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면의 역사
본래 백제시대에는 고사부리군이었고 조선시대엔,고부군 북부면과 동부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병합하여 북부면 역동에 있었던 瀛原驛에서 이름을 따 글자획이 간단한 永元으로써서 정읍군에 편입 하였다.
처음엔 북부면 구역을 장재리 앵성리 운학리 은선리로 동부면 구역을 풍월리 신영리 후지리 장문리로 갈라 8개리도 편성했다가 후에 장문리가 떨어져 나가 고부면에 편입되고 지금은 7개리만 남게되었다.
지역 특성으로는 동남부인 산간 지역은 덕천 이평 고부면과 경계를이루고 서 북부는 평야지대로 부안군 백산 주산 보안면과 경계를 하고 있다.
백제문화권 지역으로 은선리 삼층석탑 지사리고분등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다.
1995년 시군 통합으로 지금은 정읍시 영원면이다
( 1 ) 장재리 (長才里)
본래 고부군 북부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신성리(新成里), 주천리(珠川里), 덕성리(德成里), 미전리(米田里)와 궁동면(宮洞面) 양재리(良才里), 백양리(白良里), 청양리(靑良利), 및 거마면(巨麻面) 쌍교리(雙橋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중심 마을 이름을 따서 장재리라 하고, 정읍시 영원면에 편입하였다.
장재(長才) 마을
가구수:47
인 구:110
장재리 장재마을은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Km지점에 있으며 장재 마을은 옛날인 조선시대에는 장자(長煮)라는 부자댁이 식솔을 거느리고 터를 잡고 살았는데, 주위사람들이 장자라는 부자의 이름을 따서 장자마을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은 부르기 쉽게 장재라는 이름으로 변하였다.
동쪽으로는 백양마을, 남쪽으로는 신기마을, 북서쪽으로는 부안군 백산면이 인접하여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의 동남쪽에 「앞잔등」이라고 부르는 등성이가 있고, 서북쪽에 「시자논」이라는 논이 있으며, 마을의 북쪽에 「시루솟구보」라고 이르는 보(洑)가 있다.
신기(新基)마을
가구수:20
인 구:59
장재리 신기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km지점에 있으며 새로 생긴 마을로 주민 대부분은 논농사와 일부 시설하우스로 생활하고 있고 최근에는 도시에서 청년 몇명이나 내려와 비닐하우스에서 참외, 수박을 재배하고있다.
백양(白良)마을
가구수:70
인 구:180
장재리 백양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1.5km에 위치해 있으며 옛날에는 백양방앗간 앞 언덕이 황새다리 형상을 닮았다고해서 지금까지도 황새다리라 불리고 있음.
주촌(蛛村)마을
가구수:31
인 구:107
장재리 주촌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2km에 위치해 있으며 고부천과 인접해 있어 부아군 백산면을 연결하는 중다리가 서쪽에 있다.
청량(靑良)마을
가구수:49
인 구:125
청양마을은 주민들이 벼농사와 담배, 등 시설하우스를 많이 하고 있으며, 이 마을에서 나오는 참외와 수박은 당도가 뛰어나다고 한다.
세대수가 49호이며 인구는 125명이고,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km지점에 있는 논농사와 함께 담배로 농사에도 이름이 있는 마을이다.
1987년 1월에 이평면 청량리에서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원면으로 편입되었다.
( 2 ) 앵성리(鶯成里)
본래 고부군 북부면(北部面)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흔랑리(欣浪里), 미전리(米田里), 앵성리(鶯成里), 덕성리(德成里), 신광리(新光里), 대흥리(大興里), 인천리(仁川里), 표정리(表井里) 각 일부를 병합하여, 중심마을 이름을 따서 앵서일라 하고, 정읍시 영원면에 편입하였다.
미전(米田)마을
가구수:31
인 구:109
미전마을은 논농사와 담배 농사를 하고 있으며,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1.5km 지점에 있다. 이 마을은 예정에는 싸리대밭이 있다고 하며, 행정구역에 앵성리 미전마을이나 장재리 주촌마을 옆에 있어, 장재리 주민들과 생활을 많이 한다고 한다.
흔랑(欣浪)마을
가구수:42
인 구:132
앵성리 흔랑마을은 흐랑이, 흐낭이라고도 불리우며 앵성리 앵성마을과 같이 인접해 있는 마을로 주민들은 벼, 담배, 축산을 많이하고 있다.
앵성(鶯成)마을
가구수:46
인 구:115
앵성마을은 앵성리의 중심마을이며, 인구가 115명이고 세대수가 46호로, 논농사와 담배를 재배하고 축산을 하는 마을이다. 소쪽에 「사급들」이라고 하는 들이 있다.
마을 가운데에 조산시대 조정태의 부인 고흥유씨의 열녀문이 있다.
수성(水城)마을
가구수 28
인구 89
앵성리 수성 마을은 마을앞에 고부천이 흐르고 있고 뒷쪽에는 산이 있으며 주로 논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신성(新城)마을
가구수 21
인구 54
신성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2km지점에 있으며 논 농사를 주업으로하는 마을이다. 인구수는 54명이며 세대수가 21호 이다 이 마을은 수성 마을과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노교(蘆橋) 마을
가구수 29
인구 86
노교마을은 에날 수성마을 서쪽 고부천에 놓인 다리 때문에 가다리라고 불리워 졌으며 옛적에는 갈대밭이 무성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대부분 벼농사를 하고 있으며 들판에 있는 마을로 텃밭을 제외하고 밭농사가 없는것이 특징의 하나이다.
( 3 ) 운학리 (雲鶴里)
본래 고부군 북부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개편때 금곡리 학송리 서당리 태동 신평리 운학리를 병합하여 중심 마을 이름을 따서 운학리라 하고 정읍군 영원면에 편입 하였다.
금곡(金谷)마을
가구수 71
인구 210
운학리 금곡마을은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써 주민들이 면사무소를 비롯한 각 기관과 상가가 밀집해 있으며 71가구가210명의 주민이 생활하는 면내 가장 큰 마을이다 주민들 대부분이 농사일과 상업에 종사하며 일부 한우 사육 농가도있다.
태동 (台洞) 마을 )
가구수 57
인구 58
운학리 태동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0.5km 지점에 위치한 평야마을이다.
태동마을 앞에는 천태산이 자리하고있다.뒤에는 동진강 도수로가 흐르고 마을 앞에있는 들은 모두 경지정리가 되어있다.
이 마을은 샛터 서당골 역말(驛馬.역터)의 작은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거 한양으로가는 과객들이 쉬는곳이고 동시에 말이쉬고 말을 먹이는 장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은 박씨 정씨가 토대로써 시초가 되어 있으며 1894년 갑오동학 혁명때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항거하기 위하여 농민군들이 고부읍으로 진입하고자하는 도중에 태동마을 신평 대밭에서 대를베어 죽창을 만들었다고 한다.
운학(雲鶴) 마을
가구수39
인구 117
운학리 운학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서쪽으로 0.5km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운학 마을은 운학골이라고도 하며 운학리의 중심마을이다.
바우배기터 가 마을의 바로 옆에 있는 밭이고 동남쪽 천태산에 있는 골짜기에 수박골이 있다.
운학동 고분군 전라북도 기념물 제 58호가 있다.
은선리 (隱仙理)
본래 고부군 북부면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갈선리 두만리 신탑리 모산리 지사리 은선리를 병합하여 그 중심 마을의 이름을 따서 은선리라 하고 정읍군 영원면에 편입 하였다.
갈선(葛仙)마을
가구수 24
인구 63
은선리 갈선 마을은 면사무소에서 0.7km떨어진곳에 위치하고 있다.
갈선 마을 동쪽으로 천태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신선봉이 있어 서남으로 작은 평야마을을 형성하고 있으며 옛날에는 은선리 모산 마을 앞 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미역 바위에서 미역을 따고 그 주변에서 신선들이 놀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칡뿌리가 무성하게 번식하여 궁핍하게 생활하던 사람들이 칡뿌리주변에 한두집씩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 하였으니 마을 이름을 칡葛 신선仙이라하여 갈선 마을 이라 불러왔다고 한다.이마을은 독립 운동가로 활동한 구파 백정기의사의 고택지 터가 있는마을이다.
모산 (茅山)마을
가구수50
인구 115
모산 마을은 세대수가 51호이며 인구는 115명이고 면소재지에서 0.7km거리에 있다.
이마을을 옥터라고 하며 은선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이마을과 지사마을 사이에는 역들이라는 들이 있다. 역시 모산과 지사마을 사이에는 5m되는 다리인 은선교가 있다.백정기의사 순국 기념비가있다.
탑립(塔立)마을
가구수49
인구 127
은선리 탑립 마을은 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1km지점에 위치해 있다.
탑립 마을은 城址 佛跡 古墳등 사적이 많은 유서깊은 곳이며 모산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동쪽에는 은선리 삼층 석탑이 있어 옛부터 탑성, 또는 탑립이라고 불리워 왔고 남서쪽으로 1km쯤 가면 백제시대 고사부리의 중방성인 금사동 산성의 잔해가 남아 있다
북쪽 구릉 지대에는 백제 오방성 중 하나인 중방 고사성의 관아지로 추정되는 토성지가 있다.
이마을은 간재(艮齋 田愚)와 양재 권순명(陽齋 權 純命)을 배향한 태산사가 있고 열녀 영광정씨의 열녀각이 있다.
탑립마을은 동남쪽에서 도계리로 넘어가는 오봉재가 있으며 지금은 잘뚫린 길이 되어있고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청소골이 있다 남쪽에는 장밭등이 있으며 동남쪽에는 2정보쯤되는 탑립 방죽이 있고서쪽에는 2-3아름드이 팽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유적으로는 은선리 삼층석탑과 금사동 산성 은선리토성 태산사가 있다.
은선(隱仙)마을
가구수 47
인구 103
은선리 은선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은선마을은 智士라고도 하며 선인봉 아래에 있는 은선리의 중심 마을이기도 하다
남쪽에는 옥녀봉이라고 하는 산이 있으며 서쪽에는 옹동봉이 있다.
동남쪽에는 두묑이골이라는 골짜기가 있고 서쪽에는 둥둥뫼라 부르는 등성이가 있으며 역시 서쪽에는 덕천면 도계리로 넘어가는 자래 고개가 있으며 동쪽에는은선제라고 부르는 연못이 있고,그 넓이는 2정보가 된다.
유적으로는 은선리 토성과 은선리 고분군 지사리 고분군이 있다.
(5) 풍월리 (豊月里)
본래 고부군 동부면 구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연지리 풍촌 월현리와 서부면 홍원리 덕림리 율포리 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풍촌과 월현의 약칭으로 풍월리라 하고 정읍군에 편입 하였다.
북풍(北豊) 마을
가구수 44
인구 122
풍월리 북풍 마을은 현재의 북풍과 남풍 마을 을 합쳐 풍촌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이마을은 조선시대 신나무가 많았었다고 하며 주로 벼농사로 생활하고 있으며 북풍과 남풍은 한마을과 같으며 마을 안길을 기준으로 북풍 마을과 남풍마을로 나뉘어 졌다.
남풍(南豊)마을
가구수 31
인구 98
남풍마을은 북풍 마을과 합쳐 풍촌이라 하고 두 마을 이 한마을 같으며 마을의 안길을 기준으로 북풍과 남풍 마을로 나뉘어 졌다.
이 마을은 순농사를 하며 세대수가31세대이고 인구가 98명이다.
풍양(豊陽) 마을
가구수 : 25
인 구 : 70
풍월리 풍양마을은 연지마을 동남족에 있는 마을로 영원소재지에서 2km정도에 위치해 있고 마을 뒤쪽에 신풍교회가 있고 풍워리 월현마을과 신영리 신영방면의 교통요지에 있다.
연지(蓮地)마을
가구수:44
인 구:122
영지마을은 연지동이라고도 하며 풍월의 중심마을이고 이마을은 여화도수형이라고 한다 신풍초등학교가 있었으나 2000년부터 영원초등학교교로 통합되면서 폐교되었다.
월현(月炫)마을
풍월리 월현마을은 다목촌이라고 하며 예전에는 닥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마을 앞에는 고부천이 흐르고 주민들 대부분이 벼농사를 지으며 살고있고 들판에 있는 마을로 텃밭을 제외하고는 밭농사가 없으며 풍월리 보건진료소가 월현마을에 있다.
월산(月山)마을
가구수:23
인 구:134
풍월리 월산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3km에 위치해 있으며 주민들 대부분이 벼농사를 주업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마을앞에는 고부천이 흐르고 있다.
신월(新月)마을
가구수:44
인 구:122
풍월리 신월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3.5km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고부면과 인접해 있으며 마을앞에 고부천이 흐르고 마을중앙으로 부월선이 개통되어 2000년도에 시내버스가 마을까지 개통되었다.
경산(庚山)마을
가구수:44
인 구:122
풍월리 경산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서쪽으로 3.5km에 위치해 있으며 주민들 대부분은 벼농사를 주업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부안군 주산면이 인접해 있으며 2000년도에 시내버스가 개통되면서 부아군 주산면 부골마을 주민들도 이 시내버스를 타고 정읍시내를 왕래하고 있다.
이 마을의 뒷산에 개바위가 있다고한다.
신영리(新永里)
본래 고부군 동부면(東部面) 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신영리(新永里), 은동(銀洞), 발립리(發立里), 부지리(部地理)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중심마을 이름을 따서 신영이라 하고, 정읍시 영원면에 편입하였다.
신영(新永) 마을
가구수:36
인 구:82
신영리 신영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3km에 위치해 있다.
신영마을은 신영리의 중심마을이며, 이 마을을 「신영골」이라고도 한다.
남쪽으로 고부면이 인접하여있고. 이 마을의 동남쪽에 있는 앉은배기산(山)이 있으며, 「대섭재」라 하여 마을 남쪽에서 고부면 용흥리 학정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고 옛날에는 그 곳이 대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발립(發立)마을
가구수:44
인 수:122
발립마을은 신영마을과 같이 붙어있어, 마을 안 길을 기준으로 두 마을이 나뉘어져 있다. 이 마을은 신영마을의 서북쪽에 있으며, 연화부수형이라고도 하고, 이 마을의 서남쪽에 「둑너머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으며 서쪽에 월현리로 가는 「장성배기」모퉁이가 있다.
서쪽에는 「발림보」(洑)가 있고, 역시 서쪽에 50m 되는 「발립다리」 또는 중월교라고 하는 다리가 있고, 서쪽에 세아름되는 홰나무와 네아름되는 팽나무인 「발립정자나무」가 있다.
무릉(武陵)마을
가구수:12
인 구:27
무릉 마을은 발립 쪽에 있는 마을로 영원면에서 가장 작은마을이며, 세대수12호이고 인구가 27명이다. 면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3km 지점에 있다.
후지리(後地里)
본래 고부군 동부면(東部面)구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효죽리(孝竹里), 후지리(後地里), 용동(龍洞), 신기리(新基里), 부지리(釜地里), 풍촌(豊村)의 각 일부와 북부면(北部面) 효문리(孝文里)를 병합하여, 중심 마을 이름을 따서 후지리라 하고, 정읍시 영원면에 편입하였다.
효문(孝門)마을
가구수:45
인 구:134
후지리 효문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5km에 위치해 있다. 효문마을은 후지 서남쪽에 있고,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5km 지점에 있으며 예전에는 소멀리라고 불리웠고, 주민들 대부분은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으나, 일부 농가는 돼지를 키우는 축산을 하고 있다.
후지(後池)마을
가구수:20
인 구:61
후지리 후지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5km에 위치해 있다. 후지 마을은 뒷못이라고도 하며 이는 마을 뒤에 큰 연못이 있어서이다. 효문마을과 붙어 있는 마을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벼농사를 하고 있으며,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1,5km에 있고, 세대가 20호이며, 인구가 61명이다.
후지 서쪽에 가랍재라는 마을이 있고, 가랍재 서남쪽에 감못이라는 마을이 있으며, 이 마을의 남쪽에는 성넘머 마을이 있고, 서남쪽에는 매봉재라는 산이 있다.
성지(성지)마을
가구수:44
인 구:122
성지마을은 가랍재, 감못이, 성너머의 적은 세개의 마을이 한 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민들의 대부분이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마을 서쪽으로는 소류지가 성너머제와 성지제 두개가 있고, 마을에 석가공 업체가 있는데 그 자리가 예전에 금광자리로 그 흔적이 아직도 곳곳에 있다. 끝
자료 조사자 행정 9급 조혜선
....................................................................
이자료는 담당직원이 주민의 자문없이 조사한것으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근무 1년도 않된 여직원이 담당한 자체가 무리이며 이 책으로 인하여 새천년을 맞이하여 2003년도에 정읍시가 야심찬 계획으로 발행한 정읍시사도 문제가 재발되고 있는것이다 그래서 우리 영원면은 삼국시대 가장 중심지로써 역사와 문화유적을 망라한 제반의 기록과 전해오는 이야기를 정리하여 영원면사를 기록하고 책으로 발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