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기념주일 설교. 아들을 믿는 자에게만 영생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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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1일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주년 기념 되는 날입니다. 500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종교개혁가 루터가 카톨릭교회의 면죄부(免罪符, indulgence, 혹은 면벌부) 판매행위에 반발하여, 독일에 있는 ‘비텐베르크(Wittenberg, 작센안할트 주)성당’ 정문에, 95개 항목으로 된 반박문을 게시한 날입니다. 이 날을 종교개혁의 기점으로 봅니다. 발단은 루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개혁이 루터에 의해서만, 그리고 이 날 하루아침으로 종료된 것은 아닙니다. 종교개혁은, 무려 200여 년 동안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신앙 회복운동이었고, 수많은 종교 개혁가들의 수고와 희생이 뒤 따랐습니다.
루터가 95개나 되는 반박문을 써 놓은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4가지 주제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통해 카톨릭 사제들이 사죄권(죄를 사해주는 행위)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사제들의 이러한 행위는 참된 기독교 신앙에 위배 된다. 참된 의미의 회개(Repentance)는 신자들이 일평생 동안, 전 생애에 걸쳐 하나님께 진실하게 고백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연옥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교황이 관할 할 수 있다는 것을 반대하면서, 돈을 주고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 있는 영혼도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반박문 27조, “연보궤에 넣은 돈이 바닥에서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빠져 나온다고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니다”)
셋째, 인간이 지은 모든 잘못과 형벌을, 교황이 주는 면죄부를 통해서 죄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돈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신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이고, 면죄부를 사게 되면 저주 받을 것이다. 천국은 오직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넷째, 돈 보다 더 경건한 기도가 필요하고, 설교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당해야 한다. 불경건한 자들이 돈으로 하나님 나라를 살 수 있다면, 신앙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늘나라는 많은 고난을 통하여 들어가는 곳이다.
루터가 공개한 반반문의 내용이, 지금의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 당시에는 신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막강한 권세를 누리고 있던 카톨릭 교회와 교황의 권위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실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일이냐 하면, 군대의 위관급 장교가 참모총장 공관 정문에 군대 내부의 여러 가지 은폐된 가혹사건이나 의문사에 대해, 여러 가지 팩트를 제시하면서, 공개 해명 요구서를 붙인 경우이거나, 가장 힘이 세다는 국가기관의 말단 공무원이 조직 내부에 대한 핵폭탄급 비위 사실들을 대법원 정문에 공개적으로 붙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행동하면, 내부 고발자라고 해서, 조사 받고, 문책 받는 정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루터도, 자신이 공개한 반박문의 여파로 인해, 교회의 재판을 받고, 이단자로 낙인찍혀 처참하게 고문당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종교개혁의 도화선을 당긴 것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의 5대 외침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께 영광” 많이들 들어 보셨을 겁니다.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을 주장하면서 발견한 구절이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명확한 구원의 말씀을 알지 못했을까요? 당시에는 성경이 라틴어로만 기록되어 있었고, 성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카톨릭 사제들 뿐 이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성경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오죽 했으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을, “회개하려면 죄의 대가를 지불하라”는 말로 사용하면서, 무지한 성도들의 돈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악용하였습니다. 이러한 가당치도 않은 행위들이 1,500년 동안 거룩한 교회라고 불리워진 곳에서 부끄러움 하나 없이 자행 되어 왔습니다. 이 땅의 사람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교회라는 권력으로, 사제라는 권위로, 성도들의 눈과 귀를 막아 버렸습니다. 교회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길을 막고, 말씀을 변질 시켰기 때문에 루터와 같은 신실한 사람을 사용하신 겁니다. 종교개혁은, 사람이 주인 되었던 자리에 예수님을, 돈이 주인 되었던 자리에 말씀을, 건물 교회가 주인 되었던 자리에 성령을 제 자리로 복원시킨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었습니다. 우리가 종교개혁 이전의 세대가 아니고, 피와 땀으로 일구어 놓은 개혁 이후의 세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를 많이 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못지않게, 오늘 말씀 중에 3장 16절도 오직 믿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라는 말씀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아멘. 영생,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은, (오직)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들(끝까지 배척하고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진노만 있을 뿐입니다. 천국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이 아닙니다. 더더구나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미혹하거나 돈을 착취하기 위해 장사의 수단으로 천국을 이야기 하는 것은 사탄의 무리들이나 하는 작태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곳이며, 확실하게 존재하는 실체적인 장소입니다. 영생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이것 하나뿐입니다.
카톨릭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공로(선행)를 통해 구원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하신 주님의 고귀한 희생을 모독하는 일이며, 완전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이루심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천국을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으셨을 겁니다. 천국이 없다면, 심판도 지옥도 없을 겁니다. 요한복음 14장 47절에,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2천 년 전의 주님은 심판자가 아니라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럼,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무조건 다 구원해 주시겠다는 뜻인가요? 이어지는 요한복음 14장 48절에,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버리고, 믿기를 거부하면 영벌의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기준이기 때문에 이 사실은 결코 바꾸지 않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그날에,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반드시 구분하시고, 믿는 자는 영생을, 믿지 않는 자는 영벌에 처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구원의 문제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서 있습니다. 더 이상 흔들릴 여지를 주어서도 안 됩니다. “영생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 있습니다.” 아멘. 이 고백은 반드시 우리 생을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고백 되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하여 구원자 예수님을 많이 고백하시고, 많이 감사하십시오. 예수님만이 나의 영생을 책임져 주실 유일한 분임을 믿고, 고백하며, 기쁨으로 천국문으로 들어가는 00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제가 종교개혁이 20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말씀 드렸죠. 왜 이리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요? 교회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틀을 만든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왕족이나 귀족들 같은 기득권 세력이나, 이익집단 같은 저항세력도 있었을 것이고, 생각의 차이들로 인해 의견의 일치를 이루어내는 일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장로교의 표준이 되는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은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130년이 지난 1648년에야 의회를 거쳐 채택이 되었습니다. 이 신앙고백서를 만들기 위한 회의는 무려 7년 동안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다 이런 산고를 거쳐서 지금의 개신교 개혁교회들이 존재하는 겁니다.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이제는 외형적인 교회 개혁을 주장하기보다, 우리 각자의 내면의 문제를 짚어 보아야 합니다. 500년 전의 루터나, 칼빈을 지금 이 시대에 소환해서, 종교개혁의 역사를 수박 겉핥기식으로 살펴보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개혁이 과연 무엇인가? 더 세심하게는 우리 교회와, 내 자신이 종교개혁의 정신에 비추어서 무엇을 해 나가야 되는지를 점검하고, 결단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떤 개혁이든, 그 개혁이 실패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내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주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나를 중심으로 개혁을 이루어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생각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혁(변화)의 주체는 예수님 뿐 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개혁의 대상이 바로 나이며, 나는 죽을 때까지 주님으로 인해서 개혁(변화)되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혁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교회도 마찬 가지입니다. 교회(공동체)도 개혁의 대상이며,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 개혁 되어져야 합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 모든 성도는, 오늘도, 내일도, 영원토록 개혁(변화) 대상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종교 지도자라고 하여도, 예수님 이외는 개혁의 주체, 곧 자라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개혁의 주체로 생각하고,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만이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말하기를, 우리 주님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엡 4:12) 하신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어느 수준까지 온전하게 하시냐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범사에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도록”(엡 4:13,15) 하신다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도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벧후 3:17,18)고 했습니다. 영생에 들어갈 유일한 수단인 믿음은, 계속 자라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변화)에 전혀 무지하고 둔감한 사람은, “나는 다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교만함이 가득 찬 사람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무관심과 게으름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는 성숙하지 못한 신앙을 일컬어, 초보신앙, 젖먹이 신앙, 야채만 먹는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자라나지 않으면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되고, 알곡 없는 쭉정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연기 자중에 발음도 잘 안 되는 사람을 캐스팅 하는 pd는 없습니다. 시장에 가서 시들시들한 야채를 골라 담는 주부는 없습니다. 시합에 출전할 운동선수 선발을 하는데, 기본기도 안 되어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감독도 업습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된 사람, 믿음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사람, 개혁의 주체인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능력과 지혜를 계속 공급 받기를 원하는 개혁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 교회를 돌아보시면서, “여기는 개혁이 끝났나 보네, 더 이상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려는 대상이 하나도 없네, 다른 교회로 가봐야 겠네” 이렇게 판단하신다면, 참으로 슬픈 일일 겁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왕에 우리가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 받고, 자랑스러운 00교회의 성도로 생활해 나가고 있다면, 오늘보다 내일을, 내일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내 자신이 큰일을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무얼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 교회를 개혁의 대상으로 만들고, 내 자신이 개혁의 대상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아주 현실적인 일들을 하면 됩니다.
첫째, 이 세상 그 무엇보다 00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자주 만나기를 원하게 되고, 사랑이 식으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서 만나기를 꺼려합니다. 00 교회는 우리를 제일 많이 사랑해 주시는 주님께서 머리가 되셔서, 주인으로 머물고 계시는 곳입니다. 이렇게 사랑 받고 있는 00교회 예배당이 주일 예배 시간에만 잠시 왔다가는 ‘게스트 하우스’가 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한 주간 내내 목사 홀로 덩그러니 놓인 의자들을 보면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게 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누가 돌봅니까? 사랑 받고 있고, 개혁의 대상인 성도들이 주축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그 성도 중에 저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개혁의 주체인 예수님이 머물러 계시는 00교회를 자주 찾아와서, 주님께 사랑고백을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외롭게 하지 마십시오. 오고 가시면서 한번 씩 둘러보시고, 열심을 내서 이곳저곳을 청소하며 가꾸는 일에 봉사하는 손길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반드시 예배의 성공자가 되십시오.
예배의 시간은 그 어느 시간보다도 개혁에 가장 필요한 시간입니다. 예배에 성공 하려면, 우선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개인의 예배 시간도 가지고 계시겠지만, 교회가 공적으로 정해 놓은 예배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주일 오전 예배만 공적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주일 예배를 포함하여 주일 오후 찬양 예배,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교회학교 예배, 구역기도회, 가정기도회와 개인기도 생활, 특별집회(철야기도회, 금식 기도회) 등을 예배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들은 최대한 시간을 내어 적극적으로 참석해야 합니다.
참석하는 것이 제일 우선이라면, 그 다음은 어떻게 예배를 드렸느냐가가 성공한 예배의 갈림길이 됩니다. 아무리 많이 참석해도,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참석에 의의를 둔다면, 예배의 성공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준비된 마음가짐으로 참석하고, 찬양과 기도와 말씀을 들을 때 영적 전쟁을 하면서 얼마나 집중하는 가에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예배의 성공 없이는 어떤 믿음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시고고,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의 성공자가 되십시오. 그렇게 예배에 성공해 나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외면과 내면에 놀라운 믿음의 성장이 일어난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실 겁니다.
셋째, 말씀을 눈에서, 손에서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예수님은 말씀 자체 이십니다. 말씀을 멀리하는 사람은 주님과 거리를 두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은 주님의 인도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배와 더불어 말씀은, 믿음의 성장, 특히 내 자신의 내면의 개혁을 이루어 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입니다. 말씀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말씀이신 주님이 인도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씀이신 주님이 주시는 한량없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면, 다른 것에는 관심이 사라집니다. 없는 시간도 만들어서 말씀 읽고 묵상하는 것을 즐겨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말씀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귀찮고, 아무리 읽어도 단 기간에 무언가 얻어 내지 못하게 되면, 짜증이 나다가 결국 포기하게 됩니다. 그렇더라도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작년부터 계속 되고 있는 주간 성경 읽기에 현재까지 참여하고 있으신 분은 개혁을 이루어 가고 있으신 분들입니다. 입에 침에 마르도록 칭찬을 해 드려도 아깝지 않습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인원이 동참하시기를 바라고, 정해진 이런 기회를 통해서라도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에 적극 참여 하십시오. 순종함으로 동참해 보시면, 말씀이 주는 유익이 어떤 것인지 크게 깨닫게 되시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넷째, 하루도 빠지지 마시고 기도에 힘쓰십시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영혼이 숨 쉬는 것이 중단되고, 메말라 가고 피폐 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이 영혼의 죽어간다는 것은 치명적인 병을 앓는 경우입니다. 성경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 2천년 기독교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들, 그리고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다 탁월한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님이 가장 훌륭한 기도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셨습니다. 제가 연말을 준비 하면서 기도의 두 가지 제목을 드렸습니다. 잘 하고 계시죠? 기도로 한 해를 마무리 하시고, 내년에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정해진 기도의 시간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결심을 해 보십시오. 기도가 주는 유익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습니다. 평안과 기쁨, 그리고 범사에 형통함이 기도를 통해 옵니다. 기도를 통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차고 넘치게 채워 주실 겁니다. 내년에는 00교회 모든 성도가, “하루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먹지도, 마시지도, 놀지도, 잠을 자지도 아니하리라”는 새로운 각오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자, 네 가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교회사랑, 예배의 성공자,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생활입니다.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도 계속 강조 되어온 말들입니다. 개혁(변화)이라는 것은, 말은 거창 한 것 같아도, 제가 누누이 강조하는 것처럼, ‘기본에 충실 할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단 한 번에 모세와 엘리야와 바울이 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도우시게 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게 서서히 변화되어 가지만, 어느 순간 큰 믿음의 거인으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 개혁의 주체이신 우리 주님 이십니다.
오늘 설교 제목처럼,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종교 개혁가들이 붙들었던, 변하지 않는 이 진리의 말씀을 여러분들도 꼭 붙잡으시고, 여러분 평생에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는데 안주하거나 중단하지 마시고, 교회사랑, 예배, 말씀, 기도의 개혁을 반드시 이루어 가셔서, 00교회의 큰 일꾼으로 쓰임 받으시고, 세상에 나가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날마다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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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500년 전에 종교개혁이 있게 하셔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진리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심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우리 자신들의 내면의 개혁을 이루어 가고자 하오니, 우리의 나태하고 게으른 신앙을 일깨워 주셔서, 개혁의 주체이신 예수님만 바라보며 일평생 주님만 따라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시고, 천국 가는 그날 까지 믿음에 믿음을 더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