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36년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긴 하지만
독도를 竹島(따께시마)라 우기면
어깃장을 부리고 있는 일본의 섬나라 근성을 보고 있노라면
당하기만 했던 우리의 조상이 참 한심스럽게 다가오다가도
그 고난과 역경을 딛고 오늘을 이룬 저력을 생각하면
참 대단한 민족이라는 생각도 지울 수가 없다.
항몽전쟁 39년을 강화도에서 버티다가 결국엔 손을 들고 개경으로 옮겨가긴 했지만
고려 무신정권의 버팀 기간에
정신적 지주로 불탄 대장경이 16년간에 걸쳐 다시 만들어지고
남한지역에 남은 단 5기의 고려 왕릉과·왕비릉 중에서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34대 공양왕과 순비의 능인 高陵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4기가 모두 강화에 있는 것으로 보아
39년이란 세월이 짧지 않은 긴 기간이었나 보다.
조선 세도가들의 석물에 주눅이라도 들듯 자리 잡은 고릉에 비해 단출하기는 해도
강화의 고려왕릉이 조선왕릉처럼 세계문화유산으로 대접은 받지는 못할 지라도
버려진 아이처럼 제대로 관심대상에서 비켜있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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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4대 공양왕과 순비의 능인 고릉-봉분과 석물이 조선왕릉에 비해 너무 초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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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2대 강종의 비인 원덕태후의 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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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21대 희종의 능인 석릉>
잠시 강화도를 잊고 있는 사이 강화 나들길은
강화 주변의 황산도, 교동도, 석모도, 볼음도 및 주문도 등의 섬길을 포함시켜
어느새 14코스까지 세를 불려가고 있었다.
이미 돌아본
교동도 1코스(다을새길)는 나들길 9코스로
교동도 2코스(머르메 가는길)는 나들길 10코스로
그리고 석모도의 보문사 가는 길은 나들길 11코스로 편입이 되어 있었다.
하여,
나들길 8코스(철새 보러 가는 길)를 돌면서 황산도와 동검도를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작고 낮은 것을 보려고
강화도 해안남로를 따라 찾아간 황산도는 강화도와 연결되어 이미 섬이 아니었다.
그나마 황산도 숲길에서 이름도 모를 새들이 포르르 포르르 날며 길손을 반기고
아직도 안내리본이 팔랑거리며 길을 안내를 하지만
오래지 않아 여기도 관이 주도하는 한
욕을 먹는 똑같은 길로 변해가지는 않을지 뻔한 걱정을 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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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도에서 바라본 강화 초지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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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도 해안 산책로는 텅텅 비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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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도 어판장도 너무 조용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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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 너머로 돌아본 황산도 원경>
갯벌이 죽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들물이 아니고 날물의 끝이라 그런 것일까?
철새 보러 가는 길에
왜가리 한마리만 동그마니 눈을 굴리며 지나는 객을 말똥말똥 쳐다본다.
그 흔한 갈매기도 얼씬도 않고
어린 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를 제외한 식물체 전체를 약재로 활용한다는
칠면초만
갯벌 곳곳에 안달을 하고 있을 뿐
뚝방길 돌 틈 사이로 억지로 피어난 코스모스가 그래도 하늘거리며 궁색한 마중을 하고
망둥어 낚시꾼이 물길 따라 낚시를 드리울 차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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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성듬성 보이는 칠면초 너머로 갯벌의 망둥어 낚시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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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의 철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섬암교에 이르니
작년 이맘때 마니산을 올랐다 정수사로 내려와 초지대교까지
늦은 시간까지 걸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오늘은 멀쩡한 대낮에 서두르지 않고 속 편하게 걷고 있다.
어정쩡한 방조제로 이어진 동검도도 다 망가져 가고 있었다.
개발의 美名下에 황산도는 8코스를 안고 돌지만
동검도는 8코스에서 잠시 비켜서서 모른 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동검도 역시나 이어진 방조제(?)로
섬주인은 섬사람이 아니라 육지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일산에서 왔다는 한 젊은이가 동검도로 허겁지겁 들어서다
동검도는 8코스에 비껴있다는 말에 두말없이 되돌아 나간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재촉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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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검도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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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검도로 들어가는 방조제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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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검도 마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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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고사리손의 고구매캐기>
교수라는 고귀한 직분으로 대학원생에게 개밥까지 주라고 하면서
군대문화를 손가락질하는 오늘의 세태가 개탄스럽고
노크 귀순을 쉬쉬 하느라 거짓보고를 태연스럽게 연출하는
별자리들의 철면피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교수와 함께 하는 가천의대의 탐방객인줄 알았는데
후애돈대를 돌아 한 줄로 되돌아오는 무리가
제각각 방언(?)을 하면서 곁을 스쳐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왠지???
원판이 무너지고 있다.
언제부턴가 얼굴로도 머리카락 색깔로도 東西구분이 헷갈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여, 사진관에서 원판을 돌려받아도 소용이 없다.
부모와 자식 간에 영판이라는 소리가 부끄럽게 요즘 아이들은 손질하기에 바쁘다.
그 덕분(?)에 강남 스타일과 성형외과만 살판이 났는지도 모른다.
산부인과와 일반외과는 죽어가는 판인데도---
인간이 편해지는 환경이 되어 갈수록 지구는 분명 망가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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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학생이 뭔가 논쟁을 벌이던 후애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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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 너머로 보이는 가천의대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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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5리 어시장에서 바라본 칠면초와 동검도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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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5리 어시장엔 한창 새우젓이 불티가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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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항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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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대교를 걸어서 대명항으로>
첫댓글 강화의 황산도와 동검도 일대 해안도로길이 잘되어있고 초지대교 지나서 대명항이 있군.
이곳 인천사람들은 인천연안부두와 소래포구의 새우젓 보다 대명항의 새우젓이 질도 좋고 값도 저렴하여
멀지만 김장철 가까이되면 강화쪽으로 많이들 가더라고.또한, 강화쪽으로 가면 고추와 배추 무도 싸고 좋다고 이름나서
김장할때쯤이면 인천 아줌마들이 어울려 많이들 갑니다. 덕분에 여러곳 구경 잘하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하는 이유는 조선 어떤 왕이 일본인에게 오랜 세월동안 독도 강치를 잡도록 해준 것 때문.
그 땜에 독도 강치가 멸종했고...어디 어리석은 조상들 덕에 잃은 게 한 두개가? 나라도 없어졌는 데..
우리 집안 고향이기도 한 강화를 앉아서 보니 감개가 무량하구만..한국 가면 꼭 한번 가 봐야겠다..고맙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