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회사행사로 북한산 등산을 하였다. 3년전 매주 일요일 등산하던 코스였다.
올라가는데 그때는 굉장히 힘들고 멀어 보였는데 어제는 아주 기분이 상쾌하고 가까워 보였다. 산이 바뀐걸까?
내려올때는 일부러 뛰어서 내려 왔다. 무릎에 무리도 없었다. 내몸이 바뀐걸까?
오늘 아침 기분이 매우 상쾌하다.
내 나이 스무살인 20년전 어느날 제53회 동아마라톤대회일.
TV중계방송을 시청하면서 달리는 건각들의 외로운 투쟁에 순간적으로 매료를 느껴 언젠가는 나도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 보겠다는 생각이 있은지 20년후 내 나이 불혹에 제73회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드디어 완주를 하였다.
멀고도 먼 대장정이었지만 그리 힘든 것만은 아니었고 달리는 내내 기분이 아주 상쾌함을 만끽했다.
그 날은 누구보다도 나에겐 뜻깊은 날이었고 다시 찾은 건강을 확인하는 날이었기에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30대 중반까지 건강을 자부하던 나는 그동안 운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여러가지 사정 내지 핑계로 실천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왔다.
고작 회사에서 실시하는 등산 또는 각종 모임에서 하는 체육대회에 참가하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3년전 체중이 평소보다 10Kg 이상 빠지고 늘 피곤한 증상이 계속되어 종합건강진단을 받은 결과 어머니와 똑같은 당뇨병이 있다는 것이 판명되어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1999년 4월 22일 혈액채취 검사 결과 공복시 혈당이 228mg/dl, 식사 2시간후 혈당이 584mg/dl으로 굉장히 높아져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로 상당히 심각한 상태까지 갔었다.(참고로 정상인의 혈당은 공복시에 80~120mg/dl, 식사 2시간후 140mg/dl이하의 수치가 나온다.)
결국 입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 매주 일요일 등산을 하고 식이요법 및 약물요법을 하니 3개월후 여름휴가때 정상인과 비슷한 수치가 나와 어느 정도 치료가 된 것으로 알고 잠시 건강을 소홀히 하다 보니 약물치료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 해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식사 2시간후 혈당이 300mg/dl에서 오르 내리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 등산도 하지 않게 된 것도 한가지 원인이었다.
당뇨병환자의 한가지 중요한 주의사항이 있는데 이는 마라톤을 할 때도 나타나는 저혈당 증상이다. 그러니 끼니를 거르지 않는 식사습관 및 간식을 챙겨 먹어야 되는데 하루는 출근시간이 늦어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출근하였다가 점심식사 바로 전에 저혈당 증상을 겪어 아주 놀랜적이 있었다. 식은땀이 나고 허공이 돌아가는 것을 느끼게 되어 몸에 큰 이상이 있어 쓰러지는 줄로 착각을 할 정도였었다.
그 후에도 그러한 불안 증세는 계속 이어졌고 갈수록 더욱 심각하던 차에 2000년 9월부터 운동하기로 작정하여 동네에 있는 헬스클럽에 등록을 하고 런닝머신기위에서 하루에 약 30분씩 1주일에 3~4회 규칙적으로 달렸다. 그러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혈당도 내려가고 그러한 불안증세도 점차 사라지게 되는 것을 느꼈다. 11월부터는 심지어 1년 6개월간 복용했던 혈당강하제 약도 중지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2001년 들어 그렇게 건강이 호전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생겨 1년 동안의 연습기간을 갖고 2002년 동아마라톤 풀코스에 참가하기로 마음 먹고 작년 3월 1일 SAKA 3.1절 기념마라톤대회에 10Km를 처음 뛰어 보았다. 그 때 하프코스 뛰시는 분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대단히 위대해 보였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마라톤대회와 인연을 맺고 그 후 다른대회에서 10Km 1회, 하프코스 3회 참가하여 모두 완주하였다.
연습은 오로지 런닝머신기위에서만 하였고 거리를 늘려나가는 맛에 중독이 되다시피 꾸준한 연습을 하던중 지난해 12월 10일 월요일 운좋게 선착순으로 제73회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신청을 해놓고 그날부터 마라톤온라인에 나와 있는 풀코스도전을 위한 14주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기록보다는 완주만을 목표로 한 것이기에 훈련량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사회생활하며 꾸준히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게다가 연말연시에 구정이 끼어 있으니 연습을 못할 때는 조금 답답하기도 했다.
주중엔 헬스클럽에서 프로그램대로 뛰었고 장거리주 연습은 주말을 이용하여 맞바람을 맞으며 한강둔치 자전거 도로에서 달렸다.
지난 2월에 회사에서 마라톤동호회를 발족시켜 회장을 맡으면서 주말에 훈련을 같이 하게되니 용기를 얻었고 1년전에 처음 참가했던 SAKA 3.1절 기념마라톤대회에 이번에도 신청하여 하프코스에 연습삼아 처음으로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 보고 풀코스에 더욱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드디어 2002년 3월 17일 동아마라톤대회일.
나 자신을 시험해 보고 평가하는 날로 여기고 아파트문을 나서며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보았다.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예기치 않은 증상이 생겨 후송버스를 타고 운동장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버스를 타고 경복궁앞으로 가보니 이미 대회 참가자들이 분주히 준비운동을 하느라 부산한 모습이 보였다. 우선 짐부터 맡기고 서서히 준비운동을 하고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이동하여 출발신호를 기다렸다.
내 개인의 목표는 완주이지만 또 하나의 기대는 한국신기록이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10시 정각에 출발신호와 함께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갔다.
출발매트를 밟는 순간 난 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남대문을 향하여 달려 나갔다. 초반에 오버페이스하지 말자라는 다짐과 함께... 날 추월해 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용산 반환점 5Km지점에서 시간을 보니 32분 정도 소요된 것을 보고 이 속도로 계속 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목적지를 향하여 꾸준히 달려 보았다. 그리 힘들다는 것을 아직은 느끼지를 않고 연도에 나온 시민들의 응원에 힘이 더욱 솟았다. 나도 이 대회에 참가하였다는 현실에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동대문을 통과하고 마장동을 지나 15km지점에서 간식을 먹을때까지도 힘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통과시간은 약 1시간 36분정도 된것 같다. 작년 10월 통일마라톤대회 하프코스도중 연습부족으로 무릎과 발목이 이상이 생겨 이 지점에서부터 골인지점까지 겨우 걸어서 갔던 기억이 났다. 그때에 비하면 아주 장족의 발전이 아닌가? 언젠가는 마의 벽이 오긴 올텐데 생각하면서 어린이대공원앞의 오르막길도 쉬지 않고 올라갈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대공원앞부터 광진구청까지의 시민들의 응원도 한몫을 했다.
21Km지점을 통과할때는 운전을 처음 시작한 후 고속도로 주행을 처음 할때의 기분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연습할때는 30Km까지 뛰어 보았지만 마라톤대회에서는 하프이상되는 거리가 처음이라 그랬나 보다. 곧 이어 잠실대교를 오르니 바람이 불어와 땀도 식고 뛰는데도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껴 연신 웃으며 달렸다. 일반사람들은 마라톤하면 힘든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모를것이다. 이 얼마나 행복하단 말인가! 물론 체력에 의한 속도에 따라서 각자 느끼는 것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달려 30Km지점까지 계속 달려 간식을 먹기전 시간을 보니 약 3시간 12분 소요되었고 간식을 먹으며 시간 계산을 해 본 결과 이렇게 가면 4시간 30분안에 완주할 수 있다라고 생각한 것이 틀렸다는 것은 거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물마실때와 간식먹을때 잠깐 걷는것 외에는 쉬지 않고 오버페이스하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달려왔으나 그렇지 않아도 다리힘이 부족하여 하체 근력운동을 보강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는데 32Km지점부터 내 마음속에 쉬었다 가자는 의견과 그래도 달려야 된다라는 의견이 아주 심하게 서로 싸우고 있었다. 무릎에 무리가 온것이었다.
결국 33Km지점부터 약 1Km 걷다보니 4시간 30분안에 골인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이 되었고 목표는 기록이 아니고 완주에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 다시 뛰는데 35Km지점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에서 우려했던 저혈당 증상은 없어 다행이라 생각되었지만 당뇨병으로 고생한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생각하니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언젠가는 당뇨병이 내몸에 또 침투할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못 들어 오도록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서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탄천지하차도 오르막길에 도달하여 또 다시 걸어야만 했었다. 주변의 여러 주자들이 걸어 가고 있으며 다리의 힘은 많이 빠졌지만 그래도 정신은 더욱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 생애 최초로 마라톤 풀코스 완주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고 40Km내리막길을 맞이하였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인도에 주저앉은 주자들도 보였고 체육관을 지나 운동장으로 들어가면서 내심 해냈다라는 뿌듯함을 갖고 전광판의 시계를 보니 4시간 51분이었고 트랙을 도는 순간 어디서 힘이 나왔는지 앞에 달렸던 여러 주자들을 제치고 전속력으로 달려 골인지점 매트를 밟았다.
역사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기록은 4시간 49분 49초.
기록은 저조했지만 목표는 달성했다.
대회후 당일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 올때 무릎이 약간 시큰거리더니 다음날 출근시에는 거의 통증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감사할 따름이다. 출근하여 마라톤동호회 직원들의 질문에 완주했다라는 대답을 자신있게 했을때 비로소 나도 완주했다는 현실감이 왔고 응원을 해주신 동료직원 및 끝까지 용기를 북돋워 주고 마라톤복까지 선물을 해 주신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모임에 계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또한 당일 대회에 협조해 주시고 통행에 상당한 불편을 느꼈던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대회관계자분들과 연도에서 봉사해 주신 모든분들께도 아울러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항상 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식사준비를 철저히 책임지고 그날 운동장까지 응원 나온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날 나는 나의 건강회복을 확인하였다.
인생의 전환점이란 것도 확인하였다.
앞으로의 목표는 기록단축이며 내년 동아마라톤대회의 목표는 3시간 49분 49초로 올해보다 1시간을 단축하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달린다.
순풍에 돛달고 마라톤 전도사가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