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은 인어이다. 해인은 언제나 물속을 유유히 누비면서 살아갔으며, 이따금씩 아름다운 달빛을 보기위해 물밖으로 나오기도 했다. 인어는 남녀를 불문하고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으로 유명했는데 해인의 분홍빛 머리카락은 인어들 사이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모든 인어들이 그 긴머리를 부러워 했으며, 해인이 분홍빛 머리를 희날리며 물속을 누비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웠다. 해인은 자신의 운명의 상대를 만난 그 날 한밤중, 암초 위에 올라가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그리고 해인은 그곳에서 자신의 운명의 상대를 마주쳤다. 어느 잘생긴 남자가 술에 취해 해변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해인은 남자를 바다로 부터 먼 곳으로 옮겼고, 남자는 눈을 뜨지는 못했지만 이런 말을 반복했다."난 이제 끝이야... 난 이제 아무것도 없어..." 해인은 남자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도 한 줄기의 희망만은 있으니까요." 말을 마친 해인은 인간과 접촉하면 안된다는 인어들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 암초 뒤로 숨었고, 남자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남자의 이름은 인종으로, 뒤통수를 맞고 거액의 빚을 지게되어 미친듯이 술을 먹고 자살하기 위해 해변까지 갔던 것이었다. 인종은 해인의 격려 덕분에 마음을 다잡았고, 다시 열심히 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꼭 다시 만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한편, 바다로 돌아간 해인은 인종에게 측은함을 느꼈고, 사람이 되어 인종을 도와주기로 결심했다. 해인은 깊은 바닷속에 사는 마녀를 찾아가서 말했다. "마녀님, 절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대신 제 목소리를 드릴게요." 그러자 로브를 입은 마녀가 후드를 벗으며 답했다. "옛날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봤군. 난 내 원래 목소리가 워낙 마음에 들어서 네 목소리따윈 필요없어. 대신 네 머리카락을 모두 나한테 넘겨줄래?" 마녀는 태어날 때부터 마법을 쓸 줄 알았지만, 그것 때문인지 머리카락이 자라지 않았다. 그걸 부끄러워한 마녀는 깊은 바닷속에 숨어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해인은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요. 머리는 금방 자라니까요." 해인의 대답을 들은 마녀는 이렇게 물었다. "정말 다시 생각 안 해봐도 되겠어? 인어는 3, 4백년은 기본으로 살지만 인간은 오래 살아봐야 100년 정도야. 그리고 인간이 되서 다시 자라나는 머리카락의 색은 분홍빛이 아닐 가능성이 굉장히 크거든. 그리고 넌 그 남자를 도우려고 인간이 되려는거지? 근데 그 남자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넌 죽게될거야. 그래도 인간이 되고싶어?" 해인은 망설이지 않고 "네!"라고 답했다. 마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해인의 머리카락을 날카로운 조개껍질 조각으로 밀어나갔다. 해인은 곱게 길러오던 분홍빛 머리카락이 조금씩 머리를 떠날 때마다 눈물을 조금씩 흘렸고, 해인의 머리카락을 받은 마녀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머리카락을 받았으니 인간이 되는 약을 주지. 인간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으니까 반드시 뭍으로 올라가서 물약을 마셔야만 해. 그리고 이건 서비스로 주는 건데,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게 해주는 물약이야. 머리카락이 자라나게 하려고 만들었는데, 머리카락이 안 나는 나한테는 아무 쓸모도 없으니까 너한테 줄게." 해인은 머리카락이 사라진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기뻐하며 어두운 밤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해인은 어두운 밤이 되자 뭍으로 올라왔고, 사람이 없는 한적한 해변에서 두 약을 모두 마셨다. 그러자 해인의 온 몸에서 빛이 나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해인의 꼬리는 이내 두 다리로 바뀌었고, 턱 위쪽에 있던 지느러미는 귀로 변했다. 해인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이내 해인은 자신이 인간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고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내 경찰에서 해인을 데려갔다. 당연히 신원조회에서 해인의 정보가 뜰 리가 없었고, 경찰과 해인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던 그때, 인종이 경찰서로 들어왔다. 때마침 인종의 뒤통수를 친 사기꾼이 잡혔기 때문이었다. 인종은 해인을 보고 생각했다. '분명 처음보는 여잔데 뭔가가 느껴진단 말이야. 그것도 내가 신세를 진듯한 느낌이야. 내가 도와야만 할 것 같아.' 인종은 해인을 도와서 해인에게 신분증을 만들어 주었고, 해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인종은 처음에는 민머리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던 해인을 이상하게 느꼈지만, 이내 자신이 알려주는 것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하고 해맑게 웃는 해인의 모습에 끌리게 되었다.
"인종씨, 저 사실 인어였어요. 제 과거를 확실하게 보여줄게요." 해인은 자신의 과거가 담긴 수정구슬을 보여주었고, 인종은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놀람도 잠시, 인종은 해인을 꼭 안아주며 말했다. "해인씨 덕분에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저랑 결혼해 주세요!" 인종은 해인이 인어였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겠다고 맹세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랑하겠다고 말했다.
이내 둘은 결혼했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때마침 바람이 불었고, 해인의 다시 길어진 아름다운 분홍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 어떤 처리도 하지 않았지만, 해인의 머리는 분홍빛이었다. 인종은 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날 위해서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버릴 여자는 당신밖에 없어. 사랑해." 그리고 그날 밤, 해인의 꿈에 마녀가 나타났다. 마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을 이루는데 성공해서 다행이야. 네 머리카락은 가발로 만들어서 잘 쓰고 있고, 덕분에 용기가 생겼어. 앞으로도 잘살아. 그럼 안녕." 마녀는 이내 꿈속에서 사라졌고, 해인은 인종을 꼭 껴안았다.
그로부터 1년 뒤, 둘에게는 세쌍둥이가 찾아왔고, 그중 딸인 해영은 특히 수영을 잘했다. 해영은 해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난 왜 이렇게 수영을 잘 해?" 그러자 해인이 답했다. "그거야 내가 원래 인어였으니까." 해영은 거짓말이라며 웃었고, 그걸 본 인종은 빙그레 미소지을 뿐이었다.
첫댓글 오리지날 동화를 리메이크 하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