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5월 12일에 우리 모교 총동창회 산행팀에서 간 곳이 충북 괴산군이다.
이전에도 한 두 번 간 곳이라 지세와 풍광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는 편이나
갈 때마다 괴산군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이기붕이다.
사람들은 훌륭한 인물을 거론하기 좋아하고
부정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거의 본능적으로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훌륭한 인물이 어디 있으랴. 역사에 부정적인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라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적으로 공감할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주지하는 대로 이기붕은 이승만의 종신집권을 획책하다가 4. 19라는 미증유의
국민적인 저항을 받아 일가족 자살로 마감한 인물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57년이었으며 60년 초까지 이승만의 치세였고
3학년 때 이승만을 찬양하는 노래를 배웠고, 그때 집집이 붙인 한 장 짜리 달력의
상 면 좌우엔 이승만과 이기붕의 사진이 나란히 나와 있었다.
3학년 때인가 어느날 저녁엔 학교 운동장에 가설극장을 알리는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그때 영화를 하기 전에 이기붕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왔는 데
그건 이전에 우리 집에 굴러다니던 [만송 이기붕]을 그대로 읽어주고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나는 이기붕이 매우 훌륭한 인물인 줄 알았다.
어릴 때의 독서는 확실히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
그 책에 이기붕은 속리산 아래 괴산군의 가난한 농촌에서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 여러
형제의 맏아들로 태어나 성장하였다고 나와 있다.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 소재라고 나오는 데 나는 그 책 때문에 오랫동안 괴산군 속리산으로
잘못 알았다. 어쨌든 괴산군에서 태어나 자란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 추수가 끝난 어느날 어머니가 아들에게 돈 얼마를 주며 너가 먹고 싶은 것을 사먹어도
좋다고 하자 이기붕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등어 한 손을 사서 들고 들어온다.
어머니가 이유를 묻자 식구대로 다 같이 먹을 수 있는 고등어가 좋을 것 같아
그걸 사왔다고 하였다. -
내가 그 대목을 어느날 저녁 먹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이야기하였더니 아버지께서는
"큰 인물은 어릴 때부터 소견이 남다르다."하셨다.
호수 가를 도는 그 산행길에서 친구 B는 또 민비니 민비 시해에 앞장선 우범선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기붕의 증조부는 임오군란을 위요하여 대원군 아래에서 예조판서를 지냈는 데,
민비가 도망간 것을 계기로 치마를 묻으며 국장을 선포하고 주도한 혐의로
민비가 다시 돌아왔을 때 처형되었다고 한다.
"대원군이 그렇게 하자고 해도 시신도 없는 이런 국장은 안됩니다라고 주청을
드려도 오히려 문제가 남을 터인데 하물며 대신으로서 그런 일에 대원군을 충동질하고
앞장서다니..."
효령대군 후손으로 누대 고관대작을 지낸 그의 가계가 일시에 몰락한 계기가 그것이었다.
이기붕은 1896년에 출생하여 4. 19가 나던 1960년 4월 28일 경무대 내에서 아들 이강석이
쏜 총에 의해 생을 끝냈다.
그때 민중들이 몰려가 이기붕의 사저를 털자 4월인데도 수박이 나왔다고 하였다.
오늘날엔 한겨울에 수박을 누가 먹었대도 별로 이상할 일이 아니나 60년대만 해도
4월에 수박을 구경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혹은 그런 이야기도 있다. 이기붕에게는 고명 딸이 있었는 데 병으로 열 일곱 인가의 나이에
죽었다. 이기붕과 박마리아가 너무도 슬퍼하여 유리관을 하여 안치하고 보고 싶으면 늘 가서
볼 수 있는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였고, 이화여고에 다니던 때 가난한 아이들 수 십명에게 학비를
대어주어, 장례식 때엔 그 아이들이 울면서 장례행렬을 뒤따라 갔다고 하였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괴산군.
괴산군을 안내하는 내용 한 곳에 이기붕 생가터 정도라도 소개 되어 있다면
좋았으리라 싶었다.
반면교사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역사에 아주 박식하여 내 옆에서 쉼 없이 이야기해주던 B씨에게 이기붕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는 지나치게 '착한' 인물이라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상상이 되어 그만두었다.
이기붕이 보고 자랐을 하늘과 산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그 하늘과 그 산일텐데
변해가는 것은 오직 인간사라는 무상감에 잠시 잠겨 본 시간이었다.
첫댓글 가까이 있으면 화원들끼리 산행도 하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할 수있을 텐데 아쉬워요 ^^
그러게 말입니다. 우선 여기 카페에서라도 자주 만납시다. 한문공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그러다보면 길이 있겠지요.대망님이 충청도분이시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