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시리즈 4강>
교회란 무엇인가?
여러분, 교회는 무엇입니까? 바꾸어 말해서 교회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교회는 우리가 흔히 보는 것 같이 대한예수교장로회, 침례교회, 감리교회, 천주교회 등의 가시적 집단을 이르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라고 합니다. 하나의 교회란 뜻이지요. ‘장로’라는 말이 성경에 있으나 ‘장로교회’라는 말은 없지요. ‘침례’라는 말은 있어도 ‘침례교회’는 없어요. ‘감독’이라는 말도 성경에 있으나 감독 교회는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회만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것, 그리스도께 소유된 자들의 교회입니다. 그들만 교회에요
(마태복음 16장)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를 어디에 세운다고 합니까? 베드로가 아닌 베드로의 고백 그 믿음 위에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십니다. 교회는 인간의 손을 떠나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세울 수 없고 사람이 개혁할 수도 없고 또 타락시킬 수도 없는 교회입니다. 그래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인간의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사람의 이름으로 모이거나 교회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도 교회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를 개척한다, 세운다, 개혁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요즈음은 심지어 교회를 사고팔기도 하고 장사가 안 되서 문을 닫는 곳도 있는데 그런 교회는 처음부터 교회가 아닌 겁니다.
요즈음 교회를 개혁하겠다고 건강한 교회 만들기 하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어봅시다. 건강한 교회가 있고 덜 건강한 교회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교회의 민주화? 돈을 밝히지 않는 교회? 착한 목사 장로가 있는 교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교회, 그리스도가 머리이신 교회가 어떻게 병이 들고 타락을 할 수 있습니까? 머리가 주님이신데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드리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는 없어요. 사람을 위한 교회도 인간 구원을 위한 교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피로 산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들을 에클레시아 교회라고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교회는 본의 아니게 세상에서 세상 밖으로 불려나왔다는 의미에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는 여성 명사입니다. 하나님의 신부로 불려나온 거룩하고 흠이 없는 순결한 신부들이에요.
실감나십니까? 혹시 나는 흠도 많고 깨끗하지 못한 죄인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맞습니다. 그건 여러분이 여러분을 볼 때에 그런 것이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보시는 시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여러분이 있기도 전에, 어떤 행위를 하기도 전에, 영원 전에 이미 아들의 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교회입니다.
(에베소서 1장)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떻습니까? 우리가 있기 전에, 영원 전에 그의 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모두가 완료형이에요.
그럼 우리가 인생을 똑바로 살고 착하게 살고 예수 잘 믿어서 거룩한 교회가 된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는 이것부터 알고 교회를 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란 이미 하나님 안에서 교회가 된 자들만 교회입니다. 자기가 교회 되고 싶어서 교회 되는 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한 사람도 더하거나 뺄 수가 없는 교회입니다. 이미 영원 전에 확정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타락을 하고 다시는 예수를 안 믿겠다고 교회를 뛰쳐 나가도 그 사람은 교회일 수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결국 그 사람을 교회에 합당한 자로 새롭게 창조해내신단 말이에요. 결국 누가 이기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이기시지요. 그래서 성도의 인생은 다들 성공한 인생이에요. 모든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에 실패이지만 성도는 하나님이 성공하신 그리스도가 사신 인생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이 교회예요.
그럼 그 하나님의 신부들, 하나님의 자녀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들어간 어린양의 신부들은 무엇을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어떻게 그런 자격을 갖추었습니까? 교회의 조건이나 자격이 뭘까요?
여기에 관한 말씀이 마태복음에 있습니다. 천국에 관한 비유, 다른 말로 혼인잔치에 관한 비유입니다. 같은 비유가 누가복음에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상하지 않습니까? 임금이 잔치 준비를 하고 나서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돌아보지도 않고 다 자기 일을 하러 갔어요. 그래서 임금이 살인한 자들을 진멸해버렸다고 합니다. 왜 다들 임금의 혼인잔치에 가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들이 원하는 천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아무 값없이, 나의 공로나 노력 없이 오직 은혜로만 얻습니다. 그런데 이게 싫은 거예요. 세상 종교인들이 복음을 싫어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내 구원에 나의 땀 한 방울이라도 들어가야 내 것이 되잖아요. 그런데 복음은 우리의 어떤 노력과 수고와 공로와 열심과 충성으로도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고 교회에 충성해도 구원이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이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에도 이 예를 든 적이 있습니다. 동네 커피숍에서 아줌마들이 하는 얘기였어요. 야들아, 교회는 아무리 착한 사람도 천당 못 간다 카더라.. 에이 그런 게 어딨노 천당은 착한 사람들이 가는 거지 난 그런 교회 안 간다.. 이게 세상 정신이에요.
여러분, 천국은 착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럼 누가 갑니까?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9 네거리 길에 서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받은 자는 적으니라
아니 이 본문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무나 데리고 오라고 해놓고는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손발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 데에 내어던지라고 하잖아요. 임금님의 횡포입니까? 갑질이에요?
아까 이 비유는 천국에 관한 비유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임금이 준비하신 예복을 입으면 들어갈 수 있어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의 혼인잔치에는 예복을 입어야 참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복은 반드시 혼인잔치의 주인이 준비를 하는데, 이 예복을 입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명품이라도 자기가 준비한 옷을 입고는 갈 수가 없습니다. 본문은 지금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천국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예복을 입은 자들을 칭합니다. 교회의 자격은 이것 하나예요. 그런데 여전히 자기 옷을 고집하면서 구원받았다고 우기는 사람들, 천국 가겠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오늘날 세상 교회입니다. 자기 계발, 자기 가치, 착한 일 그 무엇으로 치장해도 안 되고 어떤 성화도 어떤 율법 지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어떤 옷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준비하여 입혀주시는 예복은 어떤 옷입니까?
(요한계시록 7장)
13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14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분명하죠? 이 예복은 어린 양의 피에 씻은 흰 옷 세마포입니다. 같은 말씀이 계시록 19장에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깨끗한 세마포 옷이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 믿음, 우리들의 예수 믿음이 깨끗한 세마포 옷이고 우리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에게는 원래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반드시 우리의 행위가 부정된다는 의미입니다. 은혜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는 것은 우리의 행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것을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로 표현을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들, 그렇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받는 세례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받는 세례는 성령세례입니다. 그럼 성령세례는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2장)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이 세례예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합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되는 세례, 우리의 육적 몸을 벗는 세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에게 나누어지고 또 부활의 생명도 나누어진 것이 연합입니다.
(로마서 6장)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 세례를 말합니다. 이 세례에 참여된 자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나가 된 자들, 어린양의 피로 빤 흰옷을 입은 자들.. 어린양의 피로 빤 옷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창세전 약속 안에 있는 십사만 사천에게만 입혀주시는 옷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교회는 인간들의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로 선택하는 교회는 사람들에게 묻혀서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큰 교회, 오랜 역사를 가진 교회입니다. 오랜 역사를 지니거나 크게 부흥된 교회라면 하나님이 도우심이 있었을 것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교회도 부익부빈익빈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조건인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 중요합니다. 그냥 나 구원받았다.. 할렐루야 아멘.. 하면 좋은데 주께서 입혀주신 옷으로 인해서 교회는 자기 인생을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자기 주체를 빼앗겨 버린 사람들입니다. 제가 강론 시작하면서 에클레시아는 이미 세상 밖으로 불려나온 교회라고 했죠? 이 말은 이제 더 이상 세상에 기대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피로 세상과 경계를 가졌고 세상으로부터 찢겨져 나온 사람들이어서 아무리 세상을 사랑하고 뿌리내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과 분리된 사람들이 거룩한 교회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교회예요. 그들도 여전히 죄인이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지만 그들에게 입혀주신 신부의 예복으로 인해서 거룩하다 여겨주시는 것예요. 착할 일 많이 하고 점점 성화되어 거룩한 게 아닙니다. 이미 거룩한 자로 세상에 태어났단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모태에서부터 죄인이지만 또한 모태에서부터 의인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길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기 위해서 태어난 자가 있고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으로 태어난 자가 있다... 불합리하고 불공평하죠?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싫어합니다. 세상 교회들 역시 이런 것들 때문에 순전하고 깨끗한 복음을 가공해버렸어요.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는 복음으로 변개시켰어요. 그래야 교회에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거룩한 교회는 처음부터 씨가 다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단 말입니다. 그들을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피 뿌림을 입은 나그네라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 피 뿌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인해 거룩하게 된 자들, 거룩하게 분리됨으로 인해서 세상에서는 이방인과 나그네 된 자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이 나그네라는 말은 이 세상 말고 본향이 따로 있다는 말이잖아요.
사도는 이 땅에서 이방인과 나그네 된 자들에게 편지를 한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서 이 세상을 살 동안 이방인과 나그네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 교회라고 합니다. 구약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시편 119편)
17 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9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시편 기자는 나그네 됨으로 인해서 내가 이제 주의 규례에, 주의 말씀에 눈이 열리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상 사는데 도움이 되는 예수,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교훈서와 지침서로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좀 모인다는 교회는 이런 쪽으로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대형교회들은 세상을 행복하게 잘 사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구원은 따 논 당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은 우리가 가지는 게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약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구원의 확신이에요. 모든 만물보다 먼저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이 구원의 확신이에요.
하여튼 이 세상 교회들이 서비스 정신에 충만해서 그래요. 손님이 왕이니까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조사해서 마케팅을 합니다. 교인들의 만족도가 높은 교회가 되기 위해서 세상의 경영기법을 도입하고 조직화해서 말 그대로 교회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그 목표를 위해서 목사를 청빙합니다. 외국에서 학위 받은 목사, 경영 실적이 좋은 목사를 구해요. 교회 장로들이 모인 당회에서 하는 짓이 그겁니다. 내 피와 땀이 들어가고 내 돈이 들어 간 교회가 더 커지고 성공한 교회가 되어서 세상 보란 듯이 수천억짜리 예배당도 짓고 국회의원도 시장도 대통령도 나오는 교회.. 그런 세상이 부러워하는 메가 처치가 모든 목사, 장로, 종교인들의 꿈입니다. 그게 바벨입니다. 세상에 우뚝 솟은 바벨탑 하나를 세운 겁니다. 그런데 그 바벨이 이제는 온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된 교회요 사단의 회당이요 큰 성 바벨론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증인들은 그들을 위해서 외치는 겁니다. 거기서 나오라고..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을 받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고.. 그곳은 땅의 장사치들이 상품을 거래하는 곳이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복음을 나누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성경은 세상 교회를 가리켜 사람의 영혼을 매매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8장)
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큰 성 바벨론, 종교의 세상이 거래하고 있던 것들이에요.
7절에는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도는 세상에서 과부와 고아로 사는 사람입니다. 나그네와 이방인, 과부와 고아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고아와 과부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과부가 아니라는 것은 부족한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여왕의 자리에 앉은 여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는 인생을 사는 동안 신랑과 떨어져있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온 과부와 고아들이 모인 곳입니다. 그래서 모두 아버지 집을 그리워하면서 본향을 찾는 사람들이에요.
구약을 보면 선지자들이 말하길 이방인과 나그네,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고 학대하지 말라.. 너희들이 세상에서 이방인이요 나그네요 고아요 과부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도 세상을 사는 동안 나그네요 이방인이요 고아요 과부로 살게 됩니다. 계시록의 그들처럼 세상과 간음하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음행과 간음은 바람을 피우는 것 등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 가치와 세상 정신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인생들은 모두가 음행을 하고 간음을 합니다. 신랑 예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는 것이 간음이에요. 음녀의 섞은 포도주에 취해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정한 자들이고 간음한 자들이고 심판 받을 부자들입니다. 야고보서 5장의 부한 자들이 그들입니다.
(야고보서 5장)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돈이 많아서 부한 자가 아니라 그 돈을 섬기는 자가 부한 자입니다. 돈으로 배부른 자란 말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생명력으로 살게 되어 있는데 돈의 힘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 한 마디로 맘몬을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이 그들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이 얼마나 부자였습니까? 육축도 많고 종들도 많았어요.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브라함이 이삭과 야곱과 함께 삼대가 약속의 땅에서 텐트를 치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다 본향 찾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내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올라도, 모든 세상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어도 이 세상은 내 집이 아닙니다. 내 집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씨가 있는 자들, 약속이 있는 자들은 세상을 살아도 세상에 없는 자들입니다. 마치 에녹처럼... 성경은 에녹이 죽었는데 세상에서 보이지 않더라고 합니다. 그럼 그가 어디에 간 것입니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잖아요.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 안으로 사라진 겁니다. 본래 세상에 없던 자예요. 있어도 없는 자... 그래서 죽었다고 하지 않고 죽음을 보지 않고 세상에서 보이지 않더라고 합니다.
이렇게 성도는 세상을 살면서도 세상 밖으로 불려나온 자들이에요. 이들에게만 세상의 실체가 보입니다. 불사르기 위해 간수되어 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종말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미 세상 끝에서 종말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에 이미 끝나버린 세상과 섞일 수가 없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피 뿌림을 얻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해서 세상 밖으로 추방해버린 세상에서 아들의 피 뿌림을 얻은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운명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Union Christ예요. 언약 공동체, 종말론적 공동체.. 그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예수의 능욕을 지고 세상을 통과하는 십자가의 행렬.. 아담으로부터 오늘 여러분까지, 마지막 목이 베어지는 성도까지의 긴 행렬이 세상 역사를 통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교회라고 하고 이 세상과 역사는 그들을 위해서 잠시 배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시간은 본래 없었잖아요. 이 세상 역사는 영원으로부터 시작되어 다시 영원으로 돌아갑니다. 교회가 완성되면 이 세상과 세상 역사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만큼 교회는 어마무시한 존재예요. 하나님이 자신을 주신 만큼 엄청난 존재란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합니다. 세상 만물이 다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인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심지어 죄와 사망까지도 사단과 귀신들도 여러분 교회를 섬기는 존재들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세상과 천사를 판단하는 사람이 여러분 교회입니다. 그런데 쪽팔리게 걸핏하면 교회 재산 문제 등으로 법원을 갑니다. 또 부자 세습 문제로 법원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세상과 천사를 판단하는 교회가 이렇게 귀신들의 놀림감이 되어 되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보세요. 교회에 돈이 없고 힘이 없으면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자식 놈에게 교회 물려주려고 그런 짓을 하겠느냐고요. 교인 몇 명 안 되는 시골 교회에서 세습을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오늘날 세상 교회가 섬기는 것은 성경의 예수가 아니라 맘몬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잖아요.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느니라..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 은혜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은혜가 뭔지를 모릅니다. 어떻게든 하나님과 예수를 이용해서 내가 필요한 것을 챙기려고 하지...
몸을 가진 우리는 말씀보다 떡을 먹어야 살 수 있잖아요. 떡을 먹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요. 그러니까 은혜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40일이면 들어갈 약속의 땅을 하나님께서는 40년간 헤매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알게 하시고 가르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존재하는 이스라엘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오늘날 성도들에게 은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성도의 삶에는 말씀의 사건들, 은혜의 사건들, 진리의 사건들이 재생되어집니다. 십자가의 실제화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틈만 나면 애굽의 부추와 고기를 달라고 투정하고 아무짝에도 못 쓰는 썩어 없어질 것들을 주워 모으려고 개고생 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그들 교회에게는 세상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죠. 실시간으로 실행되고 있는 약속입니다. 교회에게는 그 약속을 담고 오신 성령의 다스리심이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의 돌보심을 받는 자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성령 공동체, 성령의 선물이 있는 자들, 성령의 조명과 인도가 있는 자들, 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 성령은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영입니다. 그 십자가의 영으로 말미암아 또한 세상에 대해서 십자가로 못 박힌 교회, 그런 영적 현실에 눈이 열리고 또 세상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세상 밖으로 별세시키는 확정된 미래로부터 주어지는 시간을 세상 속에서 살아내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묵시와 세상을 겹쳐서 살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고난이에요.
세상 사람들은 과거의 자기 역사, 자기 시간들이 쌓여서 오늘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하고, 또 오늘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내가 꿈꾸는 나가 되기를 바라고 삽니다. 이게 세상의 시간관이에요.
그러나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의 시간은 미래에 확정된 그 시간이 우리에게 침노해 들어오고 있는 거예요. 물론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세상 시간을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질이 다른 수직적인 시간이 우리에게 같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부터 영원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주님이 그러셨어요. 이미 영생 안에 있는 자는 죽어서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토록 죽지 아니하리라.. 그 영생을 이미 살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을 향해서 외칠 수 있는 교회입니다. 무엇을 외칩니까? 심판을 외치는 거죠. 아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종말을 살고 있는 교회만이 세상을 향해서 종말을 외칠 수 있단 말입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음을 가감 없이 선포하는 교회입니다. 오죽하면 큰 성 길가의 그 증인들이 죽자 세상이 아, 드디어 저놈들이 죽었구나 하면서 서로 축하의 선물을 보내면서 즐거워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는 것을 이 세상은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눈에만 이 세상은 불타고 있는 세상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의 눈에만 이 세상은 이미 종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날마다 예수의 죽음에 넘기우는 죽음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 안에서 사망이 역사함으로 해서 생명도 그들 안에서 역사하게 됩니다. 죽은 세상 속에서 산 성도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들만 죽음이 무엇이고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교회는 천국 가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성경을 공부하고 구제하고 전도하고 그런 것들이 쌓여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영생)이 침노해 들어온 사람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들을 예수 이름으로 모인 교회라고 합니다. 예수 안에 있고 예수가 그들 안에 있어서 교회는 이미 천국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 속에 숨겨진 하나님 나라입니다. 세상에는 없는 사랑의 아들의 나라입니다. 예수만 사랑이고 예수만 천국이기 때문에 예수와 동행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그렇게 세상이 알고 있는 그 천국 말고 진짜 천국, 예수님과 영원토록 사는 그 천국을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그런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오직 예수로만 행복한 나라, 예수로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천국이에요. 그 천국을 세상 속에서 배우고 누리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한 멍에를 메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라는 지옥, 그 사망이라는 골짜기를 목자이신 그분과 함께 통과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부족함도 두려움도 없는 거예요. 그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다 유익이고 선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있는 곳은 그 어디나 푸른 초장이고 쉴 만한 물가입니다. 시편 23편에 나오는 그곳.. 원수의 목전에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이 찬송을 하게 하기 위해서 사망의 골짜기가 있어야 하고 원수들도 배치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별세시켜주는 그 원수들은 모두가 주님의 배려이며 주께서 베푸신 환경들입니다. 그래야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누구며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어떤 곳인지, 왜 세상은 짐승의 나라로 심판 받아야 하는지를 우리로 체험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성도는 먼저 자기 나라, 자기 영역이 멸망당하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자아의 죽음이에요. 그리고 그들에 의해서 심판과 죽음이 선포됩니다.
구약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선지자들.. 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이방나라에 끌려간 하나님의 사람들, 이스라엘의 멸망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이 여전히 작동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여러분이 잘 아시는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있습니다. 자기 나라의 멸망을 경험하고 바벨론으로 끌려 왔지만 그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의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세상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미 그들 안에는 이스라엘의 종말, 세상 종말을 품고 오신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지금 함께 하시는 인자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풀무불 속에서도 인자와 함께 춤추면서 불타는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불 속에서도 인자와 함께 한 상태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그 불이 얼마나 강한 불인지 옆에 가까이 하던 군사가 불타 죽었건만 그들은 불 속에서 인자와 함께 춤을 추고 있었어요. 그게 세상에 임한 천국이에요. 그 불 속에서 불 밖을 바라보게 되면 그 바깥이 불타고 있는 세상입니다. 지옥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종말을 사는 교회의 모델로 다니엘과 세 친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판 당한 짐승의 세상, 오고 오는 모든 세대가 짐승의 세상임을 다니엘이 기록한 겁니다.
(다니엘 7장)
15 나 다니엘이 중심에 근심하며 내 머리 속의 환상이 나를 번민하게 한지라
16 내가 그 곁에 모셔 선 자들 중 하나에게 나아가서 이 모든 일의 진상을 물으매 그가 내게 말하여 그 일의 해석을 알려 주며 이르되
17 그 네 큰 짐승은 세상에 일어날 네 왕이라
18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그 누림이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하리라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더라 그 이는 쇠요 그 발톱은 놋이니 먹고 부서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위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서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을 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커 보이더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에게 이겼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을 위하여 원한을 풀어주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들이 나라를 얻었더라
이 다니엘서를 예수께서 인용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16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종말에 대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저와 여러분이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니엘이 말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종말의 교회에만 보이는 것들.. 그렇게 짐승의 세상은 오직 교회에게만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이 세상을 다녀가시고 언약의 피를 흘리신 그 때부터 세상은 이미 종말이지만, 그 종말은 아직 세상에 남아있는 성도들과 함께 그 남은 자들을 위해서 진행되고 있는 종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짐승의 세상을 향해서, 그 멸망의 것,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있는 그곳을 향해서 예언해야 합니다. 심판을 외쳐야 한단 말입니다. 종말의 거센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들이 오늘 이 세상이라고 하는 종교의 신전을 떠나 예수의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지금도 아들의 피로 우주 만물을 붙들고 계십니다. 세상 교회에 모여서 빵 뜯어 먹고 포도주 나눠 마시는 성찬이 아니라 이 우주 만물이, 이 지구가 기울어진 각도가 1도만 달라도 완전히 불태워 없어지고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조금만 바뀌어도 종말이 오게 되는데, 그 모든 것들, 즉 우주가 어떤 법칙으로 운행되고 있는 겁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이 땅에서 흘리신 예수의 피로 우주 만물 모든 법칙을 붙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게 우주적인 성찬이에요.
이제 여러분은 이 짐승의 나라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는 교회입니다. 남편 예수를 위해서 단장한 신부들, 그 새 예루살렘 안에 저와 여러분이 있기를 빕니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새 예루살렘 성으로 내려오는 그날까지 잘 살아계시면 됩니다. 그 나라는 이미 왔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노력해서 된 것도 아닌데, 이미 창세전에 우리를 거룩한 교회로 택하셨사오니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 남은 날들도 주께서 먹이시고 입히시고 또 인도하셔서 우리 아버지 집으로 가는 그 길로, 그 목적지로 함께 동행 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상을 향해서 주님의 깨끗하고 순결한 복음을 가감 없이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영광이 십자가 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우리가 모일 때마다 나누고 즐거워하고 누리고 찬송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