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공사
권자이
허물고 고치는 것은 새로워지기 위함이다. 내 직업상 한 인테리어 사장님과 강산이 거의 두 번쯤 바뀔 세월만큼 오랜 인연을 해왔다. 긴 세월 인연을 이어온 데는 이유가 있다. 일처리 능력이며 가격대가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될 만큼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 그러니 임대하는 집들도 세입자 불편사항 설명만 듣고 내가 가서 직접 확인하지 않고 사장님께 부탁한다. 살고 있는 집도 삼십 여년이 다되어가니 그동안 두 번이나 보수공사를 했다.
분양받아서 10년은 세를 놓고 세입자가 나가고 내가 들어오는 시간이 촉박해서 겨우 도배만하고 들어왔다. 살다보니 손을 봐야 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큰맘 먹고 보수공사를 하기로 용기를 냈다. 마침 제일 위층이라 세간 살림을 옥상 오르는 계단코너와 앞뒤 베란다로 옮겨 놓고 시작했다. 세간 살림이래야 별것 없다고 생각했다. 흔히 있는 장롱, 소파, TV, 피아노 이런 등치 큰 물건이 없으니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들어 내놓고 보니 잡다한 것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단순하고 소박하게 산다고 생각했던 것에 스스로 부끄러웠다. 정리 한다고 했지만, 혹 쓰임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선뜻 버리지 못했다. 그러자니 창문은 손을 대지 못했었다. 문풍지 역할을 하는 털이 삭아서 열고 닫을 때 마다 가루가 폴폴 날고, 바람이 세게 불 때면 덜커덩 거리는 소리가 몹시 거슬렸다. 그래도 살림을 두고 한다는 것이 처음보다 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벼르고 벼르다가 창문은 이틀만 하면 된다기에 몇 해 전 ‘에라’ 한 번 더 큰 맘을 먹게 되었다. 하고나니 벼르고 걱정한 것에 비하면 오히려 어렵지 않았다. 생각이나 상상이 몸으로 움직여 해나가기보다 더 힘들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이후 같은 아파트 지인들은 나와 비슷한 경우니까, 집을 한 번도 손대지 않고 버텨 오던 사람도 내 집을 보고 인테리어 하는 분 소개를 부탁 했다. 이러다 보니 너도나도 몇 년 동안 여러 집들을 소개해 주었다. 후사에 따르면 다들 가격대나 일 처리능력에 만족해서 나도 등달아 기분이 좋았다. 두어 달 전쯤엔 옆 라인에 사는 일흔쯤 된 아줌마가, 마주치면 안사정도만 나누는데, 그분도 어디서 들었는지 사장님 소개를 부탁했다. 무릎인공관절 수술을 해서 자녀분들이 집을 보수해 주기로 했다면서 딸 연락처를 주었다. 사장님께 보내 주었더니 바로 공사에 들어갔다.
난 그 후로 여느 집들처럼 잘되어 가겠지 여겼다. 공사 들어갔다고 듣고 한 3주쯤 지났을까 사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처음 자재선택부터 힘이 들었지만 이런저런 사람 다 겪은 터라 좋게 받아들였단다. 이제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 일주일 정도만 더하면 되는데, 일을 더 이상 진척 할 수가 없다 고했다. 도배장판, 싱크대, 중문, LED등 이런 것만 남은 상태였다. 이유는 처음 계약 당시보다 단가가 훨씬 높은 것을 그 가격대에 해 달라고 우기거나, 자신들 눈으로 고른 색상을 몇 번씩 바꾸고, 엄마와 딸의 취향과 의견이 달라 난처하니 나에게 도와달라는 것이다. 소개해주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사장님은 이제 오십대 초반이니 아줌마 딸 나이와 비슷하다. 평소에 예의바르고 정직한 분이라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할 때는 상황이 좀 심각하다고 느꼈다.
현장에 막상 가보니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바꾸거나 수정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싱크대도 와있고, 중문도 끼우기만 하면 되었다. 벽지는 일부 풀칠해서 가져다 놓고 일부는 도배지와 풀칠하는 기계를 대기시켜놓았다. 아, 이런 상태에서 도배지와 싱크대색상이 현장에서 볼 때와 집에 와서 보니 매치가 안 되고, 중문은 유리가 너무 어두워서 안 되니 바꿔 달란다. 일을 중단 시켜 놓았다. 일하러 오신 분들은 서로 쳐다보며 말없이 입맛만 다셨다. 참 난처한 노릇이다.
엄마나 딸이 똑 같았다. 내 주장만 늘어놓지 자신이 뭐를 잘못하고 있는지 자체는 알 생각조차 없었다. 욕심만 앞서니 상대방 말은 전혀 귀에 들리지 않는다. 아니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집으로 오면서 생각하니, 집도 오래되면 비용도 들고 힘도 들지만 고쳐야하고, 몸뚱어리도 그 집 아줌마 무릎처럼 닳으면 보수해야한다. 이런 것은 비용만 지불하면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고도 단기간에 고칠 수 있어 어렵지 않다. 물론 몸뚱어리 보수공사에는 후유증도 따르고 고통도 동반한다.
그럼 우리의 의식인 마음은 언제쯤 보수공사를 해야 할까? 예순이 되면 백세 인생에 반환점을 돌아왔다. 집이나 몸뚱어리에 비해 쌓아온 습(習)인 관념을 허물고 고치는 것은 엄청 더 어렵고 긴 시간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 바퀴 돌아온 세월이 있는데 뼈대야 허물 수 있겠는가. 그것은 두고라도 낡은 관념은 과감히 허물어 본다면 마음은 자유롭고 세상은 새롭지 않을까. 이럴 때면 비로소 노인이 아니라 어른이 되겠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주의를 봐도 노인은 많으나 어른은 드물다.
돌아보니 나 역시 어느덧 한 바퀴 돌아온 세 살이다. 이제는 그들 모두가 나에겐 거울이다. 이제부터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과감히 허물고 고쳐야 한다. 어른으로 태어나기위해서.
첫댓글 ㅎ ㅎ
오늘도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해봤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