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음악의 세계화를 위한 문화콘텐츠 개발의 방향
신광철
Ⅲ. 전통문화 공연 콘텐츠의 현주소와 전통음악 세계화의 방향
외국인을 위한 자국의 전통문화 공연 콘텐츠는 단순한 상업적 이익 이상의 문화적 효과를 거둔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일본의 ‘기온코너’나 중국의 ‘노사차관’ 같은 공연프로그램은 자국의 문화를 외국인에게 알리는 주요 콘텐츠로 자리 매겨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한국의 집’과 ‘정동극장’ 등에서 전통문화 공연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우리의 ‘한국의 집’과 ‘정동극장’의 공연 콘텐츠를 분석한 후, 일본의 ‘기온코너’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봄으로써 우리 공연 콘텐츠의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19) 분석 과정에서 전통음악의 활용에 대해 특별히 주목하고자 한다.
한국의집 민속공연프로그램의 기획 취지는 “한국전통의 가(歌).무(舞).악(樂)을 한 군데에서 감상하게 한다”는 데에 있다. 한국의집 공연 콘텐츠는 전체적으로 볼 때 무형문화재 공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의집 공연 콘텐츠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계절에 따른 컨셉을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부채춤과 판소리 같은 기본 콘텐츠에 계절의 특성과 어울리는 콘텐츠를 가미하여 주기적으로 프로그램을 교체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여름 프로그램에는 선녀춤과 해녀춤을, 그리고 가을 프로그램에는 강강수월래와 농악을 배치하고 있다.
세부 콘텐츠 구성에 있어서는 ‘정’(靜)과 ‘동’(動)의 흐름을 교차시켜 지루함을 덜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되고 있다. 군무(群舞)와 독무(獨舞) 반복.교차 배치가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있는 것이다. 2006년 봄 프로그램의 경우, 가인전목단을 출발점으로 하여 ‘정’과 ‘동’ 사이를 오가다가 결말부에서 사물놀이를 통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 구성은 공연 전체의 다이내믹스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기는 하지만, 몇 가지 점에서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우선, 공연의 다이내믹스 확보 차원에서의 ‘정’과 ‘동’의 교차 배치에 주안점이 놓이면서 공연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텔링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야기(주제)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다음으로, 전통음악의 비중이 제대로 부각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특정 대목에서 특정 장르의 음악이 활용되는 맥락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의 문제(스토리텔링의 부재)와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19)
이 장에서의 조사연구는 2006년도 1학기 외국어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전시회의 기획과 경영2>수업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이 조사연구에는 대학원생 조소연, 박성은, 구효진, 임동욱 등이 함께 참여하였다.
정동극장은 한국전통문화의 향기를 전하는 ‘전통예술무대’를 통해 전통문화의 저변확대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 정동극장은 최근 전통예술무대의 콘텐츠의 컨셉에 수정을 가했다. 정동극장 전통예술무대의 기존 콘텐츠는 ‘365일 만나는 즐거운 국악세상!’이라는 모토 아래, ‘전고-산조합주-부채춤-사물-국악관현악협주곡-화관무-판소리/가야금병창/삼고무/판굿’의 순서로 짜여져 있었다. 기존 공연 콘텐츠 구성은 한국전통예술무대의 네 장르인 풍물, 무용, 기악, 소리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2006년 4월부터 새롭게 선을 보인 정동극장 전통예술무대 공연 콘텐츠 구성은 ‘시나위합주와 춤-판소리-삼고무-실내악-태평무-판굿과 소고춤’의 흐름으로 짜여져 있다. 콘텐츠구성의 모토 또한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이제 당신이 느낄 차례입니다!(Korea! It’s Your turn to feel it!)’로 바뀌었다. 새롭게 구성된 콘텐츠는 ‘사랑방에 들어와서 공연을 보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창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수동적 음악 감상회로부터 능동적 참여형 공연으로 기본 컨셉이 바뀐 것이다. 이러한 컨셉 변화는 기존의 암전(暗轉)이 아닌 명전(明轉) 방식의 도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세부콘텐츠 간의 흐름을 끊지 않고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을 연출하는 점 또한 이러한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의 공연은 무대의 현장감을 살리고자 모든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하고 있는데, 이 점 또한 참여형 공연으로의 전환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악기 고유의 소리를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공연에서의 전통음악의 비중에 주목한 결과로 여겨진다. 한편, 기존의 전통예술무대 프로그램의 콘텐츠 구성이 뚜렷한 스토리텔링 개념 없이 소리와 감정의 기복이 컸던 반면에, 새롭게 기획된 프로그램의 콘텐츠 구성은 ‘정’에서 ‘동’으로 서서히 상승하는 흐름의 스토리텔링 전략 아래 미시 콘텐츠를 선정·배치하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일본 교토의 기온코너는 일본의 다양한 전통예술을 한 무대에서 관람할 수 있는 공연장이다. 전통적인 색채가 짙은 기온의 시죠도오리와 하나미코지도오리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기온코너에서는 주말 저녁 7시와 8시 각각 50분 동안 전통예술 공연을 하고 있다. 1962년
문을 연 이래로 각국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Let’s Experience All about Traditional Kyoto’라는 취지 아래 전통 음악 연주, 전통 무용을 비롯해서 꽃꽂이와 다도에 이르기까지 교토를 중심으로 발전한 일본 전통예술의 다양한 면모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온코너의 공연 프로그램은 7개의 다양한 전통예술 공연 콘텐츠로 구성되어 있다. 무대의 오른편에 마련된 다실에서 관람객 중 체험을 원하는 이를 상대로 다도(茶道) 시범이 있고, 다도 체험이 진행되는 중에 무대의 막이 오르며 거문고 연주와 함께 꽃꽂이 시연이 병행된다. 다도(茶道).화도(花道)와 코토(琴) 연주가 병행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문화 와 일본음악의 접맥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문고 연주와 함께 꽃꽂이 공연이 끝나면 다음으로는 아악이 연주된다. 기온코너의 공연 콘텐츠 구성에서 일본 전통음악의 비중이 큰 편이다. 아악 연주에 이어 쿄겐(狂言)이라고 하는 희극 공연이 이어진다. 관객들 이 쿄겐을 보면서 한바탕 웃음 삼매경에 빠지고 나면, 화려한 기모노 차림의 마이코(舞妓)들 이 추는 우아한 춤인 교토의 춤, 즉 쿄마(京舞) 공연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인형극인 분라쿠(文樂) 공연을 끝으로 공연이 매듭지어진다.
기온코너의 공연 프로그램은 교토를 중심으로 꽃피웠던 일본의 전통예능을 한 곳에서 모두 관람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기온코너의 공연 콘텐츠는 교토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전통예능 콘텐츠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다. 이 콘텐츠들은 일본문화를 대표할만한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다. 기온코너 공연 콘텐츠의 흐름은, 아악을 중심으로 공연의 전반부에는 정적인 콘텐츠가, 공연 후반부에는 동적인 콘텐츠가 주로 배치되고 있어서 ‘정’에서 ‘동’으로 서서히 진행하는 점입가경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취하고 있다.
기온코너의 공연 콘텐츠 구성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교토 전통문화의 특성으로부터 공연 콘텐츠 구성의 기본 컨셉을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교토가 전통 문화유산의 보고라는 점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경주나 전주 같은 고도(古都)의 문화로부터 공연의 컨셉을 자아내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전주 등지에 이미 일련의 공연 프로그램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전주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중심 테마로 설정하는 공연 콘텐츠 구성의 집중화 측면은 더욱 깊은 수준에서 지속적으로 탐구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정’에서 ‘동’으로 서서히 진행하는 점입가경의 스토리텔링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 전통음악이 중요 계기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전체 공연 프로그램에서 전통음악 콘텐츠의 위상이 분명한 편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음악이 만국의 공통 언어라는 점을 전제할 때, 전체공연 프로그램에서 전통음악의 역할과 위상을 분명하게 설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