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서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뿐 아니라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이름을 바꾸고, 홍 장관에 수여된 건국훈장을 취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그가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던 이력을 문제 삼고 있다. 정부가 갑자기 홍 장군을 흔드는 진짜 이유는 뭘까?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광복군이냐 아니면 미 군정 국방경비대냐를 두고 오랜 논란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군의 뿌리가 독립군·광복군에 있다고 봤다. 그래서 2018년 독립군·광복군의 흉상을 육사에 세운 것이다. 하지만 전직 장성, 극우 세력과 역사관을 공유하는 윤석열 정부는 미 군정 국방경비대를 군국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 독립운동의 역사는 자신들의 역사관과 양립할 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독립운동에는 자유주의, 반공주의 같은 우익만이 아니라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등 온갖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윤 정부가 보기에 국군은 한미동맹을 지키고 반공 투쟁을 하기 위해 존재해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우익 세력의 원죄를 가리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독립운동 역사를 인정하면, 친일의 역사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 백선엽 장군이 대표적이다. 백선엽은 제 발로 일본이 세운 괴뢰국인 만주국의 만주군 장교 양성 학교에 입학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본군 장교로 5년이나 복무하면서 독립군을 잡으러 다닌 사람이다. 그러다 일제가 망하니 슬쩍 노선을 바꿔서 한국에서 장군도 되고, 한국전쟁에 나가 공로도 세운 거다. 해방 후 미국과 반공주의에 올라타 친일파 청산을 피해 살아남은 뒤 각 분야에서 주류가 된 수많은 이들의 행태와 동일하다.
백선엽의 공과를 따지는 건 매우 어렵다. 지금 정부는 백선엽이 나라를 구했다고 하지만, 당장 같이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부터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는 1사단장으로, 당시엔 남한이던 개성에 있었다. 하지만 북한군이 개성부터 치고 내려왔을 때 1사단은 아무 저항을 하지 못했다. 그가 전날 서울서 열린 육군회관 파티에 가서 술 마시고 자다가 부대로 복귀를 못 했다는 주장도 있다.
백선엽은 평생 대접받고 산 사람이다. 30대 내내 장군, 40대에는 프랑스·캐나다 대사, 50대에는 교통부 장관과 공기업 사장을 지냈다. 60대 이후엔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호국의 별’로 떠받들어졌다. 하지만 홍 장군은 아버지처럼 머슴과 광산노동자로 전전하다, 추운 만주 전쟁터에서 싸웠고, 나이 들어선 강제로 카자흐스탄으로 끌려가 극장 경비 등을 하다 죽었다. 두 사람의 삶의 경로를 봤을 때 육사에서 장교들에게 본받으라고 내세울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국민적 존경을 받는 홍 장군을 흔들면 선거나 정치에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하지만. 양당에 각각 30%의 부동지지층이 있고, 중간에 있는 40% 유권자의 표를 더 많이 가져오는 게 기본 선거 전략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일반적인 대통령이 아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까지만 목표였던 걸로 보인다. 다시 대통령 선거 나올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정책도 없다. 그냥 전 정권이 한 거 때려 부수고, 검사 때처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반국가 세력’이라며 벌주는 일이나 하는 거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란 솥엔 독립·호국·민주라는 세 개의 다리가 있다. 그래서 국가보훈부는 독립투사, 전쟁공로자, 민주화 유공자 모두 잘 기려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독립’과 ‘민주’란 두 다리는 걷어차 버리고 ‘호국’ 다리 하나만 남기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이해하기가 힘들다. 지금처럼 민주화 된 한국에서 역사를 독점하는 건 가능하지 않다. 권력은 역사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