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의 고집
최 병 창
빗물이 녹아내리는
토방마루에
빗물보다 더 강한 빗줄기가
사전 통고도 없이
지붕에서 마구 쏟아져 내린다
절박한 개미들은
문틈사이로 이리저리 물살을 피했고
빗줄기를 피하지 못한 나는
개미보다 못한 채로
멍청하게 서서 비를 맞는다
우려를 피하지 못한 비는
비의 잘못이 아닌 듯
불편한 마음은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목구멍으로부터 빗물이
바짝바짝 마르고 푸른 줄기들은
생기를 아는 듯 모르는 듯
그 고집 아무래도 만만치가 않다
어느 만큼에서 비가 멈출까
고집을 내려놓지 않는 빗줄기아래
정지된 얼굴은 더 숙성한 듯
긴 터널에 접어들었다
빗줄기 그들만의 신전처럼
이젠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오늘에야
내 나이를 아는 것 같았는데
무심하게 지상을 보듬는 소리
빗줄기만의 잔치 속에서
또 하나의 그림을 그려본다
거침없는 빗줄기 소리 하나로.
< 1996. 07. >
해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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