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9일(토)
* 시작 기도
주님...
가인의 길로 행하여 불의의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간 자가 여기 있습니다.
이런 나는 애찬의 암초와 같고 자기 몸만 위하는 삯군이요 물 없는 구름에 해당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는 마땅히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으로 들어갈 유리하는 별에 지나지 않습니다(유 1:11-13).
그곳은 바로 캄캄한 흑암으로 덮인 지옥입니다.
내가 가야할 곳이 바로 그곳이나 주님은 그런 나를 구속하시고 흑암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생명으로 바꿔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주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그 생명으로 살기 원합니다.
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이 날이 똑같은 여느 날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며 연합한 주의 날이게 하소서.
요셉의 해골을 앞세워 가나안에 진군했던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들고 진군함과 같으니 나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걸머진 구레네 시몬이 되어 영원한 그 나라에 진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골 4:2-9
제목 : 굳게 닫힌 옥문이 아니라 전도의 문을 열어달라는 바울의 기도.
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 나의 묵상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항상 깨어서 감사로 기도할 것과 그 기도를 쉬지 말고 지속적으로 힘쓸 것을 권한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부탁하는데 이 부분이 정말 대단하다.
바울과 그 일행은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영어의 몸인 상태이다.
그런 그들의 첫 번째 기도제목이 무엇이겠는가?
당연히 감옥에서 나가는 것일 게다.
전도의 차원에서 본다 하더라도 영혼 구원을 위하여 자기들이 빨리 감옥 밖으로 나가서 전도할 수 있도록 해 주십사 기도를 하거나 기도 요청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기도를 부탁하지 않는다.
옥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전도의 문을 열어주셔서 이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비밀인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이 바로 이 일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3b)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비록 영어의 몸일지라도 감옥 안에서 전도의 문이 열리면 그들에게 이 비밀을 담대히 증거할 것이다.
그런데 이 비밀이란 어떻게 하면 이 감옥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와 같은 땅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는 비록 육신이 갇혀 꼼짝하지 못할지라도 영원한 하늘나라에 속하여 그 누구보다 자유의 몸 즉 참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음을 증거하는 그 비밀을 말한다.
3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비밀이란 그리스도가 곧 비밀이란 말이다.
비밀이란 헬라어 ‘뮈스테리온’으로서 당시에 영지주의자들이 자주 사용하던 말이었다.
이는 가장 고상한 지식으로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알려지지 않고 자신들 중에서도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지식을 강조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
그래서 이런 높은 차원의 비밀을 깨닫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골로새 교회를 비롯한 주변의 여러 교회들에 침투한 그 영지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바로 그 단어인 ‘비밀’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십자가가 바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지혜요 비밀이다.
(골 1:26-27)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이 비밀은 창세전부터 계획된 것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신비로운 진리 중의 진리이다.
이 감추어진 진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나게 되었고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인간이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 비밀인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가 된 것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는 것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그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구원의 진리인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증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나의 상황을 해결하는데 주의 말씀과 기도를 이용하는 자였다.
학원을 할 때 학원이 어려워지자 학원이 잘 되게 해 달라고 간곡하게 기도하였다.
그것도 목이 터져라 부르짖으며 기도하였다.
물론 학원이 잘 되기만 기도한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잘 따라오지 못하는 좀 부족한 아이들이 있었는데 새벽에 가서 그 아이를 놓고 큰 소리로 기도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기도소리를 하나님도 들으셨겠지만, 그 학생의 어머니가 들은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에 감동을 받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나에게 “집사님(당시는 집사였음), 우리 아들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 아이는 우리 학원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은 학생 중 한 명이 되었다.
아마도 이것이 하나님의 기도응답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크든 작든 내게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 문제와 상황을 해결하고자 기도하는 자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3대째 믿는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기도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귀동냥으로 들었던 기도는 거의 대부분 무엇을 해달라는 기도였다.
나는 그것이 기도인 줄 알았다.
물론 그것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복음을 알게 되고 내가 어려움에 처한 것도 하나님의 섭리요 주권 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진짜 믿음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장사복음이다.
하나님은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아들을 통하여 새 생명을 주셔서 당신의 아들로 삼아주셨는데 이런 내가 상황적인 어려움을 당했다면 그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가 있겠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요, 또한 나에게 마땅히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허락하신 것이리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나는 가져가 달라고, 해결해 달라고 부르짖으며 기도를 하면 물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듣고 해결은 해주실 수 있지만, 그에 대한 진짜 은혜는 받지 못하는 것이다.
욥의 고난이 바로 그런 것이다.
욥은 겉으로는 하나님도 인정할 만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욥의 믿음을 가장 잘 표현한 말씀이 바로 욥기 1장에 나오는 말씀 아닌가?
(욥 1:20-21)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그런데 사실은 욥의 이 고백까지도 그의 감춰진 자기 의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만한 믿음 가지고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 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이다.
자기 의란 곧 내가 하나님 되려는 것과 같은 것으로서 그 어떤 죄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다루시기로 마음을 먹으신다.
사탄은 그 옆에서 욥을 하나님께 참소한다.
그 사탄에게 욥을 공격하라고 허락하신다.
사탄은 하루 아침에 욥의 전 재산을 불어버리고 10명의 자식들을 다 죽였다.
게다가 욥의 몸에 병까지 들게 하여 기왓장으로 몸을 벅벅 긁고 있는 모습을 본 그의 아내가 너무도 한심했던지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 하고 저주하면서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런데도 욥은 아내에게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하면서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런 욥의 모습에 경탄을 금할 수 없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주권을 인정하다니 말이다.
그런데 외모가 아닌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욥의 중심이 무엇인지 아셨다.
그래서 사탄을 통하여 그를 시험하게 하셨고 결국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욥 40:8)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이 말씀과 함께 욥이 감히 알지 못하는 천지 창조의 내용들을 말씀하시면서 네가 이것을 아느냐?, 네가 이 때에 어디 있었느냐?, 알면 말해 보아라.
무려 38장에서 41장에 걸쳐 욥의 완악함을 찢어내신다.
그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다.
(욥 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이나 시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느 여가수가 불렀던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라는 가사처럼 말이다.
우리 믿는 자들이 당하는 환난과 고난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를 죽이고 진멸하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되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징계인 것이다.
따라서 기도를 하되 상황 해결을 위한 기도를 할지라도 이제 기도의 지경이 점점 넓어져서 내가 있는 그 상황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깊이 묵상하며 그런 주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이 주님이 그토록 기뻐하시는 영혼 구원이라면 내 주위를 둘러보고 믿지 않는 자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의 언어를 조심해야 할 것이며 말을 소금과 같이 사용하여 너무 심하지 않게 그러나 너무 싱겁지도 않게 고루고루 맛을 내는 언어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할 때 성령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말을 입에 넣어주실 것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감옥의 문을 열어달라고 기도해도 어느 누구 하나 손가락질 할 사람이 없음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100% 알고 인정했던 바울은 그렇게 옥에 매인 것이 바로 전도의 문을 통하여 영혼 구원에 있음을 믿었기에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하늘의 기쁨으로 땅의 고통을 삼키면서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그 비밀을 전하였나이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십자가에 복종하셨고 그 복종은 죽기까지 하는 복종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조차 나의 고통을 감해달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와 분리되는 영적인 고통에 신음하며 부르짖었고 그 위에서 모든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오늘 하루가 주님과 함께 행하여 주의 주권을 인정하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영광이 아침 해와 함께 임하나이다.
이 종을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