의미 있게, 올바르게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탄을 잘 맞이하고 있습니까?
마리아는 아기예수를 잉태한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이 사건의 의미와 뜻과 내용을 잘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을 받아들입니다.
“주여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을 때 마리아는 만세에 복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탄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도 성탄절에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모셔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어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분으로 생각한다면 성탄의 축복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모시는 자만이 성탄의 귀한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땅의 구세주로 오신 아기 예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만삭된 마리아와 요셉을 마구간으로 보낸 사람들입니다.
아이를 낳든 어디서 낳든 나하고는 상관없다.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무관심으로 보냈던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아기 예수님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사람들은 밖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천사가 전해주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듣고 베들레헴까지 달려가 아기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바라기는 이번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기 예수님과 상관없는 무의미한 성탄절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아기 예수님을 맞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1.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을 만나 말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마리아에게 가서는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31)
사도 요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아기 예수님에게 있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탄생하셨다는 이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없습니다.
철학자 키엘케고르는 영광의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진리를 어느 농촌 소녀와 사랑에 빠진 왕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나간 젊은 왕이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한 소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전혀 꾸밈이 없는 순수한 모습으로 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해 보였습니다.
그녀는 공식적인 교육을 받은 일도 없고 누더기 같은 옷을 걸치고 농촌의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왕은 한 순간 사랑의 포로가 되어 헤어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소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왕의 신분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자문관들은 명령을 내려 그녀를 왕비로 삼으시라고 건의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강요된 순종으로 얻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 수가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떤 참모는 그러면 그 소녀의 지위를 먼저 격상시켜 벼슬을 내리고 선물을 하사하셔서 공주들이 입는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다음 그녀를 궁중으로 데려 오라 건의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녀가 지위와 보석 때문에 왕에게 시집을 오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마침내 중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왕은 잠시 왕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농부가 되어 그가 사랑하는 소녀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서 농부로 살며 그녀가 입고 있는 동일한 누더기를 입고 동일한 음식을 먹고 동일한 오두막집에서 살아가며 그녀의 사랑을 얻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왕은 마침내 서로를 사랑하여 행복한 결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랑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사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에 우리는 이런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야 합니다.
이미 영접한 성도들은 이 구원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깨닫고 진심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이 구원자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것이 성탄절을 가장 잘 맞이하는 일입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본래 하나님이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비천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제가 가끔 이 일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정신과 생각과 지능을 갖고 돼지가 되어 돼지와 함께 살아가는 말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만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정말 어떠한 말로도 설명이 될 수 없습니다.
거기다가 이 땅에 오신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아무런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을 빼놓고는 어떤 말로도 설명이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 중에서도 최고의 사랑, 가장 고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잭 켈리라는 한 신문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다가 겪은 체험담이 있습니다.
기자 일행이 수도 모가디슈에 있을 때는 기근이 극심하였습니다.
기자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 그 기자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온몸이 벌레에 물려 있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불룩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피부는 한 백 살이나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일행 중의 한 사진기자가 사과를 하나 갖고 있어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너무 허약해서 그것을 들고 있을 힘이 없었습니다.
기자는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눈짓을 하더니 마을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기자 일행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의식하지도 못했습니다.
소년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한 작은 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형은 자신의 동생 곁에 무릎을 꿇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서는 그것을 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의 입을 벌리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생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도록 도와줍니다.
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자기 동생을 위해 보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온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결국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었지만 소년의 동생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그 소년의 죽음이 그 동생을 살렸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신 사건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받아들이고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성탄절을 가장 잘 맞이하는 또 하나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하게 실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은 자녀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신 곳은 베들레헴 마구간이었습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는 말구유에 뉘어졌습니다.
이 상황을 성경은 호적하러 올라온 사람들이 많아 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악하고 정이 없고 이기적인 존재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아울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얼마나 낮아지시고 겸손해지셨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도 낮아지심입니다.
인간으로 오시면서 비천한 마리아와 요셉에 가정에 오신 것도 낮아지심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말구유에 누우신 것도 낮아지심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는 늠름한 말을 타시지 않고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낮아지심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상징하는 것은 구유, 어린 나귀, 십자가입니다.
이런 낮아지심이 우리를 구원하셨고 이런 겸손이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의미 있게 맞아들인다는 것은 주님의 모습대로 우리도 낮아지는 것입니다.
낮아질 때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사회는 평화가 이루어지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194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독일과 벨기에 국경 부근의 오두막집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이 오두막집에는 한 엄마와 아이가 치열한 전투를 피해 지내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이브에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립니다.
문을 열어보니 문밖에는 부상자를 데리고 길을 잃고 헤매던 두 명의 미군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미군을 숨겨놓았다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죽게 될 것을 알면서도 미군을 집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아들을 시켜 군인들이 발을 녹일 수 있도록 해주라고 말하고, 자기는 수탉 한 마리를 잡아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두 번째 노크 소리가 울렸습니다.
문을 열자, 문 밖에는 독일 병사 넷이 서 있었습니다.
자기가 미군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죽게 될수도 있다고 생각한 엄마는 그러나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 인사를 합니다.
독일군들도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합니다.(물론 독일어로 했습니다.)
독일 군인들은 자신들이 길을 잃고 오두막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들어가 쉬게 해달라고 합니다.
아이의 엄마는 엄숙한 음성을 지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지금 다른 손님 셋이 계신데 아마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소"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에요. 이곳에서 총질을 하면 안돼요"하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안에 누가 있습니까? "미군이요!"
아이의 엄마는 이어서 "여러분은 내 아들 같고 안에 있는 사람들 역시 그래요.
부상을 입은 소년 하나가 죽음과 싸우고 있고, 그의 두 친구도 여러분처럼 길을 잃고 배고파 지쳐 있어요.
오늘 밤만은..... 이 크리스마스이브만은 사람을 죽이는 일을 잊읍시다."
독일군 하사는 잠시 멍하게 있었고 아이의 엄마는 그 순간 그들의 무기를 장작더미에 올려놓게 하고 들어오게 했습니다.
이어 아이의 엄마는 미군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역시 총을 빼앗아 장작더미에 올려놓았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군인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의자를 준비했고 먹을 것을 계속해서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밤새워 서로 먹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군인들은 서로에게 있던 포도주와 빵 덩어리를 꺼내었고 함께 마시고 먹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적의가 가득 차 살얼음판 같았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독일 하사가 미국 병사에게 지도를 보이더니, 독일군이 있는 곳을 피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서로 적군일 수밖에 없던 독일군과 미군이 화해를 한 것입니다.
독일군과 미군은 악수를 나누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서 지기들이 가야 할 길로 갔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서로 죽여야만 살 수 있었던 미군과 독일군이 서로 죽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길을 찾았던 것처럼,
아기 예수의 탄생은 도저히 화해를 이룰 수 없는 관계까지도 화해케 하여 생명을 얻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낮아지시고 겸손하신 아기 예수님을 맞아들이면 우리도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화해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를 지내면서, 서로 갈등 관계가 된 형제자매가 있습니까?
이웃과 불화가 있었습니까?
성도들 간에 사소한 일로 갈등이 깊어지지는 않았습니까?
혹은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케 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버리기까지 하셨던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넘지 못할 담이 없습니다.
이번 성탄절은 우리 서로가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있는 담을 헐고 용납하고 화해하는 시간이 될 때 성탄의 의미와 뜻을 이루어 드리는 복된 성탄절이 될 줄 믿습니다.
(2022.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