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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조장단
이홍사
도둑이 많은 세상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참으로 험한 세상이 되었다. 이젠 훔치다가, 훔치다가 별의별 걸 다 훔쳐 가는 도둑이 공공연하게 활개를 치는 세상이다.
도둑놈들이 늘린 세상이니 문단속을 잘하고 언제나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 특히나 지적 재산권은 함부로 보관했다가는 큰 낭패를 당한다. 논문도 마찬가지다. 먼저 발표하는 놈이 임자다. 뉴스를 보면 논문 표절이 심상찮게 올라온다. 그건 유명인이나 정치인들에 한하여 올라오는 것이니 일반인들 사이에는 얼마나 많이 팽배하고 성행할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문제다.
도둑놈뿐만 아니라 더러는 도둑년도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자신이 도둑이라고 자백하는 년, 놈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밉지 않은 도둑도 있다. 그러고 보면 집에 있는 딸, 셋 모두가 도둑들이다. 얘들은 상습범에 해당한다. 수시로 내 가슴을 열고 사랑은 꺼내 가는 도둑년들이다. 비록 도둑을 맞았지만, 상실감은 없다. 도리어 자꾸 도둑맞고 싶은 물건이 사랑이라고 했던가. 가족끼리는 뭐 나누는 거지, 도둑이라 할 것도 없는 이치다. 열어놓은 터이니 다 가져가거라.
남의 슬픔을 훔쳐 가는 도둑이 있다.
세상에, 뭘 훔칠 게 없어 남의 슬픔을 훔쳐 가는지 모르겠다. 슬픔이라는 물건은 나누면 반으로 된다고 했던가? 남의 슬픔을 훔쳐 가서 무엇에 쓰려는지 모르지만, 그런 도둑은 홍길동과 같은 의도에 해당하는가. 그러나 불행한 일은 슬픔을 통째로 도둑을 맞아도 그 주인이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이건 분명 슬픈 일이다.
슬픔 도둑에게 전화를 넣어 진상을 알아보고 싶다.
그런데 도둑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모르는 건 그것뿐이 아니다. 도둑놈인지 도둑년인지조차도 모른다.
슬픔을 훔쳐 가는 도둑은 남의 초상집이나 큰 병원의 장례식장에 가면 수지가 맞겠다. 그곳에 늘 슬픔이 가득하니까, 아니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장례식장이 슬프지 않다면 어느 곳이 슬픈가? 초상집에서 우는 사람 중에서는 가식의 울음을 눈물로 보이는 자도 있을 터이다.
분명, 그런 사람도 있겠지.
이혼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덜컥, 불의 사고로 죽었으니, 얼마나 좋겠는가, 완전히 울고 싶은데 뺨을 맞은 격이지. 덕분에 재산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넘어오고,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나겠지. 우는 시늉만 어설픈 연극처럼 하겠지. 덕분에 하나를 배웠다. 초상집은 반드시 슬퍼야 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슬픔 도둑아. 내 안에서 수시로 이는 이름 모를 서러움도 좀 훔쳐 가거라. 소리를 치니, 멀리서 대답이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그건 안 된단다.
왜 슬픔과 서러움은 한 사촌쯤 되는 친인척이 아닌가? 슬픔 도둑은 서러움은 취급 품목이 아니라고 했다.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감정이라고 했다. 서러움이란 슬픔과 성질이 다른 것이라 했다. 서러움이란 물건은 남들이 가져가지 않고 폐기처분 하려면 오히려 서러움이 담긴 봉투에 돈이나 붙여서 내놓아야 하는 물건이란다.
내 가슴에서 수시로 이는 서러움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인 모양이다.
서러움과 슬픔을 어떻게, 무엇으로 구분하는가. 서러움은 내 안에서 오는 내적 요인에서 발생하고, 슬픔은 외부의 충격으로 받는, 외적 요인에 의해서 오는 것이라고 했다.
며칠 전, 보도를 보았다.
폭염 속 깜빡, 차에 둔 아들 숨져, 아빠는 극단적 선택, 이라는 제목이 실렸다. 보는 순간 가슴이 찌릿했다. 그 기사를 끝까지 읽지 않고 얼른 다음 장으로 넘겼다. 읽지 않아도 내용은 알 것 같았다. 충분히 상상이 가능한 사건이다.
정말 슬픈 일이다.
슬픔 도둑에게 묻고 싶었다.
농도가 짙은, 이런 슬픔은 상품 가치가 높은지. 그걸 묻고 싶다. 이런 슬픔도 삭고 삭거나, 쉬어 터지면 서러움으로 성질이 변하지 않을까. 아, 말을 하다 보니, 이제 대충 알겠다. 슬픔이 상해서 서러움이 되는 것이니, 슬픔에서 품질이 상해서 값어치가 떨어져 내다 버릴 때도 오히려 쓰레기봉투를 사서 담아서 버려야 하니 돈이 든다고 했던 모양인데, 슬픔 도둑이 한 말이 이제 약간 이해가 된다. 슬픔을 버릴 적에는 방부제를 넣어 품질이 상하지 않게 해서 버려야 하겠다.
슬픔 중에서도 돈이 되는 삼빡한, 슬픔이 있고, 좀 진부해서 신선도가 떨어지는 슬픔도 있는 모양이다. 젊은 연인들이 헤어지는 건 전자에 해당하고 노인의 사별은 당연한 거라서 후자에 해당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너무 단순한 논리인가?
아무래도 슬픔 도둑은 슬픔의 신선도와 품질에 가격을 매기는 모양이다.
도둑에게도 배울 게 있다. 무릇, 배움은 사방에 늘려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둑에게 배운 건 도둑질이 아니라, 곰삭은 슬픔이 곧 서러움이라는 명제다.
슬픔에 슬픔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살점은 없고 골격만 남은 슬픔이 아닐는지, 그렇게 짐작하지만,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슬픔의 골격을 바라보는 일은 더 처량하고 더 슬프다.
그렇게 말을 하지만 나는 아직도 모른다.
7200원짜리 슬픔과 8400원을 받는 슬픔의 품질 차이를. 하지만 슬픔 도둑은 그 차이를 한눈에 선연히 알겠지. 자신이 전문으로 취급하는 물건이니까. 내가 모르는 건 그것뿐이 아니다. 슬픔 도둑은 슬픔을 훔쳐서, 다른 곳에 도매로 넘기는지 그런 물건에 장물아비가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갑자기 궁금하다.
비싼 슬픔이 더 달콤한지?
한 봉지에 8400원이나 받는 슬픔의 도매금은 얼마이며, 얼마나 달콤할까?
몹시도 그리운, 사랑하는 이를 몹시도 그리워하는 내 슬픔은 얼마짜리인가? 혹시 그런 건 맛이 비릿한 싸구려는 아닌가? 이렇게 진하게 슬픈데 싸구려라면 그것도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아마도 맛에 격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격조 높은 슬픔이란 어떤 것일까?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아마도 고품격 제조기로 만든 슬픔일 거다. 그런 고품격 제조기는 어디에서, 누가 만들까?
아직은 슬픔 도둑을 대면하지 못했다.
어느 고을에 살고 있는지, 누구인지 모른다.
돋보기를 들고 도둑의 발자국만 살피고 있지만, 다음에 만나면 궁금한 점을 추궁해서 낱낱이 알아내고 말 터이다. 나에게 슬픈 일이 생겼다. 생각하면 분명 슬픈 일이다. 이게 슬픔 도둑이 지닌 잣대로 재면, 얼마짜리 슬픔인지는 모르지만, 어젯밤 마당에 내려앉는 달빛 세 평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도난당한 것이다. 견물생심이라고 잘 익혀서 마당에 늘어놓은 달빛,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는 내 잘못도 인정하지만, 지킴이 열 놈이, 한 도둑을 못 지킨다고 훔치고자 마음먹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댄 놈의 죄가 더 크다. 달빛이란, 아무나 훔쳐 가는 물건이 아니다. 누구의 소행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달빛 도둑.
너 잘 결렸다. 오늘 경찰에 신고하면서 좀 부풀려서 잘 익은 달빛, 다섯 평을 도난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는, 경찰의 말에 용의자를 어렴풋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달빛을 훔쳐 가서 어디에 쓰겠나? 장난이겠지.
경찰은 내가 한 말을 기록하면서 그렇게 혼잣소리로 말했다.
모르는 소리다.
잘 익은 달빛을 프라이팬에 튀기면 노란 계란말이가 되어 나온다. 그게 내가 일용할 양식이다. 그런 달빛은 훔쳐 가는 놈은 죄질로 미루어 엄하게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달빛을 훔쳐 간 범인을 잡더라도 달빛을 돌려받을 수가 있을까? 혐의가 짙은 달빛 도둑은 공무원이다. 도청에 근무하고 있다. 공무원이 남의 달빛을 훔쳐 갔으니, 절도범으로 죗값을 치르면 공무원에서 잘릴 수도 있다.
그 자식이 달빛을 훔쳐 가는데 사용한 차도 폐차가 될 것이다.
달빛 세 평이면 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겠지만 부피가 커서 그 자식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래도 봉고차나 1톤짜리 트럭을 빌렸을 것이다. 잡히면 그 차도 무조건 폐차다.
우리나라 현행법은 범죄에 이용된 차는 무조건 폐차 처분하도록 규정되어있다.
그 규정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내 소유의 중장비가 폐차처분이 된 일이 있다. 아주 예전의 일이지만 내 소유의 그 비싼 대형 덤프트럭이 아깝게 폐차되고 나는 한동안 가슴앓이를 해서 분명히 기억한다. 당시에는 거의 새 차였는데 아무리 진정을 넣어도 살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범죄에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그 덤프트럭의 기사는 총각이었다. 애인을 데리고 와 차에서 놀았던가 보다. 그런 대형트럭은 운전석 뒤에 잠을 잘 수 있는 좁은 침대가 있었다. 거기서 무슨, 대단한 일을 벌였는데 이 애인이라는 처녀가 변심했는지 차에서 강간당했다고 신고를 해버린 것이다. 사건 경위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차는 내 소유였는데 결국은 폐차를 시켜야만 했다. 범죄에 이용된 차라고 폐차처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달빛을 훔쳐서 싣고 간 그 차도,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면 폐차가 될 것이다.
달빛을 훔쳐 갔다는 것을 나는 어젯밤에 바로 알았다. 마트에 잠깐 다녀오는 사이에 훔쳐 갔다. 그는 어쩌면 완전범죄를 꿈꾸었는지 모른다. 뒤숭숭한 꿈자리를 달래기 위해 슬리퍼를 끌고 골목 앞 마트에 가서 만 원에 네 통을 주는 캔맥주를 사서 들고 들어오다가 달빛이 사라졌다는 걸 발견했다. 달빛을 걷어 간 빈자리는 보기에 흉흉했다. 흉흉한 빈자리를 보고 단박에 녀석을 떠올렸다. 경찰서에 바로 신고를 했는데 경찰은 오늘 낮에 왔다. 훤한 대낮이라 달빛이 없어진 빈자리를 아무리 설명해도 경찰은 알아듣지 못했다. 참말로 답답했다.
이 못된 자식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달빛 도둑이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떻게 청년기를 보냈는지, 어떻게 해서 공무원이 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이 자식은 참 느리게 산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 늦은 장가를 들었다. 그렇게 느린 자식이 달빛은 후딱, 잽싸게 훔쳐 갔다.
혹시, 속닥하게, 라는 말을 아는가? 경상도 방언인데 우리가 어릴 때는 이 말을 참 많이 썼다. 설명하자면, 은밀하면서 돈독하게, 남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스러우며 분위기 좋게, 은밀하면서 다정하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아무튼, 도둑이 달빛을 걷어 갈 때,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속닥하게 걷어갔을 것이다. 그때는 분위기가 좋았겠지만, 이제는 처벌받을 일만 남았다. 내가 다섯 평이 없어졌다고 했으니, 물어내더라도 다섯 평을 물어내야 한다.
달빛 도둑은 고등학교를 특별한 학교를 나왔다. 그 학교에 다니면 학비는 전액 면제다. 그 학교에 들어갔다고 하면 사람들 인식에, 품행이 방정하고 학업성적이 우수한 놈으로 분류된다. 당시에 그 학교가 그렇게 인기였다. 학비가 전액 면제인 대신 졸업하면 부사관으로 오 년이나 군대 생활을 해야 하는 학교였다.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대부분은 부사관으로 장기근속 지원을 해서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보낸다. 그런데 녀석은 의무기간인 오 년을 간신히 채우고 바로 제대했다.
뭐 먹고 살려고 제대를 했나?
녀석을 보는 사람마다 물었다.
대학에 가려구요.
그 학교를 나온 학생들은 기본 성적이 있기에 대부분 군 생활을 하다가 영외 거주자가 되면 어떻게 들어가든, 야간 대학을 등록해서 다녔는데 이 녀석이 근무한 곳은 대학이 없는 오지의 부대였던 모양이다. 군인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닌 어중간한 실업자일 적에 이 녀석을 만났다. 녀석은 허무주의자, 혹은 염세주의자, 도스토옙스키이거나 체호프의 말을 흥얼거리거나 흉내를 내며, 마치 인생을 다 산 놈처럼, 누추한 눈길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실직자 시절이었다.
이듬해 녀석은 지방의 따라지 대학에 들어가서 사진을 전공했다.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는 예술, 빛의 미학이라고 떠벌렸지만, 나는 곧이듣지 않았다.
예술? 좋아하네.
무슨 사진전에 출품해서 상을 두세 번 받더니, 녀석은 졸업하고 사진 기자 신분으로 언론사가 아닌 시청으로 들어가 공무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시청 홍보실에 들어간 녀석은 사진은 찍지 않고 시장 연설문을 대필하고 있었다. 홍보실에서 시장 연설문을 쓰는데 마땅한 인물이 없었든지, 아니면 있더라도 시장 취향에 맞지 않는 연설문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대필하게 된 모양인데, 그 길로 쭉 빠졌다. 사진은 어쩌다 찍고 늘 틀어박혀 연설문만 썼다, 녀석이 그런 연설문을 쓰기에 탁월한 재주가 있다는 걸 몰랐다. 시장의 총애를 받으며 연설문을 쓰다가 시장이 도지사에 출마해서 당선되자, 도청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겼다. 지금은 그 도지사가 없다. 바뀌었지만, 녀석은 도청 홍보실에 남아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지만, 월급은 받는 모양이다.
내 달빛을 훔쳐 간 이 자식은 도벽증이 있다는 걸 나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다른 물건은 손을 안 대는데 달빛만 보면 환장을 한다. 언젠가 이 녀석과 신라까지 탑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술을 마시다가 탑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 누군가 보러 가자고 해서 무작정 일어섰으니 오밤중이었다. 탑 주변에는 노란 달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달빛이 참 맛있겠다.
같이 간 누군가 혼잣말을 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녀석은 잔디밭에 내려앉은 호떡처럼 두터운, 달빛을 북 찢어 생으로 꾹꾹 씹어 먹었다. 탑을 돌아보고 돌아올 적에 주위를 살피더니 또 달빛을 북 찢어 매고 간 가방에 쑤셔 넣었다.
남의 달빛을 그렇게 손대면 천벌 받을 건데?
역시 훔쳐 먹는 게 더 맛있어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 녀석은 돌아올 적에 차 뒷좌석에 앉아 가방에 든 달빛을 조금씩 떼어서 씹으며 말했다.
난 달빛만 보면 막 훔치고 싶어요. 훔칠 적에 얼마나 짜릿한지 오르가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누가 들으라고 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참 느리게 말했다. 녀석은 참 느리게 산다. 얼마나 늘어지는지 완전히 진양조장단이다.
말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생각조차도 느리다. 모든 것이 느린 녀석은 마흔이 넘어서 장가를 갔다. 장가를 갔으니 자신 있게 하는 말인데, 녀석은 조루증이 있는 건 아닐 것으로 짐작이 간다. 조루증이라는 단어는 녀석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느려터져서 군대 생활은 우째 했노?
적성에 맞지 않아서 제대했잖아유?
한 박자 늦게 나온 대답이다. 하도 느려터져서 그에게 뭘 물으면 예, 아니요, 짤막한 대답이 나오도록 나는 유도형 질문을 해야 덜 답답하다. 가령, 너 그렇게 그렇게 했지? 그래서 그렇게 그렇게 할 생각이지? 이런 유도형 질문을 하면 속이 조금 덜 터진다. 하도 느려터져서, 누구는 진양조, 라고 부르기도 하는 녀석에게 배울 게 있다. 답답하지만 녀석에게도 배워야 할 일이다.
녀석의 장단에 맞추어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 이제는 진양조장단으로 살아야 할 나이다. 자진모리장단! 성격이 불같은 나는, 여태 자진모리장단에 맞추어 살아온 인생이다. 자진모리장단?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바로 그렇다. 그렇다, 는 말은 이제 과거형이 되어야 마땅하다. 이제는, 예전에는 그랬었다, 는 말이 나와야 한다. 그래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제는 내 인생도 정점을 찍고 하강 곡선에 들어섰다. 진양조장단. 나이가 들면 입은 무겁고 손은 가볍게 놀리라고 했거늘, 그 말을 늘 잊고 살았다. 생각하니 녀석이 사는 방법이 최선이 될 수 있다. 달빛 도둑을 다시 떠올리고 한 가지를 배웠다.
진양조장단을 사는 것이다.
그래 진양조장단에 맞추어 살자.
한 가지를 배웠으니 달빛을 훔쳐 간 걸 모르는 척, 눈감아 줄까?
경찰서에 전화를 넣어 가져간 달빛을 오늘 되돌려 받았다고 하면 그만이겠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은 달빛 도둑을 잡을 생각도 처벌할 생각이 없는 마음도 약간 있다. 잡히면 오랜만에 그냥 얼굴 한번 보는 것이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하면 법에서도 선처가 될 것이다. 진양조장단으로 살라는 삶의 지침을 던져주고, 마당에 늘린 달빛을 훔쳐 가는 것은 용서가 되는데, 내 체취를 훔쳐 간 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어디 훔칠 게 없어 남의 체취까지도 훔쳐 가나.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내 체취가 사라졌다. 손등에 대고 아무리 냄새를 맡아도 무덤덤하다. 혹시, 내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조인간인가? 내 몸에 아무런 냄새도 없다. 체취가 사라졌다. 누구의 소행인지 단박에 감이 잡힌다. 이 도둑은 놈이 아니라 년이다.
향기 도둑년이다.
내 체취뿐만이 아니라, 마당 귀퉁이에 만들어 둔 작은 화단에 핀 꽃의 향기도 몽땅 사라졌다. 그 향기뿐만 아니라 집에서 늘 나던 사람이 사는 향기조차 없어졌다.
여보! 집에 향기라곤 없어. 몽땅 도둑맞은 거야.
이 양반이, 뭘 잘못 먹었나?. 향기를 어떻게 훔쳐 가요?
모르는 소리, 향기를 훔쳐 가는 도둑이 있어.
향기라고는 집안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향기가 없는 집은 무미건조했다. 참 알뜰하게도 훔쳐 갔다. 내 코가 잘못되었나 싶어 옆집, 한의원으로 갔다. 담 밖으로 늘어진 대추나무와 석류나무 가지를 당겨서 향기를 맡아보니 분명히 싱그러운 잎의 향기가 났다. 석류는 이제 알을 맺고 있었는데 석류 냄새가 진하게 났다. 대추는 잎 사이사이에 대추꽃이 피고 있었는데 어쩌면 그게 꽃향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만 향기가 없어졌다. 장독대에서 풍기던, 간장이 숙성되는 알싸한 냄새도 없어졌고, 장독대를 받치고 있는 석축에 붙은 이끼의 습한 냄새도 없어졌다. 도둑맞은 게 틀림없다. 이건, 보나 마나 향기 도둑의 소행이다. 발칙하고 앙큼한 것, 내가 누굴지 모를 줄 알았겠지?
향기 도둑아!
지금쯤 발이 저리지 않니? 도둑이 제 발 저리다. 고 했는데 발마저 저리지 않다면 일말의 양심조차도 없는 도둑년이다. 남의 집 향기를 몽땅 훔쳐 가고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면 너는 처벌 받아 마땅하다.
향기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나는 화장실로 갔다. 그게 오늘 새벽이었는데 아랫배가 살살 아파 화장실에 가서 굵고 실한 똥을 누었다. 그리고 물을 내리지 않고 변기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았다.
우와! 지독하다.
다 훔쳐 갔다고 생각했지만. 내 뱃속에 들어있다가 나온 고약한 냄새는 훔쳐 가지 못했다. 그 냄새를 맡고 나니 종일 내 코에서는 구린내가 진동했다. 코를 씻고, 솜방망이로 코를 후볐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씻어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 지독한 냄새, 그 냄새를 너무 맡아서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현기증이 일었다. 현기증이 나중에는 두통을 동반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경찰서에 신고한다는 걸 깜빡했다.
향기 도둑은 여류소설가다. 수필도 쓰는 작가다. 어느 매체를 통해 수필가로 등단을 해서 수필집도 몇 권 낸 걸로 알고 있다. 수필가와 소설가 동시에 이름을 올리기는 곤란하며 난처하고 참 어려운 길인데 이 작가는 용하게도 겸업하고 있다. 수필이란 본디 허구가 가미되어서는 곤란한 장르다. 하지만 소설은 오로지 허구다. 그런 점을 잘 조절해야 하는데 어떻게 두 장르를 넘나들며 쓰는지 모르겠다. 이 두 장르는 도시락 안의 반찬통처럼 뒤섞이지 않게 엄격하게 분리해야 하는 데 작가의 사유와 상상력은 어떻게 장르를 엄격하게 분리하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참 유능한 작가다. 그녀는 수필가와 소설가 두 타이틀을 다 유지하겠다고 안간힘을 쓰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나는 회의적이다.
아무튼, 언젠가 그녀의 습작품, 냄새를 찾아서, 라는 작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그 작품은 수필이 아니라 소설이었다. 베트남에서 현지 여행 가이드를 하던 화자가 코로나로 인해서 여행객이 줄어드는 바람에 실업자 아닌 실업자가 되어 귀국했는데 인천공항에 내리는 순간, 후각이 마비되어 냄새를 찾아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소설이었다.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화자는 변기에서부터 프라이팬에 고기를 태우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냄새를 찾고자 했다. 심지어 여자를 사서 사타구니에 코를 박고 큼큼, 거리다가 따귀를 맞는 장면까지 신랄하게 묘사했다. 그 소설을 합평하는데 작자인 그녀가 나직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향기를 맡으면 나는 막 훔치고 싶어.
진심이 배어있는 목소리였는데 달빛 도둑과 같이 역시 견물생심이다. 솔직한 건 좋은데, 그때 그녀가 향기에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 후, 그녀가 어느 사이트에 글을 올렸는데 닉네임이 향기 도둑으로 되어 있었다. 아, 이 여자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생각하며 향기를 어떻게 훔치느냐고 구체적인 방법을 일러줄 것을 종용했다. 나도 좋은 향기가 있으면 훔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동지 의식을 느꼈는지 망설임 없이 소탈하게 밝혔다.
비닐봉지와 진공청소기만 있으면 간단하단다.
진공청소기로 향기를 빨아들인 다음, 압축해서 비닐봉지에 담고 비닐봉지 아가리를 야무지게 묶으면 사흘이 지나도 향기가 상하지 않는단다.
그건 알겠는데, 향기가 없는 집에서 종일 고약한 냄새가 코끝에서 진동하니 살 수가 없다. 현기증에 두통에, 심지어 픽픽 쓰러지기까지 했다. 향기를 훔쳐 간 도둑은 고의성은 없다고 치더라도 내 몸이 이렇게 망가지는 줄은 모를 것이다. 향기가 이렇게 중요한지 모르고 살았다.
진공청소기와 비닐봉지를 들고 어디를 가서 향기를 훔쳐 와서 집안에 풀어놓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내 보드라운 양심의 그늘에 가책이 느껴지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훔친 향기를 집안에 풀어놓으면 향기를 맡는 내내 죄의식으로 불편할 것이다.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해서 향기 도둑이 훔쳐 간 향기를 찾아오면 향기 도둑, 그 미모의 작가는 감옥에 갈지 모른다. 나는 향기를 훔쳐 간 도둑을 좋아한다. 탁월한 미모에 몸매가 단정한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 즐거운데 그녀를 감옥으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무미건조한 집안에서, 코끝에서 풍기는 이 고약한 냄새, 잠시라도 견딜 수가 없다.
어질어질한 가운데, 판단도 흐려진다. 인간은 이렇게 나약한 동물인 모양이다. 경찰서로 전화를 했다.
뭐라구요, 향기를 도둑 맞았다구요. 아 글쎄 그런 일은 그 동네에 새로 생긴 지구대에 가서 바로 신고를 하세요. 소상하게 말해야 알죠.
전화를 받은 경찰관이 말했다.
우리 동네에는 새로 생긴 지구대가 있다. 아무래도 그곳을 찾아가서 신고하고 향기를 찾아와야 하겠다. 향기 도독이 악의는 없다는 걸 알지만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아 신고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로 생긴 지구대는 구획정리 지구 저쪽 끝이니까, 걸어가기는 조금 멀다. 현관의 자전거를 꺼냈다.
가는 내내 코를 후비고 쑤시느라 한쪽 손으로 핸들을 잡고 페달을 밟았다.
향기를 훔쳐갔다구요? 그 고약한 도둑놈이군요.
키가 큰, 젊은 경찰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도둑놈이 아니라 도둑년입니다.
놈이든, 년이든 일단 접수부터 하고 조사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에 가서 기다리십시오.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경찰도 혐의가 뚜렷하다고 내가 주장하는 향기 도둑의 연락처를 적긴 적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는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었다. 그걸 적으면서 함부로 남을 의심하면 안 된다고 했다. 피해자의 진술에 너무 따르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고 했다. 그렇다. 어쩌면 향기 도둑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 또 다른 향기 도둑이 있을지 모른다.
지구대에서 집으로 오는 길은 살짝 내리막이다. 내리막이라 페달을 밟지 않아도 되니 콧구멍을 후비기가 수월했다.
아, 이 지긋지긋한 냄새,
냄새를 빼내느라고 콧구멍을 손가락으로 너무 쑤셨던지 손가락에 피가 묻어 나왔다. 코피였다. 코피임을 인지하는 순간. 쿵! 마주 오던 오토바이와 마주쳤다. 봉곡 네거리 모퉁이였다. 퀵서비스를 하던 젊은 청년인데 아마도 짬뽕을 배달하던 중이었나 보다. 짬뽕이 내 무릎에 쏟아졌는데 젊은 녀석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도로를 건너가는 여자에게 눈길을 주고 있었다. 긴 머리의 처녀였다. 길을 건너가는 여자는 아랫도리에 꽉 조이는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몸매가 고스란히 육감적으로 드러났다. 잘록한 허리, 알몸으로 걷는 것보다 더 선정적인 시선 도둑이었다. 젊은 녀석은 오토바이 사고가 났는데도 시선 도둑에게 도둑맞은 시선을 찾아올 줄 몰랐다. 녀석의 어깨를 툭, 쳤다.
야! 인마, 짬뽕 쏟아졌잖아? 이거 봐봐.
아! 아저씨 코피 나잖아요?
시선을 냉큼 찾아온 녀석이 말했다. 내가 괜찮다고 하고 보니 녀석의 시선은 또 처녀의 탱탱한 엉덩이에 가 있었다.
아, 세상에는 시선을 훔쳐 가는 시선 도둑도 있구나.
시선을 혹시 도둑맞을세라 후딱 눈길을 돌리고 자전거를 타고 내려왔다. 내려오는데 젊은 녀석이 오토바이를 돌려서 따라왔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연락처는 주고 가야죠. 나중에 뺑소니 신고하지 말고.
그런 걱정하지 말고, 눈이나 단속 잘하고 조심해! 요즘 시선을 훔쳐 가는 도둑이 많아.
녀석은 그때 가서야 짬뽕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 빈 그릇을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짬뽕을 다시 가지러 빨리 가야겠어요.
녀석이 가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내려오는데 콧구멍은 역시 역겨운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게 무슨 방법이 없을까?
이 자전거가 너무 빨리 달리는 거 아닌가? 진양조장단으로 산다고 했는데.
향기 도둑을 잡아 향기를 찾는 것도 한 발 늦추어야지.
콧구멍이 좀 답답하더라도 진양조장단으로.
진양조장단을 생각하자 자전거를 타고 올 수가 없었다. 그래, 진양조장단에 맞추자.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한쪽 손으로 코피가 나는 콧구멍을 끊임없이 후비고 있었다. 참말로 도둑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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