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8
빛의 폭포란 별명이 있는 좀블랑 동굴 투어는 사흘 전에 벌써 예약해 두었다. 말리오보로 거리에 있는 관광청(?) 인포메이션 센터에 문의했더니 아주 친절하게 업체와 연결해 주었다. 현지 입장료와 전용 차량 비용을 합쳐서 일인당 800리부, 요금은 투어가 끝나고 기사에게 주면 되는데 카드 결제도 가능하다.
동굴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동굴 근처에 다다르니 심하게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다. 비싼 입장료 받아서 도로 포장 좀 하지. (800리부 중에서 500리부가 현지 입장료라는데 여기에는 안전장비, 안전요원, 음료, 식사가 포함되어 있다.)
안전모에서 땀냄새가 나니 안에 비닐 커버(?)를 써야 한다거나 물이 새는 장화가 많으니 잘 골라야 한다는 후기가 많아서 걱정을 했는데, 막상 현지에 가 보니 안전모도 장화도 모두 멀쩡하고 깨끗한 것 뿐이었다. 일부러 음해한 후기들은 아닐 것 같고... 민원이 많아서 새로 구입한 걸까? 하여튼 장비에는 문제가 없었다.
안전장비를 착용한 후에 밧줄에 매달려 수직으로 뚫린 동굴 아래로 내려가는데, 동력이 없이 인력으로 밧줄을 당긴다고 한다. 내려갈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올라와서 보니 과연 동네 사람들이 줄을 당기고 있었다.
동굴 안쪽은 어두워서 안전요원들의 손전등에 의지하면서 미끄러운 진흙 바닥(진흙 범벅이 될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현재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미끄러운 정도는 아니다.)을 밟으며 걸어가다 보니 과연 빛의 폭포가 나타났다.
위쪽에 있는 나무들이 막아서면서 햇빛이 여러 줄기로 나뉘어 동굴 안으로 내리 비추는 이곳만의 특이한 광경이다. 다만, 빛 줄기들이 사진으로 보던 만큼 화려하지는 않았다. 보정한 사진들이었을까? 아님 오늘 날씨가 완벽하지 않아서?
호텔로 돌아와서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말리오보로 거리로 나갔다. 지도에 나오는 룸피아(룸삐아. Lumpia. 중국의 춘권이 동남아로 퍼진 것? 스프링롤) 맛집을 찾지 못해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알고 보니 골목 안에 있는 노점이었다. 10개에 60리부. 호텔로 가져 와서 맛있게 먹었다.
2024.1.9
오늘은 족자 근처에 있는 다른 도시, 솔로(Solo. 정식 이름은 수라카르타. Surakarta)를 가 보려고 나섰다. 솔로는 18 세기 중엽에 마타람 술탄국의 수도가 되었고 이후 마타람에서 떨어져 나간 족자 술탄국과 경쟁 관계가 되었다는데 주민들의 라이벌 의식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수라카르타도 족자카르타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지위를 확보했었지만 내란 수준의 정치적 격동을 겪은 끝에 특별한 지위를 잃고 선거로 주지사를 뽑는 일반주(자와틍와 주)에 속하게 되었다. (족자는 술탄이 주지사를 세습하는 특별주로 남아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덕분에 솔로에는 왕궁이란 이름이 붙은 건물이 두개나 있고 유서깊은 박물관과 전통 예술 공연 등 문화 유산도 많다고 한다. 족자에서 기차(Commuter.통근열차)를 타면 금방(1시간 +) 간다기에 당일치기로 둘러보기로 했다.
통근열차를 타려고 기차역까지 걸어가는데 어라, 좁다란 골목길이 엄청 깔끔하다. 입구에 골목 이름도 붙어 있고 쓸고 닦고 가꾸는 분위기가 확 느껴진다. 오토바이는 타고 갈 수 없고 끌고 다니는 것만 허용된다. 그런 골목을 지나 다음 골목으로 들어서니 여기는 배낭여행자들의 골목이다. 역시 깔끔한 골목 안에 게스트하우스, 여행사, 세탁소, 오토바이 대여점 등이 늘어서 있다. 여행자 골목이 끝난 곳에 기차역이 보인다.
기차 시간표도 알아보지 않고 가서 무작정 표를 사려고 했더니 현금도 카드도 안 된단다. 그럼? 고페이가 된다고 하는데 잔액이 부족하다. 근처 편의점을 찾아가서 충전을 하고 왔더니 기차가 막 떠났다며 40분을 기다려 다음 기차를 타야 한단다. 마침 우산을 안 가져온 게 걸렸던지라 호텔로 돌아가서 우산을 가지고 왔는데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 길 건너편에 번듯한 호텔이 보이길래 커피 한잔 하면서 기다리려고 들어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주문을 받으러 오는 사람이 없어서 에어컨 바람만 쐬다가 나옴.
고페이 사용법이 익숙치 않아 친절한 역무원의 도움을 받았고 (그런데 이 때 뭐가 잘못되었었는지) 솔로발라판(Solo Balapan) 역에서도 (나가려다가 차단기가 안 올라가는 상황을 맞았는데) 친절한 역무원의 도움을 받았다. 요금은 편도 8리부, 700원 내고 기차 한 시간 탔으니 정말 저렴하다.
솔로에는 팀로 솔로(Timlo Solo)라는 음식이 유명하다는데 (유부, 계란, 고기 등을 넣어 끓인 국밥?) 먹어 보지 못했고, 대신에 기차역 맞은편에 있는 사떼 맛집 Sate Kambing Buntel Pak H. Kasdi에서 이번 여행 중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식당 앞에는 숯불 연기와 맛있는 냄새가 자욱하고 작은 가게 안에는 손님들이 가득했다. 옆자리 손님이 (간판에도 써 있는) 깜빙 분뜰 사떼(염소고기 꼬치를 뭉쳐서 구워주는 것)를 추천하길래 일반 사떼와 하나씩 시켜서 먹어 보니 (특히 분뜰이) 너무 맛있다. 분뜰을 하나 더 시켰다. 음료 포함 150리부. (거스름돈이 조금 있었는데 가게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버스커?들에게 줌)
택시를 불러 망쿠네가란(왕궁)으로 갔다. 택시 기사가 입구라고 내려준 곳에는 막는 사람도 환영해 주는 사람도 없어서 여긴 입장료도 없나 하면서 경내로 들어가 어슬렁거리니, 만나는 사람마다 외국인은 이러시면 안된다고 저쪽으로 가서 표를 사라고 떠민다. 표 파는 곳이 문 앞에 없고 왜 저쪽에 있는 거야? 표지판이라도 잘 만들어 놓든지. 외국인은 입장료가 50리부고 반드시 가이드와 함께 (복장도 갗추고) 들어가야 한단다. (가이드 비용은 따로 없지만,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사진도 열심히 찍어준 가이드 아가씨에게 50리부를 팁으로 줌)
가이드가 솔로의 역사와 문화에 관하여 열심히 설명을 해 줬지만 기본 지식이 적어서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대를 이어 이 지역을 지배하던 가문이 있고 (현재도 그 후계자가 이 궁전의 주인) 족자처럼 공식적으로 권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지역에서는 아직도 정치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분위기.
왕궁 구경이 끝나갈 무렵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솔로의 나머지 관광지들을 포기하고 족자로 귀환했다.
2023.1.10
하루 여유가 있는 날,
말리오보로 거리를 걷다가 남쪽 끝에 있는 Bredeburg 역사 박물관을 구경했다. 네덜란드와 일본에 맞서 독립을 쟁취한 역사를 엿볼 수 있었던 곳.
그 옆에 있는 Taman Budaya Yogyakarta라는 문화 센터에서는 특별한 전시나 공연을 만나지 못했고 (공연을 준비 중인 팀을 슬쩍 구경함), 말리오보로 거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시원한 장소를 찾아서 정착한 곳이 말리오보로 몰.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여유를 부리다가 호텔로 돌아와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