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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전심법요>에 나타난 무심無心 사상 6/12
황벽(?∼856)의 선을 ‘무심선無心禪’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직지심경> 저자 백운경한(1298∼1374) 선의 특징도 무심선이라고 한다. 물론 동아시아 선의 특징은 무심인데, 이 점은 황벽에게서 정립되었다고 본다. 육조 혜능(638∼713)에 의해 선종의 소의경전이 <능가경>에서 <금강경>으로 전환되었다. 혜능이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구절에 감화되어 출가한데서 유래한다. 여기 ‘이생기심’에서 기심이란 무심을 말한다. <금강경>에서 6바라밀 실천 중 대표가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인데, 곧 무주심無住心[=無心]을 말한다.
<유마경>에도 무심이 나타나 있다. 중회衆會에서 한 천녀가 보살대중과 제자들[성문승]에게 하늘 꽃을 뿌렸다. 천녀가 뿌린 꽃잎이 보살들에게 붙지 않는데, 유독 제자들에게 꽃잎이 붙는다. 비구들이 아무리 떼려고 해도 떼어지지 않자, 천녀가 사리불에게 ‘굳이 꽃잎을 왜 떼려고 하냐?’고 묻는다. 사리불이 ‘비구는 가사에 꽃잎이 붙어 있으면 여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하자, 천녀가 말했다.
“꽃잎은 분별이 없건만 왜 존자님께서 분별하십니까?
출가자가 분별심을 갖고 있는 것은 비구의 여법한 모습이 아닙니다.
분별심이 없는 것이 법다운 비구입니다.
꽃잎이 붙지 않은 저 보살들은 일체 분별ㆍ관념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앞 내용은 이분법적으로 사유하거나 집착심ㆍ분별심을 갖고 있는 성문승[小乘 상징]에 유마[大乘 상징]가 꾸짖는 것이다. <유마경>에서는 이 무심을 ‘무분별심’이라는 단어로 쓰고 있으며, <금강경>에서는 집착하지 않는ㆍ분별심이 없는ㆍ형상을 취하지 않는ㆍ관념두지 않는 “응무소주 이생기심”의 무소주無所住이다. 또한 <유마경>으로 보면, ‘얻었다는 것조차 마음 두지 않는[無所得心]’ㆍ‘분별하지 않는’ㆍ‘어떤 것에도 구하는데 집착하지 않는[無求心]’ 등이다. 황벽은 <금강경>ㆍ<유마경> 등 대승경전에 영향을 받아 선사상을 정립했다. 황벽의 <전심법요>에 나타난 무심을 보자.
“저 모래에 비유해보자. 제불ㆍ보살ㆍ제석ㆍ범천들이 지나갈지라도
갠지스 강가의 모래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혹 소ㆍ양ㆍ벌레 들이 모래를 밟고 지나칠지라도 모래들은 진심을 내지 않는다.
값비싼 보배와 보배 향료가 쌓여 있다고 할지라도 갠지스 강가 모래는 탐을 내지 않고,
혹 똥오줌의 악취에도 모래는 싫어하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이런 무분별심이 곧 무심이다.
분별심을 여의어 중생과 부처, 그 어떤 것에도 분별하지 않는 마음이라면,
바로 이 경지가 궁극적인 깨달음[無心]이다.”
황벽은 무심을 갠지스강의 모래에 비유하고 있는데, 갠지스강의 모래는 고귀한 부처님이나 보살, 혹 아름다운 아가씨가 지나가도 기뻐하지 않지만, 반대로 개ㆍ돼지가 지나가면서 대소변을 보거나 살인자가 지나가도 싫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무분별심이므로 그 자체가 무심한 경지라고 하였다.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다는 원리 아래, 그런 원리조차 마음 두지 않는 무심이야말로 본원 청정한 부처이다. 갠지스강의 모래 비유도 결국 무소주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요, 이 무소주는 곧 무심이다. 황벽은 이런 무심의 경지가 본래 청정한 부처이며, 누구나 가진 마음이라고 하였다. 또 하찮은 중생이든 제불ㆍ보살이든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황벽은 밝고 어둠에 구애되지 않는 허공처럼, 본원청정本源淸淨한 일심의 불성을 강조하며, 어둠과 밝음, 해와 구름 등 어떤 것에도 구애되지 않는 무애자재함을 드러낸다. 또한 깨끗하고 더러움, 옳고 그름, 유ㆍ무 등에 차별 분별상을 여의어 깨달음이니 미혹이니 하는 것조차 집착하지 않는 것을 무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 황벽은 <전심법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굳이 인위적으로 힘쓰지 않아도 된다. 이곳에 이르러 있는 때, 머물러 있을 곳이 없다[無棲泊處]. 곧 이 행行이 모든 부처의 행이므로 마땅히 관념두지 않고, 그 마음을 내어야 한다.”
집착하거나 인위적으로 힘 쓸 필요가 없는 임의자재任意自在인 것이다. 이 무서박처는 무소주無所住의 의미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고도 한다. 무심은 단지 무심이어야 무심인 것이요, 무심이라고 관념 둔다면 유심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첫댓글 황벽과 운문등 중국 선사들의 무심 다시 상고할 필요가 있읍니다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먀삼보리 깨달음은
삼취정계에 근원하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원만보신 로차나불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에 의하여 불전속의 많은 보살님들도 위신력에 의하여
감동함으로 설법이 가능 하여 지는데
황벽선사는 바짝마른 무심언구에 사로잡힌 의리선 선사입니다
이유는 만덕 실천에 의한 일대인의 대 자재경 성취가 아니라
생각하는때문입니다
오만한 중국역사 전통에서
다행하게 보리달마대사님과 무상대사님만이
500나한속에 공양받는다는 사실!
명심 하십시요!
중국선사들 52단계 수행을 밟아 만덕 도피안 성취한 유명세를 타고있는 선사들 누가 있는지?
있다면 밝혀 주십시요!
금바위는 만덕 도피안 할수있는 최초의 불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청화법능스님 입적후에
금타대화상님의 최고의 보살도를
2005년부터 받고 신명나게 실천하는
이유때문입니다
살펴주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