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리히에서 생각하는 여천
며칠 전 스위스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고 달력 사진으로만
대하였던 스위스를 직접 찾게 되었는데, 스위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깨끗했습니다. 알프스 산자락의 아름다움과 호수의 깨끗함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오히려 말을 아끼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쥬리히 호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벌거숭이 아이들은 쉴새없이 물로
뛰어들었고, 젊은 연인들도 수영을 하며 데이트를 즐겼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그들대로 한적한 시간을 호수에서 보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평화로운 풍경이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받아주면서도 호수의
물빛은 더없이 맑고 푸르렀습니다. 100만 명이 사는 도시 속의 호수가
어떻게 저리도 맑은 물을 지킬 수가 있는지 궁금하여 안내하는 분께 물었더니
공업용수는 물론 생활하수가 한 방울도 호수로 그냥 들어오는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몇 년 전에 다녀왔던 여천 생각이 났습니다. 동해나 서해와는
달리 섬과 바다가 아기자기하게 어울린 남해는 남해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동해가 힘찬 남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남해는
조용하고 정갈한 여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룻밤을 머문 다음날 이른 아침, 마침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소'라는
유적지가 있어 산책을 할 겸 그곳을 찾았습니다. 선소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소가 있었던 곳으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의하면 거북선 제작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배를 정박시켰던
굴강(掘江)을 비롯, 무기 제작처로 추정되는 대장간, 세검정, 군기창고 등의
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돌을 둥그렇게 쌓아만든 굴강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굴강에 세워져 있는
안내문을 보니 굴강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께서 거북선과
판옥선(총지휘선)을 건조, 진수한 뜻깊은 곳이었습니다. 밀려오는 왜군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거북선을 만들고 작전상 거북선을 대피시키기도 했던 당시의
숨가쁨을 생각하며 굴강에 가까이 다가간 나는 이내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 못 이루며 나라를 염려했던 충무공의 시퍼런 얼이 살아있어야
할 굴강,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것은 무지개 빛깔로 둥둥 떠다니는
기름띠였습니다.
"여름이문 겁나게 냄새가 나부러요. 우리가 맘 좋으니께 살지 누가 여기
살겠어요?"
선소 앞에서 마당을 쓸고 있는 아주머니께 바다가 많이 오염된 것 같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대답보다도 탄식을 먼저 했습니다. 20여 년 전 여천을 계획도시로
세우면서도 하수종말처리시설을 따로 하지 않아 여천의 하수가 고스란히 바다로
흘러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아오다 눈여겨보니 두 개의 커다란 하수구
구멍에서는 여전히 시커먼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날은 국민소득 2만불이 되는 날이 아니라 우리의 산하를
우리가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날,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2004.8.22 -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 오늘도, 이 한 주간도 뜻있고 보람있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