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7/25
"우표에서 얻은 것이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많다."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2009 - 중국 하얼빈에 정율성 사적전시관 개관 中 하얼빈에 정율성 사적전시관 건립 한국출신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의 사적 전시관이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浜)에 건립돼 26일 제막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고 인민일보가 27일 보도했다. http://www.korean.net/wcms/view.jsp?bID=51365&pageID=01325286
- 2006년 9월 4일, 태권도의 날을 기념해 세계태권도연맹이 자체 발행한 기념우표
2006 - 세계태권도연맹, 9월4일 ‘태권도의 날’ 지정 9월4일"태권도의 날"지정 세계태권도연맹(WTF·총재 조정원)은 25일 베트남 호찌민시 에콰토리얼 호텔에서 총회를 열고 매년 9월4일을 ‘태권도의 날’로 지정했다. 9월4일은 1994년 파리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날로, 연맹은 앞으로 이를 기념해 태권도 이미지 제고를 위한 이벤트를 마련할 계획이다. 연맹은 또 오세아니아 키리바티와 아프리카 잠비아를 새 회원국으로 승인하고 영국령 맨섬을 준회원국으로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회원국은 총 182개국(준회원국 포함)으로 늘어났다. /부산광역시태권도협회 2006-07-31
이에 따라 새로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중·소 규모의 사무실과 공장 등에서는 금연·흡연구역을 구분하지 않을 경우 건물주 등에게 주의·경고 조치를 한 다음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금연구역 확대 조치로 중·소 규모 사무실과 공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도 간접흡연의 폐해로부터 보호받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금연구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준식 기자 /세계일보 2006-07-25
2004 - 美 암스트롱, 투르 드 프랑스 사상 첫 6연패 달성 미국의 랜스 암스트롱이 25일 2004 프랑스 도로 일주 사이클 대회, 투르 드 프랑스에서 기록적인 사상 첫 6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암스트롱은 이로써 이 대회에서 5연패를 누렸던 4명의 대 챔피온을 제치고 최고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암스트롱의 이번 6연패는 치명적인 고환암 세포가 폐와 뇌에 까지 퍼져 생존율이 채 50%도 되지 않는 역경을 이겨낸 지 불과 8년 만에 달성된 것입니다. 암스트롱은 이날 파리 샹젤리제에 이르는 대회 20번째 마지막 구간 163킬로미터 경주에서 벨기에의 톰 부넨에게 선두를 빼앗겼으나 최종 종합에서 독일의 안드레아스 클로덴을 6분 19초 차로 제치고 여유있게 우승했습니다. /VOAnews 2004-07-25 http://www.voanews.com/Korean/archive/2004-07/a-2004-07-25-6-1.cfm
2000 - 프랑스 콩코드기 추락, 승객 등 113명 사망 佛 콩코드기 추락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것으로 여겨졌던 초음속 비행기 콩코드기가 25일 이륙 직후 추락, 승객과 승무원 109명과 추락현장 주민 4명등 모두 113명이 사망했다. 관련기사 에어프랑스측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륙시 사고기 엔진 일부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추락현장에서 회수한 블랙박스 등을 바탕으로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목격자들은 이륙 당시 사고기 엔진에서 약 20∼ 30m의 불꽃이 나왔으며 정상 고도를 확보하지 못한채 추락, 호텔과 충돌하면서 거대한 불기둥과 시커먼 연기가 치솟아 수마일 떨어진 곳까지 보였다고 전했다. http://www.munhwa.com/news/news_print.html?no=200007269000201
[콩코드기 연혁] 1969.03.02 -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 성공 (프랑스) 1969.10.01 - 초음속 비행에 성공 1970.11.04 - 102번째 시험비행에서 마하 2(시속 2천 1백55 km)의 굉속을 기록 1976.01.21 - 상업운항을 개시 1979 - 콩코드기 생산 중단 2000.07.25 - 파리 북부지역에 추락 사고 (113명 사망) 2003.06.14 - 파리 에어쇼 개막-콩코드기 고별비행 2003.10.23 - 마지막 상업비행 (런던-뉴욕) 2003.10.24 - 마지막 상업비행(귀항)(뉴욕-런던) 2003.11.26 - 콩코드기 마지막 퇴역비행 (히드로공항-필턴비행장)
- Yitzhak Rabin - Hussein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후세인 요르단 국왕이 1994년 7월 25일 워싱턴에서 양국 정상간 사상 첫 공식회담을 갖고 지난 46년간 지속된 해묵은 적대관계의 청산을 선언하는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이 함께 서명한 공동선언은 수 세대 동안의 반목 투쟁을 뒤로 하고 후세인 국왕과 라빈 총리는 "두 국가 사이의 전투상태를 끝낼 것을 전 세계에 엄숙히 선언한다"면서 양국간은 물론 역내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아울러 천명했다. 양국 정상은 선언문에서 이 문서를 바탕으로 상대방의 안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거나 평화협상을 위한 결의에서 벗어난 여하한 행동도 취하지 않을 것과 아랍국가 및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간의 공정하고 지속적이며 폭넓은 평화를 위해 매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두 사람을 선견지명을 가진 정치인들이라고 치켜세우며 정상회담 성사에 기쁨과 만족을 표시했다. /조선
바르셀로나의 밤하늘에 성화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인종과 종교, 이념과 체제의 벽을 뛰어넘은 50억 세계인의 축제 제25회 바르셀로나 하계올림픽이 1992년 7월 25일 몬주익 메인스타디움에서 그 막을 올렸다. '영원한 친구'를 슬로건으로 내건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답게 개막식도 화려하고 장엄했다. 한국 등 세계 172개국 1만5천여 명의 선수단이 한데 어울린 개막식은 음악과 춤, 화려한 색과 다양한 몸짓으로 3시간동안 펼쳐져 장관을 이뤘다. 식전 공개행사에 이어 열린 개회식은 근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선수단을 선두로 알파벳순에 따라 입장했으며 지난대회 개최국인 한국은 김태우 기수(레슬링)를 앞세워 41번째, 12년 만에 올림픽에 복귀한 북한은 1백30번째 각각 모습을 나타냈다. 한국의 마라톤 선수 황영조는 8월10일 폐막식에 앞서 열린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 13분23초의 기록으로 우승, 한국선수단에 12번째의 금메달을 안겨줬다. 8월10일까지 거행된 대회는 시범 3개종목 포함 28개 종목이 치러졌으며 배드민턴과 야구가 처음 정식종목으로 승격됐다. /조선
1988 - 정율성의 '팔로군행진곡'이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정식 확정 팔로군행진곡 어떤 노래인가 정율성의 음악세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이 씩씩하고 대륙적인 기질이 느껴지는 행진곡풍의 작품들이다. 그 중에서 그의 대표적이 바로 '팔로군 행진곡'이다. [음악전사 아 정율성(20)] /이건상 기자의 문화&관광이야기 2006/08/28 09:31
중앙군사위원회: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반포 “우리의 대오는 태양을 향하여 조국의 대지를 밟으면서 전진한다!”, 이 기세 높은 행진곡은 우리들한테 너무나도 익숙하다. 바로 이 노래가 탄생되던 날부터 위대한 조국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용감한 분투정신으로 전쟁의 나날을 함께 하였으며 새 중국 건설의 려정에서 사람들을 이끌어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였다. /인민일보 조선어 2010년 05월 27일 16:24 http://korean.people.com.cn/71753/191895/191900/11715156.html
1983 - 고리원자력발전 2호기 상업운전 고리 원자력발전소 문만용(서울대학교 강사·과학사) /국가기록포털 나라기록 http://contents.archives.go.kr/next/content/listSubjectDescription.do?id=000108
[고리 원자력발전소 상업운전일] 고리 1호기 - 1978. 04. 29 고리 2호기 - 1983. 07. 25
[어제의 오늘]1978년, 세계 첫 시험관 아기 탄생 ㆍ찬·반 논란속 불임치료 급속 발전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과학기술은 예나 지금이나 늘 뜨거운 윤리논쟁을 부른다. 인공수정 등 잉태과정이나 존엄사·안락사 등 죽음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1978년 7월25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영국에서 체외수정을 통해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도재기기자 jaekee@kyunghyang.com /경향신문 2009-07-24 17:46:52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 200907241746525&code=100100&s_code=ap005
- 민방위대 창설 1주년 기념
대한민국 민방위대(大韓民國 民防衛隊, 영어: ROK Civil Defense Corps, ROKCDC)는 대한민국 행정안전부 산하 소방방재청 소속의 민병 조직이다. 민방위 대원의 총 수는 628 만명에 달하며 연간 10일, 50시간을 한도로 교육을 받으며 비상시에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휘한다. 예비군 이후의 병역 의무로서 기본적으로 무급이다. 그러나 민방위대원이 업무 수행중에 사망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준다. 역사 1951년 1월 당시 계엄사령부에 민방공 본부(民防空本部)가 창설되었다가 같은 해 1월 29일에 그 중요업무가 내무부 치안국에 이관되었다. 이후 1975년 7월 25일에 제정된 민방위기본법에 의해 같은 해 9월 22일에 발족했다. 이와 함께 중요시책을 심의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소속으로 중앙 민방위 협의회를 두고, 그 구체적 업무를 전담하기 위하여 내무부에 민방위 본부를 설치하였다. 1975년 4월 남베트남의 함락이 박정희 정권에 한반도도 공산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불러왔기 때문에 민방위를 조직하여 군사 체제를 강화하게 된 것이 민방위대의 창설 배경이다.
[민방위대 조직연혁] 1975. 07. 19 민방위 본부 설치 /www.cheonan.go.kr
- '날으는 새 두마리'
- 김환기 '산' (공중전화 카드)
1974 - 한국의 서양화가 김환기(金煥基) 사망 김환기 [金煥基, 1913.2.27~1974.7.25] 우리나라 추상화의 선구자 김환기 사망 우리나라 추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서양화가 김환기 선생이 1974년 7월 25일 뉴욕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달, 조선백자 등과 같은 민족적 소재를 이용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발표하다가, 1963년 도미(度美) 이후에는 화면에 무수한 점과 선을 배열하는 독특한 회화세계를 개척한 화가이다.
1969년 4월 14일 당시 대통령 부인 육영수가 어린이 복지사업을 목적으로 육영재단을 설립하였으며 같은해 4월 24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1970년 7월 25일 재단의 설립정신에 의거, 서울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건립·개관함과 동시에 《어깨동무》를 인수하여 발간하였다. 1975년 10월, 보다 넓고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남산의 회관 건물을 국립중앙도서관에 이양하고, 서울 광진구 능동의 3만여 평(10만 3267㎡)의 대지 위에 연건평 5,200평(1만 7176㎡)의 새 회관을 지어 이전하였다. (육영재단) /naver
아시아-유럽 7개국 순방을 위해 괌에 도착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전 이후의 아시아와 미국의 역할`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1969년 7월 25일 발표했다.`자국의 방위는 자국이 맡아야 한다`는 이른바 `닉슨독트린`을 발표한 것이다. 닉슨이 이날 발표한 `아시아 외교 기본전략`은 `▲조약상의 책무을 지키고 ▲동맹국의 자유 또는 미국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면 핵우산을 제공하며 ▲기타의 침략에는 각국의 자유노력에 의거한다` 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닉슨의 이날 발표는 베트남전에서 입은 심각한 피해를 반영한 것으로 아시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닉슨은 1970년 2월18일 `1970년대 미국의 외교정책`을 나타내는 외교특별교서를 발표함으로써 닉슨독트린을 확정했다. 닉슨독트린은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영향을 미쳐 `자주국방` 의지를 다지게 하여 국군현대화계획(율곡사업)에 박차를 가하게 했다. /조선
- 'Lot and His Daughters' - 'Portrait of the Dancer Anita Berber' - 'Self-portrait'
1969 - 독일의 화가, 판화가 오토 딕스(Dix, Otto) 사망 딕스 [Dix, Otto, 1891.12.2~1969.7.25] 독일의 화가·판화가. 연민과 표현주의자의 절망을 결합하여 신랄한 사회비판적 작품을 만들었다. 신즉물주의(新卽物主義 Neue Sachlichkeit) 화가들과 사귀었고 함께 전시회도 열었다.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딕스는 장식미술가의 도제로 들어갔고, 이어서 드레스덴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 처음에는 인상파 화풍으로 그리다가 현대 미술의 여러 경향을 시도하면서 신랄하고 독특한 화법을 만들어내어 당시 사회의 현실을 악몽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뒤셀도르프에서 가르칠(1922~25경) 때 그는 〈포주와 여자들 Pimp and Girls〉·〈자본주의의 두 희생물 Two Sacrifices of Capitalism〉(기괴한 매춘부와 추한 퇴직군인이 희생물임) 같은 대표적인 회화와 드로잉을 그렸다. 1924년에는 전쟁의 공포를 기록한 〈전쟁 War〉을 50점의 에칭으로 남겼다. 1927년 드레스덴 미술학교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1931년 프로이센 아카데미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의 반군사적인 작품을 보고 격분한 나치 정권이 그의 아카데미 가입을 취소시키고 전시회도 금지했다. 1939년 아돌프 히틀러 암살 음모의 공범 혐의로 투옥되었다. 1945년 53세의 나이에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프랑스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되었다. 딕스는 나중에 신비주의로 전향하여 〈사울과 다윗 Saul and David〉(1945)·〈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Crucifixion〉(1946)를 제작했다. /브리태니커
대한항공공사는 한·일 국교 정상화 기본 조약 체결 1년 7개월 전, 그리고 동경올림픽 개최를 10개월 앞두고 있던 1963년 12월 일본항공과 상무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64년 2월 28일, 정부 승인과 함께 정기 항공 노선을 개설하였으며, 서울~오사카 노선 이후 1965년 9월에는 부산~후쿠오카 노선이, 1968년 7월에는 서울~도쿄 노선이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프로펠러기로는 외국 항공사와 경쟁이 될 수 없었다. (발췌) /KAC 한국공항공사 정보관리팀 http://www.airport.co.kr/doc/www/flight/U03020102.jsp
1963 - 부분핵실험금지조약 체결 [책갈피 속의 오늘]1963년 부분핵실험금지조약 체결 원자(原子·atom). 물질을 이루는 기본적인 단위이자 화학원소의 특성을 잃지 않는 범위 안의 최소 미립자. 그 어원도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다’는 뜻의 그리스어 ‘atomos’. 그러나 인간은 그 작은 원자로부터 핵폭탄을 개발해냈다. 핵물리학자들 사이에 오랫동안 회자되는 농담 중 하나. “조물주는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핵폭탄 개발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인간이 그 (개발) 원리를 찾을 수 없도록 가장 작은 원자 안에 숨겨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런 의도를 따르지 않았고 1945년 7월 미국에서 첫 핵폭탄 실험이 성공했다. 마치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조물주의 경고를 무시한 것처럼. 1963년 7월 25일은 인류가 핵폭탄 개발의 원죄를 처음 각성한 날로 기록될 만하다. 핵보유국인 미국, 소련(현 러시아), 영국이 ‘지상과 대기권, 수중에서 핵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부분핵실험금지조약(PTBT)을 체결한 날이다. 같은 달 26일자 동아일보 사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외교 사상 가장 중대한 의의를 갖는 국제협정”이라고 평가했다. 이 협정은 지구의 수명도 연장시켰다. 미국 과학전문지인 ‘핵 과학자 회보’가 핵 위험성 경고용으로 발표해 온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를 ‘자정(종말) 12분 전’까지 돌려놓은 것. 이 시계는 1947년 ‘7분 전’에서 시작해 미소 냉전이 한층 고조된 1953년에는 ‘2분 전’까지 이르렀다. ‘12분 전’은 당시로는 역대 최고의 안전 시각. 그러나 이도 잠시뿐, 인간의 우매한 습관은 다시 반복됐다. PTBT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지하 핵실험이 핵보유국 사이에서 무제한 실시됐고 핵폭발은 하지 않으면서 핵무기 성능을 시험하는 ‘임계치 이하 핵실험’이란 편법도 성행했다. 인류는 또다시 대오 각성했고 PTBT의 아들뻘인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어떤 종류, 어떤 목적의 핵실험도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 1996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됐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은 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벌을 받았다. 핵폭탄 개발이란 원죄에 내려질 벌은 과연 무엇일까. 인류가 그 죗값을 치를 수는 있을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동아닷컴 2005-07-25 03:06:00
- Habib ibn Ali Bourguiba 1957 - 튀니지에 공화정부 수립, 초대 대통령에 부르기바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이탈리아와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그들 양국군이 패퇴한 1943년 5월까지 전쟁터가 되었다. 튀니지인의 민족주의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청년 튀니지’ 운동으로 시작되었으며, 프랑스의 탄압 속에서도 꾸준한 저항이 계속되다가 1944년 이후에는 더욱 격화하여 마침내는 독립투쟁이 전국적인 반(反)프랑스 테러로 발전하였다.
1956 - 이탈리아 여객선 안드레아 도리아호 침몰 1956년 7월 25일 스웨덴의 대양 정기선 스톡홀름호가 난터키트 앞바다 안개속을 항해하던 중 이탈리아 여객선 안드레아 도리아호와 충돌했다. 충돌당한 2천9백만 달러의 이탈리아 호화선 도리아호는 충돌 12시간 후 수심 2백25피트의 대서양에 침몰했다. 침몰하기 전 부근을 항해중이던 다른 선박들에 의해 1천6백35명의 승객 및 승무원들이 구조되어 인명피해는 줄일수 있었다. 충돌 당시 안드레아 도리아호의 선객들은 선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파티를 열고 있었다. 도리아호는 26일 뉴욕에 입항할 예정이었다. 스톡홀름호는 선수가 찌그러진 채로 해안경비정의 인도를 받아서 항구로 이동했다. 조사 관계자들은 사고가 난 두 선박 모두 레이다를 장착하고 있었음에도 52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은 사고원인에 대해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조선
1954년 오늘!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수락해 미국을 방문하게 됐다. 미국 상하 양원합동회의 연설과 UN본부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YTN
1950 - 신라 금관 등 유물 한국전쟁으로 긴급 피난 미군이 일본으로 반출하려던 그때 그 도자기들은 어디로… 국립중앙박물관, 연합군 최고사령부 공문 등 발굴 “유물을 넘기시오! 대통령 명령이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25일, 국립박물관 경주 분관에 국방부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사전 통보도 없이 그들은 금관총 금관(사진)등을 비롯해 옥피리, 황복사탑 금제 불상 2점 등 1급 유물들을 황급히 쌌다. 금관 등 상당수 유물은 그 뒤 한국은행 금괴와 함께 미국의 아메리카은행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1957~59년 국립박물관 미국 순회전 때 다른 유물과 섞여 전시된 뒤에야 이들은 국내로 돌아왔다. 전쟁 때 경주 문화재 수난사가 깃든 ‘경주분관 소개유물목록’이 발견됐다. 당시 박물관 유물을 일본 도쿄 제국박물관(현 도쿄국립박물관)으로 옮기라고 제안한 미 정부 문서도 나왔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중박)이 <한국박물관 100년사> 발간을 위해 미 국립문서보관소 등을 뒤져 찾은 사료들이다. ‘경주분관…목록’의 경우 1954년 국방부 경위서를 보면, 1950년 7월25일, 27일 주요 유물 139점을 포장해 한국은행 대구 지점에 옮긴 뒤 작성했다고 나와 있다. <…100년사>에 공개된 1957년 미국 전시 출품 목록에는 ‘경주 분관 유물들이 ‘상항’(샌프란시스코)에 보관중이므로 다른 유물과 합류시켜 전시할 계획’이란 구절이 보여 경주 유물들이 미국에 갔음을 알 수 있다. 김재원 초대 관장의 회고록 등에 이런 비화가 일부 언급됐지만, 구체적 정황을 담은 공문서가 발견·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박 쪽은 당시 유물들을 일본 도쿄제국박물관(현 도쿄국립박물관)에 보내면 신성불가침한 문화재로 지켜질 것이라고 제안한 1951년 1월13일치 미 국무부 공문도 공개했다. 그러나 2월3일치 공문에서는 “한국 문교부가 신뢰할 수 없는 일본 이송을 반대한다”고 기록해 제안이 무산됐음을 보여준다. 이 밖에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12월 일본 연합국 최고사령부가 한국 미8군 쪽에 국립박물관 도자기 소장품 여덟 상자를 ‘연구를 위해’ 요코하마에 보내려고 대기시켰다고 통보한 공문도 발견됐다. 중박 쪽은 “후속 문서가 없어 당시 반출하려던 도자기들이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2010-01-25 오전 08:40:40
- 여운형 1946년 7월 25일 오후 2시 반 서울 덕수궁 석조전 2층 대형홀에서 민주의원 부의장 김규식과 국민당 당수 안재홍, 한민당 총무 원세훈 등 우익측의 유력인사 5명과 인민당 당수 여운형, 민족주의민족전선 사무국장 이강국 등 좌익 측 4명이 참석한 가운데 좌우합작위원회 제1차 회의가 열렸다. 좌우합작은 신탁통치 문제로 좌우대립이 심화되고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시작됐다.
경춘선은 1939년 7월 25일 사설인 경춘철도주식회사에 의해 성동역(城東驛)∼춘천 사이의 구간이 개통되었으나, 서울의 시가지 확장에 따라 성동역∼성북역 구간은 철거되고, 현재는 성북역을 기점으로 하는 단선철도이다. 북한강을 끼고 달리므로 경관이 좋고, 청평역 ·가평역 ·강촌역 부근에는 관광 ·휴양지가 많다. /naver
돌푸스 오스트리아 총리 피살(1934) 1934년 오늘! 독일군이 진주하고 두 나라의 합방이 이뤄진다. /YTN
1920 - 영국의 생물물리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Franklin, Rosalind) 출생 프랭클린 [Franklin, Rosalind Elsie, 1920.7.25~1958.4.16] [역사 속의 인물] DNA 이중나선 규명 로절린드 프랭클린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DNA의 이중나선 구조 규명은 20세기 최대의 생물학적 발견이다. 그러나 이 불후의 업적은 요절한 여성 과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의 연구 데이터를 '슬쩍한' 것이라는 의혹을 벗지 못하고 있다. 1920년 오늘 런던에서 유태인 금융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전문 분야는 X선 결정학. 킹스칼리지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끈질긴 작업 띁에 DNA가 이중나선 구조임을 확증하는 X선 사진을 얻었으나 도용당했다. 이 사진을 같은 연구소에 있던 모리스 윌킨스가 허락 없이 왓슨에게 보여준 것이다. 당시 연구의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던 왓슨과 크릭에게는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었다. 이에 대한 윌킨스의 해명은 도용이 아니며 프랭클린의 '간접적인'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간접적인 허락이란 프랭클린의 지도를 받고 있던 한 대학원생을 자신도 지도를 하니까 그녀와 대학원생의 공동작업은 자기도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꿈보다 해몽이다) 그녀의 사진 덕분에 왓슨과 크릭, 윌킨스는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녀는 4년 전 난소암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지만 지금 그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경훈 논설위원 /매일신문 2011년 07월 25일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0363&yy=2011
1909년 8월 랭스에서 세계 최초의 항공집회가 개최되었다. 그당시 유럽의 항공기술은 이미 높은 수준에 도달하여 2가지 기본형태의 고성능 비행기가 등장했다. 하나는 회전식 기관과 대형 보조날개를 갖춘 복엽기였고 다른 하나는 라이트식 단엽기였다. 1909년 7월 25일 L. 블레리오(Bleriot, Louis)는 소형의 블레리오 2호로 영국해협 횡단비행경기에서 우승했다. 칼레 부근에서 도버까지의 이 역사적 비행은 사람들에게 비행기에 대한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의 강력한 신형 항공기의 급속한 개발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항공기의 역사) /브리태니커
1905 - 불가리아 태생의 영국 소설가, 극작가 엘리아스 카네티(Canetti, Elias) 출생 카네티 [Canetti, Elias, 1905.7.25~1994.8.14] 불가리아의 소설가·극작가. 그의 작품은 사회와 대립하는 개인 및 군중심리를 탐구하고 있다. 198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스페인계 유대인 혈통이며 주로 스페인어와 영어를 썼으나 창작은 독일어로 했다. 영어는 부모가 영국에 정착했을 때 배웠다. 1913년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와 함께 빈으로 이주했다. 취리히·프랑크푸르트·빈 등지에서 공부했으며 1929년 빈대학교에서 화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군중에 대한 관심은 1920년대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어난 인플레이션 항의 폭동을 지켜보면서 구체화되었다. 이 가두 폭동은 1927년 성난 군중이 빈 법무궁을 불태우는 데서 절정에 올랐다. 그는 자신이 목격한 군중의 광기를 8권짜리 대하소설에 담을 예정이었으나 〈미혹 Die Blendung〉(1935, 영역본은 1946년 〈화형 Auto-da-Fé〉으로, 1947년 〈바벨탑 Tower of Babel〉으로, 1964년 다시 〈화형〉으로 출간됨)이라는 1권의 책으로 축소시켰다. 이 작품은 어느 도시의 기괴한 지하세계에서 한 학자의 삶이 파멸하는 과정을 그린 무시무시한 소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그는 영국으로 망명해 창작을 중단하고 권력의 정신병리학적 연구에 전념했는데 〈군중과 권력 Masse und Macht〉(1960)은 이에 관한 강력한 흥미의 소산이며 3편의 희곡 〈결혼식 Hochzeit〉(1932)·〈허영의 희극 Komödie der Eitelkeit〉(1950)·〈죽음을 앞둔 사람들 Die Befristeten〉(1964)도 이를 반영한다. 이 가운데 〈결혼식〉·〈허영의 희극〉은 1965년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초연되었고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1956년 옥스퍼드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들은 1964년 〈드라마들 Dramen〉로 출판되었다. 그는 또한 자신의 비망록을 토대로 〈기록 1942~72 Aufzeichnungen 1942~1972〉(1978)를 출판했으며 인물 스케치를 담은 〈증인─50명의 인물 Der Ohrenzeuge─Fünfzig Charaktere〉(1974)과 자서전 〈자유를 찾은 혀 Die gerettete Zunge〉(2권, 1977)·〈귓속의 횃불 Die Fackel im Ohr〉(1980)을 출판했다. /브리태니커
1897 - 美작가 런던 골드러시 합류 [책갈피 속의 오늘]1897년 美작가 런던 골드러시 합류 “나는 아무도 나를 원치 않던 그때와 개인적으로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은 왜 그들이 지금은 나를 원하느냐 하는 겁니다. (중략) 당신이 지금 나를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 말하자면 사회적인 인정과 돈 때문입니까?”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30000000134/3/ 70030000000134/20080725/8607448/1
- France, 500 Francs (Banknote)
1895 -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결혼 1891년 파리로 간 마리는 소르본대학교에서 P. 아펠, G. 리프만, E. 부티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J. 페랭, C. 모랭, A. 코통 등 이미 잘 알려진 물리학자들을 만났다. 그녀는 학생기숙사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면서 빵과 버터와 차만 먹고 살았다. 1893년 1등으로 물리과학 학사자격을 얻었고 그후 리프만의 연구실에서 일하기 시작해 1894년 2등으로 수리과학 학사자격을 얻었다. 그해 봄 그녀는 피에르 퀴리를 만났다. 그들의 결혼(1895. 7. 25)으로 인해 폴로늄(마리가 자신의 모국을 기념하여 그렇게 불렀음)과 라듐의 발견 등 세계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성취하게 될 협력이 시작된 것이다. (퀴리) /브리태니커
퀴리부인, 자전거로 신혼여행을 떠나다 [자전거이야기6] 자전거여행 마리 퀴리(Marie Sklodowska Curie)는 1867년 11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교사였던 어머니와 바르샤바 교육청 장학사던 아버지는 마리에게 좋은 재능을 물려주었다. 가난도 함께 물려주었다. 아버지는 일찍이 투자를 잘못해 돈을 날렸고, 어머니는 마리가 열 살이던 해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언니 또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공부에만 힘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마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정교사를 하면서 대학 입학자금을 모았다. 17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리가 대학에 들어간 것은 한참 뒤인 24세가 돼서였다. 가정교사 시절 첫사랑을 만났으나 가난 때문에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나 마리는 공부를 잘했다. 바르샤바여자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1891년 소르본느 대학교에 들어가 1893년 수석으로 물리과학 전공을 졸업했다. 이듬해엔 차석으로 수리과학 전공을 졸업했다. 빵과 버터와 차만 먹으면서 공부에 매진한 결과였다. 1894년 피에르 퀴리를 만난 마리 퀴리는 1895년 7월 25일 결혼을 했다. 마리 퀴리는 28세, 피에르 퀴리는 35세였다. 결혼을 한 뒤에도 가난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난했던 두 사람은 화려한 드레스 대신 평상복을 입은 채,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만 초대하고 식을 올렸다.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던 두 사람은 소박한 신혼여행을 준비했다. 식이 끝난 뒤 두 사람이 오른 것은 마차가 아닌 자전거였다. 그것도 마리의 사촌이 준 선물이었다. 두 사람은 부부에게는 전 재산인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렸다. 가난한 여행이었으니 먹고 자는 것도 대단치 않았다. 점심은 빵과 치즈, 과일을 먹었고 밤에는 시골 여관에서 묵었다. 방안에는 은은한 촛불이 비쳐서 빛바랜 벽지에 그림자가 하늘거렸다.*<데일 카네기 1% 성공습관>(데일 카네기, 리베르, 2009)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가난은 여전했다. 비가 새는 허름한 헛간에서 실험을 한 끝에 1903년 퀴리 부부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여성 최초 노벨상이었다. 몇 년 뒤인 1906년 남편 피에르가 세상을 떠났고, 마리는 1934년 요양소에 입원했다. 그 해 7월 4일 방사능으로 인한 악성 빈혈로 생을 마쳤다. 방사능 질병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지금 자전거로 신혼여행을 떠난다면 어떨까? 몇 해 전 자전거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들 부부 이야기를 들어보면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만화가 고필헌 윤혜영 부부 이수진 최교현 부부 /검정고무신 2009/09/08 00:06 http://blog.ohmynews.com/comicbike/161327
<자본:정치경제학 비판>(독일어: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ekonomie) 또는 <자본론>(資本論) 은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저술한 정치경제학 논문이다. 자본주의와 당대 경제학자들의 이론들을 분석한 책이다. 내용 <자본>은 주로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과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데, 내용은 1859년 발간된 마르크스의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자본>은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1권은 자본의 생산과정, 2권은 자본의 유통과정, 3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이 부제로 붙어 있다. 1권은 1867년 나왔으며 2, 3권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유고를 모아 집필, 각각 1885년과 1894년 발간되었다. /위키백과
1848 - 영국의 전 수상 아서 밸푸어 출생 /위키백과 1848 - 영국의 정치가, 총리 아서 벨푸어(Balfour, Arthur) 출생 밸푸어 [Balfour, Arthur James, 1848.7.25~1930.3.19] 영국의 정치가. 명문 출신으로 케임브리지대학 졸업 후 1874년부터 보수당소속 의회의원이 되었으며, 베를린회의 때는 백부(伯父)인 솔즈베리의 비서로 참석하였다. 1886년부터 스코틀랜드담당장관 ·아일랜드담당장관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후, 1902년 총리에 취임하였으며, 영일동맹과 영국-프랑스협약 등을 체결하여 외교정책의 전환을 꾀하였다. 1905년 사임하고, 수년간 자유통일당의 총재로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15년 해군장관, 1916년 외무장관이 되었다. 1917년 유대인의 협력을 얻기 위하여, ‘밸푸어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유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하였는데, 이것이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 사이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다. 전후에는 베르사유조약과 워싱턴군축회의의 영국대표로 활약하였으며, 1922년 백작 작위를 받았고, 1924년 추밀원(樞密院) 의장이 되었다. 1926년 영국 본국과 자치령과의 관계 정립을 위한 협상을 지도하여 ‘밸푸어보고서(Balfour Report)’를 작성하였으며, 그 내용은 1931년 웨스트민스터헌장(Statute of Westminster)으로 입법화되었다. /네이버
- 'The Biglin Brothers Racing'
- 'Henry Ossawa Tanner, Portrait by Eakins, A Lady with a Setter Dog', detail
1844 - 미국의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Eakins, Thomas) 출생 에이킨스 [Eakins, Thomas, 1844.7.25~1916.6.25] 에이킨스는 19세기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이다. 일찍부터 수학·과학에 뛰어난 동시에 미술에 재능을 보여,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를 다니는 한편 제퍼슨의과대학의 해부학 강의를 들었다. 이 두 가지 성향의 결합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주요한 특징이 되었다. 1866년부터 3년간 파리의 에콜데보자르에서 공부했는데,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 회화에 영향받지 않고, 소묘를 강조하는 확고한 아카데미적 전통을 받아들였다. 특히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리베라 등 17세기의 거장들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귀국 후 주로 가족과 친구들, 일상 생활의 모습 등을 그렸으며, 움직이는 인체와 동물의 정확한 형상 포착에 몰두했다. 1870년대말에는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에서 교편을 잡게 되었는데, 미술 및 미술교육에 대한 혁신적 태도로 인해 물의를 빚은 끝에 1886년 강제 해직당했다. 외과수술 장면을 그대로 묘사한 <그로스 클리닉 The Gross Clinic>(1875)에서 보여지듯 과학적 관찰에 근거한 그의 사실주의는 아름다운 풍경화에 익숙해져 있던 당시의 관중들에게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는 화가로서의 역량은 인정받으면서도 평생 국외자 취급을 당했고, 그림도 거의 팔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예술은 20세기초 미국 사실주의 회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브리태니커
"에이킨스와 휘트먼의 주요한 유사점은 자기 시대의 관습을 무시할 수 있게끔 하는 자족적인 자신감이었다. 휘트먼처럼 에이킨스도 대중이나 비평가들의 의견에 구애되지 않고 가장 진실하고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예술활동을 할 것을 강조했다"
- W. I. 호머, <토머스 에이킨스 : 그의 생애와 예술>
스티븐슨 [Stephenson, George, 1781.6.9~1848.8.12] 영국의 증기기관차 발명가. 탄광기관부의 아들로 태어나 14세 때 아버지의 조수가 되고, 이어 기관부 ·기관공이 되어 여러 가지 기관의 기능에 통달하였다. 그 후 킬링워스탄광에서 탄광주를 설득, 증기기관차를 제작하여 1814년 7월 탄광에서 시운전에 성공하였다. 1823년 뉴캐슬에 세계 최초의 기관차 공장을 설립하고, 1824년 스톡턴∼달링턴 간의 세계 최초의 여객용 철도가 부설되어, 1825년 그의 공장에서 제작한 개량형 기관차 로커모션호(號)를 달리게 함으로써 철도수송의 시대가 개막되었다. 1824년부터 리버풀~맨체스터 간의 철도를 부설하고, 1829년 그의 로켓호를 달리게 하여, 1830년에 정식 개통시켰다. /naver
녹스 [Knox, Henry, 1750.7.25~1806.10.25] 미국 독립전쟁(1775~83) 당시 장군이었고 연방헌법이 만들어진 이후 최초로 육군 장관이 된 인물. 육군 대령으로 대륙군 포병을 이끌던 녹스는 1775~76년 겨울에 포획한 영국 대포를 조지 워싱턴 장군의 명령에 따라 뉴욕 주 타이칸더로가 요새로 되돌려놓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총 12만 파운드의 대포들을 소·말·사람을 써서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480㎞의 길을 지나 보스턴까지 옮겨놓는 무훈을 세웠다. 옮긴 무기들은 포위된 보스턴에서 영국인들을 몰아내는 데 사용되었으며 미국 혁명군 포병력의 기초가 되었다. 1778년 필라델피아 회전 때 육군 준장으로서 뉴저지 주 몬머스 전투(1778. 6)와 요크타운에서의 결정적인 전투(1781)에서 포병지휘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그뒤 육군 소장이 되었고 전쟁 말기에 워싱턴의 뒤를 이어 총사령관이 되었다(1783. 12). 1784년초 사령관직에서 물러나 보스턴으로 이주했고, 아메리카 연합헌장(Articles of Confederation) 아래 구성된 정부에서 육군 장관(1785)이 되었다가 워싱턴 대통령의 첫번째 내각(1789)에서 다시 육군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795년 은퇴한 후 메인 주 토머스턴에 있는 대저택에서 생활했다. 노스 캘러한이 쓴 전기 〈헨리 녹스, 워싱턴 장군의 장군 Henry Knox, General Washington's General〉(1958)이 있다. /브리태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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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상이 창안하여 2004년 4월부터 매일 연재하고 있는 [우표로 본 오늘의 인물과 역사]는 세계최초의 <우표를 이용한 매일역사연재물>입니다. 수집한 우표를 이용하여 오로지 취미와 교육적 목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자료의 충실을 기하느라 본의 아니게 저작권에 저촉되는 일이 생길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혹시 문제가 있으면 미리 알려주셔서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