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두번째 부인이십니다. ( 첫 부인은 김호남 여사 입니다. )
글구 육영수 여사는 1925년 11월생이며, 충북 옥천 태생이고
옥천의 대지주 육종관(陸種寬) 옹과 정실부인 이경령 여사의 4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으며,
고향에서 죽향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뒤이어 서울 배화여고를 졸업했습니다.
육영수씨는 한말 당시 중등교육까지 받은 신여성 치고는 참말 생활력도 강했다고 합니다.
38세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영부인의 지위에 오르셨습니다.
영부인이라는 높은지위에 있으시면서도 전혀 사치를 하지않으셨고, 생전에 한복을 자주 즐겨 입으셨으나 꼭 국산 원단만을 사용하여 한복을 즐겨 입으셨습니다.
종이한장, 노끈하나 그대로 버리시는 일이없이 모두 재사용 하셨습니다.
생전에 우아한 기품을 자랑하는 목련꽃, 화사한 장미꽃, 박정희대통령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청와대 안의 제1야당이라고 불리셨습니다.
그분은 생전에 어린이들 ,독고노인을 끔찍히 아끼셨으며 나병환자의 손을 꺼리낌없이 잡아준 유일한 영부인, 가뭄으로 시달리던 도시에 비가내리자 대통령과 밖으로 나가 비를 맞으며 기뻐하셨을만큼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그외에 어린이 대공원과 어린이회관 준공, 지금은 없어진 서울대학교 기숙사인 정영사 건립등의 수많은 사회사업을 벌이셨습니다.
자녀로는 근혜, 서영(근영), 지만 1남2녀를 두셨습니다.
육영수 여인은~ 광복이래 한국의 역대 대통령 부인으로서는 '국모'로 추앙받았던 유일한 여성이져.
1974년 8월15일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있었던 제 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교포 청년 문세광( 당시 23세 ) 이 쏜 총탄에 맞아 49세를 일기로 서거 (사망) 하셨습니다.
이때 온국민들은 국모 ( 나라의 어머니, 조선시대의 중전 )가 돌아가셨다며 슬퍼했으며
장례는 국민장( 국민의 이름으로 치르는 장례식, 국가에서 주관하는 장례로 국장 다음으로 격이 높은 장례식 ) 으로 5일간 치뤄졌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영원한 벗을 잃은 슬픔을간직하고 살다가 그로부터 5년후
1979년 10월 26일 ( 10.26사태 )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을 맞아 서거하셨습니다.
故박정희 대통령의 장례는 현직대통령의 임기를 유지한 상태로 서가하여
대한민국 건국후 최초의 국장 ( 나라의 이름으로 치르는 장례식, 나라에서 주관하는 격이 가장높은 장례식 ) 으로 9일간 치뤄졌습니다.
육영수 여사는 검소하고 소박하여 사치를 일삼은 전두환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 여사와
자주 비교가 되시곤 합니다.
육영수여사는 비극적 죽음이후에도 현재까지도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대통령 예비후보 부인들이 가장 닮고싶어하는 영부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첫댓글 대부분 박정희에 대해선 평가가 호불호 of 호불호가 갈리는편인데
육영수 여사는 평가가 대부분 좋은편이죠 ㅋㅋ
어느날 육여사가 시골 국민학교를 방문했는데
교문 앞에 도열해 있던 한 학생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자 그 학생은 "우리 교장 선생님께서는 새마을 운동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라고 외쳤는데
. 얼굴이 살짝 굳어진 육여사는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청와대 비서관에게
"사전에 애들한테 어떻게 시켰길래 이러느냐"라고 혀를 차면서도 다시
그 학생에게는 "나중에 교장 선생님께 말씀 잘 들었다고 전해줘요"라고 상냥하게 답했다고 한 일화가 있네여
우와ㅠㅠㅠ
존경스럽다ㅏ
이게무슩틋이에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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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땐 박근혜가 개구쟁이였데요. 그런데 육영수 여사가 잘 길들이시고, 박근혜도 어머니가 룰모델이래요... 그런 소중한 어머니 핏빛한복을 빨아야했으니ㄷㄷ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 저도 어린이 회관 나왔었는데 그때부터 육영수여사님 엄청 좋아했어요 ㅋㅋ
문둔병환자들 안아주고 손잡아주고도햇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