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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일본 경영의 비밀과 혼다의 비극
▶ 목표 관리의 중시
이 아름다운 이야기, 감동적인 동화( 『 한 그릇 메밀 국수 』,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 우동 한 그릇 』 이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소설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를 뒤집어 보면, 폭주하는 ‘혼다’ 오토바이처럼 폭음이 생겨난다. 우리(서기 1992년의 한국인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일본[왜국]>은 정직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다.”하고 주장하는 종일파[從日派]인 한국인들이 많다. 내가 볼 때는 전체 시민의 34%가 이렇다 – 옮긴이)가 늘 ‘배우자.’고 하는 일본 기업이나 그 ‘친절하고 청결한 사회’ 역시(또한 – 옮긴이) 속살을 들여다보면, 검은 매연이 보이고 귀를 멍멍하게 하는 비정한 쇳소리가 들려 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지금으로부터 서른 두 해 전, 그러니까 한 세대 전인 서기 1992년 – 옮긴이)의 일본이 그렇다. 미담(美談. 아름다운[美] 이야기[談] → 사람을 감동시킬 만한 갸륵한 이야기 : 옮긴이)이 하루아침에 스캔들로 변하듯이, 그토록 세계를 풍미했던 일본 경영이 이제는 점차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의 천덕꾸러기로 전락될 위험성이 보인다(그리고 서기 2000년대 이후의 일본도, ‘블랙 기업’이라는 말이 나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는 종신고용이 상징하던 ‘일본식 경영’을 버리고, 대신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경영과 고용을 하고 있다 – 옮긴이).
지난 10년 동안(서기 1980년부터 서기 1990년대까지 – 옮긴이) 미국의 기업들이 일본식 경영과 생산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투자한 돈(설비와 종업원 훈련 등)은 무려 76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실적은 들인 돈에 비해서 너무나도 미미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요즘(서기 1990년대 초/전반 – 옮긴이) 미국에서는 일본을 배우는 데 앞장을 서 왔던 기업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제너럴 모터스, 포드 같은 기업들은 일본식 경영과 생산 방식을 공장에서 몰아내기에 바쁘다(이 글은 제너럴 모터스, 그러니까 GM이 파산하기 열네 해 전에 세상에 나왔다 – 옮긴이). 그렇게 인기가 높았던 일본의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한자로는 “적기 공급[또는 무재고] 생산 방식”.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낭비 요인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함으로써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성 및 품질 향상을 목표로 하는 생산 방식이다. 제조업체가 부품업체로부터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수량만큼 부품을 공급받아 재고가 없도록 하는 재고 관리 시스템이기도 하다. - 옮긴이)’의 시스템(System. 방식 – 옮긴이)에 대해서도 더 이상 관심을 팔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붐을 타고 등장했다가, 속절없이 꺼져 간 『 한 그릇 메밀 국수 』 동화 한 편의 운명은 그대로 일본형 경영의 상승과 추락을 보여 주는 한 편의 드라마(Drama. 여기서는 ‘극적 사건’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 옮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듣어보면, 일본형 기업 경영 시스템과 대단히 유사한(비슷한/닮은 – 옮긴이)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기 1992년 현재 – 옮긴이) 일본의 대표적 기업인 ‘NCC’의 부사장 ‘미즈노 사치오(水野 幸男[수야 행남])’ 씨가 지적한 ‘일본형 경영(서기 2000년대 초까지 있었던, 일본 특유의 경영 방식 – 옮긴이)의 네 가지 특징’을 이 동화( 『 한 그릇 메밀 국수 』 - 옮긴이 )에 대입해 보면, 참으로 흥미진진한 결론을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일본형 경영의 특징은 첫째, 목표 관리의 중시에 있다고 한다. 전문 용어로는 ‘매니지먼트 바이 오브젝트’란 것으로, 기업이 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전(全. 모든 – 옮긴이) 종업원들을 그 목표를 향해 몰아가는 경영 방식이다.
마치 퍼진 햇살을 한 렌즈의 초점으로 수렴시키면(收斂시키면. → 한 점으로 모으면 : 옮긴이) 나무를 태울 수 있는 강렬한 화력이 생겨나듯이, 이러한 목표 설정은 회사의 전 구성원들의 마음과 행동을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경영 방식 아래서는, 회사의 구성원들이 – 옮긴이) 곁눈질이나 군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고, 애로(隘路. ‘좁고 험한[隘] 길[路]’ → 일을 진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점. 지장 : 옮긴이)를 뚫고 나가는 시련과 도전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그 목표는 실행 가능성이 희박한 너무 높은 곳에 두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놀면서도 달성할 수 있는 낮은 데 두어서도 안 된다. 어느 정도 노력하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것을 성취하는 기쁨과 보람을 얻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목표 관리의 노하우이다.
전후(2차 대전 이후 – 옮긴이)의 일본 기업들은 뚜렷한 목표 설정을 할 수 있었다.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어 버린 (자기 나라의 – 옮긴이) 공장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서양을, 특히 미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 설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그 목표점을 향해서 주야(晝夜. 밤낮 – 옮긴이)로 달렸던 것이다.
▶ 일본 경영의 비밀
이 같은 일본 경영의 첫 번째 특징을 「 한 그릇 메밀 국수 」 로 축소시켜 보면,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 온 그 메밀 국수 한 그릇이 나타난다. 이 세 모자 앞에 놓인 ‘인생의 목표’란, 아주 뚜렷한 것이다. 그 목표 달성은 세 식구가 세 그릇의 ‘도시코시 소바(“해[年] 넘기기 국수”라는 뜻. 일본의 전통 음식이다. 메밀국수의 한 갈래고, 일본인들은 이 음식을 “한 해를 정리하는 음식”으로 여겨 섣달 그믐[양력 12월 31일] 밤에 먹음으로써 한 해를 마무리한다 – 옮긴이)’를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날을 위해서,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뛴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체크무늬 옷 한 벌로 견디며 보상금을 갚기 위해 일하고, 아이들은 신문 배달과 밥짓는 일을 한다. 오로지 한 그릇의 메밀 국수가 세 그릇의 메밀 국수로 되기까지, 그들은 슬픔도 염치도 부끄러움도 마다하지 않고 10년간을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왕자님을 만나는 신데렐라와 같은 환상의 꿈이 아니라, 아주 평범하고 작은 일상의 목표. 소시민(小市民.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있는 중산층. 소상인/수공업자/하급 공무원/봉급 생활자처럼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 옮긴이)으로 열심히 살아가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그런 높이에 있는 목표이다.
‘북해정’의 부부가 가게를 경영하는 방식도 그와 똑같다. 그들은 섣달 그믐에 세 모자가 다시 찾아와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일한다. 그것이 그들의 희망이며 보람인 것이다. 이미 설명한 바대로 이 이야기의 시간 설정을 일 년(一年. 한 해 – 옮긴이)의 마지막날에 둔 것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 해의 목표 설정과 그 달성을 위해서 가장 좋은 날이 바로 한 해를 마감하는 섣달 그믐이기 때문이다.
10여 년 동안이나 예약석을 마련해 놓고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이 부부의 ‘가상 목표’ 설정이야말로 일본형 경영의 목표 관리에 가장 잘 부합하는(들어맞는 – 옮긴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북해정은 번영할 수가 있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섣달 그믐이 아닌 날에 – 옮긴이) 세 모자가 (북해정에 – 옮긴이) 나타나도 큰일인 것이다. 왜냐 하면, 일 년 동안 기대를 갖고 열심히 일하게 한 섣달 그믐의 목표물이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본형 경영의 중대한 시련이 생겨난다. ‘과연 기업의 그 목표는 정말로 삶의 가치가 있는 목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회의이다. 단순한 사람들은 눈앞의 당근을 보고 뛰는 말처럼 그렇게 뛸 것이다. 그러나 좀더 복잡하고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의 목표를 그렇게 단순화시킬 수도, 획일화시킬 수도 없다.
그래서 『 한 그릇 메밀 국수 』 를 읽고 감동하는 한국인들에게, 그리고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한국의 기업인들에게 막상 ‘이 이야기 속의 주부처럼 살겠는가?’라고(하고 – 옮긴이) 물으면, (그들은 – 옮긴이)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남의 보상금을 갚기 위해서 체크 무늬 반코트 한 벌로 세상을 살아가겠느냐?’고 물으면, 그리고 ‘일 년 동안 낙(樂. 즐거움 – 옮긴이)이라고는 섣달 그믐날 세 식구가 150엔짜리 메밀 국수 한 그릇을 나눠 먹는 것밖에 없는 그런 생활을 자기 분(“분수”를 줄인 말 – 옮긴이)으로 알면서 평생을 살아가겠느냐?’고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그런 삶이 – 옮긴이) 고생스럽대서가 아니다. 아마도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모파상의 「 목걸이 」 생각이 나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남의 것을 빌려 차고 갔다가 잃어버린(원문에는 “잊어버린”으로 나오나, ‘잃어버린’이 더 정확한 말이라 이렇게 바꾸었다 – 옮긴이) 보석 목걸이가 진짜 것인 줄 알고 그것을 갚기 위해서 일평생을 바쳤던 ‘마틸드’ 부인처럼 될까 봐서 그러는 것이다. 즉, 자기가 철석(鐵石. ‘쇠[鐵]와 돌[石]’ → 매우 굳고 단단함을 비유한 말)처럼 믿고 있었던 생(生. 삶 – 옮긴이)의 목표가 만약 ‘진짜 (보석 – 옮긴이) 목걸이’가 아니었다면(그러니까, 정말로 가치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 옮긴이), 그것을 위해 노력한 자신의 생은 물거품이 된다.
생의 진정한(참된 – 옮긴이) 목표란 과연 무엇인가.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뛰는가, 그 삶의 목표는 정말 가치가 있는 것인가?
(만약 사람이 – 옮긴이) ‘헛되고 헛되니 또한 헛되도다.’라는 이러한 물음을 비켜 가려면, ‘슬픔을 모른다.’는 바쁜 꿀벌들처럼 오직 일만을 해야 한다. (그리고 – 옮긴이)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한 곳으로만 트인 시야를 향해서 정신 없이 뛰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곤충과 달라서, 당연히 질문하고 회의하고 끝없이 자기 해체를 시도한다. 구렁이도 철(‘계절’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 – 옮긴이)이 오면 허물을 벗는데, 일본 사람이라고 예외가 있겠는가.
앞으로 올 21세기에는 여가 시간이 많아지고, 일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그러나 서기 “21세기”인 오늘날, 한국에서는 회사나 공공기관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어렵고, 위험하고, 힘들고, 더러운 일들을 더 많이 떠넘기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돈은 적게 받으면서 일은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많이/더 오래 하므로, 이 예측은 가봇[‘반(半)’/‘절반(折半)’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이자 옛 배달말]만 맞은 셈이다. 그 사실을 아는 여러분은 이 교수의 예측이 ‘엉터리’라고 비난하고 싶겠지만, 이 교수가 이 글을 쓴 해[서기 1992년]는 IMF 구제금융 신청을 해야 할 정도로 한국의 경제가 엉망이 된 ‘국가 부도의 날’이 일어나기 다섯 해 전의 일이었고, 그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구분이라는 건 있지도 않았으므로, 이 교수를 비롯한 한국의 지식인들이 앞날을 낙관할 만했음을 생각해야 한다 – 옮긴이). 전통적 개념의 일벌들, 이른바 물건을 생산하고 운반하는(만들고 나르는 – 옮긴이) 근로자(‘노동자’라는 말을 써야 한다 – 옮긴이)들은 점점 사라져서, (서기 – 옮긴이) 2000년경에는 전체 노동력의 6분의 1 또는 8분의 1을 넘는 선진국은 없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체되는 지식 근로자들은 한결 까다롭고, 생각도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복합적 사회에 있어서 ‘단일적인 목표 관리’란, 컬러 텔레비전을 놓고 흑백 텔레비전만을 보라고 강요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 팀워크와 개인주의
일본형 경영의 두 번째 특징은 팀워크(공동 작업/여러 명이 한 조직을 이루어서 서로 도우며 행하는 동작 – 옮긴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적 성격을 이용한 경영 방식이다. 집단 책임에 의해서 팀워크의 힘을 발휘하여 품질을 향상시키고 생산성을 올린다. 한 마디로 마을 사람들이 협력하여 논밭에 물꼬를 대고 모를 심는 것 같은 농업 생산 방식을 공업 생산 방식에도 적용한(써먹은 – 옮긴이) 경영 시스템인 것이다. 이러한 팀워크는 연공 서열제라든가 종신 고용제와 같은 시스템으로 뒷받침을 하고 있다. 그리고 조직 면에서는 QC 같은 소집단 운동이 되기도 한다.
이미 설명한 바 있어 자세히 언급할 필요도 없이, 북해정은 부부가 경영하는 가게로서 그야말로 종신 고용제와 연공 서열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족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가족을 하나의 회사에 비긴다면 부부란 이혼을 하지 않는 한 종신 고용제라 할 수 있고, 부자나 형제 관계는 연공 서열제라 할 수 있다.
팀워크는 북해정만이 아니라 손님으로 찾아왔던 세 모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메밀 국수 한 그릇만 셋이서 나눠 먹었던 것이 아니라, 일할 때에도 함께 힘을 모은다.
어머니가 밤낮으로 직장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막내가 어머니 대신 밥을 짓고 가사(家事. 집안[家] 살림에 관한 일[事] → 집안일 : 옮긴이)를 돌보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상보다도 일찍 보상금의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것은, 큰아들이 신문 배달을 해서 도왔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한 가족(식구 – 옮긴이)이 이룩한 팀워크의 성공담’이며 그 승리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손님의 주문을 받고 ‘가케 잇쵸!’라고(하고 – 옮긴이) 아내가 외치면, 조리대에 있는 남편이 ‘아이욧 카게 잇쵸!’라고 복창을 하는 북해정의 그 정경은 열심히 일하는 일본의 부부, 문자 그대로 부창부수(夫唱婦隨. 원래는 “남편의 말에 아내가 따른다.”는 뜻이지만, 이 글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아내가 말하면 남편은 그것을 따른다.’는 뜻으로 쓰였다 – 옮긴이)하는 일본인의 단란한 가족을 엿보게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광란의 일본 군국주의 군대를 연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케 잇쵸와 같이 무엇인가를 복창(復唱. ‘부름[唱]을 돌려보냄[復]’ → 남의 말을 받아 그대로 욈 : 옮긴이)하는 것은 일본 집단주의의 원적지라고 할 수 있는 사무라이 문화(군사 문화)의 하나로서, 국민학교(오늘날의 초등학교. 이 글은 ‘초등학교’라는 명칭이 나오기 전에 쓰였다 – 옮긴이) 때부터 강요해 온 훈련이기 때문이다.
어느 군대 사회이든 군사 문화란 자연히 단순성, 규율성, 반복성, 집단성의 훈련으로 이루어진다. 북해정 부부가 온종일 손님에게 큰 소리로 고맙다고 말하며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이나, 주문 음식을 복창하는 버릇이나, 그리고 섣달 그믐 그 정해진 날과 그 시각에 정해진 식당(밥집 – 옮긴이)으로 잊지 않고 찾아오는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은 일종의 군사 문화의 변형인 것이다.
요즘(지금으로부터 서른두 해 전인 서기 1990년대 초 – 옮긴이) 우리(한국인 – 옮긴이)가 ‘군사 문화’란 말을 잘 쓰고 있지만, 진짜 군사 문화가 무엇인지를 알려면 일본 사회를 들여다보면 된다. 아직도 여학생은 해군 옷인 세라복을 입고, 남학생은 (제국주의/군국주의 시대의 – 옮긴이) 육군 군복과 같은 ‘쓰메에리(세워진 칼라에 호크를 단 것)’ 제복을 입고 다니는 나라인 것이다. (게다가 – 옮긴이)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이야기 형식 자체가 군사 문화가 갖고 있는 요소들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다. 장소와 시간 그리고 ‘저 ……, 메밀 국수 일 인분인데 …….’라고 판에 박은 듯한 대사 등 규칙적인 반복성을 최대한으로 살린 것이다.
‘무엇을 제조한다(만든다 – 옮긴이).’는 것 역시(또한 – 옮긴이) 집단적이고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행위이다. 일본이 우수한 공업국이 된 데에는 이러한 기계적인 제조술에 적성이 맞고, 또한 앞서 말한 것 같은 철저한 무가(武家) 사회(무사들이 다스린 사회 – 옮긴이)의 역사적 배경이 그 뒷받침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너무 비약하는 것이라고 말할는지 모르나, 우리가 ‘일본을 배우자.’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군사 문화를 배우자는 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일본 경영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마쓰시타 그룹에서는 세계의 어느 곳에 흩어져 있든, 수만 명의 사원들이 매일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사가(社歌. 회사[社]가 만든 노래[歌]/회사를 상징하는 노래 – 옮긴이)를 부르고, 똑같은 사시(社是. 회사의 이념이나 회사 정책의 기본 방침 – 옮긴이)를 외치고, 똑같은 동작의 의식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들의 조직과 팀워크를 보면, ‘마쓰시타 군단’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경우는 체질적으로 이런 집단적인 의식을 유치하고 멋쩍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그런 의식을 떠올리기만 해도 – 옮긴이) 닭살이 돋고, 어색한 웃음이 앞서게 된다.
한국인만이 아니다. 유치원생이 아닌 정상적인 어른들이라면, 남의 말을 따라서 복창하고, 여럿이 줄을 서서 남이 하는 대로 흉내를 내는 그 치기에 대해서 망신스러운 느낌이 들 것이다.
국제 공항에서 깃발을 든 안내원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일본인 관광객들은,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유치원 아이들이 보모를 따라서 소풍을 나온 것같이 보이지만, 그들은 조금도 부끄럽거나 어색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일본인 자신들도 거품 경제 이후(그러니까, 서기 1991년 이후 – 옮긴이) 일본식 경영에 대해서 적지 않은 회의를 표명하고 있다. 그들 자신이 벌써 종신 고용, 연공 서열 등 일부 일본 경영의 간판을 내리고 회사를 재구축하는 일을 서두르고 있다(그리고 이 글이 쓰인 지 서른두 해, 그러니까 한 세대가 지난 뒤인 지금[서기 2024년 현재], 이른바 ‘일본식 경영’은 일본 안에서도 사실상 깨끗하게 사라졌다 – 옮긴이). 무엇보다도 집단주의적 방법이나 의사(疑似. 비슷하여 분간하기가 어려움 – 옮긴이) 혈연주의적 체제(실제로는 한 핏줄/한 집안이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서로 뭉치거나 함께 하는 무리/체제/조직을 일컫는 말 – 옮긴이)가 통용되기 힘든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 교향악단과 재즈 밴드의 조직
그 이유(까닭 – 옮긴이)는 ‘피터 드러커’가 「 후기 자본주의 사회 」 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의 기업은 더 이상 19세기식 군대 조직에서 배우기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악기를 다루면서도 전체가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교향악단의 조직, 또는 지휘자조차 없는 재즈 밴드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생산 요소는 이제 더 이상 자본도 토지도 그리고 노동도 아니라 ‘지식(知識. 순수한 배달말로는 “앎” - 옮긴이)’이라는 점이다. 이 지식은 만화와 같은 유아성, 단순 반복 규칙, 그리고 집단주의적 군사 문화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개인의 창의력과 동시에 한 집단에 참여하는 통합적 질서이다. 이것을 흔히 ‘호론’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호론(holon)이라는 말은 ‘전체’를 뜻하는 그리스(올바른 이름은 ‘헬라스’ - 옮긴이) 어의 ‘홀로스(holos)’와 ‘개인’을 뜻하는 ‘온(on)’을 합성한 것으로, 집단주의나 개인주의를 다같이 배격한 새로운 통합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개인과 전체의 조화와 정보의 공유화, 그리고 책임과 권한의 분산화 등으로(같은 것으로 – 옮긴이) ‘호로닉 매니지먼트’의 시대가 오게 된다는 것이다.
▶ 미래에 대한 장기 전략
일본형 경영의 세 번째 특징은 기술의 내제화(內制化. ‘안[內]으로 가져오는 것’ → 바깥의 다양한 정보나 경험을 조직 안으로 모아들이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 옮긴이), 즉 단기 이익이 아니라 R&D(영어인 ‘Research and Development’를 줄인 말. ‘연구개발’이라는 뜻이다. 기업에서는 ‘연구를 기초로 상품을 개발하는 활동’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 옮긴이) 에 투자하는 미래에 대한 장기 전략에 있다고 말한다. 매상고(賣上高. 일정한 시간에 상품을 판[賣] 수량이나 대금의 총계 – 옮긴이)의 10퍼센트에서 12퍼센트를 기술 개발에 투자하여, 부가 가치가 높은 상품을 만들어 나가는 전략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단기 이익을 내지 않으면 (그 이익을 받는 – 옮긴이) 주주들로부터 압력이 들어오기 때문에 장기 계획이나 확실치 않은 개발 프로젝트(project. 계획/사업 – 옮긴이)를 세우기가 어렵다.
그러나 일본 기업은 (당장 주어지는 – 옮긴이) 이익이 없더라도 회사 내부에서 컨센서스(Consensus.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견에 대한 합의. 줄여서 ‘합의’ – 옮긴이)가 이루어지기만 하면 곧바로 (계획을 – 옮긴이) 승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NEC(‘일본 전기 회사’라는 뜻. 서기 1990년대에는 ‘PC 엔진’이라는 비디오 게임기를 팔았던 가전회사 – 옮긴이)에서 개발 투자한 반도체 공장의 청정실이다.
‘청정실을 만들었을 때, 과연 투자한 만큼의 효율이 생기느냐?’ 하는 것은 실제 (그 청정실을 – 옮긴이) 만들어 보지 않고서는 예측할 수 없다. 밖에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없는 것을 자체 내에서 해결하려면, 그같은 위험 부담을 끌어안아야만 한다.
서비스 업종이기 때문에 제조업과는 비교가 어렵지만, 북해정의 빈자리 예약석이 바로 그러한 경영형을 상징한다. 손님들이 북적대는 가장 큰 대목날에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손님을 위해서 빈자리의 예약석을 하나 만들어 두는 것 ―― 이것이 단기 이익보다도 미래에 투자하는 R&D의 정신이다. 그리고 세 모자에 대한 이같은 서비스는 북해정의 노렌에 하나의 ‘부가 가치’를 주게 된다.
이러한 경영형은 하드웨어의 제조(만듦 – 옮긴이)에는 대단히 바람직스러운 경영 방식으로 대두되는(나타나는 – 옮긴이) 것이지만, 그것이 개인의 창조력을 토대로 한 소프트웨어에서는 팀워크나 R&D와 같은 것으로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
(예를 들어 말해보자. – 옮긴이) 몇백 명이 한데 어울려 물샐틈 없는 팀워크로 작곡을 하고 소설을 써도, 한 사람의 재능 있는 작가를 따르지 못한다. 일본의 비디오 디스크(비디오테이프로 영상을 재생하는 기계장치. 이 글은 CD나 DVD나 유튜브나 USB가 나타나기 훨씬 전에 쓰였기 때문에 이 장치가 이 교수의 설명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나온 것이다 – 옮긴이)는 세계 시장을 거의 석권하고 있지만, 그 속에 들어가는 비디오테이프(더 정확히는, 그 안에 들어있는 영화나 연속극[‘드라마’]이나 만화영화[‘애니메이션’]. 그러니까 문화상품들 – 옮긴이)는 할리우드(의 영화 – 옮긴이)를 비롯하여 대부분이 외국 것들이다(단, 스무 해 전부터는 만화영화나 게임은 일본 것이 많이 나오기는 한다 – 옮긴이).
세 모자가 나타났기 때문에, 그 예약석은 비로소 보람과 빛을 갖게 된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영영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한낱 ‘공허한 빈자리’로 남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사불란(질서가 정연해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음 – 옮긴이)의 질서대로 움직일 때 일본은 강하다. 그러나 예외적인 것, 반복적인 데서 벗어난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는 적응력을 잃고 마는 것이 일본형 경영의 약점이기도 하다(그 좋은 예로, 사회의 디지털화에 강하게 저항하는 일, 구조대원이 사고 현장에서 “[물을 더 주라는 말이] 매뉴얼에 없어서” 물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 물을 바닥에 버렸다는 실화, 돈을 쓸 때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고집하는 태도를 들 수 있다 – 옮긴이).
한국인들은 정반대로 이 의외성이나 우연적인 것에 대한 순발력이 강하다. 준비하고 따지고 예측하여 행동하는 장기 계획(을 하는 능력 – 옮긴이)은 부족하지만(모자라지만 – 옮긴이), 순간 순간의 위기를 꾸려 나가는 임시변통에 대해서는 탁월한 적응력을 보이는 것이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서기 – 옮긴이) 21세기는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영역, 즉 숫자로 계산할(셀 – 옮긴이) 수 없는 인지 능력/순발력 그리고 우연적 상황에 대처하는 직관 등의 요소가 경영면에도 크게 작용한다.
21세기의 경영은 장기적인 예측이나 대비 못지않게 이른바 ‘애매한 것(퍼지)’, 우연적인 것, 이른바 ‘랜덤니스’의 상황에서 순간 순간을 선택하는 시적 직관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인 것이다.
▶ 과당 경쟁의 의미
네 번째 특징은 과당(過當. 정도가 보통보다 지나침[過] - 옮긴이) 경쟁이다. 일본의 기업은 서로의 경쟁심을 돋구어 긴장감과 성취 욕망을 부추긴다.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 경쟁도 치열하다. 이같은 과당 경쟁 체제를 통해서 종신 고용제이면서도 실력주의 사회를 만들어 낸다(이 글은 일본 기업들과 사회가 아직 종신 고용제를 실천하던 때인 서기 1992년에 쓰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것이 사라진 오늘날[서기 2024년 현재]에는 일본 사회의 성격이 많이 달라졌다 – 옮긴이).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상가(商家. 장사[商]하는 집[家] - 옮긴이)에서는 장자(맏아들 – 옮긴이)가 있어도 무능하면 가업을 전승시키지 않고, 유능한 직원을 데릴사위로 삼아 상속을 시킨다. 오사카 상인들 가운데는 적자 상속이 아니라 삼대째 데릴사위로 가업을 전승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비록 이야기(『 한 그릇 메밀 국수 』 - 옮긴이)에는 직접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북해정 가게 주인이나, 의과 대학을 졸업, 국가 시험에 합격하여 인턴이 된 큰아들, 은행에 취직한 작은아들은 모두가 과당 경쟁에서 살아 남
은 자들이다.
국민 학교(초등학교 – 옮긴이) 학생 때 쓴 작문의 내용이 이런 치열한 경쟁 사회의 일면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른바 ‘닛폰이치(일본에서 첫째 가는 ……)’ 사상이다. 거의 맹목적인 승부욕은 일본형 경영의 원동력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이야기를 읽고 감동하는 사람이나, 일본 기업의 눈부신 성장과 경제적 번영을 부러워하는 사람이나, 그 궁극의 시선은 바로 이 네 가지 기둥으로 쏠리게 된다. 목표 관리, 팀워크, 장기적 포석, 경쟁의 승부 근성. 이런 것들이 만들어 낸 일본 상품은 ‘불침(不沈. 가라앉지[沈] 않음[不] - 옮긴이) 항공모함’ 같은 것이지만, 문제는 이것을 뜨게 만든 부력이다. (아무리 잘 만든 항공모함이라도 – 옮긴이) 물이 없으면 뜨지 못한다. 우리는 그 항공모함을 보고 가끔 그것이 떠 있는 바다의 수면을 망각하는 수가 있다.
▶ ‘시아게’라는 일본말
우리(서기 1990년대의 한국인들 – 옮긴이)만이 아니라 세계가 ‘일본을 배우자.’고 말한다. 불량품이 거의 없는 일제 상품(오늘날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도요타 자동차의 제품만 하더라도 불량률을 지적받는 횟수가 전보다 늘어났고, 일제 상품을 직접 써 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쓴지 몇 해도 안 되어서 고장이 나거나 망가지는 물건이 많으니까. 아마 서기 2000년대 이후의 장기 불황과 기존 경제 체제의 붕괴가 이런 결과를 낳았으리라 – 옮긴이)을 놓고 감탄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외친다.
‘일본을 배우자.’ 한일 상품의 불량품 발생률을 비교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힘주어 말할 것이다.
자동차 주물의 경우, 우리의 불량품 발생률이 5퍼센트인데 비해서 일본은 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컬러 텔레비전의 경우, 우리 제품은 2.6 퍼센트의 꼴로 불량품이 발생하는데, 일본은 1.4 퍼센트로 우리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경우만이 아니라 전(모든/온 – 옮긴이) 종목의 상품에 걸쳐서 우리의 불량품은 일본의 배를 넘는다고 보아야 한다(이 글은 아직 일제 상품의 품질이 좋을 때이던 서기 1990년대 초반에 쓰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반대로 LG나 삼성을 비롯한 한국 회사들이 만든 가전제품이나 자동차가 국제사회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옮긴이).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서기 1992년 현재 – 옮긴이) 일을 하거나 물건을 만들 때 마지막 끝마무리를 하는 것을 ‘시아게’라고 한다(‘시아게[しあげ(仕上げ)]’는 일본어로 ‘마무리’/‘완성시킴’/‘끝손질’/‘뒷마감’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 이를테면 ‘끝마무리나 끝손질을 하려는 개념 자체가 우리에게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일본말을 그냥 빌려 쓰는 게 아니냐?’고 국민성을 들먹거리는 사람도 많다(그들의 말이 사실과 다른 까닭은, 만약 근대 왜국[倭國]이 근세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다면 – 그리고 대한제국을 점령하고 지배하지 않았다면 - ‘시아게’라는 왜어[倭語]가 한국 사회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고, 한국 안에서 쓰이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아게’와 같은 뜻인 배달말인 ‘마무리’/‘끝손질’이 엄연히 있는 점을 보더라도, 근대 이전의 한국인에게 “끝마무리나 끝손질을 하려는 개념”은 있었다고 봐야 한다 – 옮긴이).
우리는 물건을 만들 때 적당히 대충대충 하지만(그러나 이런 태도는 근세조선 시대나 근대에야 나타난 것이지, 그 이전에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흔히 ‘홍산문화’로 불리는, 아사달[고조선] 이전에 나타난 문명의 옥[玉] 치레거리들을 보라. 그것들은 손으로 여러 번 정성스럽게 깎고 다듬어야 만들 수 있는 물건들이다. 그리고 남부여 장인의 걸작인 백제 금동대향로를 보라. 그것도 향로 안의 작은 악사까지 세세하게 깎고 새기고 그려내야 할 만큼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하는 물건이다. 고려청자와 고리[高麗]의 나전칠기는 어떤가? 그것들의 화려함과 치밀함은 “끝마무리”를 잘 하지 않는다면 만들어낼 수 없는 것들이다 – 옮긴이), 일본 사람들은 혼신의 힘을 들여 꼼꼼하게, 끝까지, 그리고 철저하게 손을 본다. 한 마디로 일본 사람들은 우리보다 ‘독하게’ 물건을 만든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므로 (만약 – 옮긴이) 우리가 일본 사람처럼 ‘시아게(마무리 – 옮긴이)’를 잘 하는 국민이 되려면, ‘불량품 제로’의 상품을 만들어 내려면, 이 지독한 마음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된다. 쉽게 말해서, 15년 걸려 세 식구가 세 그릇의 메밀 국수를 시켜 먹는 이 지독한 마음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지독한 마음이 그 목표에 따라서는 참으로 끔찍한 것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작은 예를 하나 들어 보면, 에도 시대 때의 봉건주의가 얼마나 지독한 것이었나를 (알기 – 옮긴이) 위해서 우리는 잠시 ‘도노사마(영주[일본의 용어를 그대로 쓰자면, “번주(藩主)” - 옮긴이])’의 밥상을 넘겨다 볼 필요가 있다.
만약에 도노사마가 드는 밥 속에 작은 뉘(쌀 속에 섞인 벼 알갱이 – 옮긴이) 하나가 섞이거나 돌 하나라도 들어있으면, 음식을 만든 주방장은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났다. ‘쫓겨났다.’는 말이 아니라, 진짜 칼로 목을 쳐 죽였다는 것이다.
자기 목에 주야로 시퍼런 칼이 드려져 있는데 건성건성 대충대충 밥을 지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작은 뒤, 돌 하나가 바로 자기 목숨인데 눈을 부릅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불량품 제로’ 운동의 근원(뿌리 – 옮긴이)은 도노사마 밥상을 차리는 에도의 부엌에까지 그 줄기가 닿아 있는 것이다.
(→ “일본 사람들은 정직하고 믿을 수 있으니, 그들을 본받자.”고 주장하는 친일국가 출신인 사람들과 한국 안의 종일[從日. 왜국(日)을 (종처럼) 따름(從). 이완용 같은 자들의 성향과 말과 행동을 평가할 때는, ‘왜국과 친하다.’는 뜻인 ‘친일’보다는 이 말이 더 정확하다고 한다] 세력에게 묻겠다. 한국인인 내가, 아니,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이 에도시대의 이런 잔인한 관행까지 ‘본받아야’ 하는가? 이런 관행에 뿌리를 둔 문화와 법과 제도까지 칭찬해야 하는가? 당신들은 도대체 왜 이런 관행에는 입을 다물고 눈을 돌리는 건가? : 옮긴이)
일본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잇쇼켄메이(一生懸命[일생현명])’라고 하는데, 이 말뜻은 ‘일생의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비유가 아닌 것이다. (밥 속에 – 옮긴이) 뉘 하나만 들어가도 목이 잘리고, (사소한 잘못 때문에 – 옮긴이) 생배를 째고 죽어야 하는(셋부쿠[한자로는 “할복(割腹)” - 옮긴이]), 그 엄격한 봉건제 사회 속에서 살아온 백성들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해도 늘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 기모노 속에 숨겨진 속살을
일본인의 특징인 협력/단결심과 같은 아름다운 풍습도, 그것을 발생시킨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환경을 분석해 보면 그 찬미가는 장송곡처럼 우울해진다.
일본 사회에서는 집단을 위해서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 왔다. 당하는 사람 쪽에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길들여져 왔다.
우리는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어머니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지만, 목표를 향해서 일로(一路. 한 방향으로 곧장 나아가는 추세 – 옮긴이) 매진하는 그 무서운 여인의 모습을 에도 시대로 환원하면 ‘고가에시’나 ‘마비키’를 하던 무서운 어머니로 변신한다.
고가에시(子返し[자반시])라는 말은 하느님(천신[天神] - 옮긴이)에게 ‘자식을 다시 돌려 준다.’는 뜻이며, 마비키라는 것은 (원래는 – 옮긴이) 채소(菜蔬. 순수한 배달말로는 ‘푸성귀’ - 옮긴이) 같은 것을 ‘솎아내기’ 한다는 뜻이다.
즉, 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집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갓난아기를 죽이는 것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죽이는 방법이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 맷돌로 눌러 죽이기도 하고, 굶겨 죽이기도 하고, 때로는 물을 묻힌 창호지를 코에 붙여 질식시켜 죽이는 수도 있었다.
자식 죽이기가 하도 만연하니, 도쿠가와 막부(에도 막부의 다른 이름. 에도 막부를 세운 집안의 성씨가 ‘도쿠가와’라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 옮긴이)에서는 금령(禁令. 어떤 행위를 하지 못하게 막는 법령 – 옮긴이)을 내렸고, 때로는 보조금을 주어 자식을 죽이지 못하게 했다.
(제4 세계의 사람들과, 친일국가 출신 시민/국민들과, 한국 안의 친일파/종일[從日]파들은 ‘위대한 일본’/‘아름다운 일본’이라고 말하며 감탄하기 전에, 이처럼 실재했던 잔인한 사실[史實]을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 옮긴이)
(그리고 – 옮긴이) 메이지 초(그러니까, 서기로는 19세기 중/후반 – 옮긴이)에는 딸을 매춘부(성매매 여성 – 옮긴이)로 파는 일이 많았다. 업자들은 그 부모로부터 딸을 사서 ‘동으로는 북남미, 서로는 중국(정확히는,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중국” - 옮긴이), 북으로는 시베리아와 만주, 남으로는 인도네시아와 인도’로 전방위 해외 수출을 했다.
민족주의로 이름난 ‘후타바 데이(二葉 亭[이엽 정])’라는 (일본의 – 옮긴이) 작가는 심지어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창녀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일본 상품이 따라가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지반을 굳혀 간다. 시베리아에 다소나마 일본 상품이 진출하게 된 것은 그녀들(팔려간 일본 창녀들) 덕택이다.’
『 일본 홍도 총기(日本 弘道 叢記) 』 제1호(명치 25년[메이지 25년. 서기로는 1893년 – 옮긴이])에서 ‘니시무라(西村 茂樹[서촌 무수])’는 그런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요즘 일본 여자들 가운데 타국(他國. 다른 나라 – 옮긴이)에 나가 취업을 하는 자가 날로 늘고 있어, 일본 여자가 세계적으로 천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구미(歐美. 유럽[歐]과 미국[美] → 서양 : 옮긴이)의 여자들은 논할 것도 없고, 우리(일본인 – 옮긴이)가 멸시하는 중국(청나라 – 옮긴이)/조선(근세조선 – 옮긴이)과 같은 나라에서도 그런 예를 찾아볼 수 없다.’
라는 요지의 글을 싣고 있다.
도덕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공공연히 매음(여성이 돈을 받고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팖 – 옮긴이) 수출업자에게 딸자식을 파는 지독한 일본의 부모들의 비정한 마음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우리는 일본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지만, 먹는 입을 덜기 위해서 자식을 맷돌로 눌러 죽이거나 매음녀(‘성매매 여성’을 뜻하는 매춘부와 같은 말 – 옮긴이)로 팔아 넘기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진 민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한국의 인정주의
한국인은 인정주의 때문에 일본 사람과 같은 비정한 짓을 흉내내지 못한다. 밥 속의 뉘가 아니라 세종대왕이 탄 연(輦. 임금이 타고 다니던 가마 – 옮긴이)이 부서져 ‘지존한 옥체’를 다치게 했는데도, 그 책임자인 장영실은 파직을 당했을 뿐이다. 더구나 (그는 – 옮긴이) 천한 종 출신이었는데 말이다.
형(‘형벌’을 줄인 말 – 옮긴이) 제도를 봐도 그렇다. 실제로 일본에는 산 사람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삶아 죽이는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의 팽형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인정주의 때문에 차마 그런 짓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말로는 ‘팽형’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집행하는 것은 (죄인을 – 옮긴이) 종로 거리에 끌어내다가 끓는 가마솥에 발이나 손을 담갔다 꺼내는 것으로 그쳤다. 이를테면 삶는 체만 한 것이다.
『 춘향전 』 을 읽어 봐도 그렇다. 악명 높은 변학도(변사또 – 옮긴이)의 형장인데도 춘향이를 매질하는 형리들은 귓속말로 이렇게 말한다. ‘살살 때릴 것이니, 입으로 죽는 소리를 지르게.’ 사정을 봐서 때리는 시늉만 하는 이른바 ‘정장(情杖)’이라는 것이다.
상품을 만드는 데 있어서의 철저함과, 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의 엄격함은 그 뿌리가 같은 것이다. 자식을 죽이는 비정함과, 일개(한낱 – 옮긴이) 집단인 기업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경영술은 결코 다른 가지의 잎이요 꽃이 아닌 것이다.
‘일본인들에게서 배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 한 그릇 메밀 국수 』 의 세계에 대한 감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기모노 속에 숨겨진 속살을 보라는 이야기다. 그러고서 일본을 배우고 일본을 뛰어넘는 새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한 그릇 메밀 국수 』속에 담긴 그 많은 의미를 맛본 다음에, 우리는 일본의 만화, 일본의 소설, 그리고 일본의 경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덧붙이자면, 나는 이 글이 쓰인 지 한 세대가 흐른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이 일본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우거나, 무엇인가를 받아들일 필요는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 한국인들은,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도 일본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그 ‘나라’를 냉정하게 파헤치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지금이야말로 그렇게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옮긴이).
― 이상 『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 』 (작은 제목 「 ‘한 그릇 메밀 국수’의 일곱 가지 의미 」. ‘이어령’ 지음, ‘기린원’ 펴냄, 서기 1994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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