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총성…날뛰기 시작한 사나운 野生馬
1982년 4월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3)
吳効鎭(월간조선)
1982년 4월26일 저녁부터 27일 새벽까지 한밤 새에 경북 의령군 궁류면의 한적하던 4개 부락에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벌어졌다. 현직 우범곤(禹範坤) 순경의 잔인한 극한난동으로 남녀노소 56명이 살해당하고 34명이 불의의 총알과 수류탄의 세례를 받고 다쳤으며 우범곤 자신은 수류탄으로 자폭, 방안에 있던 3명의 주민을 강제 동반자살했다. 월간조선은 이 끔찍한 현장에 현역 작가를 긴급 특파해 사건 내막과 경위를 샅샅이 추적, 심층취재했다.
반상회 마을에 첫 銃聲… 첫 犧牲
밤 9시35분.
지서 안.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우 순경이 식식거리며 앉아 있는데, 아까 싸움을 말리다 뺨을 맞은 경자 씨 동생이 지서에 찾아와 항의를 한다.
“여보쇼, 순경이면 다야? 왜 사람을 때려!”
이때 그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른다.
“썅 다 죽여 버리겠어.”
그는 지서 안 무기함에서 카빈 두 자루와 실탄을 꺼내 철컥거리며 장전하고 나머지는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이때 그는 이미 건전한 의식의 벽을 뛰어넘었다.
갑작스런 변화에 놀란 방위병이 그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왜 그카능교?”
그는 커다란 목소리로 씹듯이 내뱉었다.
“오늘 저녁에 나를 욕한 놈들 다 죽여버리겠어.”
같이 근무하던 다른 방위병이 농담인 줄 알고 팔을 잡고 말렸다. 이때 그의 동생 범호도 그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냉엄하게 말했다.
“늬들은 안 죽일 테니까 살고 싶으면 빨리 꺼져.”
그러면서 그는 방위병 옆구리 근처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지서에 있던 방위병들은 재빨리 몸을 피해 달아났다. 그는 마음의 고삐를 더욱 풀어놓기 위해선지 지서 안에서 공포 몇 발을 쏘았다.
그는 지서에서 나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쇠로 무기고 문을 열었다. 수류탄 여덟 발을 꺼내고 문을 다시 잠갔다. 그는 경비 전화의 배터리 이음 부분을 끊어 불통하게 만들었다. 그는 전화를 끊으면서 얼른얼른 생각한다. 지서장과 차석은 부곡 온천에 갔다. 경비전화와 일반전화를 끊어놓으면 쉽게 뒤쫓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서에서 나와 그는 안으로 수류탄 한 발을 던졌다. 그러나 불발이었다. 이번엔 지서 건너편 임정수 씨 가게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지붕에 맞고 굴러서 바닥으로 ᄄᅠᆯ어졌다. 역시 불발.
임 씨 가게는 불이 꺼져 있었다. 임 씨는 지서에서 공포 소리가 들려오기 5분 전,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미리 알고 불을 끄고 문을 잠가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때 마침 우범곤은 마을 회관에서 반상회에 참석하고 지서 앞을 지나던 ① 손진태 씨(孫鎭泰, 26)를 만났다(이름 앞 숫자는 살해당한 순서). 우 순경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겨 그 자리에서 그를 숨지게 했다. 대구 표구사에서 일하던 손 씨는 그날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고향에 왔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처음으로 사람을 쏴서 숨지게 한 우범곤은 야릇한 희열을 느낀다. 풍선처럼 잔뜩 부풀어 있던 불만이 작은 바늘 구멍을 만나 쏴아 하고 시원스럽게 빠져나가는 것 같다.
그는 그놈의 총을 한번 마음껏 쏴보고 싶었다.
그는 거의 매일 공기총으로 지서 앞에서 사격연습을 해왔다. 20m 떨어진 나무 위의 참새를 맞히는 건 백발백중, 식은 죽 먹기였다. 10m 거리의 담배 꽁초도 명중시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사격만은 끝내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날뛰기 시작한 사나운 野生馬
그는 또 끝없이 달리고도 싶었다. 그래서 처가에서 사준 오토바이를, 산 바로 그 이튿날 방위병과 속도 경주를 하다가 논바닥에 쑤셔 박기도 했다.
우범곤은 쏘고 싶었고, 끝없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달리고 싶었고, 남들이 오를 수 없을 만큼 높이 오르고 싶었다. 숨 막히도록 답답한 현실의 벽을 그는 거리낌 없이 뛰어넘고 싶었다.
<自我
머언
아득한 옛날이라 부른다.
어쩐지 이유 없이
울고픈 날이 있었다.
환상을 무시하였기에
당한 학대였을까?
염원에 대한 즐거움은 더 큰 괴로움을 낳았고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
야생마의 소질을 닮아 가는 나는
눈물조차 매말랐던
마치 타락한 인생이었다.
흘러간 지금
나는 허공에서 두 손을 모은다.
알알이 맺혀진 슬픔일랑…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고파.
-낙서 모음->
이제 그는 이 시를 쓸 때와는 달리 모든 것을 내동댕이치려고 야생마처럼 허공을 향해 울부짖으며 뛰고 있다.
밤 9시55분.
야생마는 지서에서 20여m 떨어진 궁류 우체국 옆문으로 뛰어든다. 본관 옆 조그만 별채에 있는 교환실로 가서 유리문을 벌컥 연다. 교환대에 앉아 있던 ②전은숙 양(田銀淑, 23)과 ③박영숙 양(朴鐛淑, 19)은 깜작 놀라 돌아본다. 둘 다 잘 아는 처녀들이다. 그는 그 둘에게 총탄 세례를 퍼붓는다. 전 양은 교환실 출입구 쪽 바닥에 쓰러져 숨졌고, 박 양은 교환대 의자에서 그대로 앉아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거두었다.
그는 교환기를 박살이라도 내려는 듯 거기에다도 대여섯 발을 쏘아댄다. 이때 본관 숙직실에 있던 집배원 ④전종석 씨(田鍾碩. 36)가 무슨 일인가 하고 뛰어나오다가 돌아 나오는 우범곤을 만난다. 그는 옆문을 열고 전 씨를 쐈다. 탄환은 전 씨의 명치를 관통하고 한쪽 팔꿈치를 날렸다. 그는 우체국 바닥에 엎어져 숨을 거두었다.
숨진 田 양은 궁류의 꽃이었다. 마을 교환수로 일하면서 밤에는 방송통신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했다. 마을 청소년회 부회장직도 맡아 하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병석에 누운 홀어머니를 간병하는 한편 최근엔 3년 만기의 2백만 원짜리 적금을 들어 자기 시집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또 월부로 백과사전을 들여놓고선 빨간 줄을 쳐가면서 공부를 했다.
宮柳의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그날밤 궁류의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 커더란 비극의 서막에 때맞춰 하늘도 함께 울어 주려는 듯, 그토록 후텁지근하고 그토록 답답하고 그토록 짜증나게 하던 대기가 빗줄기와 함께 서늘해진다. 이 난리를 꾸미기 위해 어제는 여름처럼 무더웠고 오늘은 구름을 겹겹 쌓아 놓고 찍어 눌렀나 보다.
비, 비가 내린다. 모든 것을 씻어내릴 시원한 비가 내린다. 우범곤은 비를 맞으며 우체국을 나와 면사무소 앞을 지나친 다음 매곡부락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면사무소를 조금 지나 농협으로 가는 길목으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꺽어들면 경운기가 다닐 만한 빤한 길이 나타난다. 어둠 속에 농협 창고와 그 뒤 교회가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우범곤은 매곡리로 가는 마지막 길을 좀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배가 불룩한 맹꽁이처럼 배에 화를 잔뜩 집어넣고서.
<난 인간의 슬픔을 느꼈어.
인간은 오직 삶을 위해 발버둥쳐야만 하나.
푸쉬킨이 말했듯이
현재는 슬프고
마음은 항상 미래에 사는가 보오.
-낙서 모음, ‘백설’의 일부->
우범곤에게 현재는 항상 슬픈 것으로 투영된다. 173cm의 훌쩍 큰 키, 미남형 얼굴과 준수한 몸매, 지능지수 100, 누구한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 특등사수, 태권도 합기도의 유단자, 그런 그에게 저기 바라다 보이는 활짝 열린 미래, 그는 그 미래를 향해 뛰어보자고 어금니를 물었었다.
<허고 많은 세상에 태어나서
왜 살기가 힘든다고 야단이냐
이 문둥아
오늘의 괴로움보다
내일에의 꿈을 찾아서.
-낙서 모음>
<지나간 추억 속에 흐트러진 인생(人生) 지금 은 일어나야 하지 않겠어?
철없이 뛰놀던 옛 얘기는 덮어두고 파란 많은 오솔길을 따라 움직여 볼까.
아니 이제는 30년간만
두 눈에 충혈해서 힘껏 뛰어 보자구.
이 한몸 죽을 때까지 말야.
사나이 대장부로 태어나
물 불을 가려서야 뭐가 되겠나.
저기 가는 토끼보담
지금부터 기어가는 거북이가 되어
삶의 목표를 향해
돛을 달고
군에서 배운 인내와 투지로써 출발하자구.
-낙서 모음->
그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철없는 세월로 치부된다. 상위권이었던 성적이 주먹대장 노릇을 하다 보니 최하위권을 맴돌게 됐고, 그러다 보니 자연 결석이 잦아서 ‘정상에서 벗어나는’ 아이로 지목받게 된다. 그런 철없던 시절의 야기는 다 잊어 버리자. 앞을 향해 뛰자.
그러나 가도 가도 현실은 슬펐다. 미래는 무지개처럼 항상 저만큼 앞에서 비웃고 있다. 뭔가가 돼보고 싶어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뛰는 젊은이는 이런 절망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는 술을 먹고 욕을 하고 성질을 부린다. 남들은 그런 그를 난폭하다고 하면서 욕질을 하고 경계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