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와 콜버그와 비고츠키가 뒤죽박죽인 내 머릿 속에서
이 글을 읽는데 왜 눈물이 날까.
“우리가 자제력을 훈련함으로써, 그리고 쾌락의 실천에서 자제함으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상태는 자유와 유사한 특징을 지닌다. 욕망과 쾌락을 지배하는 것이 이 정도로 중요하다고 할 때, 그것의 활용이 그 정도로 중요한 도덕적 관건이 된다고 할 때, 그것은 태초의 순수함을 유지하거나 되찾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롭기 위해, 그리고 계속 자유로운 상태로 있을 수 있기 위해 그런 것이다...(중략)...그러나 개인적 자유가 자유의지의 독립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마주 대하고 있는 것, 그것이 대립되는 극점은 자연적 결정주의도 전능의 의지도 아니다. 그것은 노예 상태 - 자기에 대한 자기의 노예 상태이다. 쾌락에 대해 자유로운 것, 그것은 쾌락의 종이 되지 않으며 쾌락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이다...(중략)... 이 자유는 비노예 상태 이상의 것이며, 개인을 외적 내적 구속으로부터 독립시켜 줄 해방 이상의 것이다. 가장 충만하고 능동적인 형태의 자유란 사람이 타인들에게 행하는 권력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권력이다. “ 푸코. 성의 역사 2권.
180610
길든 짧든 사람이 깔끔하게 사는 건 쉽지 않겠지만, 자신에 대해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길라잡이다.
어제부터 콜버그 논문과 씨름하고 있는데 콜버그는 듀이, 피아제, 롤즈의 영향을 받았다. “정의”를 최고점으로 인간의 도덕성 발달을 3수준 6단계로 정향하였다. 이거 교사라면 달달 외웠을 교육학의 기본인데, 우리의 비극은 콜버그에 대해 이거까지만 배운다는 거다.
콜버그는 그 후 길리건이나 프리드만, 나딩스 등과 같은 여성주의 학자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는데 남성 중심적인 “정의”의 윤리로 여성의 경험에 근거한 “배려”의 윤리를 소외시킨다는 것이다. (무려 이게 70년대 얘기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란다.)
그외에도 도덕적 판단능력이 바로 도덕적 행위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비판, 그에 따른 후속 연구, 그리고 확인 인정했다. 그리고 후기 콜버그는 전향했다. 그후 그의 제자들은 정의의 윤리와 배려의 윤리를 함께 말하고 있고 배제하려고 했던 공동체의 영향을 더 강하게 끌어와서 “정의공동체”를 실제 학교를 세워 실험하고 연구했다. 우리가 콜버그를 배운다면 후기 콜버그를 배워야 한다. 아니, 청년 콜버그가 철저하게 형식주의자로 왜 교화주의를 배격하려고 했는지부터 이해했어야 했다.
나의 무지했음을 깨달으며 언제나 비판은 자신을 향한 것이 된다. 콜버그를 보며, 푸코를 보며, 그리고 들뢰즈의 죽음을 보며 자기 자신에게 철저했던 그들을 보며, 깔끔하지 못했고 또 계속 그럴 거 같은 나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