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州 吐含山 佛國寺 柱聯
(경주 토함산 불국사 주련)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소재,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 때의
751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金大城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774년에 죽자 나라에서 이를 맡아 완공하였다고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으로 전한다.
불국사와 석굴암石窟庵이 창건된 8세기는
신라의 국력과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분황사焚黃寺 약사상藥師像이나 봉덕사奉德寺의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과 같은 위대한 창작
예술품들 중에서도 불국사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고의 건축에 걸맞게
윤회설輪回說을 바탕에 둔 김대성의 창건 전설부터
석가탑의 조각가 아사달 부부의 비극적 설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연들이 얽혀 전해지고 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대화엄종불국사
아미타불상찬大華嚴宗佛國寺 阿彌陀佛像讚’이라는
다음과 같은 시詩가 유명하다 :
東海東山有佳寺 (동해동산유가사)
동해라 동산東山에 아름다운 절 있어
華嚴佛國爲名號 (화엄불국위명호)
그 이름을 화엄불국이라 일컬었다네
主人宗袞親修置 (주인종곤친수치)
임금이 주인되어 친히 이룩하시니
標題四語有深義 (표제사어유심의)
그 이름 네 마디에 깊은 뜻 담겼네
華嚴寓目瞻蓮藏(화엄우목첨연장)
화엄을 꿰뚫으면 그 속에 연화장蓮華藏이 있고
佛國馳心係安養 (불국치심계안양)
불국佛國으로 치닫는 마음 안양安養으로 이어지면
欲使魔山平毒嶂 (욕사마산평독장)
마산魔山으로 해서 독한 기운을 가라앉히니
終令苦海無驚浪 (종령고해무경랑)
마침내 고해苦海의 거친 파도를 잠잠潛潛케 하였네
* 불국사의 설계 구성構成을 살펴보면, 우선 ‘법화경法華經’에
근거한 현재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敎主로서
우리에게 무수한 불국세계佛國世界가 존재하는 것을
가르쳐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가 이루어낸
불국세계인 영산정토靈山淨土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로
대웅전大雄殿을 중심으로 한 구역區域의 불국세계가 그것이다.
다음으로 ‘무량수경無量壽經’ 또는 ‘아미타경阿彌陀經’을 근거根據로
신라新羅가 삼국三國을 통일統一 해가는 과정에서 무수하게 죽어간
영가靈駕들이 태어나기를 간절하게 소원所願하였던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가 있어야 하니 극락전極樂殿을 중심으로
대웅전大雄殿 서쪽 구역이 바로 그 아미타불국토阿彌陀佛國土이다.
대웅전 구역 뒤로는 동쪽 언덕에 관음전觀音殿이 가장 높게
자리 잡고 있는데, 사바세계에서나 극락세계極樂世界에서나
일체一切 중생衆生들의 고뇌苦惱를 해소해 주는데 가장 앞장서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보살菩薩로서 당시 신라 사람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보살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관음전보다 한 단계 낮게 비로전毘盧殿이 있어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를 상징하고 있는데,
일승一乘의 화엄종지華嚴宗旨로 여러 불국세계를
원융무애圓融無礙하게 조화調和시켜 제망중중帝網重重의
효과效果를 드러내도록 배후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당시 아직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던 미륵불彌勒佛이
출현할 용화세계龍華世界가 빠져 있는데,
혹시 지금 법화전法華殿 터로 추정하고 있는 극락전極樂殿
뒤쪽이 용화전龍華殿 터로서 미륵불彌勒佛이 하생下生할
용화세계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가지게 하는 구역도 있다.
불국사佛國寺의 자하문紫霞門을 오르기 위해서는
청운靑雲, 백운교白雲橋의 33계단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도리천忉利天의 33천을 뜻한다.
도리천을 지나 자하문에 올라서야만 부처님을 모신
불국정토佛國淨土에 들어서게 된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사찰에 들어서기 위해서 극락교極樂橋를 지나
일주문一柱門, 금강문金剛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을
지나게 되는데 이를 산문山門이라고 한다.
그중에서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삼문三門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불국사의 입출문入出門은 남쪽 일주문一柱門과
서쪽의 불이문不二門으로 나누어 구성 되어 있다.
자하문은 대웅전 구역에 해당되는데, 천왕문, 금강문에 들기 전의
해당 자리에는 1973년에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이 쓴
‘토함산불국사吐含山佛國寺’란 편액篇額이 걸려 있다.
한편 불국사 좌측 다보탑多寶塔, 우측 석가탑釋迦塔,
두 탑 모두 백제 장인인 아사달阿斯達이 만들었다고 한다.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는 경주 영지影池에서 아사달을 기다리다
연못에 비친 다보탑을 보고 아사달을 그리며 몸을 던졌다.
석가탑을 마저 완성하고 달려온 아사달도 아사녀를 따라 죽었다.
연못에 그림자가 비친 다보탑을 유영탑有影塔,
비치지 않은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이라고 부른다.
불국사 대웅전에 이르면 ‘대웅전大雄殿’이란 현판의 편액篇額이
걸려있는데 아무른 낙관落款이나 글쓴이의 이름이 없다.
그러나 전문가가 추정한 결과 조선 19대 숙종肅宗의 글씨로
속리산 법주사의 ‘대웅보전大雄寶殿’의 글체와 동일하다고 한다.
참조로 ‘대웅전大雄殿’과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다음과 같이 구별한다.
* 대웅전 : 석가모니불에 협시挾侍로써 문수보살, 보현보살,
또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신다.
* 대웅보전 : 삼존불三尊佛, 삼세불三世佛, 삼신불三神佛을
각각 모셔 격을 높혀 부른다.
〔삼존불 : 아미타불,석가모니불,약사여래불
삼세불 : 연등불(과거),석가모니불(현세),미륵불(미래)
삼신불 : 바로자나불(法身佛),석가모니불(化身佛),노사나불(補身佛)〕
1. 佛國寺 三玄堂 柱聯 :
(불국사 삼현당 주련)
圓覺山中生一樹 (원각산중생일수)
원각산 속에 나무 한 그루 있어
開花天地未分前 (개화천지미분전)
천지창조 이전에 꽃이 피었다네
非青非白亦非黑 (비청비백역비흑)
그 꽃 푸르지도 않고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으며
不在春風不在天 (부재춘풍부재천)
봄바람도 하늘도 간여干與 할 수 없다네
假使頂戴經塵劫 (가사정대경진겁)
부처님 경전 머리에 이고 오랜 세월 보낸다 해도
身爲床座遍三千 (신위상좌변삼천)
부처님 위해 내 몸 의자가 되어 온 세상 놓아 드려도
若不傳法度衆生 (약부전법도중생)
혹여나 불법佛法을 전하여 중생을 깨우치지 못하면
畢竟無能報恩者 (필경무능보은자)
필경 부처님 은혜는 갚을 길이 없도다
* 삼현당은 강당講堂 겸 불국사승가대학 佛國寺僧伽大學이고,
이 주련의 내용은 성도제산림식成道齊山林式 가영歌詠이다.
음력 12월 8일은 불교 4대 명절 중 하나인 성도절成道節로
이날 ‘성도회會’에는 부처님 행업行業을 찬탄하고
불제자로써 부처님 수행을 실천하는 날로 성대한 행사를 한다.
2. 佛國寺 療舍 柱聯 :
(불국사 요사 주련)
空手把鋤頭 (공수파서두)
빈손인데 호미자루 들고 있고
步行騎水牛 (보행기수우)
걸어가고 있는데 물소를 타고 있다
人從橋上過 (인종교상과)
사람이 다리 위를 지나가는데
橋流水不流 (교류수불류)
물은 흐리지 않고 다리가 흘러가네
獨漂海隅水 (독표해우수)
외로이 바다 밖에 홀로 떠 있어도
處處幡嘉聲 (처처번가성)
아름다운 그 이름 곳곳에 떨치네
* 부대사傅大士의 게송偈頌이다.
빈손인 채로 호미 자루를 잡고
걸어가는 상태에서 소 등에 올라타는 것은
인간의 기예로는 불가능하다.
고정되어 있는 다리가 흐르고,
반대로 흘러야 할 물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은
보통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모순된 것이다.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이해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선승禪僧들에 평범한 일상생활을 기록 한 것을 선문답이라고 하는데,
번뇌 망념을 초월한 무심의 경지에서 불법의 지혜를 나눈 언행이기에,
이를 논하고 탓하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선禪의 입장은 스승과 제자간의 문답으로도 알 수 있듯이
상식의 세계를 초월해 있으며, 망상이나 분별 심에 의한
상대적 인식을 벗어나 절대적 인식을 추구 하는 것이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립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무아, 무심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선禪의 입장이다.
선禪은 일반적인 지식이나 논리를 부정하고 초월하여
순수한 참 지혜를 얻으려 하기 때문에,
비논리적 논리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 상례이다.
절대적 진리에 투철 하기 위해서는 비논리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초논리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대사의 게송은 모두 모순 투성인 것 같지만,
선禪의 입장을 잘 표현하고 있어, 모순도 없고
불합리함도 없는 것이다.
부대사는 양나라 무제武帝 때의 사람이다.
서기 497년에서 569년으로 기록되어 전해진다.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살면서 불법에 뜻을 두어
크게 도인풍을 드날린 사람이다.
같은 시대의 보지공寶誌公 화상이 양 무제에게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이 게송을 미륵 게송이라고 말해 오기도 하였다.
성姓을 따라 부대사라 하기도 하고 동양사람이라 하여
동양대사東陽大士라고도 불렀다.
또 송산의 쌍림에 암자를 짓고 살았으므로
쌍림대사雙林大士라 부르기도 하였다.
부대사록 4권과 심왕명 1권이 전해지고 있다.
양무제梁武宰는 ‘보살황제菩薩皇帝’ 또는 ‘불심천자佛心天子’로 불리며
남조南朝 최고의 불교문화 전성기의 꽃을 피웠다.
532년 1월28일 부대사가 무제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다.
부대사는 무제가 보살의 서원誓願을 세워 실천하고 있음을 잘 알았다.
백성은 물론 일체 생명을 고통에서 건지려는 구세보살救世普薩의 길,
무제武帝 아니면 어느 황제가 그 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
동시에 부대사는 무제의 의지가 굳어질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것이 보였다.
서원誓願이 집착으로, 숭불崇佛이 강압으로 흐르고 있음을 파악한 것이다.
부대사는 편지에서 자신의 몸을 다스리고 뭇 생명을 보호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한다고 했다. 경經을 읽고, 절을 짓고,
교단을 지원하는 것은 큰 공덕이다. 하나 거기에 얽매이지 않아야
열반에 이를 수 있음을 설파했다.
일체가 꿈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과 같은 것,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이를 깨닫지 못하면
집착과 번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은 무제는 부대사를 궁궐로 초청했다.
무제는 부대사와 법에 대해 얘기했다.
‘속고승전續高僧傳’에는 감동한 무제가 부대사를 종산鐘山 아래
정림사定林寺에 머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3. 佛國寺 宗務所 柱聯 :
(불국사 종무소 주련)
萬法歸一 (만밥귀일)
모든 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一歸何處 (일귀하처)
그 하나는 또 어디로 돌아가는가?
* “모든 법이 한군데로 돌아가고 오고
돌아간 하나는 어디로 갈 것이냐?
그 하나는 또 어디로 돌아가는가?”
그렇게 해석하기보다는,
"만법은 모두다 한자리에서
나오고 돌아돌아 갈수도 있지만,
돌아갈 그 하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라고
묻는 것이 보다 현실성 있고 합리적이지 않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나침반을 들고 이땅저땅에 서서
스스로의 생각 속에 잠겨 그 기운을 감지하고
추론하고 생각을 펼쳐 나간다.
이리저리 도는 나침반의 바늘 속에서 가리키지 못하는
그 서 있는 자리는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4. 吐含山 石窟庵 壽光殿 柱聯 :
(토함산 석굴암 수광전 주련)
古路非動容 (고로비동용)
옛길은 동용動容이 아니며
悄然事已違 (초연사이위)
초연悄然이라는 것도 이미 거슬린다
少林門下事 (소림문하사)
소림문하의 그 일로
不意生是非 (불의생시비)
뜻밖에 시비가 생겼네
* 이 글은 경허선사鏡虛禪師의 시詩로,
경허집 ‘오언절五言絶’에 실려 있다.
이 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고려시대에 편찬된 선문염송집의 제15권에 실려 있는
향엄격죽香嚴擊竹의 공안公案을 인용한다 :
“鄧州香嚴智閑禪師因颺瓦礫擊竹作聲忽然省悟乃有頌云
(등주향음지한선사인양와력격죽작성홀연성오이유송운)
등주의 향엄지한선사가 기와 조각을 던져 대나무에 부딪혀
나는 소리를 듣고서 홀연히 깨닫고서 이에 송을 운하였다.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일격망소지 갱불가수치)
딱 한번 소리에 아는 바를 다 잊어버리니 닦아 지녀야 할 것이 아니었구나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동용양고로 불타초연기)
안색을 바꾸고 옛길에서 떨쳐 일어나 초연기悄然機에 떨어지지 않노라
處處無蹤迹 聲色外威儀 (처차무종적 성색외위의)
곳곳마다 흔적이 없고 소리와 빛깔은 겉으로 드러난 위의威儀의 자태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제방달도자 함언상상기)
여러 방면에 도통한 분들이 말씀하시길 최상의 기회라네요
* 수치修治 : 법제法製와 같은 말. 정해진 절차와 순서에 따라 행함을 뜻함
* 초연悄然 : 의기가 떨어져 기운이 없다는 뜻
초연기悄然機는 뒤에 나오는 상상기上上機와 대비를 이룬다
* 동용動容 :
1) 모양과 자태 (動이 명사로 사용됨)
2) 표정을 바꾸다, 격하게 감동되다 (動이 동사로 사용됨)
* 위의威儀 : 위엄 있고 엄숙한 태도나 차림세, 예법에 맞는 몸가짐, 계율
이 주련에 대한 글은 향엄香嚴 지한선사智閑禪師의
오도송에 대한 경허선사鏡虛禪師의 논평이다.
(깨달음이란 흥분할 일도 맥 놓을 일도 아니라는 말로 이해된다.)
5. 吐含山 石窟庵 寶月療 柱聯 :
(토함산 석굴암 보월료 주련)
巖前石虎抱兒眠 (암전석호포아면)
바위 앞에 호랑이는 아기를 안고 졸고 있고
鐵蛇鑽入金剛眼 (철사찬입금강안)
철사鐵蛇는 금강력사金剛力士 눈 속을 뚫고 드니
崑崙騎象鷺鶿牽 (곤륜기상로자견)
곤륜산崑崙山이 코끼리 타고 자고새가 몰고 가네
眼皮蓋盡三千界 (암피개젠삼천계)
내 눈은 삼천계를 다 뒤덮고 있고
鼻孔能識百億身 (비공능식백억신)
코 구멍으로는 부처님의 천백억 화신을 다 알고 있네
* 고봉선사高峰禪師의 화두송話頭頌이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이해 안 되는 이 말씀 속에
우리가 감지 못하는 진의眞儀가 담겨 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선사님의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데,
보통사람들의 식견에 거기 미치지 못하니
다만 글자의 뜻만을 여기 적지 않을 수 없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김대성은 전생에 경주 모량리牟梁里의
가난한 여자 경조慶祖의 아들로 태어나 품팔이를 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의 이익을 얻으리라”라는
스님의 말을 듣고 품팔이로 마련한 밭을 시주한 뒤 죽었다.
그날 밤 재상 김문량의 집에서 다시 태어난 김대성은
전생의 어머니 경조도 모셔와 함께 살았다.
김대성은 어느 날 곰을 사냥했는데, 꿈에 그 곰의 귀신이 나타나
환생하여 김대성을 잡아먹겠다고 했다.
김대성이 용서를 빌자 곰은 자신을 위하여 절을 지어 달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난 김대성은 깨달은 바 있어 사냥을
중단하고 불교에 귀의했다.
그리고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었다고 한다.
석굴암 본존불本尊佛은 신라인의 이상형이었던 부처로,
당나라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 기록돼 있는
인도 보드가야 대각사 부처와 크기가 똑 같다고 한다.
불국사는 석가모니와 아미타불,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대사찰로
불교의 나라를 지향하는 신라인의 이상향을 지상에 세워 놓은 곳이다.
동해안의 문무왕 수중릉을 향해 세워졌던 석불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 사찰로 신라인의 염원을 담고 있다.
넓고 푸른 동해의 기운을 끌어와 서라벌에 토해 내는 산,
이러한 토함산에는 다들 불국사와 석굴암만 있는 줄 안다.
그러나 장항리 절터에는 5층 석탑이 곳곳이 깨어지고
부서진 상처투성이이지만, 정교한 조각과 반듯한 용모로
국보國寶다운 품위가 돋보이는 걸작으로 일부가 남아있다.
흔치 않은 5층인데다가 1층 몸돌 사방에 새겨놓은
불상 조각은 마치 손으로 그려놓은 듯 정교하다.
경주는 전체가 찬란했던 신라 문물의 보장寶藏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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