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 기백산,금원산을 다녀와서 ㅡㅡ
산 행 지 - 기백산(1,331m),금원산(1,353m)
산 행 일 - 2,020,02,09 (일)
누 구 랑 - 무전산악회정기산행및시산제
산행코스- 장수사일주문-기백산-금원산-현성산입구-문바위-휴양림주차장
이동거리 15.3km 소요시간 6시간54분 이동시간 6시간10분 휴식및시산제시간 43분 평균속력 2.48km/h
오름2,090m 내림 2,092m 출발지해발 437m 도착지해발 435m
ㅡㅡ 산 행 지 도 ㅡㅡ
ㅡㅡ 산 행 기 ㅡㅡ
소속산악회 시산제을 지낼것이라고 공지가 날아온다 이런날에는 알바하는데 결석을 해서 라도 참석해야 하는것이 회원의 자격이 아닌가 싶어 열일 뒤로 하고 참석한다 오늘갈 기백산과 금원산은 여러차례 다녀온산이라서 지도 없이도 눈감고 갈수 있는 산이다
(07:00)롯데마트앞을 출발하여 산청휴게소에 들려 쉬어 간다 먼산위에는 하얀눈이 내려있다 지난번2일 고흥두방산에 갔을때 봄날같아서 오늘은 아이젠도 배냥에서 거내 짐을 줄인다고 애을쓴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일른아침에 휴게소에는 문도 안열고 긴급히 아이젠을 구입할수도 없다 예전같으면 예비로 아이젠 두세너개는 배냥속에 넣고 다녔는데 이제 내것하나도 거내버리고 다닐려고 하는 것이 늙어간다는 듯일까싶다
(09;00)목적지 장수사 일주문에 도착하여 산행준비한다 덕유산장수사조계문(德裕山長水寺 曺溪門)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일주문은 절입구에 좌우로 하나식의 기둥으로 지붕을 받쳐세운 문으로 속세(俗世)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관문이다 항상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도하고 교화 하라는 의미에서 세운문이다 이곳 용추계곡에는 487년(신라소지왕9년)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하는 장수사(長水寺)가 있었다 장수사는 신라시대의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을 비롯해 조선시대의 무학(無學),서산(西山),사명(四洺)등 여러 고승이 수도한 이름있는절이였고 용추사는 원래 장수사에 딸린 작은 암자였다 그런데 6,25전쟁때 장수사가 일주문만 남고 타버리자 1959년 중건하면서 이름을 용추사로 바꾸었다 "덕유산장수사조계문(德裕山長水寺曺溪門)"이라고 쓰여있는 일주문현판이 장수사의 흔적을 말해준다 이일주문은 1702년(숙종28년)에 건립된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일주문은 그렇게 크지 않은 보통의 맞배지붕으로 만들어진데 비해 이일주문은 화려한 다포계(多包系)팔작(八作)지붕의 양식으로 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의 지붕때문에 기둥이 오히러 작아 보일정도 이다 장수사는 각연조사(覺然祖師)에 의해 창건(創建)된 고찰(古刹)로서 지리산과 덕유산에 산재한 많은 사찰(寺刹)들을 말사(末寺)로 거느리며 이곳 심진동(㝷眞洞)계곡에 만도 열개가 넘는 암자(庵子)를 둔 대찰(大刹)로서 계곡어디에서나 낭랑한 염불소리를 들을수있었다 한다 장수사 경내(境內)에는 대웅전,산신각,천왕문,명부전,서신당 동신당,사천왕문,일주문등으로 그규모가 해인사에 버금갈 정도 였다고 하며 이곳에 기거하던 승려(僧侶)만해도 항상 이백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강희19년 (1680)에 첫화재를 입은후 2번의 화재를 더입엇으나 그때마다 모두가 합심하여 복원하였으나 6,25전쟁때 장수사는 물론 계곡의 즐비했던 암자들도 불타고 용추암은 복원하여 용추사라 불리어진다
(09;08)일주문을 출발하여 비포장도로을 따라 오르다가 우측산기슰로 접어든다 기백,금원산신령님께 고하나이다 "오늘 우리일행이 님의 품에 안기려하니 예쁘게 안아주시고 무탈하게 산행을 마칠수 있게 도와주시기바랍니다 " 산행할때마다 이렇게 신령님께 고하고 오르면 마음이 든든해 집니다 어수선한 세상사 다잊고 이른새벽부터 하루종일 산에서 보낼수 있는 오늘하루 만큼은 우리도 부러움없는 신선이 됩니다 이정표가 있는 일주문위에 주렁주렁 시그널이 달린곳이 초입길이 됩니다 돌길이긴 하나 임도수준의 좋은길을 20여분오르니 계곡의 물소리가 소란스럽게 들립니다
(09;24)쉬어갈수있는 장의자가 있어 힘든사람은 쉬어 갈수 있습니다 먼저올라온 산객들이 쉬고 있고 우리는 계속해서 진행합니다 여름같으면 산새들도 재잘재잘거리며 아침인사를 할텐데 겨울산은 삭막하기만 합니다 산길은 낙엽이 뒤덥혀 미끄럽기만하고 우측에 계곡에는 언제 비가 왔는지 물줄기가 제법입니다
(09;54)계곡을 버리고 올라서는길부터는 눈길로 바낍니다 오늘 아이젠도 안가져왔는데 걱정부터 앞섭니다 다행이 얼지는 않아서 빙판길은 아니라서 천만다행입니다 어제저넉 먹은 알콜영향인지 오름길은 힘이들어 헥헥거립니다 오늘아침 대문을 나설때 뒤통수에 대고 하던말 술만들어가면 부레이크가 말을 잘안들으니 나이생각 하라며 구덩거리던 잔소리가 귀전에 맴돈다 오늘도 절제의 미덕이 무엇인지 산행의 힘듬을 통해서 배웁니다 등뒤로 조용함에 뒤돌아보니 길게 보이는 등로만 보이지 산님들은 보이지 않는다
(10;19)능선에 올라섭니다 평소 이곳에 올라서면 찬바람에 기겁을 하는데 오늘은 바람한점없고 조용합니다 앞서간 발자국은 한사람이 지나 갔습니다 그발자국따라 오르다보니 거의 리설하며 가는 수준입니다 스팻치도 안하고 오르니 신발안으로 눈이 발로 들어 오고 찬기운이 발목에 전도될때는 큰일이다 싶은데 다행이도 오늘 바람이 없고 기온이 낮지않아 큰걱정은 안해도 될것 같다
(11;00)기를 쓰고 오른 암봉 테크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기백산 정상은 가까운데 가야할 금원산은 아스라이 신기루처럼 보이고 서쪽은 남덕유에서 시작한 월봉산,거망산,황석산으로 이어지는 키재기를 하려고 바싹붙어 뻗고 있다
(11:10)기백산정상에 올라선다 먼저올라 오신분이 정상에서 기다리며 진양지맥을 갈것인데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한다 지맥을 밟을 사람이 그길도 모르면서 시도을 하나싶어 의아했지만 자세히 알려주고 주변을 둘려본다 오늘은 시계가 좋아 환상적인 조망을 즐길수 있다 하늘이 내린 천혜의 조망처 기백산정상 이란 글로서 서운함을 대신해본다 "아울려 보매 지리,덕유,가야의 거대한 산맥의 꽃잎인양 둥그렇게 사방을 감싸 들었고 기백,황석,금원은 수술과 암술에 해당하니 산꾼에게는 하늘이 내린 신의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했다 여기서 시산제를 지낸다고 했기에 후미가 올라올때까지 30여분 기다려 시산제를 간단히지내고 막걸리 한잔을 받아서 고수레하면서 맛만보고 앞서 출발한다 누룩덤능선에 눈이 내려 난이도가 높은 능선길에서 네발로 살금살금 고양이걸음으로 내려선다 금원산가는길은 북쪽능선길이라 눈이 많이 쌓여 있다 거대한 판석형 암석을 차곡차곡 포개어 놓은듯한 누룩덤이 시선을 끌고 거대한 누룩을 포개 놓은듯한 모양때문에 누룩덤이라는 이름이 생겼는지 모른다 경사진 내리막길에는 눈이싸여 미끄럼이 심하지만 얼지않아 다소 덜미그럽다 암릉길 지나 육산으로 접어들더니 양지쪽에는 눈이 녹아 질퍽거리고 음지에는 싸인눈이 그대로이다
(12;30)사평마을 삼거리에 도착하니 다른 일행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벌서 시간이 이렇게 됬나 ~~~~~ 갈길은 멀고 발은 눈이녹아 신발과 양말이 한덩어리가 된기분이다 왼쪽으로 나있는 시흥골(사평마을)을 버리고 직진하여 산죽길 능선을 따라 1,270봉에 올라선다 봉우리지만 키큰나무가지들로 보는전망은 흐러진다
(12:51)수망령임도삼거리 을 지나 가파른 능선을 다시 치고 오르니 이곳에서 서쪽은 멀리남덕유산으로부터 이어진 월봉산과 거망산이 눈앞이다 저 거망산아래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스승 무학대사가 숨어 살았다는 은신암이 새집처럼 자리잡고 있다 천하의 무학대사도 몸을 낮추어 세월의 바람앞에 겸손 했는데 이몸 어찌 겸손하지 않을수 있을까? 앞쪽을 보니 높이솟은 동봉가는길이 검게 그려져있다 그러고보니 금원산 옛지명이 검은산 이였다는 생각이든다 동봉오르는길은 양지쪽이라 검은 길이 보이고 내림길은 녹지않은 눈길이다
(13;19)유한청폭포삼거리 여기에 도착하니 설사때문에 시산제도 안지내고 앞서 간다고한 영국이후배가 파죽음이 되어 있다 무얼먹지도 못하고 눈길에서 시달리니 죽을 지경인 모양이다 그만 내려가라고 하니 같이 가겠다고 한다 하기야 천하에 산꾼이 영국이가 그렇게는 못하지 악을 쓰고 따라오는 영국이가 안쓰럽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다
(13;25)동봉(1,333m)에 도착하니 금원산정상보다 조망은 최고지만 몇미터 모자라 정상석명찰을 서봉에게 밀리어 못다는 동봉이 안스럽다 예전에는 정상이였던 봉우리로 돌탑과 함께하는 동봉정상에서 유한청폭포로 내려가는 급경사길이 있다 헬기장에 내려서니 비박을 하는 텐트가 3개가 있고 하얀게 덥힌 헬기장에서 추운줄도 모르는 산꾼들인가보다
(13;31)금원산(서봉)에 도착한다 걸어온 길을보니 기백산까지의 능선길이 아름답게 보인다 20m높이로 정상을 빼긴 동봉의 서러움을 달래주려 동봉에 한참눈길을 주며 현성산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금원산의 유래는 금원산의 본래이름은 "검은산"이다 옛고현의 서쪽에 자리한산이 검게 보인데서 유래되었다 이산은 일봉(一峰),일곡(一谷)이 모두 전설에 묶여있는 산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옛날 황금원숭이가 매우날뛰는 바람에 한도승이 그를 바위속에 가두었다고 한다 그바위는 황금 원숭이 처럼 생겨 낯바위라 했는데 음이 바뀌어 납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바위들이 있는데 비내림을 미리안다는 지우암(知雨岩),달암 이원달선생과그의부인 김씨에서 유래된 금달암(金達岩),효자 반전이 왜구를 피해 그의 아버지를 업고 무릎으로 기어 피를 흘리며 올랐다고 하는 마슬암(磨膝岩),거창군위천면의 옛지명인 감음현을 식음으로 받아 입향한 서문씨(西門氏)의 전설얽힌 서문가(西門家)바위등이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세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선녀담(仙女潭)이 있다 금원산에는 크게이름난 두골짜기가있다 유안청(儒案廳)계곡과 지재미골이다 유안청계곡은 조선중기의 이고장선비들이 공부하던 유한청이 자리한 골짜기로 유한폭포와 자운폭포가 있고 지재미골은 감음현을 식음으로 받아 살았던 이정공서문기(理政公西門記)의 유허지로 그 자손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전해진다 내려서는길이 7 km라고 안내한다 녹지않은 눈은 무릎까지 빠지고 앞서 지나간 두어사람의 흔적을 따라 내려서다 리설까지하며 미끄러지고 낭떨어지에서는 사정사정하며 나무잡고 내동댕이 처지면서 내려서다 보니 허기가 진다 유한청골로 내려서는길은 여러곳 있으나 우리는 현성산까지 갈 욕신으로 계속 내려선다 첫번째 두번째 탈출구을 무시하고 내려서다 보니 (14:31)허기가 져 양지바른곳에서 고구마 하나먹고 내려서면서 올라오는사람이 있어 눈이 어디까지 있는냐고 물으니 현성산을 넘어야 줄어 든다고 한다
(14;41)제3탈출구(문바위삼거리)에서 모두가 지치는모양이다 우측으로 내려선다 눈은없지만 낙엽으로 길이 보이지 않아 독도하는데 어러움을 격으며 내려서니 임도가 나타나고 안도의 한숨을 쓴다
(15;08)임도삼거리에서 등산로 표시가 없어 임도 따라내려가 보니 몇년전 등로찾아 헤매던기억이나서 되돌아 올라가 옛임도를 따라간다 비포장도로을 지나 구 입도가 나타나고 조금 내려서니 표지석이 보인다
(15:20)안음서문씨시조묘소입구 표지석이 나타나고 부터 옛등산로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길 따라 한참을 내려서니 다시 임도가 나타나고 독립가옥을 만난다
(15:40)가섭암지 마애석불에 들려본다 이 석불상은 금원산 (金猿山)북쪽골짜기 큰바위굴에 새겨져있는마애불(磨崖佛)이다 가섭사지(迦葉寺址)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바위굴이 있고 안쪽 남향바위에 삼존불(三尊佛)이 새겨져있다 삼존불의부분을 삼각선으로 그어 구획하고 가운데는 보주형으로 다듬어 세분의 부처를 새겼다 중앙부처가 두보살을 좌우로 거느린 모양이다 중앙은 아미타여래 오른쪽은 관음보살 왼쪽은 지장보살로 보인다 연꽃수미단 대좌 위의 보존불은 넓적한 얼굴에 삼각형이고 얼굴에 비해 작은 눈과 입 크지만 밋밋한귀가 토속적 인상을 준다 좌우보살의 얼굴도 비슷한데 화려한 옷자락은 조금은 변잡한 느낌이다 삼존불모두 도드라지게 새겼으나 전체적으로는 납작하게 표현되었다 여러모로보아 고려시대 부처상의 특징이다 오른쪽에 새긴 글에는 1111년에 제작한것으로 되어 있다 아래 가섭암 자리는 1770년대까지 절이 있었는데 지금도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몇개의 석재가 남아 있다 지금 위천초등학교에 옮겨진 삼층석탑은 비슷한고려시대의탑으로 추정되고 있다 가섭암지에서 가섭암도를 보고간다 가섭암도(迦葉庵圖)이그림은 조선숙종때 풍속화가로 유명한 진재 김윤겸(眞宰 金允謙,1711~1774)이 1772년경 진주근처에 소촌찰방(察訪종6품)으로 근무하면서 영남일때 유명한 곳을찾아 그린 영남명승기행사경첩(嶺南名勝紀行寫景帖)13경중 하나인 가섭암도(迦葉庵圖)이다 건물은 마애삼존불상 통천문(通天門)위 500m 정도에 위치하며 현재 당시사용하던 맷돌과 축대 우물,건물흔적이 남아 있다 이그림으로 보아 18세기까지 가섭암이 존재 하였으나 그이후 화재로소실된 것으로 짐작할수 있다 (종이에그린그림(紙本그지)30.0*21.1cm) 여기서 많은시간을 보내며 두루 살펴본다
(15:48)문바위에 내려선다 이곳은 신라시대의 고찰이었던 가섭사의 입구에 잇다하여 가섭암(迦葉岩)이라고도 하며 고려말의 충신인 달암 이원달선생이 망국의한을 달랬던 바위라 하여 "순절암""두문암" 이라고도 부른다 문바위는 마고할멈의 선설을 가지고 있고 단일암으로는 국내에서 가장큰 바위이다
(16;00)얼음축제장삼거리을 거쳐 주차장에 도착하고 산행종료한다 오늘선두로 걸으면서 리설까지 담당하는 힘든산행이고 후미보다 4km 정도 더 걸었으니 제일 말미에 도착하는줄알고 쉼없이 걸었는데 도착해보니 우리가 선두로 내려온것이다 5시간이상을 눈길에서 헤맨하루가 피곤하지만 눈같은 눈을 마음껏 밟아보았다
ㅡㅡ 산 행 사 진 ㅡㅡ
덕유산장수사조계문
능선아래부터 눈길로 변합니다
월봉산과 남덕유산
황석산넘어로 지리산천왕봉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거망산
황석산 넘어로 지리산 주능선이 하늘금을 끗습니다
황석산과 거망산
기백산옛정상석
기백산 인정샷
아이젠도 없이 힘들어 하며 뒤따라온 선영이 정상에 오르면 환한웃음으로 대합니다
금원산동봉의모습
동봉과 서봉사이에 헬기장의 비박텐트 춥지도 않은가봐요
누룩덤능선길에서 고양이걸음으로 살금살금 내려서며 불안해 하던 선영이 정상에선 살만한가봐요
여기서 알바를 합니다 등산로 안내 이정표가 없습니다
가섭암지 마애삼존불
삼존불이 있는 석굴안에서
안음서문씨 시조묘소 입구 표지석
가섭암도(종이에 그린그림)
삼존불
삼존불이있는 석굴 올라가는 돌계단
삼존불 석굴 바위모습
문바위 가섭암이라고도하고 고려말충신 달암 이원달선생이 망국의 한을달랬던 바위라하여 "순절암,
두문암" 이라고도 한다 문바위는 마고할멈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한다
얼음축제장삼거리에 있는 금빛원숭이
첫댓글 회장님~ 덕분에 눈 덮인 산을 사무실에 앉아서 구경했네요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