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학상은 1972년 이상의 업적을 기리고 문학적 성취를 기록하고, 당해년도 발표작이라면 무엇이든 심사 대상에 드는데, 사실 전 시인 이상과 이 작품들 사이의 개성적인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늘 의문스럽습니다.
노벨상은 한 작가의 일생동안의 성취를 기리는 것이기 때문에 (십여년 전까지는) 수상작가의 작품들이 좀 묵직했고, 맨부커상이라 하면 일단 재미있겠다, 생각이 든다면 이상문학상은 제게 있어서는 한국 단편 소설의흐름을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도서관 서고에 꽂힌 그 도도한 한결같은 표지도 좋았고(2012,13연도는 달랐던 기억), 연간 발행되는 재미있는 단편 모음, 그것도 작가가 다 다르기에 책장이 더 잘 넘어가는 느낌이었달까요.
이번 수상작들도 각기 색채가 다른데, 제게는 윤이형이라는 작가의 생활 냄새 가득한 수상작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제목부터가 그랬고 자선대표작 대니도 읽다가 비분강개한 대목이 한두군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첫번째와 두번째 고양이는 희은과 정민의 사랑이 스러져가는 과정과 그것을 모른체하는 사회의 모습이 가득합니다.
처음부터 그들의 고양이가 아니었어요, 순무는. 어느 부부가 임신을 이유로 임보를 보냈고, 일이년이 지나 희은이 연락을 하자 부인은 슈니발렌을 사들고 방문 후 그대로 떠나버립니다. 임보가 아니라 그냥 버린것이죠. 그를 떠맡은 희은과 정민은 평범할 정도로 반짝였다가, 평범할 정도로 사그라듭니다. 생활이 힘겹고 돈이 없고 여혐범죄 현장의 비명을 듣고, 마침내는 그 둘의 가장 기본적 특징이 둘의 전부가 됩니다.
이탈리아계 유대인 프리모 레비는 2차대전 전까지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인지조차 하지 않았으나 2차대전 발발과 동시에 유대인이 됩니다. 그 사람의 1부터 100까지의 특징은 전부 사라지고, 유대인의 특징만이 그의 전부가 되는 것이죠. 희은과 정민도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사랑했고 결혼했고 이혼했어요. 이 간단한 사실밖에 남지 않은 사이는 얼마나 빈곤한 것인가. 이 둘의 마음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캄캄해져 사랑이 빈집으로 각자 들어가버리는 과정은 얼마나 고된 것인가.
윤이형의 작품은, 이것을 읽는 여성 독자들이라면 누구든 단박에 그 험한 과정을 생생하게 느낄 거라 생각합니다. 왜 여성 독자로 내가 한정했냐고요? 그의 자선대표작 대니를 보면 더욱 이해하실 것입니다. 내가 많은 공상과학 소설을 읽지는 않았으나, 목록을 추려보면 서구권의 AI와 한국 남성작가의 AI는....차이를 보면 한숨이.........미래사회만 그린다 하여도 네버 렛 미 고(영국, 가즈오 이시구로-의료 장기 기증용 맞춤형 인간), heart goes last(캐나다, 마거릿 애트우드-처음 본 존재에게 남녀노소생물무생물 무관하게 각인되어 헌신하게 됨) 등등인데 한국 남성 작가의 미래사회는 섹스로봇이 압도적입니다. 장강명의 노라가 그랬는데 드러워서 말도 하기 싫.... 근데 윤이형 작가의 대니의 AI는요, 너무너무 슬프게도 아이 돌보미 로봇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돌보미 로봇이 손주 돌보는 할머니를 처음에 같은 AI로 잠시 착합니다. 왜냐면 쉬지를 않아서요.
이 로봇처럼 쉬지 않아야 하는 그 할머니와 로봇 사이의 사건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일어납니다. 이건 마치 죽은 정자와 죽은 난자가 만나 죽은 아이를 잉태하는 것만큼이나 슬프고 불가능하다는 느낌에 막막해져서, 그 파국이 처음부터 나까지 설레어서...... 이 두 작품을 읽고는 잠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두 작품을 제외하고도 이번 수상작품집은 유난히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1년간의 한국 문학의 풍경을 훑고픈 회원님께 추천드립니다.
첫댓글 책소개 글은 제 친구가 타 사이트에 올린 게시물을 편집한 것입니다. 친구의 100%창작물이기에 코인천사 카페에 올리는것을 허락받았습니다. 카페에 학부모님도 많으시고 젊은 회원님들도 많으신거 같아 같이 공유하고 싶어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혹시 공지에 위반되는 사항이 있으면 알려주시고 불펌은 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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