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오해 그리고 만남
"하늬 덕분에 맛있는 저녁을 먹었구나."
형철은 식탁에 앉아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늬
를 비롯한 형철의 가족은 하늬가 만든 음식으로 저녁식사 중이다.
"그러게요. 하늬 넌 어쩜 된장찌개까지 할 줄 아니. 내가 먹어본 된장찌개 중에 오늘이 최고
다."
희정도 거들며 흐믓하게 웃었다.
"하늬 너 너무 완벽한 거 아냐? 어째 처음부터 지금까지 별 흠이 없는 게 좀 위험하다. 사람은
적당히 부족한 면도 있고 그래줘야 옆에 사람이 기가 덜 죽지. 넌 그게 단점이야."
혜선이 농담처럼 툭 던진 말이지만 하늬는 뜨끔했다.
하늬의 엄마 주희는 하늬에게 언어장애가 있는 만큼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 다른 것들을 완벽
에 가까울 정도로 교육시켰다. 그래서 하늬는 남들에 비해 잘하는 것이 많았다. 피아노, 바이
올린, 플룻, 킥복싱, 태권도, 수영, 발레, 미술, 요리, 이 모든 것을 그녀의 어머니가 만족할 때
까지 이를 악물고 배워야만 했다. 그녀가 숨막히는 배움의 연속에서도 긍정적이며 밝을 수 있
었던 건 엄마를 이해하고 또 자신도 그만큼 욕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 것에 대해 하늬는 늘 감사할 줄 알았다. 그러나 가끔 그녀가
너무 완벽한 것 같다며 거부감을 갖거나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불편하기도 했다. 그런데 혜
선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제가 욕심이 많아서 그래요. 그래도 언니 저 좋아하잖아요."
"그래, 좋아한다! 아무튼 조하늬 자신 만만해서 좋아! 계속 그렇게만 해."
일부러 시험해 보려 던진 말을 당당히 받아치는 하늬가 혜선은 올케 감으로 더 탐이 났다. 형
철부부 역시 하늬를 곁에 두고 볼수록 더 맘에 들었다.
"그런데 준현이는 왜 이렇게 늦는 거야? 그 녀석 오기 기다리다 저녁까지 늦게 먹었는데 아직
도 들어오지 않다니."
형철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급한 일인가 보더라구요. 급하게 뛰어나갔어요."
혜선이 나서서 준현을 감쌌다.
"그 녀석 늦게 들어오더라도 나 좀 보자구 해. 하늬야 잘 자라."
준현에 대한 못마땅함이 역력한 형철의 표정이 하늬에게 밤 인사를 하면서 버터를 바른 듯 부
드러워졌다.
"안녕히 주무세요."
하늬의 인사를 받으며 형철은 주방 밖으로 나갔다.
"역시!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니까. 우리 아버지 표정 바뀌시는 거 봐."
"시어머니 사랑도 만만찮다. 아침에 보자 하늬야."
희정도 하늬에게 자상한 미소를 띄우며 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하나밖에 없는 딸한텐 잘 가란 인사 한마디 없으시네. 안되겠다!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가야
지!"
혜선이 장난스럽게 심술난 것처럼 말했다.
"민희가 엄마 찾지 않아요?"
"실은 남편은 유럽 출장 갔고 민희는 친할머니가 데리고 가셨어. 그래서 왔지. 혼자 허벅지 찌
르면서 자는 것보단 친정에서 눈칫밥 먹는 게 낫잖아?"
혜선의 농담에 하늬는 웃었지만 속으론 자꾸만 흘러가는 시간을 의식했다. 그녀는 자정이 넘
어도 준현이 집에 들어오지 않을까 봐 초조했다.
술에 잔뜩 취해 잠들어 버린 혜민을 등에 업고 준현은 카펫트가 깔린 호텔 복도를 걸었다. 벨
보이가 그들보다 앞장서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켰다. 준현이 뒤따라 들어와 침대에 혜
민을 눕히자 벨 보이는 인사하고 나갔다.
준현은 더워 냉장고에서 물부터 꺼내 마시고 침대에 뻗어있는 혜민을 봤다. 쇄골 위까지 살짝
파진 블라우스를 입어 완전히 드러난 가늘고 긴 목선이 그녀를 가냘프고 여리게 보이게 했다.
거기다 그녀의 불우한 집안 환경을 알고나니 그녀가 더 여리게 느껴졌다.
'앞으로 더 소중하게 대해야겠어.'
그는 속으로 혜민에게 더 잘할 것을 다짐하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얇은 이불을 덮어주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날 혼자 두지 말아요. 지금은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제발 옆에 있어줘요."
준현의 옷자락을 잡으며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혜민이 간절하게 말했다. 슬픔과 외로움이 묻
어나는 목소리에 준현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며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곁에 있을 테니까 안심하고 푹 자요. 꼼짝하지 않을게요."
그는 불편한 자세 그대로 혜민의 손을 잡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혜민이 원하는 것은 이성적
인 신사가 아니라 본능에 충실한 늑대인데 준현은 전혀 변신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긴장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빠 같은 편안한 표정마저 짓고 있다. 참다 못한 혜민이 유
혹하기로 맘먹었다.
"준현씨 힘들겠어요. 괜찮으니까 내 옆에 누워요."
그녀는 조금의 흑심도 없는 듯 순진하게 말했다.
"아뇨. 이대로 혜민씨 보고 있는 게 좋아요. 내 걱정말고 자요."
"그래요, 고마워요."
차마 더 적극적으로 유혹하지 못하고 속을 태우며 혜민은 눈을 감았다.
'니가 남자냐? 내가 알기론 남자는 여자랑 단 둘이, 것두 사랑하는 여자랑 있으면 못 참는다고
들었는데... 이 남자는 식은땀 하나 안 흘리고 태평하잖아. 뭐 이런 별종이 다 있어. 그렇다고
내가 노골적으로 유혹하면 저 꽉막힌 성격에 이상한 여자 취급할 테고... 오늘 계획은 여기까
지가 한곈가? 젠장!'
여우의 속셈을 전혀 모르는 준현은 혜민의 손을 꼭 잡은 채 약속대로 꼼짝하지 않고 소중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불그스름한 태양이 동쪽 하늘에서 얼굴을 내밀 무렵 하늬는 뜬눈으로 밤을 새고 가방에 짐을
챙겨 넣었다.
'내가 왜 다른 여자한테 몸과 마음을 다 뺏긴 남자 때문에 맘을 상해야 돼! 절대 아니지! 쳇! 여
우 꼬리에 휘둘리면서 잘 살아봐라! 헌 남자 관심 없다!'
준현이 밤새 들어오지 않은 것에 혜민과 만리장성을 쌓았다고 확신한 하늬는 준현에 대해 잠
시라도 흔들렸던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려 했다. 머리로는 자신이 화낼 하
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슴에선 불이 났다.
"상담사가 필요해!"
하늬는 달관한 자세로 침대에 앉아있는 토실이를 마주보고 수화한 후 번쩍 안아들고 방에서
나갔다.
"똑똑똑!"
"네!"
단잠에 빠져 있던 혜선은 얼굴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잠에서 깨 대답했다. 문이 터프 하게 벌
컥 열리며 하늬가 자신의 등치보다 큰 하얀 인형을 가슴에 안고 들어와 인형 위로 얼굴만 빼
꼼히 내밀고 섰다. 혜선에게 눈이 축 쳐진 토실이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인다. 하늬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과는 반대로 인형을 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명랑만화 같다.
"저 바다 보러 가요. 어른들 놀라시지 않게 잘 말씀해 주세요. 잘 다녀올게요. 걱정 마세요."
그녀는 왼손으로 인형을 잡고 오른손을 사용해 지화로 말하고는 혜선의 말은 들으려하지 않
고 밖으로 쌩하게 나갔다. 갑작스런 하늬의 행동에 어리둥절하던 혜선은 잠에서 완전히 깨 두
뇌를 회전시키며 하늬가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삐!" 자동으로 대문이 열리며 까칠한 준현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출근해야 될 혜민을 호텔
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집까지 바래다주고 오전 8시가 다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밤새 혜민 곁에 앉아서 졸아 온 몸이 뻐근했다. 피곤함에 천근같은 걸음을 무겁게 움직여 정
원을 걷는데 혜선이 파라솔에 앉아 있다.
"나 기다린 거라면 피곤하니까 다음에 얘기 해."
피곤함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는 그냥 지나치려 했다.
"너 그 여자랑 잤어? 벌써 그런 사이니?"
누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준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니구나. 그럼 그렇지 내 동생이 누군데!"
혜선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딴 소리하려거든 말시키지마!"
불퉁하게 말하며 그는 앞으로 걸어갔다.
"하늬 바다 보러 갔어."
하늬란 말에 그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언제? 누구랑?"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그럴 거면 말은 왜 꺼내?"
준현은 짜증을 확 냈다.
"너 약올리려 그랬다! 하늬가 만만한 앤 줄 알아? 너 하늬 막보다 큰코다친다. 그리고 그 여자
한테 전해. 벌써부터 너 외박하는 거 보니까 나한테 점수 한참 깎였다고! 남자가 외박하자고
해도 돌려보내야지, 이게 뭐야! 아무리 아무 일 없었다고 해도 그 여자 맘에 안 들어!"
혜선은 벌떡 일어나 준현을 엄하게 쳐다보고 그를 스쳐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하늬가 말 없이 가버린 것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직은 비성수기라 한가한 호텔에 짐을 풀고 하늬는 토실이를 침대에 안전하게 앉혔다.
"토실아, 여긴 서해 바다가 보이는 호텔이야. 탁 트이는 곳에 오니까 좀 낫다. 역시 오길 잘했
어. 조금 있다 석양 보러 갈 거야."
그녀는 토실이 다리 아래 누웠다. 토실이가 그녀를 내려다보는 모양새다.
"토실아,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뭘까? 그리고 이성을 좋아하는 감정과는 어떻게 다르지? 난
준현 오빠를 좋아하는데 그게 그냥 좋아하는 걸까? 아님 특별한 걸까? 처음 겪어본 감정이라
모르겠어. 처음부터 끌렸고 다른 여자랑 같이 잤다는 것 때문에 내 기분이 쑥대밭이 된거 보
면 특별한 거겠지? 아니었음 좋겠는데. 정말 기분 뒤죽박죽이다. 내 이성으로 통제가 안 돼.
하지만 확실한 건 오늘 부로 준현 오빠에 대한 정의 내리지 못하는 이 떨떠름한 기분은 땡이
라는 거야. 땡! 땡! 땡! 아듀!"
그녀는 누운 채 침대 바닥을 탁탁 두드리고 양다리를 들어 공중에서 마구 동동거리다가 토실
이의 균형이 무너져 그녀의 얼굴 위로 쓰러졌다.
'역시 날 위로해 주는 건 너 밖에 없구나. 힘낼게.'
자신의 얼굴 위를 덮친 토실이가 자신을 안아준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그녀는 토실이를 꼭 안
았다.
잠시후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하늬는 호텔에서 나와 안내책자를 보며 해변을 찾아 걸었다. 안
내책자에 나온대로 길을 따라 한 3분쯤 걷자 백사장이 나왔다. 석양에 붉게 물든 하늘과 붉은
빛 수평선이 시원하게 펼쳐지자 하늬는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양팔을 넓게 벌리고 바다를 품
을 듯이 모래사장을 달렸다. 아직은 해수욕장을 개방하지 않아 사람이 거의 없어 하늬의 발자
국만이 모래사장에 길을 냈다.
바다 바람이 그녀의 뺨을 건강한 색으로 물들였고 소금기가 그녀의 감각을 예민하게 했다. 그
녀는 바다에 뛰어들기 전에 멈춰서 수평선 아래 잠긴 태양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두
손을 높게 들어 지화로 자신의 맘을 표현하며 소리되어 나오지 않는 말을 속으로 크게 외쳤
다.
"V. I. C. T. O. R. Y!!! I can do it! 아자아자아자!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야! 조하늬! 넌 누가
뭐래도 행복해!"
소리되어 나오진 않지만 가장 행복한 노래를 부르며 그녀는 석양을 향해 춤을 췄다. 그리고
바다에 뛰어들려고 하는데 그녀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웬 남자가 천천히 바다로 걸어 들어
가는 것이 보였다. 백사장에는 벗어놓은 남자의 구두가 가지런히 있다.
해가 질 무렵 남자의 뒷모습은 지독히도 쓸쓸해 보였다. 하늬는 그 남자가 자살하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갔다. 남자의 머리까지 바다 속에 잠길 즈음
하늬는 수영을 해 그 남자에게 다가가 버둥거리는 남자의 목에 팔을 두르고 악착같이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리고 그를 모래사장에 눕히고 팔다리를 마구 주물렀다. 그녀는 알고 하는 것
이 아니라 그저 자살하려는 남자를 바다에서 끄집어냈다는 긴장감에 생각나는 대로 아무거나
열심히 응급처치를 했다.
"이럴 땐 인공호흡이 최고지!"
재밌다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에 하늬는 다리 주무르는 것을 멈추고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떡 주무르듯이 주물렀으면 책임을 져야지!"
전혀 자살을 기도할 것 같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에 하늬는 흠뻑 젖은 그를 자세히 살폈다. 밝
은 다갈색의 굵게 곱슬거리는 약간 긴 머리에 짙은 갈색 눈동자, 잘생긴 얼굴에다 운동선수
같은 체격, 그는 경솔한 젊은이의 상징처럼 보였다. 특히 경솔이란 단어에 무게가 실렸다. 온
몸에서 플레이보이의 기질이 넘쳐나 보인다.
"감상만 할게 하니라 느껴보시지. 그럼 더 확실할 텐데."
하늬는 자신이 크게 실수했음을 느끼고 벌떡 일어나 잽싸게 뛰었다. 이럴 땐 삼십육계 줄행랑
이 최고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뛴 그녀는 호텔에 도착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마침 벨 보이가
엘리베이터에 타 흠뻑 젖은 그녀를 힐끗 보고 시선을 피했다.
"잠깐!"
엘리베이터 문이 막 닫힐 무렵 남자의 강한 목소리에 벨 보이는 열림 버튼을 눌렀다. 문이 양
쪽으로 열리고 해변에서 봤던 남자가 입가에 삐딱한 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와 하늬 옆에
섰다. 벨 보이가 그를 보고 긴장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는 무시했다.
"생명에 은인이 그렇게 죽어라 내빼시면 어쩌나. 연락처라도 가르쳐 주셔야죠."
비아냥거리는 남자의 말에 하늬는 잔뜩 경계했다.
"좋은 일 하고 뭘 그렇게 긴장해요? 나 나쁜 사람 아니에요. 단지 빚진걸 갚고 싶어서 그래요.
바에 가서 한잔 할래요? 아참! 옷 때문에 안되겠구나."
혼자서 떠드는 남자를 무시하며 하늬는 이번에 내릴 층이 아니지만 무조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총알처럼 튀어 내리리라 마음먹었다.
"띠!" 경쾌한 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 하늬가 튀어 나가려는데 남자가 덥석 그녀의 팔을 잡았
다.
"같이 갑시다! 나 때문에 옷 버렸는데 책임져야죠."
강하게 팔목을 휘어잡는 남자의 힘에 하늬는 일단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를 마주보며 찌푸
리듯이 웃었다. 남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봤다.
"퍽!!"
그녀는 있는 힘껏 몸을 날려 그의 머리에 박치기하고 그가 충격에 팔을 놓는 순간 냅다 달렸
다.
'쫓아오지마! 쫓아오는 순간 니 제삿날이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비상계단으로 프론트 데스크까지 뛰어간 하늬는 헉헉거리며 직원에게 도
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무슨 일이시죠?"
흠뻑 젖은 하늬의 몰골에 여직원이 놀라서 물었다.
"내 손님이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네, 이사님."
하늬가 보기엔 영락없이 바람둥이로 보이는 남자를 이사라고 부르며 직원은 깍듯하게 대했
다. 하늬는 이사라는 말에 어이 없어하며 남자가 끝까지 추근거려 고양이한테 쫓기는 생쥐 꼴
이 된 것에 화가 치밀었다. 거기다 몸의 라인이 드러날 정도로 흠뻑 젖은 꼴이라니, 정말 쪽팔
린다. 그런데 남자는 그녀와 똑같이 젖었음에도 불구하고 느긋했다.
"내가 이 호텔 이사라니까 좀 안심이 돼요?"
'아니, 물어뜯고 싶다, 이 자식아!'
잘난 척 하는 남자에게 속으로 욕을 퍼붓고 하늬는 가소롭게 웃으며 주먹을 그 남자 앞에 들
이대고 가운데 손가락만 펴 보였다. 미국식 욕설인 fuck you! 다.
"하하 하하하... 짝짝짝!"
남자는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유쾌하게 웃으며 하늬에게 박수를 보냈다.
"특급호텔 로비에서 깜찍한 아가씨가 보이는 행동치고는 아주 스릴 있는데요! 역시 그쪽 따라
오길 잘했어요. 나 굉장히 심심했거든요. 사는 게 너무 무료해서 자극 좀 받으려고 바다에 뛰
어든 건데 아가씨를 만났지 뭡니까. 우리 잘해 봅시다. 난 강신웁니다."
그는 자신 있게 하늬에게 손을 내밀었다. 멋지게 내부 장식이 된 깔끔하고 우아한 특급호텔
로비에서 바닷물에 푹 젖은 남녀 둘이 마주 보고 통성명을 하는 모습은 코미디 같다. 하늬는
멋대로 구는 남자가 맘에 들지 않아 불쾌한 표정으로 쌀쌀맞게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로 갔다.
신우는 더 이상 쫓아가지 않고 하늬의 뒷모습을 감상하듯 지켜봤다.
"저 손님 몇 호실이죠?"
"네... 저...."
"말하기 싫음 관두고!"
자신의 질문에 직원이 머뭇거리자 신우는 무표정하게 돌아서려했다.
"1202홉니다."
아무리 망나니로 소문난 강신우지만 사장님 아들이기에 잘못 보여선 안되겠단 생각에 여직원
은 마지못해 말했다.
"고마워요. 그리고 이건 경곤데, 앞으로 나 이사라고 부르지 말아요. 여기 어쩌다 가끔 놀러올
뿐인데 그렇게 부르면 지나가던 개도 웃어."
"네."
직원은 강렬한 그의 눈빛에 기죽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가씨 체크아웃 하는 데로 바로 나한테 알려요."
그는 차갑게 말하고 가버렸다.
'사장님도 얼릴 정도로 시베리아라고 하더니 진짜 차갑다. 그런데 잘생기긴 오지게 잘생겼
네.'
강신우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핸섬한 남자였다.
다음날 아침.
"띵동!"
하늬가 짐을 챙겨 나가려는데 벨이 울렸다.
"룸서비습니다."
룸서비스를 시킨 적이 없는 하늬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룸서비스 시킨 적 없는데요?"
그녀는 PDA에 글을 써 직원에게 보여줬다. 직원은 갑자기 글을 써서 보여주자 약간 당황하다
가 상황을 이해하고 태연한 척 했다.
"배달 왔습니다. 여기다 사인만 해주시면 됩니다."
직원이 포장된 상자를 내밀고 그 위에 영수증을 함께 올려 사인하라고 했다. 그녀는 일단 누
가 보낸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상자를 살폈다. 조그만 카드가 상자 귀퉁이에 붙어있다.
난 빚지곤 못살아요.
-강신우
카드에 써 있는 메시지를 보고 하늬는 어이 없어하며 직원에게 상자를 되돌려 줬다.
"이거 보낸 사람한테 장난이 유치뽕짝이라고 전해 주세요."
하늬는 PDA에 빠르게 휘갈겨 직원에게 보이고 곤란해하는 그를 무시하고 가방을 메고 토실
이를 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
'혹 때려다 혹 붙인 기분이잖아.'
택시를 타고 토실이의 목에 얼굴을 묻으며 하늬는 생각했다. 홀가분해지기 위해 온 여행이 강
신우란 뜬끔 없는 남자 때문에 오히려 꿀꿀해져 버렸다.
'어딜 가나 남자가 문제야!'
그녀는 기차역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려 서울행 기차를 타고 세상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이번 역은 서울역, 서울역입니다."
번쩍 눈을 뜬 하늬는 잠시 잠이 든 사이 서울에 도착하자 토실이를 안고 벌떡 일어나 기차에
서 내렸다. 버스를 탈 생각으로 서울역 정문으로 나가 정신 없이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며 도
심의 하늘 아래로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빵빵!"
어디선가 들리는 경적소리에 하늬는 무시하며 정류장 쪽으로 걸었다.
"빵빵빠앙~~~~~~~~~~~~~~~~~~!!!"
경적소리는 누군가에게 시위하듯이 시끄럽게 울렸다. 하늬는 미간을 찌푸리며 도대체 어디서
나는 소린지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의 옆 도로에 황금빛 벤츠를 탄 강신우가 픽 웃으며 아는
척을 한다.
저 인간이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왔는지 하늬는 놀라며 빠른 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신우는 차를 도로 한쪽에 버려두고 하늬를 쫓았다.
"우린 만날수록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혹시나 하고 정문 앞에서 기다렸는데 정말 나오
네."
어느새 하늬를 바짝 따라잡은 신우가 그녀의 뒤에서 말했다. 하늬는 신우가 차를 도로에 버려
두고 자신을 쫓았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이런 남자를 줄행랑 치게 할 방법은 하나다. 그녀
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를 향해 실실 웃으며 PDA에 글을 쓰지 않고 일부러 말을 못한다는 모
션을 어벙하게 취했다. 신우는 그 의미를 몰라 잠깐 의아해 하더니 픽 웃었다.
"말을 못한다는 걸 나보고 믿으라구?"
하늬는 믿기 싫으면 말라는 뜻으로 토실이를 안은 채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를 말 없이 뚫어
지게 응시하던 신우는 기습적으로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짝!!"
하늬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라 반사적으로 신우의 따귀를 있는 힘껏 올려쳤다. 그리곤 손등
으로 입술을 박박 문질렀다.
"말 못한다는 거 진짜네. 그렇지 않아도 말 많은 세상 정 떨어졌는데 왜 이제 나타났어요?"
뺨에 벌겋게 손자국이 나도록 맞은 것에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는 멋지게 씩 웃으며 말
했다. 하늬는 그의 태연함에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된건 당신 잘못이야. 날 바다에서 건져내면 안됐어. 아무도 내 고독에 당신처럼 무
자비하게 끼여든 사람 없었어. 난 당신 때문에 심장에 벼락 맞았다구!"
번갯불에 콩 궈 먹듯이 나타난 생면부지의 남자가 이해하지 못할 말을 주절거리며 자신 앞에
서 있자 하늬는 지금까지 없던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다.
'오 마이 갓! 조하늬 넌 바다에 뭐하러 간 거니... 털어버리긴커녕 두통거리를 싸 갖고 왔잖아!'
사랑 뒤집기 읽어 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꼬리말로 격려해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제가 요즘 가면 속의 사랑 출간을 위해 수정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 이틀에 한편씩 연재하려고 합니다.
연재는 느려도 이틀에 한편씩은 꼭 연재할테니 지켜봐 주세요.
좋은 하루 되시고...
금요일에 13편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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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시는 곡은 뚜루뚜루님이 추천해 주신 sens - Remembering Me 입니다.
첫댓글 ^^ 잼있어여. 그런데 매일 못본다니 약간 아니 많이 서운해요! 금요일이 벌써 기다려지네요.
너무 재미 있어져 가네요. 당당한 하늬 너무 맘에 들어요. 어찌 되어 갈지 기대가 되는군요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질듯해요 ^^ 기대됩니다.
너무 재밌어여 한번에 많이즘 올려 주시면 안대여?
하늬는여자가봐도너무매력적이에염~>ㅁ<금욜까지또어케기다리죠~ㅋ
하늬라는 주인공 너무 마음에 드네요... 모든 사람한테 사랑받는 여자 마음에 들어요!!!!
릴리투님 가면속의 사랑 출판예정이라구요 참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인데 그소설로 님 팬 됐잖아요 근데 ㅡ.ㅡ:: 이틀에 한번이라꼬~옥 약속 지키셔야 되염.... 홧팅
너무너무 재밌어요!! 힝~ 금요일까지 기다리기 힘들 것 같아요ㅠㅠ 아오... 이제 네명이서 본격적으로 사랑싸움을 하겠군요~ 느무느무 기대되요♡
너무재미있어여 금요일마다 올리시는거에여
약속 꼭 지키세여^^
이틀이요??? 안타깝지만....기다릴게요~~~
좋네요.. 빨리 완결이 나오길.. 부디..
아..이거.. 릴리투님 팬카페에서 자주 보는데..릴리투님 팬카페 가입 하세요^^ 카페 검색창에 릴리투 라고 치면 나온답니다
오늘이 금요일이니 다음편 볼수 있겠네요...
이것두 넘넘 재밌는데요.. 봄이랑 태천비락 후편은 없나요? 난 걔네들도 좋은데..ㅜ.ㅜ
정말 신기한 캐릭터가 먹이를잡으면 경품이나 돈을 주는데요.^^ 다운받은 캐릭터가 먹이를 사냥하면 캐쉬를 적립해드립니다. 다른작업하면서 게임도하고 돈도벌고, 1마리 잡을때마다 내통장에, 현금으로 쏙~쏙~. 바탕화면 최상위에서 돌아다니는 캐릭터가 알아서 척척!. ※평생무료. ◑ www.ss1004.co.tv
왜왜왜 안올려 주시져 ㅠㅠ열씨미 열씨미 기달렸는데 ㅠㅠ
정말.정말 재미있어요 >_<// 짱입니다 乃
신우도 멋있네~~~~~
아싸ㅏ!!드디어 왜 남자가 한명더 등장안하나했다 크하하!!
너무재밋당~>/////<
강신우가 더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