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산보다 인기 좋았던 립톤 홍차
※ '지역문화' 홈페이지의 글을 옮겨 봅니다.
시대 근대-일제강점기(1910.8.22~1945.8.14)
홍차는 개항기에 들어와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대만산 홍차가 관세가 적어 가격이 쌌으나 조선인들은 영국산 립톤홍차를 많이 이용하였다. 립톤홍차는 인도 실론에서 립톤회사가 직접 재배한 홍차로, 가격이 비교적 낮고 품질이 대만산보다 좋았다. 홍차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가격이 어느정도 있었으므로 재산가의 가정에서 마시거나 특별한 날 마시는 차였다.
다방에서 커피와 같이 많이 판매되는 음료이기도 했다.홍차는 개항 후 일본, 서양과 교류하면서 한국에 들어왔다. 커피와 같이 서양인을 접대하는데 사용되었는데 일제시대 양식집에서는 후식으로 커피와 같이 제공되었다.(『동아일보』1930.03.15. 「화요만필(2) 기호품일람표(하)」) 일제강점기 조선의 홍차는 대부분 영국에서 수입하는 석란차(錫蘭茶) 즉 실론차였다.(『동아일보』1924.08.01 「관세증징과 각 수입품의 영향」) 막연히 실론차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는 영국의 립톤(Lipton) 홍차였다.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다양한 나라의 홍차가 소개되었다. ‘홍차는 인도의 따지린(다르질링) 산이 고급품이고 남양의 하리믄산과 세로인산이 그 다음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흔히 쓰는 리푸튼차(립톤차)는 세로인산(실론산)입니다. 그 다음인 중국차, 대만의 우론차, 일본의 정강(靜岡)산 이러한 차례가 됩니다.’(『동아일보』1932.04.08. 「홍차의 품질」)라고 나라별 홍차를 소개하고 있다. 비록 립톤홍차가 최고급품은 아니었지만 대만산 홍차보다 품질이 좋고 가격이 비교적 낮았으므로 조선인 가정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대만산 홍차는 색이 암적색이고 품질이 인도산보다 떨어져 싼 가격에도 많이 팔리지 못하였다.
유럽인들은 1680년대 말부터 차를 마셨는데 초기에는 중국의 녹차를 마셨고, 홍차는 1700년대에 마시기 시작했다. 홍차는 덜 건조된 중국의 녹차가 발효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영국의 차 브랜드인 립톤은 1890년 토마스 립톤에 의해 설립되었다. 토마스 립톤은 처음에 식료품체인점인 립톤마켓을 만들었고, 1890년 ‘립톤’이라는 이름의 홍차를 제조해 립톤마켓에 판매하였다. 이 시기 홍차는 인도에서 대량 생산되었으나 수입, 유통 절차가 까다로워 이를 중개하는 중개상들이 이익을 많이 가져갔다.
토마스 립톤은 인도를 여행하다 실론섬에서 양질의 홍차를 재배하는 것을 알고 실론섬의 대규모 홍차농장 5개를 사들여 직접 홍차를 제조했다. 제조한 홍차를 바로 립톤 마켓에 유통시켰으므로 종래 홍차보다 40% 저렴한 값에 공급할 수 있었다. 이렇게 쌓인 자본과 기술력으로 동아시아에도 홍차를 판매하였던 것이다. 립톤홍차의 경우 일본과 한국에서는 사치품으로 분류되어 관세가 높게 매겨졌다. 그러나 사람들은 관세가 없는 대만산 홍차보다 립톤홍차를 선호하였다.
『동아일보』1927년 6월 19일 「서늘한 얼음차 만드는 법」에서는 재료로 ‘립톤홍차’를 준비하라고 상품명을 밝히고 있다. 얼음홍차를 만드는 방법은 ‘끓는 물을 주전자에 넣어 잠시동안 그대로 두었다가 주전자가 뜨겁거든 그 물을 내버리고 그 주전자에 끓는 물 한홉에 홍차를 조그만 숫갈로 한숫갈 가량 넣은 후 끓는 물을 부어 5분간 둡니다. 5분 지나거든 찻물만 따라서 얼음이나 냉수에 채워놓고 먹을 때마다 그릇에 따라서 청결한 물을 적당히 섞어 가지고 얼음조각과 레몬을 얇게 썰어 한조각씩 띄운 후 설탕을 넣습니다. 여름에 집안에서 만드는 음료로서 가장 편리하고 대단히 좋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홍차를 만들 때 주전자에 홍차를 넣고 끓이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는데 홍차의 탄닌이 너무 많이 나와 차가 떫어지기 때문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게 많은 인기를 끌었던 립톤홍차는 1937년 무렵에는 매년 백만원 정도가 수입되고 있었다. 그러나 1937년 이후 일본이 전쟁을 장기간 하면서 수입을 통제하게 되어 립톤차의 수입이 금지된다.
홍차가 사치품인 까닭에 어느정도 재산이 있는 가정에서 애용되었는데 경성부 익선동 34번지에 살던 친일재산가 민영찬은 사랑방 침실에서 조선인 첩인 강씨부인, 중국인 첩인 호씨부인과 저녁식사 후 후식으로 홍차를 마신 후 잠깐 자리를 뜬 사이 사랑방 침실 온돌이 무너지는 사고를 당한다. 테러로 의심하여 경찰서에서 조사하였으나 단순한 사고로 결론지어졌다.(『동아일보』1921.04.20 「괴이한 온돌의 폭발」)
참고자료
정기간행물 "火曜漫筆(화요만필) (二(이)) 嗜好品一覽表(기호품일람표) <下(하)>." 동아일보 (1930.03.18): 4면 생활/문화.
정기간행물 "關稅增徵(관세증징)과 各輸入品(각수입품)의影響(영향)(續(속)) (二(이))." 동아일보 (1924.07.30): 1면 경제.
정기간행물 "홍차의 품질." 동아일보 (1932.04.08): 5면 사회.
정기간행물 "서늘한 얼음차 만드는 법." 동아일보 (1927.06.19): 5면 사회.
정기간행물 "怪異(괴이)한 温突(온돌)의 爆發(폭발)." 동아일보 (1921.04.20): 3면 사회.
집필자 강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