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기다림
지은이- 고성 대진고등학교 德田
며칠 동안 동장군의 횡포가 대단했다. 만물의 영장들을 손아귀에 넣고 칠종칠금(七從七擒)하더니 어제부터 계엄을 해제하듯 조금씩 압박의 수위를 풀기 시작했다.
웬만한 추위쯤이야 두툼한 외투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하면 동장군이 어디에 기생할 것인가? 기웃거리다 고뿔이나 하나 던지고 사흘이면 퇴각하는데, 이번 혹한은 철저히 인간의 사유를 외면해 버린 혹한이었다. 숨 한번 크게 내쉬지 못하고 급성뇌경색, 뇌졸증으로 겁을 주어 두려움 속에서 작은 짐승처럼 갇혀 지낸 것 또한 사실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오랜만에 애마를 끌고 동해북부선을 달렸다.
기분도 전환할 겸 주눅이 되어 웅크리고 있던 작은 모세관까지 신선한 해풍으로 재충전할 양으로, 기지개를 켜고 모처럼 질주를 계속했다. 어느 곳보다 드넓은 해안선으로 많은 자유가 주어진 파도의 철썩임으로 명사십리답게 평화스러움을 만끽하면서 민통선을 막 지날 무렵이었다.
- 선생님!― 어디가세요?
- 아니? 미선이 아냐? 어쩐 일이야?
작년 졸업생 미선이가 자기 동네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손사레를 치는 게 운전 중에 시야에 들어왔다. 우연이었다. 특별히 정착지도 없어 차를 정차하고 한해의 궁금했던 소식이라도 들을 겸 하차했다. 대전 이모댁에서 운영하는 작은 공장에 근무하다가 명절이 가까워 왔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제법 어른스럽게 반색을 하는 게 아닌가?
으젓한 사회인이 되어 다가오는 미선이는 지난해 졸업 무렵 수혜 받은 작은 일이 손잡이가 되어 더욱 반기는 듯했다. 공부는 뒤지나 부침 부침해 새벽부터 교무실을 말끔히 물걸레질을 하며 해맑은 표정으로 아침 인사를 해 늘 선생님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인근 대학에 입학은 했으나 등록을 포기한 미선이는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유난히 실어증세를 보였다. 그간 밀려온 납부금 때문에 수시로 행정실로 불려가 약속 날짜를 연일 채근 받기 때문인 것 같았다. 누적된 급식비, 수업료, 보충수업비 그리고 앨범비 등이 졸업을 하고 날갯짓하며 교문을 박차고 떠날 녀석들의 양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특히 지역적으로 이곳 어촌은 다른 곳보다 결손가정이 유난히 많다.
조손(祖孫)이라고 조부모와 손자, 손녀들이 가정을 추스르며 어렵게 살아간다. 도시에서 의욕적으로 생활하다가 경제적인 문제가 깊어지면 헤쳐나가지 못하고 급기야 부부가 갈라서는 것만이 최상책인 것처럼 가족이 해체된다.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인 애들은 어떻게 하는가? 시골 노부부의 몫으로 옹색한 악순환은 시작된다.
미선이도 예외는 아니다. 부모가 갈라서고 고향으로 전학을 해 근근히 살고 있다. 큰 키에 빌려 입은 껑충한 교복으로 늘 손이 시려 팔짱을 끼고, 학교 매점에서 흔한 컵라면 한번 사먹지 못하고 서성인다. 그러나 미선이 표정은 크게 어둡지 않았다.
그 후, 작은 부담이라도 덜어주려고 앨범비를 대납해 주었더니 부친이 고마워하시며 어느 날 초대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연유로 작년에 모처럼 비담임으로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학교서 보는 미선이, 그리고 집에서 보는 미선이는 너무 달랐다. 사는 집이 온통 빈곤 투성이었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작년만 해도 병석에 누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시던 연로하신 미선이 할아버님 이야기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아이구! 선상님이 우리 미선이 앨범 값을 대납해 주셨다구요. 고맙습니다.
보자마자 첫마디에 쑥스러웠다. 아버지는 판장에서 얼음 박스 준비로 출타중이셨다. 미선이 눈을 닮은 할머니 간호를 받던 할아버지는 오랜 지병인 해소와 관절로 몸져 누우셨다. 종일 병석에서 파도소리만 들으시다가 해가 저물녘이면, 불편한 몸으로 고작 안마당을 한 바퀴 돌며 수평선 멀리 시선을 던지시며 무언가 찬찬히 훑어보시는 게 유일한 하루 일과셨다. 미수를 막 넘기신 할아버지는 가정방문한 제 손을 꼭 잡으시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릴 듯 말 듯 속삭이셨다.
-사는 게 이래유 선상님! 바다에서 뭐가 나야 하는데 요즘 통 나질 않네유.
-네,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예전엔 선상님! 명태, 청어가 을마나 많이 잽혔는지 선상님, 개가 물고 다녔어요. 증말로!
-아! 그럴 정도였군요.
-우리 재 아범 선상님에게도 이맘때면 명태 참 많이 잡수시라고 보냈는데
예전 같으면 선상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데 미선이 신세를 어떻게 갚나유?
-별말씀 다하세요. 얼마 되지 않는데요 뭘!!
-아니야유, 선상님! 사람이 경오가 있는 법이예요. 예전엔 온 식구가 나가서 명태를 벗기고 밸을 따 덕장에 널고, 참 살맛 날 때였지유. 명란젓, 창난젓, 아가미 젓을 담구고 애는 애공장에 팔아 동절기에 벌이가 대단했어유.
할아버지는 어느새 신바람이 나셨다.
-선상님! 저 문밖에 보이는 밭에 모두 덕장을 매 이 동네에서 최고였지유, 허 허!
-네. 그러시군요. 또 잡히겠지요. 할아버님!
-그럼요, 제까짓 게 나지 않으면 어딜 가유. 선상님! 내가 명태만 많이 잡히면 한 리어카를 미선이 아범 편에 갔다 드리라고 할 테니 학교 관사에 줄을 매 말리세요. 네?
-네! 말씀만 하셔도 고맙습니다. 어서 쾌차하셔서 일어나세요. 할아버님!
심하게 기관지가 좋지 않아 가래가 끓고 계신 와중에서도 미선이 할아버지는 아직도 6,70년대의 명태 철을 넘나들며 흥분해 하신다. 아흔이 넘으신 할아버지라 왜 명태가 안 잡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셨다.
아무리 방송에 동해안이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복어와 오징어가 많이 잡힌다는 말이 미선이 할아버지에겐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할 뿐 할아버지의 기다림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 이제 북쪽에서 명태가 내려오겠지요.
-고맙습니다. 선상님! 그럴 거예요. 쿨룩-. 쿨룩-
할아버지는 명태 얘기만 나오면 참지 못하는 성미라 산더미처럼 쌓인 이야기를 죄다 하려는 욕심에 기침이 끊이지 않으셨다. 늘 말끝을 맺지 못하시고 읊조리시는 할아버지! 너무 열정적으로 명태이야기만 나오면 미열에 소년처럼 용안이 발그레하셨다. 밀물과 썰물의 빈번한 교차였다.
-선상님! 명태만 나면 급식비, 앨범비가 문젠가요. 돈이 여기저기 막 생겨요. 지금도 북한 놈들이 가로막아서 그렇지-. 길만 트면 이 할미까지 나가서 명태를 덕장에 리어카에 싣고 가 씻어 걸어야 할 판이예요. 쿨룩-.
-선상님! 우리 집이 서거리 젓(아가미)이 제일 맛있게 담가, 조석으로 온동네 사람들한테 퍼주곤 했어요. 올해도 명태만 나면 자취하신다는 선상님께 미선이 편에 몇 사발 보내 드릴 테니 그리 아슈!
-네, 네! 먹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제 곧 잡힐겝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예전에 그렇게 많이 잡혔는데 왜 안 잡힐라구요?
계속 6-70년대의 풍어 때를 가슴에 간직하시고 그리시는 할아버지께 변변히 답을 드리지 못하는 내 심정은 너무 답답했다. 전전긍긍하던 선생을 보며 등 뒤에선 할머니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신뢰감 없이 떠드는 할아버지 말씀에 아예 딴청을 부리시다 가끔씩 안타까운 표정으로 다시 시선을 모으시곤 했다.
작년 그 해 겨울-. 봄이 올 무렵, 그 몹쓸 지구 온난화로 결국 92세에 생을 마감한 할아버지는 떼지어 걸려 만선인 명태 어망 한번 허벌나게 보지 못하시고 생을 마치셨다.
다시 겨울이 그 때처럼 지나가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순간,정이 넘치는 할아버지의 기다림을 같이 그날이 생각났는지 제법 처녀티가 난 미선이 표정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를 맞이한다. 사람의 생애란 하나의 기다림이라고 했다. 누구를 왜 기다리는가? 그러나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고 시간의 흔적들만 무성한 숲을 이룬다. 온난화로 동해안이 온통 난류에게 안방을 내준 격이다. 처음 보는 낯선 다랑어들이 부산, 삼척에서 마구 잡혀 양식 단계까지 접어들었단다. 반달곰이 겨울잠을 생략하고 극지방의 신사도 설자리가 줄어든다고 한다.
눈 감으신 미선이 할아버지는 그러니까 2000년부터 간절한 다림은 계속되셨으리라. 오늘도 천상에서 그 얼마나 명태가 나기를 고대하고 계실까? 아니 모든 어부들이 그런 꿈을 저마다 포기하지 않고 하루의 빈곤 속에서 또 한해를 넘기고 있는지 모른다. (끝) (2009. 1. 20일 作