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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읽은책 소개방(서평 포함) Re:고병옥의 <공사장 사람들>에 대한 김병기의 평에 대한 반론 /김종완
김종완 추천 4 조회 932 15.07.03 09:22 댓글 6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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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7.12 06:39

    문제는, 논란의 핵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것을 되레 호도거나 비호하고 포장하며 변호하는 일인데, 그런 분위기로는 무엇을 개선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기본의 문제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과거 비슷한 토론의 중심에 섰던 당사자로서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데 대해 실망감이 큽니다. 향후도 이런 '기본의 문제'를 두고 논란이 반복될 것 같아 평론의 길이 멀어만 보입니다. 서로가 문제점에 대해 솔직하고 엄중해야 상황을 타개하고 정도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김삼진선생님의 솔직하고도 격정적인 토로에 공감합니다.

  • 15.07.07 17:04

    2년여 넘게 '김종완의 수필교실'에서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수업은 대개 한 학생이 직접 써서 가져온 작품을 교재로 놓고서 감상평과 의견들을 나눕니다. 작가의 면전이니 칭찬은 직설적이고, 비판은 공손하고 때로 우회적입니다. 그래도 글의 훌륭한 부분이나 미흡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의견교환이 이뤄집니다. 자기가 쓴 글을 제출하고서 애정 어린 난타를 당한 학생은 그 의견들을 반영하여 다시 글을 손보아 가져옵니다. 꿋꿋하게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너나없이 글이 향상되어가는 것을 확연히 느낍니다. 작가의 면전이라고 서로 좋은 말만 하고 고언을 하지 않았다면 얻기 어려운 성취입니다.

  • 15.07.07 17:05

    (그런 과정을 거쳐 좋은 글을 쓰게 되고 에세이스트에 등단한 학생이 여럿입니다.) 마침 신경숙의 표절과 관련된 어느 칼럼 중에 지금 카페의 상황과 맞는 구절이 있기에 옮겨 적습니다. <한 평론가는 "칭찬도 비판도 평론인데, 후자의 기능이 쇠퇴했다. 편집위원이어도 출판사에서 나온 작품을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맞다. 작가를 알고 나면 더 어려워진다"라고 말했다.> 김병기 선생이 이미 토로했지만, 저는 <공사장 사람들>에 대한 비평을 올리기 전과 후에 그가 품었던 망설임과 괴로움을 충분히 공감합니다. 김병기 선생도 그리고 저도 작가를, 적확히는 작가가 받으실 상처를 크게 의식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15.07.07 17:05

    그래서 그는 비판자 역할을 피할 수 있다면 그리하고 싶었겠지만, 제비뽑기로 작품을 배정하여 평론을 쓰기로 약속을 했기에 그 약속을 이행한 것입니다. 저는 이번 토론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만일 <공사장 사람들>이 아주 오래 전에 쓰인 작가불명의 글이고, 그 글에 대해 김병기 선생이 똑같은 비평을 썼다면, 독자들의 반응이 지금과 같았을까? 혹시 같지 않다면 결국 비평은 작가를 의식하고 배려해야만 하는 건가? 그렇다면 비평의 본령은 무엇인가?' 에세이스트가 기획한 이번 평론 시리즈는 작가 한 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에세이스트 카페의 많은 독자들과 저처럼 글쓰기를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것입니다.

  • 15.07.11 14:18

    <공사장 사람들>이 작가 미상의 수필이든 아니든 독자들의 반응은 전혀 달라질 게 없습니다. 작가가 분명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작가를 동정하여 김병기 평문을 질타한다고 믿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신현국선생님의 그런 말씀은 독자들의 수준을 불신하고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에세이스트의 평론 시리즈는 보다 수준 높은 평론을 위한 세미나 성격이 강합니다. 차제에 "작가 한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신선생님의 편향된 규정은 많은 독자들의 올곧은 비판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것입니다. 신선생님의 시각처럼 독자들은 그렇게 어리석은 군단이 아닙니다. 우호적인 편들기는 또다시 동료를 눈멀게 할 뿐입니다.

  • 15.07.07 17:10

    그러니 김병기 선생의 비평이 작가를 배려하지 않았고, 표현이 공손하지 않고 우회적이지 않다고 비판받기보다는 그의 비평 중 무엇이 비논리적이거나 악의적인지 논리적으로 반박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공사장 사람들>의 작가를 위하는 구체적 방법일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위에 썼다시피 고병옥 선생님이 받으실 상처를 무척 안타까워합니다. 김병기 선생의 비평 내용과 논조에 전부 동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김종완 교수님처럼 삶에 대한 작가의 불교적 관점을 고려하더라도) 연민이라는 감정의 과잉이입이라는 비평의 근간에 대해서는 생각이 같습니다.

  • 15.07.07 17:07

    한편, 김병기 선생의 평론을 통해 글을 읽는 다양한 시각을 배우고 있는 학생인 저로서는 그가 이번 일로 인해 비판적인 평론을 접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15.07.10 15:03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작품속의 화자는 자기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이런 방식으로 연대의식을 갖고 교류하고 싶어하는구나"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이런 방식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시선을 유지하면서 표현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작품의 키워드가 ‘연민’이라고 보는 순간부터 이 작품속의 화자에 대해서 우리는 매우 긍정적으로 볼 수 없게 되고 맙니다. 고병옥 선생님은, 선생님의 방식대로 <공사장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통해 작가로서 세상과 사람들을 폭넓게 수용하고 소통하고자하는 의도와 노력을 보여 주시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 15.07.12 06:41

    저 역시도 공사장 사람들에 대한 화자의 따스한 '관심' 으로 보았지 그게 '연민'(불쌍하고 가련함)의 정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더군요. 또한 연민의 정이란 인간이 인간에게 갖는 보편적 감정이지 그게 신(神)에게만 허용된 절대적 감정이 아니기에 평자가 심각하게 오독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논의가 아직도 이런 기본적인 인식의 문제에 갖혀있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 15.07.10 15:09

    저는 작품 속 화자가 품고 있다고 미루어 짐작하는 감정과 시각들. 즉 그가 바라보는 대상과 현상에 대한 어떤 연민과 동정, 혹은 우월감(?)과 평자의 그것에 대한 분개(?)와 연결되는 맥락보다는 작품속 화자의 소박한 자기성찰과 세계관에 대한 성장과 도전에 초점을 둔, 건전한 자극이 있는 평론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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