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hief's Diary : 대재앙 -
그리고 그를 못 믿는 담당자의 말.
“이번에도 불안해.”
20대 초반 여성들의 분장을 한 영자는 도심을 누비며 중얼거렸다. 저번 미술관 때의 일 때부터 의뢰인을 경계하게 된 영자는, 또 다시 자기 자신을 형사라 소개한 사람을 만나 그에게 난생 처음으로 영수증을 써 주었다. 영수증은 이것이 거래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 외에도 상대가 자신을 고용했었다는, 위험할 땐 의뢰인을 물귀신 삼아 같이 끌고 내려갈 증서를 써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뭐가 그리 불안한지 그녀는 자꾸만 턱을 쓰다듬었다.
“저번 미술관 일 때문에 그런 건가? 아니, 하지만 정말 불안한데.”
미술관 일을 맡았을 때와 같은 느낌. 사실 이것이 두 번째만이 아니란 사실도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떤 빌딩에서 동상 꼭대기의 루비를 훔쳐오는 일을 할 때도 그녀는 지금과 같은 불안함을 느꼈었다. 게다가 이 일은 자신의 아들딸이 할 일이었기에 그 만큼 신중해야 했다. 잡혔다간 단순히 소년원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뭐 그들의 아버지인 성환이 있었지만 그까지 불러들였다간, 그리고 그가 유엘을 돕는 걸 경찰들에게 들켰다간 성환의 입지도 곤란해질 점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위험하면 바로 빠지라고 일러두는 것이 좋을까…….”
간단히 중얼거린 영자는 곧 버스 정류장 앞을 서성이다 건물에 몸을 기대었다. 뜨거운 태양의 힘이 아직 가시지 않은 밤. 도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활기를 띄고 있었다.
“젊다는 건 좋은 거야.”
스스로 말하고도 스스로 민망했는지 영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앞으로 차 한 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것을 바라보는, 화주의 얼굴도 있었다.
“그 때와는 이미지가 정말 다르군. 하여간 저 연기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니깐.”
영자가 있는 곳의 길 건너 주차장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며 그는 말했다. 사실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없었지만 화주는 자신의 옆에 뭐가 있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꼭 진짜 인간 같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응, 그래. 뭐 실은 그 쪽에도 많이 종사했었으니까. 헤에, 그래? 생각보다 대단한 존재였군.”
연방 고갯짓까지 해 대는 화주. 누군가가 봤으면 자신을 미친 사람 취급할 거라고 화주 자신도 스스로를 별스럽게 여겼지만 은인이자 동생인 ‘그’를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차피 주변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
“뭐 하나?”
화들짝 놀란 화주는 저도 모르게 허리춤의 일본도에 손을 가져대려 했다. 그러나 화주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조용히 다가와 그의 뒤를 제압한 것은 다름이 아닌 성환이었다. ‘일’이 끝났는지 그는 재깍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뒤처리까지 끝냈지만 이 녀석 패거리들이 눈치를 챈 모양이야. 어서 가자.”
“아, 예…….”
화주는 검신도 절반밖에 남지 않은 일본도에서 손을 뗀 뒤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 페라리 셰네 F02는 시원한 배기음을 흘리며 도심 속으로 녹아들었다.
“나 참, 거기가 아니라니깐! 좀 더 안쪽이라고, 안쪽!”
밝은 달이 내리쬐는 밤. 엄마와 아빠가 없는 틈을 타 폐교로 나온 시은은 이라에게서 난데없는 곤욕을 치루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아닌 인간을 상대로 ‘사람을 죽이는 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시은은 두 손에 흥건한 핏방울을 보고도 이젠 별다른 감흥이 없는지 다시금 손을 치켜들었다. 목표는, 이라가 즉석에서 만든 거지만 이라의 조종을 받는 만큼 민첩하고 영악한 인간형 고깃덩어리.
‘저기다!’
퍽 파삭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간형 고깃덩어리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자 그것은 울컥 피를 쏟아내었다. 급소를 공격당한 가짜 인간이 잔뜩 피를 토한 까닭이었다. 곧 그것은 정말 사람이 쓰러지듯 바닥에 몸을 뉘였고, 오래지 않아 한 줌 먼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그 뒤로 이라의 칭찬이 이어졌다.
“좋아, 잘 했어. 것 봐. 맨손으로도 살인이 가능하다니깐.”
“…….”
시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나 할까.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이게 몇 명 째지?”
“백 명은 넘었을걸. 왜?”
“……단 세 시간 만에 60여 명의 사람을 죽였다는 소리잖아.”
“응……. 생각해 보니 그러네. 놀라운걸.”
“뭐가.”
“꽤 오래 전에도 살인마를 하나 키워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 빨리 살인을 배우진 못했어. 하루 종일 해도 80명 죽이기가 힘들었는데, 단 세 시간 만에 60이라니. 자질이 있는 건가?”
“그런 자질이라면 거부하고 싶은데.”
우스갯소리로 대답한 거지만 그딴 자질은 정말 거부해 버리고 싶다. 그런 생각을 이라는 그의 눈동자를 통해 알았지만 그에게 서글픈 웃음을 하나 지어 줄 뿐이었다. 시은이 살인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맨 처음 자신이 처리반 사건을 일으켰을 때와, 지금시은이 살인을 배울 때의 살인에 대한 시은의 생각은 점차 절대 불가형에서 개방 불가형, 즉 살인은 절대 해선 안 되는 것이 아닌, 아주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거짓말도 선의의 거짓말이 있는 것처럼 살인도 정당화될 수 있는 살인이 있다는 것이다.
‘뭐 선의라는 것도 인간의 착각이겠지만.’
잠시 조그만 생각에 묻혀 있던 이라는 곧 정신을 차리고 다시 땅에 손을 짚은 뒤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만세를 했다. 그와 동시에 다시금 고깃덩어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라가 만든,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
“자, 이번엔 팔을 몸에서 분리하는 방법이야. 잘 봐 둬.”
이라는 인간형 고깃덩어리의 어깨 부분을 잡았다. 그리고 별 과정 없이 손을 살짝 비트니 양 팔이 떨어져 나가며 한 차례 붉은 피가 땅을 적셨다. 곧 그것이 바닥에 쓰러지자 이라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시은을 돌아보았다.
그러는 시은의 눈빛이 이상했다. 뭐랄까, 꼭 나사가 하나 풀린 사람 같은?
“……안시은?”
“어? 아, 미안.”
뭔가 엉뚱한 상상을 했는지 시은의 얼굴이 빨개졌다. 이라는 한껏 궁금해져 얼른 그의 눈동자를 쳐다보았지만 이미 그는 재깍 눈을 감고 심호흡을 시작한 뒤였다. 정말 방도가 없는 걸까. 서둘러 그의 머릿속 이미지들을 읽어보려 했으나.
“자, 그럼 시작해 볼까.”
어느새 잡념을 깡그리 비워 버린 그의 머릿속에는 기술, 혈액, 팔뚝, 손목 같은 이미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쉬운 이라는 쩝쩝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때 누군가가 학교 뒤뜰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벼운 발소리. 이어지는 또렷하면서도 낭랑한 목소리.
“저기, 시은.”
“응? 아, 왜요? 세라프 누나.”
마침 자세를 잡고 있던 시은이 세라프를 돌아보며 물었다. 세라프는 예의 그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시은에게 말했다. 그러나 얼굴 한 편에는 시은에 대한 어떤 걱정도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 누구더라, 시은 동생이란 사람이 전화했는데요.”
“시라니 저에게 전화를요?”
세라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은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자꾸만 머리를 갸웃거렸다. 시란이 어떻게 이 곳의 전화번호를 알아낸 걸까?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은 어떻게 알았지? 날 찾는 이유는?
“음……. 가 봐야겠네요. 전화기가 어디에 있나요?”
“숙직실 앞 복도에서 중안 현관 반대쪽으로 죽 가면 나와요. 아참, 힘들겠지만 열심히 살아요.”
“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며 자신을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라프의 말에 의문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린 시은은 이윽고 세라프가 알려준 곳으로 달려갔다. 마침 오래된 공중전화의 수화기는 올려져 있는 상태였다.
“여보세요?”
“아, 역시 거기 있었네, 오빠.”
수화기 너머로 시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시은은 시란의 용건 따위 듣지도 않은 채 먼저 궁금증을 쏟아내었다.
“야, 너 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아냈어?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그냥, 오빠가 야밤에 갈 곳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았어. 그리고 전화번호는 벌써 등록되어 있던데?”
“등록되어 있다고?”
“응. 그 폐교와의 통화는 1급 수준으로 되어 있어.”
1급이라면 보통 사람들이 서로 전화를 거는 것과 같은,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이 아닌 시은 네 가족에겐 그야말로 완전 개방 상태라는 것을 의미했다. 가족 누군가가 어느새 이라의 집, 아니 폐교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그리고 그 까닭에 엄마의 전화 통제 시스템에서 이라의 폐교 이름만 싹 빠진 것이었다. 물로 1급으로 만들어 두고 싶은 전화번호가 있다면 언제든 엄마에게 제출해도 좋다. 문제는…….
‘이상하네. 난 등록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그럼 누가 이라의 학교 전화번호를 등록했단 말인가. 시란? 엄마? 아빠?
“……여하튼, 왜 전화했어?”
나중에라도 모두를 심문해 봐야겠다며 시은은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러자 시란이 대답했다.
“내가 오빠를 부를 일이 몇 가지나 있겠어? 그 중 하나가 바로 ‘일거리’이지.”
“일거리? 오랜만에 일이라도 하나 잡아낸 거야?”
“방금 메시지가 도착했어. 오늘 밤 11시, 장소는 센트를 시티라는 빌딩. 지어진 지 이제 겨우 일주일밖에 안 된 건물인데, 이번엔 목표부터가 심상치 않아.”
“……?”
“지금까지 우린 경비를 피해 다녔잖아. 하지만 이번엔 경비와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할지도 모르거든. 경비구역 중앙 AI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그 목표니까 말야.”
“하드디스크?”
시은은 슬쩍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에...저번주는 설날인 관계로[타앙!]
뭐 사실 이번주도 여행이었기에 건너뛸까 생각하다가[퍽] 이렇게 일찍 와서 올립니다-ㅂ-
음음'ㅅ' 이번편은 다음편을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해 주심 고맙겠어요♡[응?;] 산영도 그렇고 유엘도 그렇고 여러모로 복잡해져 가는 '대재앙'편이랍니다:D[...] 뭐 그래도 이쯤 하면 괜찮지 않나요? 볼만하죠?[뭐가-ㅁ-!]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여튼 다음편에는 유엘의 도둑질이로군요'ㅁ'♡[어이?;] 여튼 다음편에서 뵈요~!
-----다음편 예고-----
#23.밀착(密着)
"아직 건들어 보지 못한 시스템이라니요?"
"알았어요. 자, 가자."
"엠, 나는 그 설계도가 더 의심가는데."
"정말 환풍구로 향하는군."
"응? 아아, 고소공포증이 재발한 건가?"
"누군가가 일부러 보안 장치를 가동시킨 것 같다고요?"
"어, 얼른 엎드려!"
"역시 왔군.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었어."
"무리해서 잡지 마라!"
"유엘 남매다! 정조준!"
"도망가고 싶으시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