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욱-旅窓筆滴- -1989년 중국 편.
중국 여유기(中國 旅遊記)
23. 베이징(北京: 북경: Beijing)-7.
7.이화원(頤和園: Yiheyuan)-3.
1989.5. 쓴 것(脫稿)을 2009.03. html로 재편집.
空慧
날아갈듯 산뜻하게 단청된 3층 누각이 여늬 궁전건물과 달라보이니
덕화원(德和園)이다. 연극 등 연예를 관장하고 공연하던 곳이다.
시쳇말로 극장(劇場: theatre) 이다.
여기서 다시 달맞이 놀이 가던 문(門)인 요월문(邀月門)을 지나니,
곤명호(昆明湖)의 북쪽 기슭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72m의 장랑
(長廊)이 펼져진다. 이름만 장랑일뿐 미려(美麗)한 정자(亭子)들의
연결물이다. 높지 않은 난간에 칸마다 다른 기둥 다른 석가래
도리 들보들의 꾸밈새가 모두 다를뿐더러 또한 칸마다 문양(紋樣)
과 채색화(彩色畵) 그리고 액자 현판(額子 懸板)이 다르다.
액자에는 영고홍기(永固鴻基: 큰 터 영원히 굳건 하라), 일월소화
(日月昭華; 해와 달이 모두 화사하게 빛나라), 그리고 보유강년
(保有康年: 매해를 편안히 오래도록 기리라) 등 국가민족의 번영과
황실의 영원무궁을 축원하는 휘호(揮毫)들이고, 그림은 모두 아름다운
채색화인데 선유도(仙遊圖: 신선 놀음 그림), 천사도(天使圖), 그리고
손오공(孫悟空)의 서유기(西遊記) 장면도 있으며, 칸마다 채색양식
또한 다양각색의 구도이어서 참으로 신묘(神妙)할 다름이다.
↑ 이화원(頤和園) 안 덕화원(德和園)
↑ 운휘오우배루(雲輝五宇排樓) 요월문(邀月門; 달맞이 문)

↑ 장랑
↑ 장랑 전각 천정
바티칸 성당에도 이와 비슷한 보랑(步廊)이 있지만 기껏 10m 정도로
이 규모나 예술성에서 비교가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장랑을 거닐며 먼 곳을 조망하는 산수의 운치(韻致)는 형언
할 수 없다.
높이 솟아있는 불향각(佛香閣)은 웅장하고 화려하다.
고궁의 태화전을 방불케 하는 그 위용에 또다시 경탄한다.
베운(排雲)이란 구름을 밀어 낸다.라는 뜻 일 게다. 아름다운 경색
(景色)이 구름에 가릴세라 구름을 걷어버린다는......
아니 아마도 전운(戰雲)의 먹구름이 가시면 다시 태평성대가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앞을 바라보니 곤명호가 바다같이 망망(茫茫)하고 사제(西堤) 동재
(東堤) 그리고 남호도(南湖島)에 드리운 석가석축(石架石築)의
십칠공교(十七孔橋)가 공룡같이 물 위에 넘실거린다.
배운전은 서태후가 그의 생일 축하연 등의 연회 또는 의전행사로
쓰던 곳이다. 웅대한 이중첨루(二重檐樓)인 배운전은 화려하기
그지없고 좌우 후면에는 작고 큰 전각들이 아름답게 배설(配設)
되어있어 마치 성단장(盛丹粧)한 황후가 화사하게 차려입은 시종
(侍從)들을 데리고 서있는 듯이 보인다.
이중팔간(二重八角)의 배운전은 예쁜 동녀(童女)같이 화사하고
전륜전(轉輪殿)은 높은 석단(石段) 위에 마치 동자(童子)같이
곱상하다. 희루(戱樓) 즉 극장이었던 청리관(聽鸝館)은 꾀꼬리
리(鸝)자 이니 음악연주장이었을 법 하고 여기서 밖을 내다보면
활홀감에 도취된다. 그림인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으니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다.
↑ 곤명호와 불향각
↑ 십칠공교(十七孔橋)
↑ 이화원 전륜전(頤和園 轉輪殿)
↑ 이화원 청리관(聽鸝館)
보수중인 불향각(佛香閣)은 볼 수 없다.
이화원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을 보지 못하여 참으로 유감이다.
그 뒷산을 오르니 지혜해(知慧海)라는 불당(佛堂)이 보인다.
사방에서 많은 빛을 받게 하기 위하여 석가래 없이 건립한 무량불전
(無樑佛殿)이다. 거기 봉안된 불상은 건륭제(乾隆帝: 1711~1799)의
연대의 것이니 그는 여기서 불공을 드리며 자비(慈悲)보다도 많은
지혜를 갈구(渴求)하였던 것일까....
↑ 건륭제(乾隆帝)
건륭제(乾隆帝) 즉 청고종(淸高宗)!! 그의 조부는 성왕(聖王)으로
세계적 제국으로 중화(中華)를 발전시켰기에, 서양에서의 당대의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와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大帝
: Pyotr I: 1672~1725) 못지않는 세계적 위인이었고, 그의 부왕은
비록 독재군주였지만 하늘을 본받아 사사로움을 버린다는 즉천사거
(則天私去)의 신조를 갖고 하루 4시간만 수면하고 정사(政事)에
몰두하던 집념의 군주였던 옹정제(雍正帝: 1678~1735)였다.
이렇게 부조(父祖) 이대(2代)의 영주(英主: wise ruler)에 의해
전성기를 이룬 청조(淸朝)를 이어받아 60년간 재위하고 오세동당
(五世同堂: 5대가 한집에서 살다)하여 90세까지 백복장수(百福長壽)
하여 1799년 붕어(崩御)한 참으로 행운과 풍요로움을 만끽했던
황제였다. 그의 업적은 대단치 않으나 태평성대를 이끌어 오족
협화(五族協和: 즉 만․몽․한․장․회: 滿․州․蒙古․漢族․西藏/티베트․回紇/위글)
에 힘쓰고 문학에 재조가 있어 청대문화의 창시자로서 황제답지 않은
어학력과 시작(詩作)등으로 지적향락을 만끽하기도 하였고 또한
향비(香妃)라는 변방(邊方) 백인계의 위글(回紇)아가씨와 비련(悲戀)
의 경험도 가젔던 낭만파이기도 한, 보기 드믄 황제였는데, 혹여
구애해도 호락호락 말을 듣지 않는 향비를 설득감화 시키기 위하여
구애와 사랑의 지혜를 갈구하였는지도 모른다.
여하간 지혜해의 본존불상(本尊佛像)은 여느 대웅전에서나 볼 수
있는 가부좌(跏趺坐)의 석존(釋尊) 여래상(如來像)이지만 머리에
관(冠)을 얹은 것이 이채롭다.
↑ 건륭제(乾隆帝)와 향비(香妃)
(※참고 ☞천산남로-9. 향비(香妃))
그 여래상의 대자대비하신 불안(佛眼)은 그 뜻하는 바를 헤아릴 길이
없다. 다만 공(空)이라고 무언의 설법을 하시는듯하였다.
“모든 존재는 수시로 변하느니 일정하게 고정되지 않은 것은
실제적 존재가 아니니라. 그래서 모든 존재는 공(空)인 것이다“라고
넓고 크신 설법을 묵시(黙示)하심이려니.....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남의 지혜를 잠시 빌려 머리에 담은 내 주제에 무엇을 알리요..
가끔 입속으로 낭송하던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을 흥얼거리며
만수산을 넘으니 아름다운 라마교 탑(Lama tower)들로 들리워진
향암종인지각(香岩宗印之閣)이 있다.
↑ 라마사원 향암종인지각
산을 내려와 곤명호 서북단에 다다르니 호화찬란한 2층 유선(遊船:
노릿배)이 물위에 누각같이 떠있으니 청안방(淸晏舫)이라는 36m의
대리석 배(船: ship)이다. 나무가 아닌 대리석으로 만든 이 배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치장하였고 동력이 아니고 사람들이 끌었던 배
이다.
↑ 곤명호
↑ 청안방 석선(淸晏舫 石船)
↑배를 끄는 사람들
산정에 있던 유리다보탑(琉璃多寶塔)의 아름다움과 거기 십팔
나한상(十八羅漢像)인 강룡존자(降龍尊者)가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뒤를 돌아보게 한다.
그 강룡존자는 왼손에 자그마해진 용(龍)을 돌고 바른 손을 위로
어깨와 함께 치올리고 그 손에 잡은 용주(龍珠)를 집어던질 듯한
성난 모습이었다. 지상 지고(地上 至高)의 지존(至尊)이신 천자
(天子)인 용(龍)이 강룡존자의 손아귀에 쥐어저 궁 안의 불전에
모셔져 있으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인생무상(人生無常) 만상(萬祥)이 공(空)이로다.....
Ps:
-일부 사진은 실제 당시 현장과 무관하며, 특정사실과두 무관함
출처는 인터넷임을 행해바랍니다.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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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리석선을 사람이 끌다니...무소불위의 권력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