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연출가 이윤택(51)이 대중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3월 1~23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로 올해 서울에서의 첫 무대를 연다. 지난 95년 이 작품을 초연(初演)했던 그는 “7년동안 벼르고 벼르며 재공연을 단단히 준비했다”고 했다. 이윤택이 대중극에 이런 열의를 보이는 까닭은 뭘까? 그는 “요즘 우리 연극은 관객을 외면하는 ‘퇴행적 순수’와 말초적 재미만 추구하는 ‘막가파 대중성’ 사이에 있다”며 자신이 대중극에 뛰어드는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공연됐던 악극들이 잇따라 관객몰이를 했지요. 그 대중적 인기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탤런트들을 대거 출연시키는 등 지나치게 흥행 위주로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어요. 제대로 연극성을 갖춘 대중극이 필요합니다.”
“연극이 살아 있는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건 연출가라면 누구나 주장하는 것. 하지만 어떻게 하면 대중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장독에서 귀신이 나오고 마당의 빗자루가 도깨비로 둔갑하는 것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이미지예요. 이렇게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기호를 발견해내는 게 바로 연극과 대중을 만나게 하는 비결입니다.”
그는 “악극, 가극 등은 원래 매우 수준이 놓은 공연인데 요즘엔 평가절하돼 있다”고 했다.
“신파극, 악극, 가극 등으로 이어져온 한국 근대 대중극은 훌륭한 배우가 뒷받침이 됐어요.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10분이 넘는 긴 독백을 하면서 관객을 장악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40~50년대 악극단은 규모도 대단했어요. 연주단 30명, 댄서 30명은 기본이었으니까요.”
임선규 원작을 손봐서 만든 ‘사랑에 속고…’는 극중 노래 가사인 ‘홍도야 울지마라 오빠가 있다’로 더 유명하다. 홍도(이윤주)는 기생 노릇을 하며 오빠 철수(조영진)의 학비를 댄다. 하지만 대감집 아들 광호와 사랑에 빠지면서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이 극은 기생과 학생, 상전과 하인의 대결구조를 갖춘, ‘사회극’의 전형입니다. 가진 자들이 믿음을 저버리고, 없는 자들은 반항하고 울분할 때 바로 극적 긴장은 최고에 달하지요. 이를 통해 복잡한 주제를 단순하게 그리는 게 대중극의 기술입니다. 대신 배우의 강한 열정과 풍부한 동작으로 승부하는 거예요.”
그는 “오늘날 우리 연극판에 이런 ‘대중극’의 재미와 수준을 되살려놓고 싶다”고 강조했다. 50년대 ‘백조가극단’에서 활동했던 원희옥(67)이 가수로, 2001년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전성환(63)이 변사로 출연해 농익은 연기를 보여주는 것도 이 연극에서 기대해볼만한 점이다. (02)790-6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