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렉트로룩스라는 회사는 예전에 인터넷 냉장고를 내놓아서 눈길을 끌었던 곳입니다. 저는 몇 년 전에 홈 오토메이션 관련 기사를
쓰다가 이 회사를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트릴로바이트는 고생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삼엽충의 영문 표현입니다. 바다 속 깊은 곳에 있는 이물질을 "청소"했던 삼엽충과 모양이나 역할이 비슷하다는 뜻에서 이름을 붙인 것이죠.
외신을 보니 이 회사에선 디지털 가전 제품을 만들 때 감수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부엌을 예로 들면 음식은 10%이고
나머지 90%는 감수성을 채워주는 공간이라는 게 이 회사의 설명입니다. 굳이 부엌이 아니더라도 가정이라는 공간은 실용성 뿐 아니라 감수성이라는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일단 모양은 "덩치 큰 CD 플레이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제품의 앞면에는 작은 초음파 센서 9개가 180。 각도로 넓게 퍼져 있습니다. 장애물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지요. 하지만 장애물에 부딪히게 전에 무조건 피하는 건 아닙니다. 전원 케이블이나 완만한 경사 정도는 장애물로
인식하지 않고 올라갑니다.
이렇게 오르막을 올라가다 보면 트릴로바이트가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트릴로바이트는 본체 앞쪽에 자동차 범퍼 같은
장치를 해놓았습니다. 일종의 완충 장치인 셈이죠. 이런 완충 장치는 바퀴 양쪽에도 달려 있습니다. 본체에 가해질 수 있는 충격을 흡수하려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본체가 공중으로 들리면 저절로 청소를 멈추는 것도 제품 안정성을 위한 것입니다.
아무튼 로봇이라도 가정용 제품이니 쓰기 쉬워야 하겠지요? 트릴로바이트의 인터페이스는 간단합니다. 본체 윗면에 있는 전원 아이콘을 누르면 준비가 끝났다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Yes"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청소를 합니다.
트릴로바이트로 청소를 하면 일단 청소할 장소(마루)의 구석부터
천천히 돌기 시작합니다. 구석을 모두 돌고 나면 지그재그로 다니죠. 계단이 있는 집이라면 트릴로바이트가 청소하다가 떨어질까
걱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럴 때에는 트릴로바이트 패키지 안에
들어 있는 마그네틱테이프를 계단 앞쪽에 붙여놓으면 됩니다. 트릴로바이트는 이 테이프를 경계선으로 삼고 넘어가지 않으니까 계단 아래로 떨어질 염려는 없습니다.
트릴로바이트는 니켈 수소 충전지를 전원으로 사용합니다. 1시간
가량 계속 사용할 수 있고 한 번 충전하면 2시간 가량 걸립니다.
재미있는 것은 전원이 떨어지면 혼자서 충전기에 "도킹"해서 자동으로 충전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트릴로바이트는 몇가지 문제점을 드러냈습니다. 본체가 원형이어서 구석구석까지 혼자 청소시키기에는 못미더운 구석이 많습니다. 각진 구석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또 이 재미있는 청소기로 카펫이나 마루를 청소하는 건 좋지만 물기를 피해야 하는
게 흠입니다. 아마 나중에 나올 제품에는 물 청소기능도 추가될
것으로 보입니다.
본체 위에 있는 뚜껑을 열어보면 일회성 먼지 봉투 대신에 먼지통을 넣은 걸 알 수 있습니다. 필터만 바꾸면 됩니다. 그 밖에 청소
모드는 일반, 급속, 부분의 3가지로 나뉘는데 써본 결과 흡입력은
뛰어나지만 소음은 조금 큰 편입니다.
사실 청소기에(제 아무리 로봇이라도) 200만원을 투자하는 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강남의 백화점을
중심으로 초기 반응은 아주 좋은 편이라 일렉트로룩스사도 적잖이
놀랐다고 합니다. IT제품도 향수, 고급 옷 같이 명품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